한국전쟁 전후의 100만 민간인학살-학살의 참상(1)
10편에서는 친일,친미에 의해 왜곡된 우리의 역사를 바로 들여다보고 통일의 걸림돌은 무엇인지 짚어보는 시간을 가졌었는데요. 11편에서는 그 연장선으로 한국전쟁 전후의 100만 민간인 학살의 참상을 여과없이 살펴보는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한국전쟁 전후 100만 민간인 학살은 한국현대사 최대의 비극이자 블랙박스다. 대한민국 태동의 비밀이 그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죽었을까? 죽은 자는 누구고 죽인 자는 누구인가? 대학살이 한국사회에 미친 영향은 무엇인가? 부모, 형제, 자매를 잃은 유족들에게 국가란 과연 무엇이겠는가? 모든 사람이 이구동성으로 인권평화를 이야기하는 지금 우리는 이 문제를 어떻게 대하고 어떻게 풀 것인가? 깊이 고민하고 성찰하는 가운데 우리가 바라는 미래는 다가온다. (발췌 : 한국전쟁유족회)
1. 제정신으로는 돌아볼 수 없는 그 참상
2. 해방후 미군정의 식민 통치에 대한 민중들의 사무친 증오심
3. 미군정과 이승만의 서북청년단, 제주도 학살 최선봉에 서다
4. 여순사건의 학살 과정에서 일본군과 만주군 출신들이 군부의 상층부를 장악했고,
5. 가장 잔혹한 국가 범죄 보도연맹 학살은 대통령 특명에 의한 것”
6. 야만성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 국가에 의한 불법 살인
7. 이승만 정권의 부역자 처리는 터무니없는 대량학살 전쟁범죄
8. 50여일에 걸친 ‘죽음의 공포’
9. 죽음의 대열, 해골의 행렬, 거지중의 상거지 “국민방위군”
10. 좌익세력은 군경 토벌대처럼 대규모 민간인 학살사건을 일으키지는 않았다.
11. 미국 민간인 학살 목록 (총 120건)
제정신 갖고는 돌아볼 수 없는 그 참상
한국전쟁 때 한반도에서는 세계 역사상 그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만행’이 저질러졌다. 수도 없이 많은 사람을 죽였다. 온 산하가 피로 철철 넘치게, 뚜렷한 이유도 없이, 단지 우리 편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도, 아니 우리 편이 아닐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반세기 전 우리 대한민국은 온갖 유형의 ‘학살’의 전시장이요 백화점이었다.
얼마나 ? 100만 ?
남한에서만 무려 100만 명. 이는 전투로 인한 군인, 민간인 희생자를 제외하고 순전히 ‘학살’당한 민간인들을 센 숫자다. 죽이는 방법도 가지가지였다. 지금까지 세상에 알려진 잔인한 방법들이 다 동원되었다. 총살과 기총소사, 폭격에 의한 참살은 기본이고, 죽창으로 찔러 죽이고, 몽둥이로 때려 죽였다. 일본도로 목을 쳐 죽이고, 불태워 죽이고, 굶겨 죽이고, 산 채로 생매장해 죽이고, 물 속에 처넣어 죽이고, 굴 속에 떨어뜨려 죽였다. 목 졸라 죽이고, 껍질을 벗긴 채 나무에 매달아 죽이고, 사지를 찢어 죽이는 끔찍한 행위까지도 서슴지 않았고, 죽일 사람이 없을 때 가족을 대신 죽인 경우, 씨를 말려 후환을 없애야 한다며 일가족을 몰살한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죽인 자, 죽은 자
전쟁 당시의 민간인학살이 더 충격적인 것은 그 다수가 적이 아니라 우리 군경에 의해 우리 국민이 집단학살 당했다는 점이다. 전체 학살 중 미군, 국군, 경찰, 그리고 우익단체와 비정규무장대에 의한 학살이 다수를 차지하고, 인민군, 빨치산, 지방 좌익에 의한 학살이 훨씬 적다. 당시 이승만 정권과 그 후견인인 미국이 다수 국민을 ‘잠재적인 적’으로 규정하고 무자비한 학살을 자행 또는 묵인했다는 증거가 적지 않았다. 이는 결코 용인될 수 없는 반인도적 전쟁범죄이자 국가폭력이었다. 학살희생자는 국민보도 연맹원, 형무소 재소자, 좌익경력자나 부역혐의자와 그 가족, 빨치산 활동지역 인근 마을 주민, 피난민, 우익 인사 등 사실상 국민 모두였다.
전쟁기의 한반도, 인권유린의 전시장
크고 작은 학살 현장에서는 인간의 탈을 쓴 짐승들의 향연이 난무했다. 전국 방방곡곡에 인권유린의 전시장이 설치되었고, 눈뜨고는 볼 수 없는 반인륜적 행위들이 자행되었다. 부녀자의 강O 능욕은 기본이고, 젖가슴 난자 살해 후 암매장, 알몸 고문, 부자간 뺨 때리기, 며느리 말태우기, 친족간에 생피붙이고 덥석말아 굴리는 장면까지 연출되었다.
이런 참상들을 목도하고 살아남은 사람들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아무리 잊으려 해도 잊히지 않는 그 악몽들, 눈을 감아도 질끈 동여 감아도 선연히 떠오르는 그 참상들을 안고 사는 사람들이 제정신이었을까? 가족을 잃은 유족들은 물론이고 사람들의 끔찍한 죽음을 보고 들은 이들, 광기에 휩쓸려 학살에 가담한 이들에게 그 기억은 다시는 떠올리기도 싫은 일이었고, 도리질을 쳐서라도 꼭 떨어내야만 그래도 이 질긴 목숨을 연명해갈 수 있는 그런 끔찍한 일이었을 것이다.
학살을 자행한 권력은 남은 사람들에게 재갈을 물렸다.
학살에 관한 이야기는 금기가 되었다. 특히 우리측의 군경과 우익단체, 미군에 의한 학살은 아예 없던 일로 하거나 사실을 거꾸로 왜곡했다. 그럼에도 간간이 비어져 나오는 학살의 진실은 철퇴를 맞았다. 학살의 ‘학’자라도 입밖에 꺼내는 사람은 사상이 불순한 사람이 되었다. 도매금으로 ‘빨갱이 가족’으로 몰린 학살 희생자의 유족들은 모진 목숨을 연명하기 위해 자신을 재포장했다. 군대나 우익단체에 들어가 신분을 ‘세척’했다. 권력의 실세가 된 가해자 집단과 어울려 그들과 교분을 쌓았다. 핍박 받는 고향을 등지고 아무도 아는 이 없는 곳에 새롭게 정착하여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다. 유족들은 자신의 2세들에까지 할아버지 세대의 죽임의 진상을 함구하면서, 오히려 ‘입 조심, 몸 조심’을 가훈으로 물려주었다.
그리하여 죽은 이들과 함께, 학살 사실 존재 자체가 사라졌다.
일백만의 우주와 함께 온 우주가 사라졌다. 그리고 다른 우주가 열렸다. 그 곳은 오로지 오른쪽으로만 보고 오른쪽으로만 듣고 오른쪽으로만 생각하는 세계였다. 왼쪽으로, 아니 한가운데로라도 눈을 돌리는 사람은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는 별난 세계였다. 그 세계에서는 중립적인 사고도, 합리적인 사고도 들어설 자리가 없었다. 지금은 너무나 당연시되는 평화통일조차도 당시에는 ‘빨갱이’사상으로 몰렸다.
에이, 이런 대명천지에 무슨 그런 일이 있었겠느냐고?
딴 나라 이야기 아니냐고? 귀가 닳도록 들어온 유태인 학살이나 남경 대학살, 만주의 731부대, 캄보디아의 킬링 필드, 베트남, 르완다, 칠레, 아르헨티나, 코소보, 동티모르, 아니면 스탈린 시대의 소련 이야기 아니냐고? 천만의 말씀! 바로 우리가 사는 이곳, 대한민국의 이야기다. 반백년 전, 우리 나라에서는 세계 어느 곳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처참한 만행이 저질러졌다. 반백년 전, 한반도는 피바다였다. 대립과 원한과 증오와 복수의 피바다였다.
이승만 정권과 미국에 의해 자행된 민간인학살이 인민군, 빨치산, 지방 좌익에 의한 학살보다 훨씬 많았다는 사실을 제대로 알고 있는 우리 국민들은 얼마나 될까요? 그 처참한 만행을 주도했던 인간의 탈을 쓴 짐승들이 기득권이 되어 이어져 온 것이 오늘날의 대한민국입니다. 과거를 알면 미래가 보인다고 하죠. 대한민국의 밝은 미래를 위해서라도 부끄럽지만, 우리의 아픈 과거사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비극은 친일파를 처단하지 못한것입니다.
저렇게 죽여놓고 가족들한테는 빨갱이가 죽였다고 했으니, 이승만한테 가족 잃은 사람들이 속아서 극우보수로 살아오게 되죠.
경북지역에 극우주의자들이 많은 것도 이런 것이 큰 이유들 중 하나일꺼라고 생각합니다.
국립묘지 젤좋은 자리 순서가 사람 많이 죽인 순인가....
아오 부관참시해야됨
하여간 시작은 신바람 리박사라니깐....
이.호루라기샛퀴부터 싹 갈아서 역사정리를 시작해야합니다
독립운동가는 무신...하와이안 갱스터에 양년맛들인 걸래샛퀴지
맥아더장군이 이승만이 10+8놈만 안밀었서도 나라가 재대로섰을거임..
하지만 이 역사를 배우지 못한(혹은 잘못 배운) 그 시대를 겪지 못한 제주도 노인들이 너도나도 박근혜를 찍었다고 한다
극악의 보도연맹 사건.. 저도 뒤늦게 태백산맥을 읽고 나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국민의 눈과 귀를 막은 그간의 역사때문에 저걸 아는 주변사람들이 거의 없더군요.. 이번정부에서는 이런 부끄러운 역사를 빨리 전 국민에게 숨김없이 가르쳐 국민 개개인이 스스로 역사를 판단하고 미래를 선택할 수 있게 해야 할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흑역사!
꼭 밝혀 다시는 이런 병신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