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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전2)인형도 말실수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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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에 문득 떠올라서 썼던 잡설이 뭔가 이거다 하고 꽂혀서


그대로 글로 써버렸네 에이잉..


오늘 퇴근후 쉬는시간 대다수 이걸로 까먹어버린건 안자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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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와 같은 엘모호의 회의였다. 이번에 마친 의뢰로 어떤 보수를 받았으며, 현재 BRIEF에 올라온 의뢰는 어떠어떠한 것이 있는지, 이 중 어떤 의뢰를 받아서 진행하면 좋을 것인지, 그리고 그 전에 필요한 물품이 있으면 요청하여 수령할 수 있도록 하고, 정비가 필요한 인형이 있으면 메이링에게 부탁하여 정비를 받을 수 있도록 과 같은 업무와 관련된 지극히 평범한 회의.
"그럼, 혹시 별도의 건의사항이 있을까?"
항상 회의를 마무리 짓기 전에, 지휘관은 이 멘트를 날린다. 만에 하나 지휘관 본인이 놓치고 있는게 있다면 말해달라는 은은한 요구가 섞인 한마디.
얼마전 치타가 뭔가를 실험한답시고 한 구역 절반을 난장판으로 만들어버린 일이 있었다. 시말서를 작성하긴 했지만 고스란히 그 정비는 메이링의 몫이었고, 눈물섞인 -안그래도 매일같이 철야를 하고있지만- 철야로 어느정도 해결되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어느 정도'로 해당 구역을 다시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수습한 수준에 불과하지 완벽하게 복구된 것은 아니었다. 이 밖에도 메이링의 한섞인 가장 많이 듣게 되는 건 단연 지휘관이겠지만 그 다음은 그로자였다. 엘모호의 인원이 늘어나고 나서부턴 이전보다 여러 물자의 소모도 현격히 상승했고 이를 관리하는 메이링의 고충도 늘어난게 사실이었다. 마침 임무도 막 끝난 참에 다음 임무도 아직 수주하지 않았겠다. 한번 전반적인 점검 및 보수가 필요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며 정보 단말을 터치하며 그로자가 입을 열었다.
"여보, 일단은 엘모호 내부의 전체 점검 및 물자파악을 하는 게 좋을 거 같아."
"그로자..?"
"응? 지휘관?"
자신을 부르는 지휘관의 목소리에 반응하여 고개를 돌리는 그로자, 시야에 들어온 지휘관의 얼굴에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지휘관 뿐이 아니라 회의실의 분위기도 이상하다. 적당한 활기로 차있던 회의실이 한순간에 딱딱하게 얼음장처럼 변했다는걸 그로자도 눈치챘지만 일단은 지휘관에게 대답해야겠지,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왜 불렀어 지휘관?"
"아니 방금 뭐라고..."
지휘관의 말에 그로자는 잠깐사이의 메모리를 확인해보기 시작한다
지휘관이 방금 뭐라고 말했냐고 물었고 그전에 자신이 지휘관에게 왜 불렀는지를 물었다. 그리고 그 전에는 엘모호 내부 점검 및 물자보급을 요청하면서 지휘관에게...
...여보..?
여보란 무슨 단어인가, 부부 사이에 서로를 편하게 부르는 호칭이다. 그 호칭을, 내가? 지휘관에게? 그전에 인형이 말실수도 할수있나? 설계자들에 의해 마인드맵의 아래에 깔린 무의식이 인형의 행동이나 말투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는 왕왕 있지만 이건 전혀 다르다. 내 마인드맵에 이러한 기조는 따로 설정되어있는건 없다. 그렇다는 건 온전하게 자신의 연산모듈에서 필터링되지 않은 단어가 발성모듈을 통해 튀어나온 건가?
잠깐 사이에 온갖 생각이 마인드맵을 스치고 지나가는것을 느끼며 그로자는 그대로 굳어 지휘관을 바라보며 "으...아...." 와 같은 당혹스러움으로 가득찬 짧은 소리만을 내뱉을 뿐이었다, 평소의 그 냉정침착한 그로자대장이 맞나 싶을 정도로.
"어머나, 지휘관님이 그렇게 각별한 관계인지 몰랐네요~."
"이 천재도 못해낸 걸 그로자 대장이 해냈다고?!"
"부풀어오르는 구체.... 흑백이 분리되어 나뉘니.."
"지휘관이 익히 인형들에게도 사람과 차이없이 대해준다는 이야기는 수오미에게도 들었지만, 방금 건으로 확실해진거같군, 역시 믿을 수 있는 사람이다."
"와 지휘관 그로자 대장이랑 가족이었네!"
"너어.. 내가 있는데도 어떻게 다른 애랑...!"
"여보라니 너무 멋진 단어야! 베프리, 부부간의 사랑을 주제로 노래할게☆"
"흠흠... 지휘관이 10년동안 그로자 대장과 여러가지 일을 겪었다는건 알지만 그렇게 가까운 관계인줄은 몰랐소..."
"저는 괜찮아요 지휘관님... 저는 두번째... 아니 후순위여도 괜찮으니깐..."
"폭탄 스위치를 어디다 뒀더라..."
"지,지,지휘관? 그로자 대장이랑 그렇고 그런관계였던거야??"
그로자가 자신의 실수에 당황하여 대처하지 못하고 있는 사이 신뢰, 불신, 아쉬움, 슬픔, 분노, 진실 요구 등등, 다양한 감정이 곳곳에서 표출되어 나오며 아수라장이 되어버린 회의실에서 지휘관은 이 사달의 근원이 된 엘모호의 총대장을 곁눈질로 바라보며 이 상황을 타계하기 위한 도움요청을 한다.
"그.. 그로자 어서 뭐라고 말좀 해봐, 다들 이상한 오해를 하잖아..."
"...좀."
"뭐라고?"
"세...세수좀 하고 올게!"
하지만 이런 지휘관의 도움 요청에도 불구하고 그로자는 매정?하게도 자리를 엄청난 박차고 일어나 회의실 문을 향하더니 제대로 된 해명 없이 그대로 문을 열고 밖으로 도피해 버렸다.
시선을 양분하던 해명의 대상이 사라졌으니 인형들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오해의 대상 중 하나인 지휘관에게 집중되었고 시선의 포위망은 지휘관을 향해 거리를 좁히며 포위망을 조여오고 있었다.
"저기.. 얘들아? 그건 진짜 오해야, 나랑 그로자는 그런 관계는 아니거든? 아 물론 같이 오랫동안 활동한건 맞긴한데! 진짜 너희가 착각하는 그런 관계는 아니야! 그로자가 단순히 말실수 한거니까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말자고, 아니 다들 눈이 왜이렇게 무서운거야! 진정해!"
필사적으로 횡설수설하면서 변명을 내뱉는 지휘관, 하지만 아무리 지휘관의 말이 진실이라 한 들 붉은 천을 본 투우의 소마냥 흥분해버린 인형들을 진정시키기엔 부족했다.
"지?"
"휘?"
"관?"
"그로자아아~~~~!!"
이 사태의 원흉을 찾는 지휘관의 마지막 절규는 노랫소리와 인형들의 감정의 격류에 휩쓸려 회의실을 얄팍하게 흩날릴 뿐이었다...
한편, 회의실을 빠져나온 그로자는 급하게 엘모호의 복도를 가로지르다 가까운 코너를 돌아 등을 기대고 섰다. 애초에 인형이 정신차리겠다고 세수를 할 필요는 없긴 하지만 그래도 본인이 급하게 지어낸 빠져나갈 핑계치고는 괜찮게 내뱉고 나온거같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위로 젖힌 채 양손으로 얼굴을 가린다. 본인의 얼굴을 본인은 알수 없지만 거울을 본다면 아마 새빨갛게 달아오른 모습이겠지.
아무리 생각해봐도 본인이 왜 그런 말실수를 했는지 전혀 모르겠다. 여러가지로 사람과 비슷하게 만들어졌다 한들 인형은 결국 기계다. 물론 단순 프로그래밍된 대로 반복적으로 하는 기계랑은 차이가 있긴하지만 무엇이 그로자 본인이 그런 실수를 하게 만든걸까,
얼굴에 얹은 손으로 그대로 얼굴을 한번 강하게 문질러 털어낸다.
본인도 원인을 알 수 없는 실수로 지휘관을 궁지에 몰아넣고 회의실을 빠져나와 버린건 아무래도 마음에 걸린다. 빨리 돌아가서 지휘관을 위기에서 구해줘야 할 것이다. 그리고 지휘관에게 사과도 해야겠지?
그렇게 생각한 그로자는 발길을 돌려 자신이 도망치듯 뛰쳐나온 회의실 쪽을 향해 발길을 내딛기 시작한다.


그 입꼬리가 희미하게 위를 향하고 있다는것을 본인은 눈치채지 못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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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그로자로 쓰긴 했지만 다른 인형이 해도 볼만한 상황일거라고 생각해!

댓글

  • 레이오트 C호크
    2025/02/02 00:48

    그렇게 시키칸은 골반이 골절되었다고 한다 =ㅠ=;;;;;;;;;;;;

    (8wi0z2)

(8wi0z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