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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하다 만난 진상들 이야기.


군대를 제대하고 나는 민간인이 되었다. 
10월달에 제대를 했기 때문에 학교에 복학하기까지는 몇 달 정도 텀이 있었다. 
난 군대에서 얻은 책임감과 근면 성실함, 계획성을 바탕으로 그 몇 달의 시간을 자기계발의 기회로 삼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그 계획도 잠시, 급격한 속도로 군대물이 빠져버린 난 입대하기 전의 내 모습으로 돌아왔다. 
일주일 정도 잠-술-밥-잠-술-잠-술의 패턴을 반복하다가 다시 정신을 차린 나는 알바를 하기로 마음 먹었다. 

무슨 알바를 할까 나는 곰곰이 고민하기 시작했다. 
군대를 가기 전 내가 했었던 알바들은 노가다나 공장같이 주로 몸을 쓰는 일이었다. 
단기간에 고소득을 올릴 수 있기도 하고, 친구들이 넌 시멘트와 모래를 섞어서 태어난 것 같은 외모라며,
보고만 있어도 쌍판에 공구리를 치고 싶게 생긴 외모라며, 가만히 서있기만 해도 노가다 십장처럼 보인다고 적극 추천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좀 다른 일을 해보고 싶었다. 보통 내 나이 또래의 다른 친구들이 하는 피시방이나, 술집 서빙같은 일을 
해보고 싶었다. 그 때부터 나는 열심히 구인광고를 뒤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알바자리를 구하는 건 만만치 않았다. 몇 번의 면접자리가 있었지만 가는 족족 헛걸음이었다. 

이력서를 면밀히 검토한 뒤에 연락을 주겠다. 
낸 적도 없는 이력서는 도대체 언제 검토를 한다는걸까. 

일단은 긍정적이다. 곧 연락 주겠다. 
그러면서 연락처는 묻지도 않았다. 텔레파시라도 보낸다는걸까.

안타깝지만 우리는 좀 맞지 않는 것 같다. 인연이 닿는 다면 다음에 만나자.
내가 면접이 아니라 소개팅에 나간걸까. 
 
귀하의 역량은 충분하지만 우리가 찾는 인재상은 아닌 것 같다. 
서빙을 하려면 팔이 세개에 손가락이 여섯개 정도는 있어야 되는걸까. 

나는 슬슬 지쳐가기 시작했다. 포기하려 할 때 쯤, 한 곳에서 연락이 왔다. 
번화가에 있던 고깃집이었다. 그 곳 사장은 날 보고 힘 잘 쓰게 생겼다며 흡족해했다.
사장은 일하던 알바가 금방 그만뒀다며 요즘 젊은 애들은 끈기가 없네 어쩌네 하면서 일장 연설을 늘어 놓았다. 
그러면서 나에게 당장 일할 수 있냐고 물었다. 사장 인상이 별로 좋아 보이진 않았지만 나도 찬 물 더운 물 가릴 처지가 
아니라 그날부터 나는 그 가게에서 알바를 하기 시작했다. 
꽤 큰 규모의 고깃집이었는데 내가 하는 일은 서빙과 테이블을 정리하는 일이었다. 
돌로 만든 불판이 꽤 무거운데다가 저녁에는 손님이 많이 몰려서 눈 코 뜰새 없이 바쁜 곳이었다.

손님 상대하는 일은 처음 해보는 거라 처음엔 좀 힘들었지만 나는 금방 적응했다. 
일하는 이모님들과도 친해지고 요령이 생기고 나니 몸도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다.
일을 며칠 해보면서 나는 알바생들이 왜 그렇게 일찍 일을 그만뒀는지 알게 되었다. 
하는 일에 비해 시급이 굉장히 짠 편이었다. 사장이 짠돌이였다. 

알바를 시작한 지 일주일 정도 지나고 시련이 찾아왔다. 

"어서오세요!"

낯익은 얼굴들이었다. 친구들이 어떻게 알고 가게를 찾아온 것이었다. 
이미 녀석들은 술을 마시고 왔는지 얼큰하게 취한 모습이었다. 

"뭐야? 니들 왜 왔어?"

"왜긴. 구경하러 왔지." 

불긴한 예감이 들었다. 

"바쁘니까 대충 먹고 가라. 뭐 먹을 거야?"

"손님 대접하는 태도 좀 봐라. 장사하기 싫어?"

"... 뭘로 드릴까요?"

역시 불길한 내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안그래도 바빠 죽겠는데 자꾸 불러다가 귀찮게 하는 친구놈들 때문에 
평소보다 배는 힘들었다. 

"야!"

"왜!"

"고기 탄다. 안잘라주냐?"

"니들이 잘라 먹어!"

"아 여기 서비스 개판이네. 사장님 계시냐?"

나는 부글부글 거리는 속을 애써 가라앉히며 집게와 가위를 들었다. 고기를 자르는 와중에도 녀석들은 서비스를 요구했다. 

"야 몸소 여기까지 왔는데 서비스 없냐? 저거 소세지 맛있겠다. 좀 주면 안되냐?"

옆테이블에서 노릇노릇 구워지고 있는 소세지를 보고 녀석들은 군침을 흘리며 말했다. 

"대."

"뭘?"

"손가락. 소세지 달라며?"

가위질을 하며 말하는 날 보고 녀석들은 잽싸게 테이블 아래로 손을 내렸다. 
분노의 가위질이 끝나고 불판위의 고기를 만족스럽게 바라보던 친구들이 말했다. 

"맛있겠네. 이제 치워."

"뭘 치워? 치울 것도 없구만."

테이블 위엔 고기도 반찬도 그대로였다. 

"니 얼굴. 술 맛 떨어져."

"이 가게는 기본적으로 알바생 얼굴부터가 손님에 대한 배려가 없네." 

"그러니까. 불법 아냐? 저거 생긴 것 부터가 위생기준 위반인데?"

알바고 나발이고 테이블을 뒤집어 엎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마음의 상처를 일로 치유하기 위해 나는 열심히 뛰어다녔다. 한참 일을 하고 있는데 친구들이 또 나를 불렀다. 

"아 왜!"

"너 몇시에 끝나냐?"

뜻 밖의 질문에 나는 의아해졌다. 

"한 시간 정도 있다가 끝나는데 왜?"

"그래? 알았어."

일을 하면서 나는 흐뭇해졌다. 끝날때까지 날 기다리려고 하는구나. 말은 저렇게 해도 역시 친구들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청춘드라마의 한 장면을 떠올렸다. 열심히 일하는 날 위해 소매를 걷어붙히고 나서는 친구들. 
내가 괜찮다고 말려도 막무가내겠지. 

"아이~ 됐어. 혼자 할 수 있어."

"아냐 친구 좋다는 게 뭐냐?" 

"그러니까. 우리는 친구잖아! 하하하."

"녀석들.."

쑥스러운 얼굴을 하고 손가락으로 슥 코를 훔치는 내 얼굴이 그려졌다. 하지만 그 모든건 나의 망상이었다.

잠깐 주방에 다녀 온 사이 녀석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한 마디 인사도 없이.
녀석들이 앉았던 테이블은 내가 여지껏 봐왔던 테이블 중 가장 더러웠다. 


하지만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진정한 시련은 며칠 후에 찾아왔다. 

"어서오세요!"

문을 열고 들어온 손님들은 어린티가 나는 남자들 이었다. 
난 주문을 받기 위해 그 남자들이 앉은 테이블로 갔다. 

"뭘로 드릴까요?"

"여기 삼겹살 삼인분이랑 소주 하나."

테이블에 앉은 남자들은 날 쳐다보지도 않고 주문을 내뱉었다. 
나는 다시 물었다. 

"신분증 좀 보여주시겠어요?"

녀석들은 어이가 없다는 듯 웃으며 자기들끼리 시시덕거리기 시작했다. 
딱 봐도 고등학생 이었다. 

"아~ 우리 여기 자주 오는데 왜?"

"미성년자한테 술은 못팔아서요. 주민등록증좀 보여주세요."

"안가져왔는데?"

"아 사장님 어디갔어? 사장님한테 물어보면 되잖아요. 우리 여기 자주온다니까?"

반말 섞어서 툭툭 말하는 남자들의 말에 슬슬 열이 받기 시작했다. 

"죄송한데 주민등록증 안가지고 계시면 술은 못드려요."

남자는 짜증난다는 표정으로 날 쳐다봤다. 진상고객을 만나는 건 처음은 아니었다. 
일을 하다보면 술취한 아저씨들이 시비를 걸거나 진상을 부리는 일이 자주 있었다. 
하지만 나보다 어려보이는 사람들은 처음이었다. 

"소주 달라니까? 우리 여기 자주 온다고."

내 인내심의 바닥이 드러나는게 느껴졌다. 난 애써 웃는 얼굴로 말했다. 

"손님 저는 여기 매일 오는데요. 근데 손님은 전혀 모르겠는데요? 그러니까 신분증 주시죠."

예상치 못한 내 반응에 그들은 당황했는지 잠시 머뭇거리다가 곧 언성을 높이기 시작했다. 
카운터에 있던 사장이 그걸 보고 우리에게 다가왔다. 그리고는 그 남자들과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얘기하는 걸 들어보니 남자들 말대로 서로 안면이 있는 모양이었다. 
사장이 나에게 다가와서 말했다. 

"야 소주 가져다 줘."

"예? 쟤들 딱 봐도 고등학생인데요?"

"알아. 그냥 줘."

결국 나는 그 테이블에 소주를 가져다줬다. 소주를 내려놓고 뒤돌아 서는데 자기들끼리 웃으면서 
내 욕을 하는게 들렸다. 내 인내심의 한계는 거기서 끝났다. 
평소의 난 정의감에 불탄다거나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그런 성격은 아니었다. 
오히려 이기적인 편이었다. 뺨을 얻어 맞으면 다른쪽 뺨을 내미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해서든 양쪽 뺨을 후려쳐야 
속이 풀리는 속 좁은 사람이었다.

며칠이 지나고 그놈들이 또 찾아왔다. 기억력이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잊을 수 없는 얼굴들이었다. 
이번에도 역시 그놈들은 삼겹살과 소주를 시켰다. 

"신분증 좀 보여주세요."

결국 저번과 똑같은 실랑이가 벌어졌고 또 사장은 놈들에게 소주를 가져다주었다. 
그 때부터 그 놈들은 시도때도 없이 나를 부르기 시작했다. 

"여기 사이다."

"아 사이다 말고 콜라로 바꿔줘요." 

누가봐도 다분히 고의적이었다. 처음엔 묵묵히 가져다 줬다. 다른 테이블을 치우고 있는데 놈들 중 하나가 또 나를 불렀다. 

"아저씨! 여기 재떨이."

그때만 해도 식당에서 흡연이 가능했다. 식당 한 켠 엔 재떨이를 쌓아놓는 곳이 있었다.

"저쪽에 있으니까 알아서 가져가세요."

"뭐?"

"재떨이는 안가져다 드리니까 알아서 가져가시라구요."

그 놈은 한참 날 노려보더니 구시렁 대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때부터 한동안 놈들은 날 부르지 않았다. 
계속 일을 하고 있는데 뭔가 촉이 왔다. 나는 일을 하면서 그쪽 테이블을 예의주시 하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놈들은 주변 눈치를 보더니 접시 하나를 들고 테이블 아래에 숨겼다. 
테이블 아래에서 손을 몇 번 놀리더니 접시를 다시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나를 불렀다. 

"아저씨!"

나는 모르는 척 테이블로 향했다. 

"뭐 필요한 거 있으세요?"

"아~ 이거 뭔데. 기름 냄새 나잖아."

그 놈이 내민건 아까 테이블 아래로 가져갔던 무채접시였다. 그 놈은 내 얼굴 앞에다 접시를 들이 밀었다. 

"뭐 이딴걸 줘. 기름 냄새 나잖아. 아저씨가 먹어보라고."

나는 접시에 코를 가져다 댔다. 그리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그러네요. 기름냄새 나네요."

"먹으라고."

어이가 없었다. 그동안 별별 사람 다 만나봤지만 이런 양아치들은 처음이었다. 
머리에 피도 안마른 것들이 어디서 못된것만 배웠는지. 
심지어 옆에 있는 가방 안에 지포라이터 기름통이 뻔히 보이는데도 그놈은 뻔뻔하게 말했다. 

"내가 왜?"

"뭐?"

"기름 냄새 나는 걸 내가 왜 먹냐고."

그놈은 내가 싹싹빌며 사과하는 걸 기대했는지, 예상 밖의 내 태도에 당황하는 기색이었다.

"뭔데. 아저씨 갑자기 왜 반말인데."

"그러는 너는 몇살이나 쳐먹었길래 반말인데."

"이 X발. 장난해? 이상한 거 내왔잖아. 사장 불러와!"

"지랄한다. 가방에 든 기름통이나 좀 숨기고 얘기하던가. 사장은 됐고 니들 여기 가만 있어라. 파출소 요 앞에 있으니까.
경찰한테 얘기 해. 누가 좆되나 한 번 보자."

갑자기 그놈이 횡설수설 하기 시작했다. 가게 밖으로 나가고 있는데 뒤늦게 나타난 사장이 날 붙잡았다. 

"야 어디가?"

"파출소요." 

"뭐?"

나는 사장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날 붙잡는 사장의 손을 뿌리치고 나는 가게 밖으로 나갔다. 
파출소로 가는 대신 밖에 잠깐 앉아 있다가 가게로 들어갔다. 역시나 그놈들은 그새 꽁무니를 빼고 없었다.
그 날 장사가 끝나고 집으로 가려는 데 사장이 날 불러세웠다.

"일은 할만해?"

"네. 할만 한데요."

사장은 곤란하다는 듯이 말했다. 

"다른게 아니라 너는 아무래도 이쪽일이랑은 좀 안맞는거 같아서 말이지.."

"아닌데요. 완전 잘맞는데요?"

"손님 대하는 것도 그렇고.."

대충 무슨 말을 하려는지 감이 왔다. 

"제가 뭘요? 일을 못하는 것도 아니고. 손님들이 불편하다고 한 적도 없는데."

"그래도 손님들한테 친절하게 대해야지."

"고등학생한테 술파는게 친절한 건가요? 대놓고 엿먹일려는데 가만 있는게 친절한 거면 관두겠습니다."

결국 나는 그 달까지만 일하고 알바를 그만뒀다. 
그 가게는 얼마 지나지 않아 단속에 걸려 몇 번 문을 닫더니 결국은 망했다. 

난 내가 서비스업과는 맞지 않는 다는 걸 깨달았다. 

 








댓글
  • 방학언제하지 2016/12/15 16:00

    이건 사이다게 가도 될 거 같아요 ㅋㅋㅋㅋㅋㅋㅋㅋ사장이 이상하네요..

    (oZ2XSz)

  • 하루사리 2016/12/15 19:15

    멋지네. ㅎㅎ

    (oZ2XSz)

  • 힉토르 2016/12/15 19:20

    필력이 좋으니 글읽으면서 저도 진심으로 빡침ㅋㅋㅋ

    (oZ2XSz)

  • sandi 2016/12/15 19:30

    도대체 외모가 어떻길랰ㅋㅋㅋㅋ 시멘틐ㅋㅋㅋ

    (oZ2XSz)

  • 제나제나제나 2016/12/15 20:36

    사장도 병신 손님도 병신
    관두길 잘하셨어요!

    (oZ2XSz)

(oZ2XS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