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편
1592년 음력 7월17일
2차 평양성 전투
음력 7월,
전라도와 남해상에서
조선군의 연이은 성과로
왜6군과 왜수군의 호남 진출이 무산되자,
고니시의 1군은 북진을 보류하고 평양성에 주둔하고 있었다
한편
의주에 무사히 도착한 조정은 황급히 명에 구원을 요청하였다
명 황제 만력제는 병부상서 석성의 의견을 받아들여
조선에 원군을 파병할 것을 명령했다
하지만 당시 이여송의 요동군 주력부대는
보하이의 난을 진압하고 있었으므로
우선적으로 요동 부총병 조승훈이 이끄는 선발대 3000을
원군으로 파병한다
음력 7월 초순 압로강을 건넌 명군은
도원수 김명원이 이끄는 3000 조선군과 합류하여
순안에 도착하였다
조명연합군의 병력은 6000여명
당시 평양성에는
고니시 유키나가의 1군 18000명과
구로다 나가마사의 3군 11000명이
함께 주둔하고 있었다
조명 연합군이 순안에 주둔한지 얼마 되지 않아
구로다의 왜3군은 황해도 공략을 위해
평양성을 빠져나왔으며,
이를 확인한 조선군 척후/장 순안군수 황원은
왜의 주력부대가 평양성을 버리는 것으로 착각하여
급히 이 소식을 연합군에게 알렸다
조명연합군은 이를 왜군이 전의를 상실한 것으로 여겨
평양성 탈환의 기회로 여겼다
음력 7월17일
조명연합군은 호기롭게 평양성으로 진격했다
조명연합군이 평양성에 도착했을때
성문이 열려있었고,
이에 공에 욕심을 낸 명군의 선봉장 사유가
자신의 부대를 모두 이끌고 성안으로 돌격해 들어갔다
이를 노린 왜군의 복병대가 나타나 양쪽에서
명군 선봉대를 공격하였고
선봉장 사유와 그의 부장 천총, 장국충 모두 전사하고 말았다
선봉대가 무너지며 결국 본대 역시 큰 피해를 입게 되었고
요동 부총병 조승훈 역시 부상을 입고
음력 7월 18일 수십기의 패잔병을 데리고
요동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조명연합군의 첫 전투였던
2차 평양성 전투는
결국 조명연합군의 첫 패배로 막을 내리고 만다
척뿅뿅?
척후/장 요
정찰도 제대로 안하고 들어갔으니 패배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