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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고르고 고른 인재들

인류의 최고 인재들을 태운 우주선의 앞을 외계인이 가로막았다.

[ 온몸이 위장으로 이루어진 우리 종족은, 전 우주를 돌아다니며 모든 종족의 맛을 보는 게 삶의 이유다. 지구인은 아직 먹어본 적이 없으니, 한 명만 먹어보고 나머지는 보내주겠다. ]

" 헐! "
" 미친! "

사람들은 최후의 저항으로 방어 시스템을 발동했지만, 뚫리는 건 시간문제였다.
어쩔 수 없이 한 명을 희생해서 지나가는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문제는 우주선에 타고 있는 그들이 모두 중요한 엘리트들이란 점이었다.
그들은 테라포밍이 진행된 지 얼마 안 된 별에서 요청한, 고르고 고른 인재들이었다. 일종의 사명을 지고 있었기에 누구 하나 쉽게 희생시킬 수가 없었다.

어떻게 1명을 고를 것인가? 그 토론이 시작되었다.

김남우가 말했다.

" 제비뽑기밖에 방법이 없지 않습니까? "

그러나 최무정이 고개를 저으며 반대했다.

" 저희의 목적을 잊었습니까? 저희는 보그나르 별에서 생길 모든 문제에서 합리적인 결정을 내리기 위해 파견된 사람들입니다. 그런 운에 맡기는 것보다, 누가 더 가치 있는지로 결정하는 게 합리적입니다. 별의 미래를 생각해야 합니다. "
" 그럼 누가 더 가치가 있는지는 어떻게 정합니까? "
" 능력검정시험 점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그 순으로, 가장 낮은 사람을 자르는 게 합리적입니다. "
" ... "

김남우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능력검정시험! 그것은 그들의 어린 시절을 지배하던 단어였다. 대부분 인간의 미래는 그 점수로 결정되었고, 실제로 이들도 우수한 점수를 냈기에 현재 지도자 코스를 밟으러 가는 길이었다.

이들 중 가장 점수가 낮았던 김남우는 크게 반발했다.

" 그건 공평하지 못합니다! 점수가 낮다고 죽어야 한다는 게 말이나 됩니까?! "
" 대의를 생각하면 그게 합리적인 겁니다. 좀 더 능력 있는 사람이 살아야 그 별을 더 발전시킬 것 아닙니까? "
" 그게 얼마나 차이가 난다고! "
" 하지만 차이가 나는 것은 분명합니다. 합리적인 선택을 합시다. "
" 합리적인 선택은 무슨! 공평하지 못하단 말입니다! "

김남우는 억울했지만, 최무정의 논리는 냉정했다.

" 왜 공평하지 못합니까? 우리는 모두 같은 시험을 보지 않았습니까? 능력검정시험은 가장 공평한 시험입니다. "
" 그러니까 그게 지금 이 상황하고 무슨- "
" 크게 보면 다를 것 없습니다. 높은 점수를 내지 못하면 인생에 실패하는 시험입니다. 인정하지 않습니까? 높은 점수를 받은 사람들은 성공한 인생을 살고, 낮은 점수를 받은 사람들은 패배자가 되어 사는 것. 그것을 한정적으로 적용하면 지금 이 상황도 마찬가지입니다. 높은 점수를 받은 사람들은 살아남고, 낮은 점수를 받은 사람이 패배자가 되는 것. "
" ... "
" 우린 고르고 고른 최고의 인재들입니다. 별에서는 당연히 최고의 인재를 필요로 하며 기다리고 있습니다. 최선을 다해서 그에 부응하는 게 합당하지 않겠습니까? "

김남우는 어이가 없는 얼굴이었지만, 그를 제외한 나머지는 입을 닫고 있었다. 최무정의 주장이 옳은지 그른지는 차치하고서라도.
김남우는 끓어오르는 화를 애써 참으며 말했다.

" 애초에 능력검정시험 자체가 불공평한 시험입니다. "
"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모두가 똑같은 시험을 봤는데 불공평이 왜 나옵니까? 이 불공평한 세상에서 유일하게 오직 능력만으로 평가하는 시험인데. "
" 그거야 당신들 지구 출신의 기준이지요. 저처럼 가난한 콜로니 출신과 당신들 지구 출신은 출발점이 다릅니다. "
" 지구나 달의 콜로니나 교육은 같습니다. 능력검정시험은 오직 개인의 능력이지, 돈의 문제가 아닙니다. "

김남우는 정색하고 고개를 흔들었다.

" 아니요. 출발선은 분명히 다릅니다. 좋은 학교는 좋은 동네에 있습니다. 좋은 선생님도 좋은 동네에 있습니다. 내가 나고 자란 동네에는 없습니다. 교재 하나를 사더라도 당신들은 식료품과 교재를 놓고 고민할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 공부 시간을 놓고 일하는 시간과 고민할 필요도 없지 않습니까? 이게 어떻게 공평할 수가 있습니까? "
" ... "

미간을 찌푸리던 최무정은 반박했다.

" 그것은 핑계입니다. 실제로 저번 시험의 1등은 콜로니 출신이었습니다. 환경의 탓이라면 이런 결과가 나올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
" ... "

최무정은 지구 출신들을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 출신 때문에 불공평하다고요? 그 생각이 오히려 역차별 아닙니까? 지구에서 태어나고, 콜로니에서 태어난 건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그냥 그렇게 태어났을 뿐입니다. 지구에서 태어난 게 우리의 잘못입니까? 주어진 조건에서 서로 똑같은 노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선택할 수 없는 출신 때문에 당신에게만 특혜를 줘야 한다는 건, 너무 불합리한 일 아닙니까? "

이를 악무는 김남우,

" 특혜를 바라는 게 아닙니다! 능력검정시험이 모두에게 공평한 건 아니라는 걸 알아달라는 겁니다! 그러니 그런 것을 기준으로 삼을 순 없습니다. 오히려 그것을 기준으로 삼을 것이라면, 안 좋은 조건에서 좋은 성적을 낸 제가 더 우수한 사람이라고 봐야 하는 것 아닙니까? "
" 사과 다섯 개 바구니보다는 사과 여섯 개 바구니가 더 중요한 겁니다. 그 전에 사과가 한 개였든 두 개였든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
" 아니 정말이지! "

둘의 대립은 결코 답이 안 나오는 이야기였다. 결국에는 다수결일 수밖에 없는데, 김남우가 과연 자신의 편을 만들 수 있을지 미지수였다.
그때,

[ 다 뚫었다. ]

" 헉! "
" 앗! "

외계인이 우주선 내부로 침입했다! 
모두가 잠깐 당황했지만, 의외로 인간과 거의 똑같이 생긴 외계인의 모습은 대화의 여지가 있어 보였다. 
최무정이 얼른 김남우보다 앞으로 나섰다.
그러나 말할 기회는 없었다. 

일순간, 외계인의 발, 무릎, 허벅지, 손, 팔꿈치, 어깨, 각 부분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앞으로 늘어나더니, 각 부위가 이빨을 드러내며 모두를 하나씩 삼켜버렸다.

[ 다 똑같은 맛이네 ]

모두를 삼킨 외계인은 그 자리에 석상처럼 굳었다.
그 안, 공간의 개념이 다른 것같은 외계인의 내부에서는 놀라운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 뭐, 뭐야 이거? "

외계인의 내부는 마치 또다른 우주 공간 같았다. 인간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검은 장막같은 우주공간.
잡아먹힌 사람들은 거대한 외계인의 몸속에 뿔뿔이 흩어져 있었다. 발, 무릎, 허벅지, 손, 팔꿉치, 어깨.

어떻게 그 작은 외계인의 몸속에 이런 공간이 있을까?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이해할 시간도 없었다.

[ 나는 아까 하나만 먹는다고 약속했고, 너희 중 가장 약한 개체를 소화할 것이다. 내 머리 쪽에 출구가 있으니 선착순으로 탈출하라. ]

" ! "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고르고 고른 인재들은 역시 달랐다. 상황을 파악하기보다, 본능적으로 머리를 향해 전속력으로 달렸다. 
숨도 쉬지 않고 달리는 그들 중에, 발끝에서 시작한 최무정만이 외쳤을 뿐이다.

" 잠깐! 같이 출발하자고! 이건 불공평해! 시작점이 다르잖아! "
댓글
  • 복날은간다 2017/11/04 18:43

    행복한 주말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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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카마인 2017/11/04 18:55

    오늘도 잘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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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aladin 2017/11/04 19:28

    맛을 봤으면 그냥 다 놓아줘라 이놈들아!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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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착한혀니 2017/11/04 19:32

    글이 참 신선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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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육포마이쪙 2017/11/04 19:33

    김남우가 (아직) 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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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게덕후 2017/11/04 19:40

    오늘 이야기는 넘 공감가는 이야기네요.
    출발점이 다르다는 입장도 와닿지만, 역차별 문제도 공감 가고요...
    능력검정시험이라는 게 내용도 하나도 안 나왔지만 공정하지 못하다는 게 딱 와닿네요. ㅋㅋㅋ
    전 내용이나 출발점 문제보단 결과에 있어 아무런 설명 없이 납득해야 되는 부분 때문에 공정하지 못하다 생각하는 시험이...;;;; 암튼ㅋㅋ
    (사실 그 시험 아직도 준비 중이고 얼마 안 남은 시점에 이러고 있는 건 안 자랑 안 비밀...ㅠㅠ 그냥 힐링이라고 해두죠...)
    그나저나 주구장창 빼액대다가 자기도 불리한 입장에 처하니까 바로 바뀌는 최무정ㅋㅋ
    오늘은 김남우가 살았네요. ㅎㅎ
    암튼 오늘도 재밌는 소설 감사하고, 작가님도 좋은 주말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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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음매 2017/11/04 23:09

    근데 현실에서는 오히려 시험으로 결정나는게 어려운 환경인 사람들 입장에서는 그나마 나은거..
    분명히 출발선이 다른건 맞지만, 노력으로 어느정도 수준까지는 커버가 가능하긴 하니까.
    반면에 요새 수시 같은거 하는거보면 참 요새애들 안쓰러워서 한숨만 나옵니다.
    돈없고 공부만 열심히 하는애들은 그런거 일일히 찾아다니면서 정보얻고 준비하고 그러지도 못해요.
    그런걸 다 돈들여서 컨설팅 해줄수 있는 돈있는집 애들만을 위한 기회지.
    이런거보면 차라리 정해진 시험 한번으로 결판내는게 없는집 자식들 입장에서는 어떻게 죽어라 노력이라도 한번 해볼수나 있는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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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급열차 2017/11/05 01:18

    어느 위치로 먹히는지 본인이 선택한 것이 아님.
    어느 위치라도 열심히 달리면 탈출 할 수도 있음.
    멀리 있다고 무조건 먹히는건 아님.
    (니가 살고 싶으면 남들보다 2-3배 빨리 뛰면 됨.)
    머리와 가까운데 있는 사람도 열심히 달리지 않는건 아님.
    다들 죽을힘을 다해 탈출하려고 달림.
    그러니까 불공평한게 아니다 라는 결론이 남.
    최무정 논리대로 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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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바금지 2017/11/05 03:47

    '운'
    이 단어 하나로 거의 모든게 설명이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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