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키 17의 원작 소설 미키 7.
소설의 재미 자체는 그냥 괜찮지만,
주인공의 회상과 독백에서 드러나는 배경 설정들은 아주 흥미롭다.
그 중 하나가 로아노크 이야기.
미래 인류는 반물질 전쟁으로 황폐화된 지구를 떠나 우주를 개척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어느 날 로아노크라는 행성에 개척선이 착륙한다.
로아노크는 적색 왜성을 공전하는 행성으로, 조석 고정 행성이라
행성의 한 면은 24시간 낮, 다른 쪽은 24시간 밤인 행성이었다.
생명이 살 수 있는 곳은 오직 그 중간의 좁은 황혼 지대 뿐.
그래도 못 살 곳은 아니라, 개척선은 늘 하던 대로 착륙하고 기지를 지었는데...
개척선 선원들은 그제서야 깨달았다.
로아노크가 판도라나 카타찬, 헨더스 섬 뺨치는 데스월드였다는 것을.
좁은 황혼지대에서 수십억 년 간 생존경쟁을 하다 보니,
로아노크의 모든 생명체는 정신나간 괴수로 진화한 지 오래였다.
작중에서 설명된 것만 해도 바람을 타고 날아다니다 물어서 죽이는 생물,
사람 반절만하고 황산을 뿜는 벌레,
장갑판을 두부처럼 썰어버리고 땅을 파는 불가사리 등등...
그러나 진정한 공포는 이제 시작이었다.
개척민들이 너무 빨리 죽어나가자 결국 개척 본부는,
익스펜더블(일종의 복제인간)을 왕창 찍어내 수를 매꾸는 강경책을 도입하지만,
그때쯤 기지 내부에 전염병이 창궐했다.
치사율도 무지막지한데 몇 시간 만에 치료약에 면역이 생기는 지독한 병이.
결국 며칠 안 지나 기지 내의 모든 자연인은 죽고 익스펜더블들만 남았다.
그리고 그 익스펜더블들마저 하나하나 죽어나갔고, 결국 마지막 익스펜더블마저 사망한다.
온몸이 녹아내리는 고통 속에서 그가 남긴 마지막 기록은,
"난 미친 게 아니야. 누군가가 우릴 노리고 있어."
그랬다.
사실 로아노크 식민지의 전멸은 사고가 아니었다.
이미 로아노크에 있던 지적 외계 문명이 식민지를 말살하기 위해,
생체 병기와 화학무기를 총동원해 공격을 가한 것.
생물들이 이상할 정도로 효율적인 공격방식을 지닌 게 복선이었던 셈.
사실 행성 이름을 로아노크로 붙인 시점에서 전멸은 예정되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전멸한 다음 행성 이름을 로아노크로 바꿨던가.
(로아노크: 흔적도 없이 증발한 초기 북미 식민지)
Crabshit
2024/10/28 00:06
존 스칼지의 소설 "마지막 행성"에서도 식민행성 이름이 "로아노크"고 실종되는 사고가 일어나지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