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는 것은 즐겁다.
하지만 단순히 달리는 것만으로는 충족되지 않는 욕구가 있다.
경쟁과 승리, 그리고 보상.
우마무스메의 레이스는 그런 것이다.
모든 우마무스메가 이를 바라진 않을지언정, 거의 대다수라 해도 좋을 정도로 많은 수의 우마무스메가 이를 바란다.
그리고 그것은, 단츠 플레임 또한 마찬가지였다.
10전 4승, 중앙 트레센의 우마무스메인 것 치고도 제법 나쁘지 않은 성적이었으나, 단츠 플레임은 마냥 기뻐할 수는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G1은 고사하고 G2마저 트로피가 없었기 때문이다. 유일한 중상 우승은 연초의 G3, 알링턴 컵.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단츠 플레임은 그녀의 앞길을 낙관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야, 제아무리 중앙 트레센이라지만 중상 우승은 쉬운 일이 아니다. 많은 우마무스메가 중상은커녕 오픈 리그에서의 트로피라도 한번 들어보려고 이를 악물고 훈련하지만, 현실은 1-3승 클래스에서 꾸준히 성적이라도 내면 다행인 것이다.
그렇기에, 중상 우승이라는 것을 경험한 단츠 플레임은, 어찌 보면 행운아일지도 모른다. 그녀는 그렇게 생각했었다.
물론, 그녀의 담당 트레이너는 중앙 트레센에서도 손꼽히는 트레이너였고, 그런 그의 아래에서 좋은 성적을 거둬야 한다는 것은 나름 부담감이기도 했다.
그래도 같은 담당 우마무스메들, 아그네스 타키온과 맨하탄 카페, 그리고 정글 포켓 또한 마찬가지로 G1 우승이 없으니까…그런 안일한 마음이 한구석에 있기도 했다.
조금 더 노력하면, 조금 더 열심히 훈련하고, 조금 더 트레이너 씨의 말을 잘 들으면, 모두의 꿈이라는 G1의 트로피를 들어 올릴 수 있겠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4월 15일 전까지는 말이다.
꿈에 그리던 첫 번째 G1, 봄의 사츠키상에서 단츠 플레임은 그녀의 생각이, 안일하고도 안일했음을 깨달았다.
물론 결과는 2착, 첫 번째 G1에서 2착이라는 성적을 낸 것은 굉장히 고무적인 일임은 틀림없었다. 같이 출주했던 정글 포켓은 3위, 단츠 플레임보다 조금 뒤에 들어오기도 했고.
하지만, 사츠키상의 주인공은 아그네스 타키온이었다.
솔직히 단츠 플레임은 아그네스 타키온을 크게 의식하지 않고 있었다. 그야, 거의 매일같이 실험실에 틀어박혀 실험만 하는 우마무스메인데, 단츠 플레임이나 다른 우마무스메들이 트랙에서 달리고 있을 때, 아그네스 타키온은 실험실에만 있었으니까.
아그네스 타키온이 빠르다는 것을 여기저기서 들어 알고는 있었지만, 얼마나 빠른지 직접 경험해 ㅂㅈ 못했으니까.
그래서, 아그네스 타키온에 대해 별다른 생각이 없었던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솔직히 3-4코너까지는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아그네스 타키온보다 조금 뒤처져 있었지만,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었다. 아마 옆에서 달리고 있던 정글 포켓도 같은 생각이었으리라.
하지만 나카야마의 직선, 그 짧은 최종 직선에 들어서고 나서부터,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라스트 스퍼트니까, 전력으로 달렸다. 정글 포켓이 물고 늘어졌지만, 그녀는 단츠 플레임을 따라잡을 수 없었다. 아주 조금, 작은 차이로 정글 포켓을 앞지른 채 스퍼트를 시작한 것이 주요했었다.
그리고 단츠 플레임은, 아그네스 타키온의 등에 시선을 고정했었다. 따라잡을 수 있다, 그렇게 확인하며 이를 악물었고, 실제로 몇 걸음 따라잡기도 했었으니까.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아그네스 타키온의 분위기가 이상하다고 느꼈다. 빠르다, 그런 단순한 느낌이 아니었다. 단츠 플레임이 아는 한, 그런 말랑한 공기 따위가 아니었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아그네스 타키온의 등이 점차 멀어져만 갔다. 단츠 플레임이 온 힘을 다하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단츠 플레임은 젖 먹던 힘까지 모조리 끌어내 스퍼트를 걸었고, 아그네스 타키온은 그보다 더, 그녀의 이름처럼 말도 안 될 정도로 빨랐을 뿐이었다.
그래, 그것은 단츠 플레임에게는 두려움이었고, 경외였으며, 아그네스 타키온의 광기였다.
그 몇 초 안 되는 시간, 아그네스 타키온이 멀어져가고 있던 그 시간 동안 단츠 플레임의 머릿속을 헤집어 놓은 것은 절망, 그 자체였다.
이길 수 없다. 따라잡을 수 없다. 무슨 짓을 해도 넘을 수 없다. 정말로 단단하고 드높은, 아그네스 타키온이 쌓아 올린 천혜의 요새였다.
아그네스 타키온이 사츠키상의 결승선을 통과했고, 일 초도 채 되지 않아 단츠 플레임이 2착으로 통과했다.
하지만 그 찰나의 순간이, 단츠 플레임에게는 영원과도 같은 족쇄였다.
그날의 사츠키상으로부터 지금까지, 단츠 플레임의 머리에서는 아그네스 타키온의 그 달리기가 떠나가질 않고 있었다.
동기인 정글 포켓은 바로 그다음 달, 일본 더비에서 우승을 거머쥐었다. 아그네스 타키온이 출주하지 않은 경기였지만, 그래도 G1 우승은 그 자체만으로도 무한한 가치가 있다. 단츠 플레임은 또다시 2착이었다.
가을의 국화상을 준비하기 위해 출주한 고베신문배에서는 4착이었다. 달리기에 당최 집중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아직, 맨하탄 카페가 G1 우승이 없다는 사실이 그나마 단츠 플레임의 작은 위안거리였다.
같은 처지니까, 맨하탄 카페도 G1을 준비하고 있지만, 쉽지 않은 것이겠지. 아그네스 타키온이 특별한 것이니까. 정글 포켓은 운도 따라 준 것이니까. 나도 분명히 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10월 21, 단츠 플레임은 다시 한번 절망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었다.
맨하탄 카페와 정글 포켓, 그리고 단츠 플레임은 국화상에 출전했다. 1번 인기의 정글 포켓과 더불어 단츠 플레임은 2번 인기, 그리고 맨하탄 카페는 6번 인기였다. 아무래도 일본 더비에서 승리한 정글 포켓이기 때문에 사람들의 기대감이 높은 것이었다.
단츠 플레임은 그 사실에 살짝 불만이 있었다. 나도 잘 달릴 수 있는데, 정글 포켓보다 더 빠르게 달릴 수 있는데. 이번에는 반드시, 우승할 수 있는데.
그런 작은 뒤틀림과 함께, 시작의 소리가 울려 퍼졌고, 세 우마무스메 모두 후방에서부터 천천히 힘을 비축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지막 코너를 돌아 라스트 스퍼트, 마이네르 데스팟이 멀찌감치 도망가고 있었고, 이를 따라잡기 위해 단츠 플레임도, 정글 포켓도 스퍼트를 걸었다.
하지만, 그런 단츠 플레임의 옆에서, 어느새인가 맨하탄 카페가 달리고 있었다.
어라, 속으로 작게 중얼거렸을 때는, 이미 맨하탄 카페는 마이네르 데스팟을 사냥개처럼 뒤쫓고 있었다. 단츠 플레임은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아마 정글 포켓도 그 순간에 깨달았으리라.
국화상의 우승자는, 맨하탄 카페라는 것을.
뒤따라오는 에어 에미넴을 가볍게 뿌리치고, 맨하탄 카페는 무서울 정도의 가속으로 마이네르 데스팟을 따라갔다.
아니, 마이네르 데스팟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었다. 그보다 더 앞에 있는, 단츠 플레임에게는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따라가고 있었다.
이를 악물고, 절대로 따라잡겠다는 듯이, 평소에 차분하고 조용하던 맨하탄 카페라곤 믿기지 않을 정도로 무시무시한, 그런 얼굴로, 아그네스 타키온에게서 느꼈던 광기, 그런 귀기가 느껴질 정도로.
힘이 빠진 마이네르 데스팟을 제치고 나서도, 맨하탄 카페는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오히려 더 빨리, 자기 자신을 채찍질하듯 더 빠르게, 결승선을 통과하고 나서도 조금 더, 멈추지 못하고 전속력의 달리기를 더 유지했다.
단츠 플레임은 5착으로 들어왔다. 순위권이긴 했지만, 앞에 정글 포켓을 포함하여 네 명이나 더 있는 것이다. 단츠 플레임에게 있어 결코 축하할 만한 순위는 아니다.
게다가 우승한 맨하탄 카페는 오히려 표정이 좋지 않았다. 기뻐하는 느낌이 아니라, 뭔가 불만족스러운, 패배한 우마무스메의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그때, 단츠 플레임은 깨달았다. 아그네스 타키온도 맨하탄 카페도, 그녀들만의 뚜렷한 목표가 있다는 것을. 단순히 G1 우승이 목표가 아닌, 그 너머에 있는 목표. 닿을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그런 불확실한 목표. 단츠 플레임에게는 없는 것.
동기들을 이길 수 없다. 달리기도, 달리기를 대하는 자세도.
달리기는 즐겁다. 하지만, 충족되지 않는다.
경쟁과 승리, 그리고 보상.
우마무스메의 레이스는 그런 것이었다.
그리고, 단츠 플레임 또한 우마무스메다.
달리기로 이길 수 없다면, 다른 것으로라도 이기고 싶은 것이 본능이다. 물론 우마무스메의 자존심은 레이스에서의 승리를 원하지만, 그 자존심이 꺾여버린 지금,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사실을 단츠 플레임은 어렴풋이…아니, 확실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다른 방식으로라도 아그네스 타키온을, 맨하탄 카페를, 그리고 정글 포켓을 이기리라. 단츠 플레임은 그렇게 다짐하며 트레이너 사무실의 문을 두드렸다.
“트레이너 씨, 들어가도 괜찮을까요?”
두어 번 노크를 한 뒤에, 형식적인 허락을 구한다. 트레이너는 단 한 번도 단츠 플레임의 방문을 불허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 레이스 성적을 비롯한 자질구레한 것들은 신경도 쓰지 않고, 단츠 플레임이라는 우마무스메를 바라봐 주는 사람. 비록 아그네스 타키온이나 맨하탄 카페, 그리고 정글 포켓까지 담당하고 있지만, 그녀들 이상으로 단츠 플레임을 챙겨주는 사람.
그런 트레이너라는 존재가 있었기 때문에, 단츠 플레임은 아그네스 타키온의 그늘에서, 정글 포켓의 태양 빛 아래에서, 맨하탄 카페의 그림자 아래에서 달리기를 포기하지 않고 버틸 수 있었던 것이리라.
“단츠? 응, 들어와.”
예정에 없던 단츠 플레임의 방문에 트레이너가 의문을 표했지만, 그래도 이내 단츠 플레임에게 들어오라고 말한다.
그 말에, 단츠 플레임은 심호흡을 한번 한 뒤에 트레이너 사무실의 문을 열고 들어간다.
“무슨 일이야? 갑자기 승부복은 왜 입고…오늘 트레이닝은 다 끝나지 않았어?”
“…….”
트레이너 씨가 말하는 사이 단츠 플레임은 뒷짐을 진 손을 살그머니 움직여 철컥, 트레이너 사무실의 문을 잠근다.
평소에 아그네스 타키온과 맨하탄 카페에게 시달려 왔는지, 트레이너 씨의 사무실 문은 우마무스메가 전력으로 망치질을 해도 부서지지 않는다는 것을 들어서 알고 있다. 아그네스 타키온은 보기보다 입이 싸다.
“……단츠?”
하지만 문을 걸어 잠그는 소리가 트레이너 씨의 귀에도 들렸는지, 키보드를 두드리던 손을 멈추고 불안한 눈빛으로 단츠 플레임을 바라본다. 그래도 곧바로 나가라거나 하지 않는 것을 보면, 트레이너 씨는 정말로 신사다.
그런 사람을, 단츠 플레임의 경쟁심과 이기심으로 물들여야만 하는 것이다.
“트레이너 씨, 다름이 아니라…상담하고 싶은 것이 있어서 찾아왔어요.”
“아…그렇구나. 거기 앉으렴.”
트레이너 씨의 불안한 눈빛은 금세 사라졌다. 단츠 플레임이 이상한 생각을 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이리라. 평소에 아그네스 타키온에게 당한 것이 있으니 금세 의심하는 버릇이 있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리라.
그리고, 그런 트레이너 씨의 의심은 지금의 단츠 플레임에게 있어서 만큼은 신뢰로 변한 것이다.
“차라도 줄까? 녹차? 홍차? 커피?”
“……괜찮아요. 감사합니다, 트레이너 씨.”
트레이너 씨가 차를 권했지만, 딱히 뭔가를 마시고 싶은 마음이 없었기에 고개를 내저어 거절한다. 트레이너 씨 또한 커피를 마실까 잠시 고민하다가, 이내 빈손으로 단츠 플레임의 맞은편에 착석한다.
“그래, 뭘 상담하고 싶니?”
분명 트레이너 씨는 속으로 단츠 플레임의 트레이닝의 방향성이나 앞으로 어떤 레이스에 출주할지, 그런 식의 상담을 생각하고 있으리라.
하지만 단츠 플레임이 조심스레 입 밖으로 꺼낸 말은, 트레이너 씨를 조금 당황하게 했다.
“저…국화상에서, 졌었잖아요.”
“…….”
“제가 생각해도 기대 이하였다고 생각해요.”
“단츠, 그 이야기는 이미―”
“트레이너 씨는 괜찮다고 하셨지만, 솔직히 저…굉장히 분해서, 정말로 분해서―”
단츠 플레임의 몸이 부르르 떨린다. 하지만 트레이너 씨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단츠 플레임의 내면에서 꿈틀대는 감정이 무엇인지, 그로서는 공감하지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야, 트레이너 씨는 중앙 트레센의 트레이너 중에서도 손꼽히는 엘리트, 머리도 비상하고 객관적인 스펙도 굉장히 좋고, 괜히 아그네스 타키온이라는 천재 중의 천재를 담당하고 있는 것이 아니니까.
그래, 트레이너 씨는 단츠 플레임보다 아그네스 타키온에 가까운 사람이니까. 평범한 우마무스메인 단츠 플레임을 이해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러니까, 단츠 플레임의 속내를 트레이너 씨에게 털어놓아 봐야, 아무런 의미도 없는 일이겠지. 트레이너 씨에게는 단츠 플레임 말고도 아그네스 타키온, 맨하탄 카페, 정글 포켓과 같은 굴지의 우마무스메들이 있으니까.
하지만, 단츠 플레임이 의존할 수 있는 사람은, 중앙 트레센에서는 트레이너뿐이다. 트레이너 씨는 모르겠지만, 단츠 플레임에게는 트레이너뿐이니까.
“―어떻게든, 이기고 싶어요.”
그래서, 감춰왔던 열등감을, 끈적하게 얽매는 새카만 속내를, 단츠 플레임은 처음으로 내뱉고야 말았다.
하지만 트레이너 씨는 덤덤하게 웃으며 단츠 플레임에게 말한다.
“그래. 단츠는 분명히 G1에서 우승할 수 있어. 나는 단츠의 가능성을 믿고 있으니까.”
“트레이너 씨는, 정말로 상냥하시네요.”
지금 단츠 플레임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안다면, 그때도 이렇게 웃으며 단츠 플레임을 위로해줄 수 있을까. 그 정도로 트레이너 씨는 인격자이실까.
아니, 그러지 않기를 바란다. 만약 그렇다면, 단츠 플레임으로서는 죄책감에 견딜 수 없을 테니까. 차라리 화내고 실망해주기를 바란다. 단츠 플레임은 아무것도 아니니까.
“상냥하다기보단,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거야. 너는 충분한 가능성이 있고, 그걸 끌어내는 건 내 책임이니까, 단츠의 실패는 내 실패이기도 해.”
“…….”
“그러니까, 너무 자책하지 말고…하던 대로 열심히 노력하자. 나도 조금 더 노력할 테니까.”
상냥하게 말하는 트레이너 씨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단츠 플레임의 가슴 속 불꽃이 꺼지진 않는다. 열정의 불꽃이었다면 쉽사리 사그라들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열등감이란 질척이는 것이니까.
“……타키온 쨩과 비교해서는 어떤가요.”
“타키온?”
“카페쨩과는, 그리고 포켓과 비교해서는 어떤가요.”
“단츠.”
그제야 단츠 플레임이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인지 알아차린 트레이너 씨는, 그답지 않게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결국, 단츠 플레임의 순수한 외견에 가려진 추악한 속내를 알아차리고, 경멸하는 것이겠지.
하지만 단츠 플레임의 느낌은 조금 달랐다. 단츠 플레임에게 실망했다기보다는, 뭔가 자그마한 차이가 있는…그래, 트레이너 씨 자신에게 향하는 느낌.
“너는 너야. 다른 아이들과 비교할 필요도 이유도 없어. 나는 단츠 플레임의 트레이너이지, 아그네스 타키온을 대체할 우마무스메의 트레이너가 아니니까.”
그래, 앞서도 느꼈다시피, 트레이너 씨의 자책이다. 그래서였을까, 그는 이내 표정을 풀고 단츠 플레임을 바라보며 상냥하게 웃어준다.
“……그런 점이에요.”
단츠 플레임이 나이 차이도 제법 나는 트레이너 씨를 의식하게 된 점, 그녀답지 않게 작은 독점력의 씨앗을 품게 된 원인. 이런 트레이너 씨니까. 이런 사람이니까. 경멸은커녕 진솔하게 격려해 주는 사람이니까.
그러니까, 지금부터 단츠 플레임이 저지를 행동은, 언젠간 반드시 일어났었을 필연이니까. 트레이너 씨에겐 정말로 죄송하지만, 신뢰를 저버리는 듯한 행동이기 때문에 정말로 면목이 없지만, 그래도 단츠 플레임은 본능을 거부할 수 없다.
“그러면, 트레이너 씨.”
“응?”
“아그네스 타키온도, 맨하탄 카페도, 정글 포켓도 아닌…단츠 플레임을 봐주세요.”
“어? 어…야?! 단츠! 잠깐만, 단츠? 갑자기 뭐 하는 거야―!!”
“그래도, 이기고 싶으니까요! 적어도 다른 한쪽의 본능은 이겨야 직성이 풀릴 것 같으니까요―!”
그렇게 절규하듯 외치며, 단츠 플레임은 그대로 트레이너 씨에게 안겨들었다. 아니, 안겨들었다기보단 트레이너 씨를 잡아먹을 듯이 껴안으려 뛰어든 것이다. 달리기에서는 몇 번이고 져버렸지만, 이쪽만큼은 단츠 플레임이 이겨 보이겠다는 결연한 의지다.
당연히, 트레이너 씨는 발버둥을 치며 단츠 플레임을 밀어내려고 안간힘을 쓰―
“……그렇구나.”
―지 않았다. 오히려 쓴웃음을 지으며 안겨 오는 단츠 플레임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트레이너 씨의 격렬한 반항을 예상했던 단츠 플레임으로서는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어쨌건 트레이너 씨도 좋은 것이리라. 그렇게 생각하며 우마무스메의 본능을 해방하려던 찰나.
“네가 이렇게까지 하다니…많이 힘들었구나, 단츠.”
“……에.”
트레이너 씨가 단츠 플레임을 안은 채로 그녀의 등을 토닥이자, 순간적으로 뇌가 정지하는 느낌이 들었다. 본능에 침식되어가는 단츠 플레임을, 밀어내지 않고 상냥하게 위로해준다니.
트레이너 씨에게 미움받는 것까지 각오하고 온 단츠 플레임은 상상조차 하지 못한 일이었다.
그래서였을까, 트레이너 씨의 자상함에 괜스레 눈가에 눈물이 살짝 고이는 것만 같았다.
“내가 고민하고 노력하는 만큼, 단츠 너도 고민하고 노력하고 있을 테니까, 그런 만큼 최근 성적에 더 실망하고 낙담할 수 있다고 생각해.”
“트레이너…씨.”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지. 단츠 네 컨디션 관리에 조금 더 신경 썼어야 하는데, 내 책임이 커.”
딱히, 트레이너 씨의 잘못은 아니지만요. 속으로 중얼거리며 단츠 플레임은 조용히 트레이너 씨의 가슴팍에 얼굴을 기댄다. 방금까지 끓어오르던 우마무스메의 본능이 조금 식어가는 것을 느꼈다.
그래, 이런 건 단츠 플레임답지 않다. 트레이너 씨의 담당 우마무스메, 트레이너 씨가 신뢰하는 우마무스메이지 않은가. 조금 더 성숙하고 의젓한 우마무스메여야 할 것이다.
그러니, 이런 단츠 플레임의 이기적인 돌발 행동을 트레이너 씨께 사과드리고, 사무실을 나가 다음의 레이스에 관해 고민하는 편이 올바른 중앙 트레센의 학생일 것이다.
그렇게 생각을 하며 입을 열려던 찰나,
“게다가, 단츠 너로서도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에게 이러면, 나중에 정말로 크게 후회할 테니까, 조금 진정하고―”
“……네?”
단츠 플레임이 눈살을 찌푸린다. 방금까지의 분위기와 사뭇 달라진 그녀의 말투에, 오히려 트레이너 씨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뭘 잘못 말하기라도 했을까.
“그러니까, 우마무스메의 본능이 강한 것은 알고 있지만, 그래도 본능에 몸을 맡겨서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에게 이런 일을 하면 안 돼. 물론 네 상태를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한 내 잘못이 크지만―”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건가요?”
“말했잖아, 이런 건 좋아하는 사람과―”
단츠 플레임의 손에 힘이 들어간다. 잠시 식었던 우마무스메의 본능이, 분노와 함께 다시금 끓어오르는 것이 느껴진다. 아, 그래. 이런 사람이기도 했지. 직접 대놓고 말하지 않으면 모르는 사람. 알면서도 모른 척하는 사람.
천천히 그의 품에서 얼굴을 뗀다. 그리곤 다시, 질척이는 검붉은 색의 독점력이 단츠 플레임을 침식해 들어간다.
“……단츠?”
그런 단츠 플레임의 모습에 불안감을 느낀 트레이너 씨가, 조심스레 단츠 플레임의 이름을 부른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단츠 플레임의 꼬리가 트레이너 씨의 다리를 휘감는다. 도망칠 수 없도록, 옭아맨다.
“저는, 진심인데요?”
“응?”
“트레이너 씨를 좋아하는 건, 진짜인데요?”
“어?”
“트레이너 씨와 우마뾰이…옷챠호이 하고 싶은 것도 진심인걸요.”
“엥?”
“단츠 플레임의 특제 옷챠호이…먹어 보실래요?”
히죽 웃으며 단츠 플레임은 트레이너 씨의 목덜미에 팔을 휘감는다. 평소의 순수하고 순진한 단츠 플레임의 모습과는 정반대의, 요염한 창부 같은 그녀의 모습에 트레이너 씨의 눈동자가 이리저리 사방으로 흔들린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그렇게 생각해 보아도…그가 정답을 알 수 있을 리는 없었다.
단츠 플레임의 열기가 트레이너 씨를 집어삼키는, 그런 가을의 어느 날이었다.
* * * * * * * * * *
아그네스 타키온과 맨하탄 카페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트레이너 씨의 사무실 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안쪽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방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명확하게 알 수 있도록 해 주고 있었다.
듣고 싶지 않았지만, 우마무스메의 강력한 청각은 듣기 싫은 소리마저 듣도록 강제한다. 당장이라도 사무실 문을 부수고 들어가고 싶었지만, 그녀들이 저 문을 부수는 것은 무리다.
이전에도 몇 번 시도해 보았지만, 트레이너 씨의 사무실 문은 한번 잠기면 안에서 열 때까진 절대 열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녀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저, 어찌 되었건 사무실 안쪽의 일이 마무리되고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는 것뿐.
거의 처음 느껴보는 정도의 무력감에, 아그네스 타키온은 문 옆의 벽에 기대어 주저앉았다. 그리곤 한숨을 푹 내쉬며 작게 중얼거린다.
“……이렇게 될 것 같았다만.”
누구에게 말하는지 모를 말이 허공을 맴돈다. 바로 앞에 맨하탄 카페가 서 있었지만, 그녀를 향하는 말은 아닐 것이다.
그야, 지금의 맨하탄 카페에게 아그네스 타키온의 목소리가 들릴 리 없었으니까. 이를 부드득 갈며 평소의 침착함은 온데간데없이, 하얀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거리는 모습은 마치 피에 굶주린 사냥개를 연상시키는 듯했다.
그래, 피를 갈구하는 것이다. 단츠 플레임의 피를, 멍청한 트레이너 씨의 피를, 금색의 눈동자가 불그스름하게 빛난다.
“타키온 씨.”
그러던 중, 맨하탄 카페가 아그네스 타키온을 부른다. 평소보다도 더 낮은 목소리, 아니, 이걸 목소리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인가. 송곳니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리는 짐승의 울음소리에 더 가깝지 않은가.
하지만 아그네스 타키온은 맨하탄 카페의 감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야, 아그네스 타키온에게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검고 붉은 독점력이 내장되어 있으니까.
“왜 그러나, 카페.”
단츠 플레임과 정글 포켓이 들어온 후부터였을까, 맨하탄 카페와의 내적 친밀감이 제법 높아졌기 때문에 예전보다 더 친근하게 부르기 시작했다. 그만큼 아그네스 타키온과 맨하탄 카페의 사이는 의외로 좋은 편이었고, 적어도 아그네스 타키온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단츠 플레임과 정글 포켓은 아니리라. 맨하탄 카페와 접점이 그리 많지도 않을뿐더러, 아그네스 타키온만큼 맨하탄 카페와 친하다고, 사이가 좋다고 하기에는…솔직히 말해서 무리다.
그러니까 지금, 맨하탄 카페의 감정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것 또한 아그네스 타키온이리라.
“죽일…까요.”
“……진심인가?”
구태여 되묻는 것은, 조금 진정하라는 의미다. 맨하탄 카페의 눈을 본다면, 그녀가 입 밖으로 내뱉은 말이 절대로 진심이라고 그 누구건 단언할 수 있으리라.
솔직히 아그네스 타키온 또한 같은 생각이 든다. 맨하탄 카페는 백번 양보해서 참을 수 있다. 내장이 꼬이고 뒤틀리는 느낌이 들긴 하지만, 그래도 참을 수 있다. 그만큼 아그네스 타키온은 트레이너 군 만큼이나 맨하탄 카페를 특별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단츠 플레임은, 아니다. 맨하탄 카페도 마찬가지이리라. 바람이 불지도 않는 실내이건만, 그녀의 긴 흑발이 휘날리는 것은…아그네스 타키온의 과학적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맨하탄 카페의 분노이리라.
“저주라도, 할까요.”
“그만두게, 카페.”
아그네스 타키온이 고개를 내젓는다. 하지만 맨하탄 카페의 화는 식을 줄 모른다. 그야 당연하지, 아그네스 타키온과 선의(조금과 악의 대부분으로 가득 찬)의 경쟁, 연적으로서의 정정당당한 경쟁을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어디서 튀어나온 지 모를 단츠 플레임이 맨하탄 카페에게 먼저 때려버린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아그네스 타키온만으로도 충분하고, 솔직히 벅찬데, 단츠 플레임이 끼어든다…그런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파져 온다.
그리고 그것은 분노로 승화되어, 저 사무실 안쪽에서 복도에 다 들리도록 옷챠호이를 먹고 있는 단츠 플레임에게로 향한다.
“타키온 씨…당신답지 않네요.”
“아니, 나 다운 거라네. 우리가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하면, 분명 모르모트…아니, 트레이너 군이 슬퍼할 테니까.”
“……그럼 이대로, 아무것도 하지 말고…그냥 있으라는, 말인가요.”
맨하탄 카페가 주먹을 쥔다. 측정해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지금만큼은 젠틸돈나의 악력을 뛰어넘었을 수도 있겠다고 아그네스 타키온은 조용히 중얼거린다.
“물론, 용서할 수는 없지.”
“좋은…방법이라도, 있나요.”
안쪽에서 들려오는 단츠 플레임의 황홀경에 젖은 목소리가 점차 사그라든다. 아무리 독점력에 질척이는 우마무스메라 해도 본질은 결국 우마무스메, 히토미미의 정력을 온전히 버틸 수는 없는 것이리라.
안 봐도 뻔하다. 아그네스 타키온도 처음에는 그랬으니까. 트레이너 군은 불완전연소, 단츠 플레임만 만족해버리고, 그 이후에 따라오는 것은 죄책감이겠지.
그러니, 그런 단츠 플레임의 순수함과 죄책감을 건드리는 것이 그녀에게 있어 최고의 벌이 될 것이다. 아그네스 타키온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일어난다.
“당연하지 않은가. 지금부터 보여주도록 하지.”
아그네스 타키온이 말함과 동시에, 사무실 문이 열린다. 그리고 단츠 플레임이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하복부가 아픈 듯이 절뚝이며 걸어 나온다.
“아…….”
그러다가 눈앞에 서 있는 아그네스 타키온과 맨하탄 카페의 존재를 알아차리곤 작은 ㅅㅇ을 흘린다. 광기에 찬 눈동자 하나와 피에 굶주린 눈동자 하나가 단츠 플레임을 노려본다.
그러더니, 순식간에 단츠 플레임의 팔을 한 쪽씩 잡곤, 맞은편의 실험실로 질질 끌고 간다. 저항할 기력도 없는 단츠 플레임이었기에, 두 우마무스메의 손에 완전히 떨어지고야 만 것이다.
실험실의 문이 닫히고, 이내 단츠 플레임의 절규 뒤섞인 비명이 복도에 울려 퍼졌다.
* * * * * * * * * *
다음 날, 단츠 플레임은 트레이너 씨를 보자마자 그의 품에 뛰어 들어가 펑펑 울며 전날의 일을 사과했다.
갑작스러운 단츠 플레임의 행동에 조심스레 그녀를 토닥여주었지만, 한편으로 그는 확신할 수 있었다. 아그네스 타키온과 맨하탄 카페에게 단츠 플레임이 무슨 짓을 당한 것이라고.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하루아침에 감정과 태도가 돌변할 리가 없다고.
그리고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아그네스 타키온과 맨하탄 카페는 슬그머니 눈을 돌려 그와 눈이 마주치는 것을 피한다.
하지만 아그네스 타키온도, 맨하탄 카페도 눈치채지 못했으리라.
펑펑 울던 단츠 플레임의 꼬리가 트레이너 씨의 다리를 옭아매고 있었다는 것, 그리고 트레이너 씨의 품 안에서 살그머니 한쪽 입꼬리를 올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하늘은 맑고 우마무스메는 웃는, 중앙 트레센의 어느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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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마장 진창길 쌍땡이 좋아요
아 중마장 이거 못참지
가가기고
2024/10/21 23:21
트레센은 도대체 무엇을하는곳인가
카니에타
2024/10/21 23:27
그렇게 석사과정 구르더니 자기 다리는 못 고쳤넼ㅋㅋㅋㅋ
이도현
2024/10/21 23:38
옷챠호이는 옷챠호이에요
린성신관알타
2024/10/21 23:56
아 중마장 이거 못참지
뒤운
2024/10/22 00:02
정실은 단츠....
지나가던 정상인
2024/10/22 00:16
분명 머리들이 좋을텐데 트레이너들을 가끔 보면 어떻게 트레이너가 된 건지 신기하단 말이야 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