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지, 라멘 주문 방법은 조금 야하지 않아?"
느닷없이 남의 집에 들어온 것도 모자라 컵라면까지
끓여달라고 흥흥대던 파인모션은 물이 언제 끓나 하며
멍하니 전기포트의 불빛을 바라보던 내게 그렇게 말했다.
"조금 부담스럽지만 오늘 야식은 컵라면 두개로 할까~"
"에엑~ 치사해! 분명 나도 준다고 했으면서!"
못들은 척 능청스럽게 파인의 라면은
내 뱃속으로 압수. 라고 하고 싶지만
내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뿌뿌거리는 저 얼굴에는 거스를 수가 없었다.
"네네, 드리겠습니다 드려.
그런데 왜 라멘 주문 방식이 야하다고 생각하는거야?"
파인의 잔뜩 부풀어오른 볼을
손가락으로 무심코 쿡쿡 찌르다가
문득 어떻게 생각했길래 라멘 주문 방법을
야하다고 느낀건지 궁금해졌다.
"그야 '딱딱하게' 라던가, '진하게' 라는 평범한 말이
주어만 바꾸면 뜻이 확 달라지는걸?"
일리는 있다.
일리는 있지만 나는 싫다.
원래였다면 오늘은 이런 야식 같은 건
입도 대지 않고 잘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그냥 뾰이가 하고 싶다고 말하면 안될까 파인?"
"물론 그렇게 일직선으로 말해도 되지만...
그래도 대화를 차곡차곡 쌓아간 다음에
하는 편이 좀 더 추억거리가 되지 않을까?"
추억은 '같이 밤늦게 야식으로 컵라면을 먹었다.'
까지 였으면 좋겠지만
턱에 손을 대고 곰곰히 생각하는 파인의 표정을 보니
아무래도 밤이 길어질 것은 확정사항이었다.
찰카닥.
난처하지만 어떻게든 또 파인과 같이
뒹구는 수밖에 없나 생각하던 찰나,
전기포트의 스위치가 내려가며
주둥이에서 새하얀 연기를 뿜고 있었다.
"파인, 지금 해버리면 컵라면. 불어버릴텐데? 정말 괜찮아?"
퉁퉁 불어버린 면을 먹는다는 건
라멘 좋아 파인에게 있어 큰 고민이겠지.
자아, 부디 식욕과 성욕을 천천히,
신중하게 잘 저울질 해다오.
그리고 쏟아지는 졸음에 그대로
꾸벅꾸벅 졸다가 푹 잠에 들면 더 좋고!
하지만 내 기대와 달리 파인은 안색하나 바꾸지 않고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4분 안에 끝내면 상관없지 않을까?"
지구촌 커플 평균 관계 시간은 5.4분이라고 한다.
하지만 평균은 평균.
그 이하도 그 이상도 얼마든지 가능한 것이다.
다만 구태여 그게 왜 지금인가는
조금 머리가 지끈지끈하니 넘어가도록 하자.
"고민에 빠져 스르르 잠이 들고
나도 편안한 숙면을 취한다는 내 계획이..."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인 내게
파인이 몸무게를 실어 기대왔다.
갑작스러운 무게에 당황하며
나는 점점 뒤로 기울어지다가
이윽고 폭, 하는 소리와 함께
어느새 바닥에 펼쳐진 요에 누워있었다.
"후후, 그런 것 치고는 트레이너도 할 생각 가득인거 아니야?
네 이놈~ 바지가 빵빵하구나~"
가끔 의지와 상관없이 일어나는 생리현상
이라는 흔해빠진 말은 하지 않기로 했다.
게다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보고 할 생각이 들어
내 위에 올라탔는데 이건 뭐 어쩔 수 있나.
"파인, 아무래도 4분 안에 끝내는 건 좀 어려울 것 같은데."
투명하면서도 은은한 초록빛인
파인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단언했다.
그러자 파인도 내 눈동자에 빨려들어갈 듯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아, 혹시 트레이너는 더 빨리 끝내는 타입?"
"아냐!!!"
기껏 내 쪽으로 돌렸다 싶은 분위기가
파인의 한마디에 산통이 깨져버릴 줄이야.
최근 들어 갈수록 놀리는게 심해지는 건 아마 기분탓이겠지.
다시금 파인의 허리에 손을 얹으며 입을 열었다.
"...입에서 라면 냄새나는데 키스하는건 좀 그렇잖아?"
"아하, 더 할 생각이었구나♪"
이제야 파인도 내 생각을 이해했다는 듯
입꼬리가 자연스레 올라갔다.
"물은 조금 있다가 다시 끓여야겠네."
"그럼, 이제 주문 받아줄래?"
파인은 그렇게 말하고는 내 가슴에 얼굴을 묻다가
고개를 들더니 귓가에 이렇게 속삭이는 것이었다.
"인자봉 딱딱하게, 뽀뽀 많이, 백인자 진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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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idoHKS
2024/09/27 17:58
또레나가 말라가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