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를 나온 두 사람은
한동안 아무 말도 나누지 않았다.
그저 적당히 보이는
신주쿠의 어두운 골목을 찾아들어
담배를 빼 물었을 뿐이다.
한참 동안
말없이 담배를 피워대던 카네타가
핏발이 선 눈으로
요시무라를 바라보았다.
"이제 어쩌실 건데요?"
"................."
"제 말 안들십니까?"
카네타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요시무라의 귀를 찔러 들어갔다.
할 말이 있을 리 없는 요시무라가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대체.....
선배는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 사람입니까?"
"아...아니..........."
"거기가 어디라고 날뛰어요,
거기가 어디라고?
X발!
거기가 어쩌면
이 일본에서도
가장 위험한 곳일지도 모른다고 한 건 선배잖아요?
예?"
요시무라가 지긋이 입술을 깨물었다.
"그런데......
그런 곳에 들어가서
속을 북북 긁어대고,
뒷조사를 하고 있다고 대놓고 밝혀요?
대체 뭔 생각으로요?
그 잘난 대가리에 뭐가 들었어요?"
"야!"
"뭐!"
요시무라가 살짝 언성을 높였지만
이번에는
카네타도 전혀 참아주지 않았다.
"머리는 장식으로 달고 다닙니까?
그건 뭐 모자걸이에요?"
"그만해, 새끼야."
"그만은 얼어 뒈질 그만이야!"
카네타가
살기까지 담긴 눈으로 요시무라를 노려보았다.
그 눈빛을 보고 있자니
새삼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를 실감하는
요시무라였다.
"저는요,
선배가 그래도 똘기는 있어도
나름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자기를 안 돌보는 것도
정의감이 넘쳐서 그런 거라고 생각했다고요.
그런데 오늘 보니까
선배는 그런 게 아니에요.
선배는 그냥 미쳤어요."
카네타의 눈에 독기가 맺혔다.
요시무라가
길게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담배를 피우고 있는 그의 손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잊을 수가 없다.
차가운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던
키리토의 시선이
화인처럼 박혀 잊쳐지지가 않는다.
".......X발,
진짜 진즉에 뒈지든 말든 처 내버려 뒀어야 하는 건데."
카네타도
한 가지는 확실하게 깨달았다.
키리토의 말은 틀린 게 없다.
이대로라면
그는
요시무라의 뒤차다꺼리나 하다가
끔찍한 꼴을 보고 말 것이다.
폭주하는 기관차를 막겠답시고 부여잡고 있는 이의 결말은
궤도에서 이탈한 기관차와 함께 죽는 것 밖에 더 있는가.
카네타가 양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알려주지,
저분의 꽁함이 어떤 건지 말이야."
모리 일등육좌의 마지막 말이
그의 뇌리를 떠나지 않고 있었다.
그건
선전포고라고 할 수도 없는 말이다.
선전포고라는 거창한 말을 쓰기에는
그들은
너무도 강대하고,
요시무라와 카네타는
너무도 미력한 존재니까.
그렇다고
경고라는 말을 쓰기에도 적절하지 않다.
그 단어로는
지금 카네타가 느끼고 있는,
천 근 같은 공포를 설명할 도리가 없으니까.
"빌어먹을,
이제 겨우 애가 돌인데."
카네타가 어찌할 바 없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카네타는 알고 있다.
라스 아니 키리토가 마음만 먹는다면
자신과 요시무라를 세상에서 지워 버리는 데
단 하루도 걸리지 않을 거라는 것을.
경찰에 신변보호 요청을 한다?
웃기지도 않는 소리.
이미 일본 경찰조차도
그 라스의 개가 되어 움직이고 있는 상황인데,
무슨 수로 저들을 막으란 말인가.
정부부터
ja위대와 경찰까지
저들의 힘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을 것이다.
"X발,
24시간 라이브 방송이라도 해야 하나?"
그게 불가능하다는 건 카네타도 잘 알고 있다.
일단 그런 식으로 생존을 하려고 해도
저들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카네타를 처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저들이 그를 손대지 않아 버리는 것이
더 문제다.
삶은 파괴될 것이고,
기자로서의 신뢰도는
완전히 땅에 떨어질 테니가.
사생활과 벌이 없이 무슨 수로 살란 말인가.
"진정 좀 해, 새끼야."
"진정이요?
진정?"
카네타가 이를 갈았다.
"내가 지금 누구 때문에 이 꼴이 됐는데!
뭔 X발,
남의 나라 이야기 하듯이 침착한 척하고 지랄이야!
빌어먹을!"
"그 소년은.....
절대로 우리를 안 건드려."
"뭔 수로...
그렇게 장담하시는데요?"
"건드릴 가치도 없거든."
"................."
요시무라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건드려서 얻을 것도 없고,
괜히 건드리다
일 틀어지면 귀찮아지지.
그렇다고
우리가 지들에게 위협이 되는 것도 아니고."
"눈앞에 날파리만 알짱거려도......
......일단은 손을 휘둘러 보는 게 사람이에요."
"맞아.
그런데
저 키리토라는 아이에게는
우리는............. 날파리만도 못한 존재거든."
"거............
X발,
진짜 희망적이네요."
우습게도
이 말이
라스를 나온 이후로
그가 들은 말 중에서 가장 긍정적이었다.
우습게도 말이다.
요시무라가
다 타버린 담배를 바닥에 던지고는
새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카네타가 저리 발악을 하지 않아도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는 확실하게 이해하고 있다.
적어도
키리토의 머릿속에
카네타는 몰라도
요시무라는 분명 낙인이 찍혔을 것이다.
'적으로라도 취급해 주면 영광이지.'
앵앵대는 모기 수준이겠지.
당장 다가오지 않으면 귀찮아 건드리지 않지만,
주변에 알짱거리면
귀찮음을 무릅쓰고 살충제를 들게 만드는 모기 말이다.
"선배."
"............."
카네타가
뭔가 결심한 듯이
요시무라를 바라보았다.
"오늘 이 순간부터
키리토 저 소년에 대해서 관심 끊으세요."
".............."
"키리토고,
라스고,
얼씬도 하지 마세요.
이건 전짜 제가 마지막으로 드리는 경고이고 부탁입니다."
"마지막은 뭔 마지막이야?"
카네타가
요시무라를 똑바로 보며 말했다.
"오늘 이후로
저는 선배가 뭘 쫓든,
무슨 일을 하든 관심 끊을 겁니다.
그리고는
쥐 죽은 듯이 살 거에요."
"너 기자 아냐?"
"기자는 개뿔이.
뒈지고 나서 기자가 뭔 소용이에요?
내가 뭔 대단한 사명감이라도 있어서 기자 한 줄 알아요?
먹고살려고 하는 거지!"
카네타의 목소리는
이제 더 이상 과격하게 높지 않았다.
하지만
그래서 오히려 더 시니컬하게 들렸다.
"선배도 마찬가지에요.
그래서 선배가
지금까지 뭐 그리 대단한 일을 했다구요.
결국에는
지면 채우고 월급이나 받아먹는 거 아니에요?"
"말 함부로 하지 마,
새끼야."
카네타는 화를 내지 않았다.
그저 차가운 눈으로 요시무라를 바라보았을 뿐이다.
"어쨌든
저는 경고했어요.
이제 마음대로 하세요.
저는 이제 검은 검사 키리토건
라스건
거기에 관련된 모든 말들을 머리 속에서 지워버릴 테니까요."
"야,
우리가 이런 협박 한두 번 받아보냐?
왜 쫄고 그래?
저 라스인지 키리토라는 애새끼든지......"
"한두 번 받아본 게 아니니까 쪼는 거에요.
저거, 협박 아니니까."
"...................."
"저는 살고 싶거든요.
저 뿐만 아니라 제 가족들도 말이에요.
저 하나 때문에
토끼같은 마누라와 여우같은 자식들이
제 눈 앞에서
잔인하면서도
끔직하고 처참하게 비명횡사하는 것은
절대로 못 봅니다."
카네타가 담배를 비벼 껐다.
그리고는
요시무라에게 일언반구 말도 없이
몸을 돌려 가 버렸다.
홀로 남은 요시무라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빌어먹을.....'
그도 안다.
그가 지금까지 만난 범죄자가 몇인데
저 말이 협박인지 아니지도 구분하지 못하겠는가?
키리토는 모르겠지만,
그 콧수염 난 경비 주임은
정말 그들을 잡아 죽이고도 남을 사람이다.
'그리고
그 키리토라는 소년이 진짜 열 받으면
그 경비 주임 같은 건 아무것도 아니겠지.
등을 타고 식은땀이 흘러내린다.
이마에서 흘러내린 땀이 눈으로 파고들어
눈이 따끔따끔하다.
건물 벽에 등을 기댄 요시무라가
멍한 눈으로 고개를 돌려
아까 전에
자신이 나온 그 라스 본사 건물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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