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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정선 카지노로 향하는 길에

" 아빠 진짜 왜 그래! 도박에 미쳤어?! "
" ... "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울부짖는 딸의 외침에도 최무정은 묵묵부답이었다. 그의 손에는 대출까지 받아 모은 돈 5천만 원이 들려있었다.

" 아빠 제발 가지 마! 응? 제발! 아빠 도박 중독이야?! 진짜 왜 그래! "

미간을 찡그리며 이를 악물던 최무정은, 돌아앉아 딸을 붙잡았다.

" 아빠 도박 중독 아니야. 이게 진짜 마지막이야. "
" 뭐가 중독이 아니야! 전세금도 다 빼고, 그 돈까지 다 쓰고나면 우리 거진데! 뭐가 마지막이고 뭐가 중독이 아니야! "

일그러진 얼굴로 고개를 흔드는 최무정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 아빠 도박 중독 아니야! 너도 알잖아! 아빠가 얼마나 힘들게 살아왔는지! 아빠가 어떻게 그 돈을 모았는데! 막노동 판에서 허리가 굽을 때까지, 못 배운 놈이라며 온갖 괄시 다 받으면서도 악착같이 모은 돈이야! 그 돈은 찾아와야 할 거 아니야! "

3천만원. 최무정이 정선 카지노에서 잃은 돈이었다.

평생 성실하게 살아온 최무정이 저지른 단 한 번의 실수였다. 
친구의 말대로 주머니에 10만원만 가져가면 문제없을 줄 알았다. 하지만 그 10만원이 300만원으로 불어나는 순간, 문제가 생겼다.
자신이 300만원을 벌려면 얼마나 뼈 빠지게 일해야 했던가? 그런 돈을 고작 1시간 만에 벌다니, 최무정의 이성이 마비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다시 그 300만원이 다시 0원이 되었을 때, 최무정은 극심한 허탈감과 분노에 휩싸였다. 
한 번만 더 해보자는 생각에, 나가서 10만원을 찾아왔다가 다시 또 잃고. 종잣돈이 모자라서 그랬다는 말에 100만원을 찾아왔다가 그것마저 모두 잃었다. 
그다음부터는 멈출 수 없었다. 돈을 따는 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자신이 잃은 돈만큼은 되찾아야 했다. 
그게 다시 300만원이 되고, 500만원이되고, 결국 최무정이 정신을 차렸을 땐 모두 3천만원을 날린 상황이었다.

절대 그렇게 잃어선 안 되는 돈이었다. 불행했던 자신의 인생에서 그나마 유일한 결실이었던 돈이었다. 무슨 수를 쓰든 그 돈을 되찾아야만 했다.

" 아빠 믿어줘. 아빠는 절대 도박 중독 아니야. 이번이 마지막이다. 아빠가 잃은 돈만 되찾으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돌아올 거야. 응? 아빠 한번 믿어줘. "
" 아, 어떻게 찾아! 그냥 잊어버려 아빠! 제발! 응? 그냥 3천만원 처음부터 없었다고 생각해! "
" 그 돈을 어떻게 없었다고 생각해!! "

소리를 지른 최무정은, 딸을 뿌리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 아빠! "

딸이 울면서 부르는 소리를 무시하고 밖으로 뛰쳐나가는 최무정! 
그는 반드시 모든 걸 원래대로 돌려놓을 생각이었다. 3천만원을 되찾고, 카지노를 모르던 그때의 자신으로.

.
.
.

어두운 공간.

" 으으음...! "

의자에 묶여있는 최무정이 힘겹게 정신을 차렸다. 미간을 찌푸리던 그는 퍼뜩,

" 내, 내 돈! 내 돈!! "

황급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나 꽁꽁 묶인 그는 꼼짝도 할 수 없었고, 주변이 보이지도 않았다.

여기는 어딘가? 자신이 왜 여기서 깨어난단 말인가? 언제, 어디서 정신을 잃었단 말인가? 
최무정은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 순간,

' 팟! '

" ?! "

최무정의 정면으로 새하얀 스크린이 떠올랐다. 그리고 들려오는 목소리,

[ 깨어나셨습니까? ]

" ! "

눈을 부릅뜬 최무정은 당장에 소리 질렀다!

" 너 누구야?! 뭐냐고 이거?! 어! 내 돈 어딨어! "

[ 아~ 그 돈이요? 당연히 옆에 있습니다. ]

그제야 고개를 돌린 최무정의 눈에, 의자 바로 옆 탁자에 놓여있는 현금 5천만원이 보였다.
확인한 최무정의 입이 무언가 소리치려 할 때,

' 팟! '

하얀 스크린에서 동영상이 시작됐다.
10살쯤 되어 보이는 꼬마가 오래된 책가방을 메고 등교하는 모습이었다.

" 뭐, 뭐야 이거?! 여기 어디냐니까?! "

최무정이 버럭 소리를 지르자, 목소리가 대답했다.

[ 이곳은 돈을 내고 리액션을 즐기는 곳입니다. ]

" 뭐? "

[ 이곳에서 리액션을 즐기시다 보면, 중독되지 않고는 못 배기실걸요? 선생님이 원래 잘 중독되시잖습니까 하하 ]

" 뭐 이 개! "

[ 쉿! ]

" ...! "

어찌한 일인지 갑자기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최무정! 그러자, 영상의 배경 소리가 자세히 들려오기 시작했다.
낡은 책가방을 멘 소년이 고개를 숙이고 힘없는 걸음으로 걸어가는 모습, 그 현장에 함께하고 있는 듯했다.

아이의 얼굴은 무척이나 슬퍼 보였는데, 최무정은 왠지 눈을 뗄 수 없었다. '가난'이 무엇인지 익히 알고 있던 그가, 아이의 겉모습에서 가난을 읽어냈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힘없이 터벅터벅 걸어가다가, 그 자리에 풀썩 쭈그려 앉아 얼굴을 묻어버리는 아이. 그 작은 모양새가 안타까웠다.

" 아 "

최무정의 목에서 자기도 모를 소리가 새어 나온 그때, 목소리가 말했다.

[ 준비물을 가져가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그것을 살 돈이 없었거든요. 혹시, 돈을 써서 저 아이의 준비물을 대신 사주실 생각이 있으십니까? ]

" 뭐? "

최무정의 눈이 조금 커졌다. 
목소리는 조금 안타까운 톤으로 말했다.

[ 준비물을 가져가지 못해서 또 선생님께 혼이 날 겁니다. 다른 아이들은 또 거지라며 놀려대겠죠. 어쩌면 지금 미리 울어두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네요. 준비물 '수수깡'을 살 돈 500원만 있으면 되는데 참... ]

" 뭐? 500원? "

500원이란 단어에 최무정이 반응했다. 그러자,

[ 저 아이를 위해 준비물 값 500원을 대신 내주시겠습니까? 옆에 돈도 있으신데 말입니다. ]

" ... "

최무정의 미간이 좁아졌다. 그는 지금 자신에게 벌어진 이 미친 상황에 대한 의혹이 가득한 상태였지만, 눈앞의 아이가 고작 500원이 없어서 저러고 있는 게 신경 쓰이는 것도 사실이었다.

고작 500원짜리 수수깡이 뭐라고, 그거 살 돈이 없어서 저렇게...

최무정은 일단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리고 항의했다.

" 수수깡 사줄 수 있으면 사줘. 그런데, 지금 내가 왜 여기에- "

그러나 중간에 말소리가 나오지 않아, 뒤의 항의는 이어갈 수 없었다. 

[ 아이에게 500원을 써주기로 하셨군요! 알겠습니다! ]

순간, 최무정의 옆에서 동전 소리가 났다. 고개를 돌려보니, 탁자 위에 있던 현금 중 만원짜리 하나가 빠져나와 9천 500원으로 변하고 있었다!

" ?! "

비상식적인 광경에 깜짝 놀라는 최무정! 

그때, 화면 속에 쭈그려 앉아 있던 아이가 고개를 들고 일어났다. 눈을 훔치고 다시 걸어가려던 아이는 순간,


눈이 커지며 얼른 땅바닥으로 허리를 숙였다! 아이의 손이 주워든 오백원짜리 동전 하나!

그러자, 내내 우울하던 아이의 얼굴이 크게 환해졌다!
행복함이 가득한 얼굴로 얼른 달려가는 아이! 당연히 목적지는 학교 앞 문방구였다.

최무정은 아이가 단돈 500원에 행복하게 변화해가는 모습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았다. 특히 입을 크게 벌리고 웃고 있는 아이의 얼굴이 화면 가득 들어왔을 때는 절대 눈을 뗄 수 없었다.

[ 어떻습니까? 리액션 좋지요? ]

화면이 다시 새하얗게 변하고, 목소리가 말했다. 
그제야 최무정은 목소리가 말했던, '돈을 내고 리액션을 즐기는 곳'이란 말을 이해했다. 
그러나 자신이 이곳에 왜 감금당하였는지는 여전히 이해할 수 없었다.

" 이게 무슨-! "

' 팟! '

소리를 지르려던 최무정은, 또다시 스크린의 동영상이 바뀌자 시선을 빼앗겼다.
아까 그 소년이 학교 근처 분식집의 먼발치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분식집에서는 다른 아이들이 떡볶이를 사 먹고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컵 떡볶이'를 먹으며 아이의 곁을 지나쳐갔다. 
입으로 들어가는 떡볶이를 보며 침을 꿀꺽 삼키는 아이. 조심스럽게 쥐고 있던 손바닥을 폈다.

그곳에는 50원짜리 동전 2개, 10원짜리 동전 10개가 있었다.

[ 아이는 지금 갈등하고 있습니다. 떡볶이가 너무 먹고 싶거든요. 하지만 50원짜리와 10원짜리들을 내는 게 창피합니다. 그 10원짜리들도 며칠을 주머니 속에 소중히 모아둔 것이었는데, 낼 용기가 나지 않습니다. 아니요, 낸다손 치더라도 아주머니에게 200원어치만 컵에 담아달라는 말은 절대 할 수가 없겠죠. 창피하니까요. ]

" ... "

아이는 하굣길의 학생들이 연신 분식집을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을, 한참 동안 지켜만 보았다. 그러다 결국, 동전들을 주머니에 넣으며 돌아서는 아이. 표정 없는 그 얼굴이 왜인지 슬펐다.

[ 어떻습니까? 저 아이에게 떡볶이를 사주실 생각 없으십니까? 천원이면 됩니다. 리액션을 보고 싶지 않으십니까? ]

최무정의 고개가 옆으로 돌아갔다. 거의 오천만원이 쌓여있는 탁자. 고작 천원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 ...떡볶이 먹게 해줘. "

최무정의 말이 끝나자마자, 동영상 속에서 힘없이 걷던 아이의 앞에 누군가가 섰다. 
어른의 뒷모습은 아이에게,


아이는 길을 작은 팔을 뻗어가며 길을 설명해주었다. 
그러자, 천원을 건네는 어른의 뒷모습.


천원을 받고 눈이 휘둥그레진 아이는, '감사합니다!' 연신 고개 숙여 인사했다. 
얼른 뒤돌아 분식집으로 향하는 아이의 표정이 해맑았다. 손에 넣은 떡볶이를 입에 가져가서 씹을 때는, 마치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처럼 크게 크게 입을 놀렸다.

그 모든 모습을 지켜보던 최무정은, 아이의 행복함이 진심으로 느껴졌다.

[ 이번 리액션도 참 좋네요. ]

" ... "

다시 화면은 하얗게 반전했다가, 또 다른 영상을 시작했다.
한 학년 정도 더 나이를 먹은 듯한 아이의 모습. 
한데, 아이는 운동장 구석에 앉아 무릎 사이에 얼굴을 파묻고 있었다.

최무정의 미간이 좁아질 때, 목소리가 말했다.

[ 같은 반 친구들이 단체로 아이를 놀렸네요. 아이의 신발이 짝퉁 메이커였거든요. 그 나이 때 아이들이 다 그렇잖습니까? 누구 하나 놀려서 웃음거리로 만드는 거. ]

영상 속에서 가끔 고개를 들어, 손등으로 훔치는 아이의 눈가가 부어있었다. 

[ 사실 오늘이 아이의 생일입니다. 부모님이 살아계셨으면 신발 정도는 사줬을지도 모르는데, 참 안타깝습니다. ]

" ... "

[ 어떻습니까? 아이의 생일 선물로 좋은 신발 하나 사주시겠습니까? 5만원이면 됩니다. ]

최무정은 또다시 자신의 돈이 쌓여있는 탁자를 돌아보았다. 5만원이 빠져나가도 전혀 티도 안 날 액수였다.
다시 한번 아이의 부은 얼굴을 쳐다보던 최무정은, 말했다.

" 메이커 신발 하나 사줘. "

그 말과 동시에 탁자 위에서 5만원이 증발했다.
그리고 동영상 속 아이는 깜짝 선물을 맞이하게 되었다. 
체육복 차림의 어른의 뒷모습이 나타나서,


눈이 휘둥그레져서 신발을 살피던 아이는, 좋으면서도 좋은 티를 폭발시키지 못하는 얼굴로 선생님을 보았다. 그러자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고 그냥 가버리는 선생님.
그제야 아이의 얼굴에서 함박웃음이 폭발했다. 메이커 신발을 가슴에 품고 방방 뛰는 아이의 모습.

최무정은 인정하긴 싫지만, 그 모습을 보며 기분이 좋아지는 걸 느꼈다. 자신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 정말 보는 사람도 행복해지는 웃음입니다. 어떻습니까? 아이의 리액션에 중독될 것 같지 않습니까? ]

" 뭔... "

겉으로는 눈살을 찌푸린 최무정이었지만, 이어지는 영상 속에서도 계속해서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심지어는 아이가 학원에 다닐 수 있게 20만원을 내주기까지 했다. 
굉장히 망설인 결정이었지만, 학원 의자에 앉아 수줍게 웃는 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다 잊었다. 다른 평범한 아이들과 동등하게 앉아있는 그 모습이 그렇게 좋아 보였다. 비록 최무정에게 한 말은 아니었지만, 아이가 정확히 화면을 바라보면서 '고맙습니다' 수줍게 인사할 때는 가슴이 뭉클하기도 했다.

[ 크~ 리액션 좋고! 아이가 점점 행복해지네요. 보기 좋죠? ]

" 으음... "

최무정은 어느새, 다음 영상에서 아이가 어떻게 성장해 있을지를 기대하고 있었다.

한데, 다음 화면 속에서 아이는 엉엉 울면서 냄비에 죽을 끓이고 있었다. 정말 서럽게 울고 있었다.

" 아- "

너무나 서러워 보이는 그 울음에 최무정의 미간이 찡그려질 때, 목소리가 설명했다.

[ 유일하게 돌봐주시던 할머니가 병으로 누웠습니다. 아이는 병원비가 없고, 할머니는 며칠 이내에 돌아가실 겁니다. 아이는 어디에 도움을 요청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사실 도움을 요청할 사람도 없습니다. 그저 할머니를 위해 죽을 끓이는 게 할 수 있는 모든 것입니다. ]

" 아... "

[ 저 아이를 위해서 300만원을 내주실 수 있습니까? ]

" 300만원...! "

최무정의 눈이 흔들렸다!
300만원은 크다. 그가 그 돈을 벌려면 남들보다 몇 배는 더 고생해야 했다. 
하지만 서럽게 울면서 죽을 끓이고 있는 아이의 모습이 너무나 아프게 들어왔다.

" ...왜 내가 저 아이를 도와야 하지? 일면식도 없는 아이를 내가 왜? 300만원이나 써서 내가 얻는 게 뭐가 있다고! "

최무정의 독백에 가까운 그 질문에, 목소리가 대답했다.

[ 저야 모르죠? 당신이 알겠죠. ]

" ... "

말없이 탁자 위의 돈다발을 바라보는 최무정. 그는 생각했다. 
어차피 카지노에서 쓸 계획이다. 도박 종잣돈에서 300만원 정도는 없어도 되지 않을까? 그 정도는 게임 한판만 제대로 이기면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

그는 끝내, 자신의 기준으로 정신 나간 선택을 했다.

" 300만원을...써. "

최무정의 말이 끝나자마자, 탁자 위의 300만원이 증발했다.

그러자 영상 속에서 아이의 집 문이 열리며 어른이 등장했다.
울고 있는 아이에게 말을 건 어른은 할머니를 모시고 병원으로 이동했다. 
아이는 다시 환한 웃음을 되찾았고, 보고 있던 최무정도 저절로 그 웃음을 따라 하게 되었다. 300만원은 어느새 머릿속에서 잊혔다.


그때, 갑자기 스크린이 온통 붉은색으로 반전했다.

그리고 목소리가 말했다.

[ 아~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 아이가 그만,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

" 뭐, 뭐?! "

눈을 부릅뜨며 놀라는 최무정!

" 그게 무슨 말이야?! "

[ 지금 생사를 헤매고 있습니다. 이제 겨우 행복해지기 시작했는데, 왜 이런 일은 불쌍한 아이에게만 일어날까요? ]

" 이, 이! "

최무정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질 때, 목소리가 말했다.

[ 아직 살릴 방법은 있습니다. 혹시, 이 아이를 살리기 위해 돈을 내주실 수 있으십니까? 한 2~3천만원이 들 겁니다. ]

" 뭐라고?? "

최무정의 두 눈이 사정없이 흔들렸다. 2~3천만원?

" 마, 말도 안 되는 소리! 내가 그럴 수 있을 리가 없잖아! 미쳤어?! "

반사적으로 소리치는 최무정! 
절대로 불가능한 제안이었다. 오히려 화가 나는 제안이었다. 왜 할 수도 없는 자신에게 그런 말을 한단 말인가! 이 불편함을 강요한단 말인가!

한데,

[ 아깝지 않으십니까? ]

" 뭐? "

최무정은 아이의 목숨이 아까운가를 생각했다. 당연하다. 
하지만 목소리가 하는 말은 다른 것이었다.

[ 그동안 들어간 돈이 아깝지 않냐는 말입니다. 신발값이며, 학원비며, 할머니 치료비며, 아이를 위해서 많은 돈이 들었잖습니까. 아이가 죽어버리면 그 모든 돈이 헛수고가 되는데, 아깝지 않으십니까? ]

" 무, 무슨...! "

[ 도박과 같습니다. 그동안 잃은 돈을 생각하면, 여기서 멈출 수는 없는 거죠. 그렇지 않습니까? ]

" ! "

두 눈이 흔들리는 최무정은, 반박했다!

" 바, 바보 같은! 그깟 돈은 포기하면 되는 거야! 아까울 게 어딨어! "

[ 정말 그렇습니까? 이미 들어간 돈을, 포기할 수 있다고요? 정말로 본인이 그랬습니까? 포기했었습니까? ]

" 익...! "

최무정은 사내가 말하는 부분을 정확히 이해했다. 

" 다, 달라! 그것과는 달라! 내가 카지노를 포기하지 않은 이유는, 다시 되돌리기 위해서라고! 그 선택으로 얻어야 할 게 있다고! "

[ 아! 정말 그렇군요. 정선 카지노에 가서 운이 잘 풀리신다면, 얻을 게 분명히 있군요. 하지만 저 아이를 살려서 얻을 건 없지요. 아까 300만원을 괜히 냈습니다 참. 얻을 건 아무것도 없었는데. ]

" ... "

최무정의 눈동자가 떨렸다.
그는 이 순간 가정하고 있었다. 만약...카지노에서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면, 자신이 지금의 순간을 잊을 수 있을까? 그 아이의 얼굴을 잊을 수 있을까?

자기도 모르게 탁자 위로 시선을 옮긴 최무정, 돈다발을 보며 중얼거렸다.

" 이삼천... "

[ 예. 그 정도가 들 겁니다. ]

" ... "

그때,


" ?! "

붉은 스크린 쪽에서 들려오는 한줄기 비명에 최무정이 움찔했다!

[ 아! 아이가 이제 곧 죽을 것 같네요. ]

" 으... "

사정없이 흔들리는 최무정의 두 눈!
돈다발을 보는 최무정은, 입술을 깨물며 갈등했다. 곧, 눈을 질끈 감고 외면하는 최무정.

목소리는 탄식했다.


[ 아~ 이제 곧 죽을-


" 가져가-!! "


최무정이 발작하듯 소리 질렀다!

[ 음! 그 말씀은? ]

최무정은 잔뜩 일그러진 입을 움찔거리다, 말했다.

" 아이를...살려줘... "

[ ... ]

순간, 탁자 위의 돈뭉치들이 증발했다.

" 아- "

그 모습을 보며 허탈한 탄식을 내뱉는 최무정.
그가 멍하니 남은 돈을 바라보고 있을 때, 목소리가 말했다.

[ 정확히 2천만원이 남았군요. ]

" ... "

최무정은 고개를 돌려 붉은색 스크린을 보았다.

" 아이는..아이는.. "

한데?

붉은색 스크린은 영상을 비추지 않았다. 대신에 사라져버렸다!

[ 이제 이별할 시간이군요. 그럼 저는 이만. ]

" 뭐,뭣? "

당황하는 최무정!

" 아이는?! "

최무정이 외쳤으나, 영상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가 다시 소리치려 하던 그때, 목소리가 말했다.


[ 아차! 제가 아이의 이름을 알려주었던가요? 그 아이의 이름은 최무정입니다. ]


" 뭐- "


멍해진 얼굴의 최무정이 동상처럼 정지했을 때, 이 어두운 공간이 한점으로 빨려 들어가듯 새하얗게 밝아졌다-




" 쿨-럭!! "

기침을 토하며 상체를 들썩이는 최무정!

" 아, 아빠! 정신이 들어?! 아빠! 죽으면 안 돼-! "

기진맥진한 모양새의 최무정이 억지로 눈을 뜨고 주위를 살폈다. 자신이 누워있는 곳은 달리는 구급차.

" 여...여긴...? "

" 아빠! 흐어엉~! "

눈물을 펑펑 흘리는 안도하는 딸. 그제야 최무정은 모든 기억이 돌아왔다.

딸을 뿌리치고 집을 뛰쳐나온 것, 복잡한 마음으로 주변을 살피지 못한 것, '교통사고'를 당한 것까지.

" 아..아아... "

멍해진 눈으로 구급차의 천장을 바라보는 최무정. 

" ... "

한동안 말없이 생각에 잠겨있던 최무정은, 딸에게 말했다.

" 아빠 카지노 안 갈게. 아빠 도박 안 해. "

" 아, 아빠? "  

" 아빠 3천만원 포기할게. 그럴 수 있어. 응, 아빠는 이제 그럴 수 있을 것 같아.. "

최무정의 표정이 편안해졌다. 환하게 웃던 그 아이의 얼굴을 닮아가려는 듯이.
댓글
  • 복날은간다 2017/09/13 18:03

    댓글을 보니까, 이런 류의 이야기를 좋아해주신 분들이 많으셨더라고요!
    그래서 급하게 하나 써봤어요.
    항상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하세요!
    ( 혹시 제 이야기들 중, 첫 책에 들어갈만한 이야기 20개를 추천해주실 분은, 이곳에 댓글을 남겨주셔도 잘 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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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elloWorld91 2017/09/13 18:18

    할상 좋은글 잘보고있어요! 팬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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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눈알꽃 2017/09/13 18:33

    ㅠㅜㅜㅠㅜ 아 감동적이에요 ㅜㅜㅠㅜㅠㅜ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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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커피카라멜 2017/09/13 19:27

    멋진 소설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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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gdha 2017/09/13 19:28

    급하게 "이런" 글을 써 내시다니... T_T 잘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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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머리아님 2017/09/13 19:56

    도박 절대 하지 마세요
    사람 심리라는게..
    1. 10만원 -> 잃음 -> 아.. 10만원 잃었네 다시 따야 하는데.. -> 10만원 땀 -> 본전이네..
    2. 10만원 -> 10만원 따서 20만원 -> 10만원 잃어서 다시 10만원 -> 아.. 10만원 잃었네..
    딴돈 잃으면 마이너스 같고
    잃은 돈 다시 메워도 에이 그렇게 오래 해서 본전이네..
    결국 잃을 수 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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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방민아(25) 2017/09/13 21:37

    어릴적 본인 얼굴을 모를수가 잇나요?  중간에 카지노 이야기를 하는거 보니 완전히 기억을 잃지 않은 것 같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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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pricot 2017/09/13 22:09

    와.... 진짜 몰입해서 잘봤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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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코중인오덕 2017/09/13 22:14

    오아 수호천사 같은 존재였나봐요.
    새사람이 되겠군요 최무정씨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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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GM게임마스터 2017/09/13 23:10


    ( 흐 - 뭇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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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태타이거즈 2017/09/13 23:29

    진짜 기억남는건 가장 약한 괴물이요!!ㅎㅎ
    제목은 기억 안나는데 아이돌 데뷔하는거(경비원이 몰래카메라로 아이돌의 모든것을 다 지켜보고 있었던것)
    세 여배우중 한명의 O스스캔들을 덮으려고 세 여배우에게 감독이 인간이하의 짓거리를 하라고 시킨거??
    외계인이 지구에와서 거래하는 이야기
    바로 생각했을때 이정도 기억에 남네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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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타쟈안 2017/09/13 23:31

    쓰시는글 잘보고있습니다. 오타같아서 댓글남깁니다
    그런 돈을 고작 1시간 만에 벌다니,
    1시간만에 잃다니 가아닌가요

    (lWHk5w)

  • 롤라이 2017/09/13 23:49

    어떻게 이런 기발한 생각을...
    외면하고 돈을 안썼음 죽는거잖아요.
    넘 잼났어요!

    (lWHk5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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