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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아들과 함께였던 만원버스 탑승기

차로 10분 거리지만 집을 나선 후 걷고, 버스를 타고, 다시 걷고 하다보면 30분이 소요되는 곳에 본가가 있습니다.
손자가 보고 싶다는 아버지의 카톡 메시지를 받은 것이 어제 저녁 6시40분. 아이가 있는 집은 누구나 이해하듯 외출이 그렇게 쉬운 것만은 아닌지라 아이를 씻기고 입히고 가방에 필요한 걸 담고 제 자신의 매무새 역시 간단히 정리를 하고 나서니 시간은 벌써 7시30분을 넘어서고 있었습니다.
정거장 사이 거리가 대단히 짧은 지역이고 불과 다섯 정거장만 가면 되니 먼 거리는 아니지만 아이를 걷게 하거나 제가 안고 걷기에는 제법 부담이라 버스에 올랐습니다.
사람은 무척 많고 통로는 비좁았습니다. 아이 물건을 담은 가방을 매고, 아이를 품에 안은 지라 손잡이를 쥔 오른 손 이외에는 자유로운 사지가 없어 하차를 위해 버스 내부에서 이동하는 분들에게 공간을 내어주는 일도 무척 힘이 들었습니다.
땀은 비오듯 쏟아지고 아이도 열이 오르는지 얼굴이 붉어지고 있었는데 워낙 구불구불한 길이다보니 단 한 정거장을 지났을 뿐이고 나름 운동을 오래 한 몸인데도 버겁다는 느낌이 들었고 무엇보다 승객들에게 민폐다 싶은 마음에 '오래 기다리더라도 택시 탈 것을 그랬다.' 하며 자책을 했습니다.
그 때, 두 명이 앉는 자리 통로 쪽에 앉은 분이 저를 보고 일어섰습니다. "여기 앉으세요. 아이가 힘들어 보여요." 금방 내리니 괜찮다고 손사레를 쳤지만 저와 비슷한 40대로 보이는 그 분은 자신도 금방 내리니 괜찮다며 자리를 양보해 주셨지요.
그런데 바로 옆에 서 계시는 어르신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순간 보기에도 왜소한 체격이라 저보다 더 이 만원버스가 힘겨우실 것 같았습니다. "저기... 어르신 여기 앉으세요. 저는 괜찮습니다."
그러자 환갑은 한참 지난 듯 보이는 어르신께서 웃어주셨어요. "다들 아이 키우는 아비 아닌가. 자네더러 앉아 쉬란 거 아닐 걸세. 저 양보한 양반도 아이 생각해서 앉으라고 비켜주신 게지."
고마움과 미안함이 교차하는 와중에 염치없이 그냥 자리에 앉았습니다. 그래도 제 아이가 아비 면을 세워주려는지 예쁜 짓을 하더군요.
"하삐~ 안녕! 아저씨~ 안녕! 아줌마 안녕~! 누나 안녕! 난 쭌이야~"
주변 승객 모두에게 눈을 마주하고 인사를 한 뒤 대견하게도 자신을 소개하기까지 했습니다.
순간 작은 웃음소리가 주변에 흐르며 기분 좋은 덕담이 이어졌습니다. '예쁘다' '잘 생겼다'부터 '무럭무럭 자라라' 까지...
다섯 정거장이 지나 버스에서 하차한 후 본가를 향해 걷는 길이 그렇게나 시원하고 상쾌할 수가 없었습니다.
다들 아이 키우는 아비 아닌가.. 라는 어르신의 말씀이 계속 머릿속에 남았습니다. 누군가를 대할 때 조금 더 여유로운 마음을 가지라고 건네시는 귀한 말씀이라고 생각했지요.
고맙습니다.
자리를 흔쾌히 내어주신 제 또래의 남성 분과 좋은 말씀 주신 어르신. 이 자리를 빌어 감사드립니다.

댓글
  • 이동글 2017/09/02 08:29

    수고하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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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이거즈 2017/09/02 08:29

    아.. 덕분에 주말 아침 공기가 더 상쾌하게 느껴지네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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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모르고스 2017/09/02 08:29

    훈훈한 일화엔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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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태태정광 2017/09/02 08:31

    저도 저렇게 늙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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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hiori★ 2017/09/02 08:31

    이동글// 에구 어제는 마침 집에 차가 없어 버스를 탔는데 힘들더라고요. 되려 아이 데리고 버스 타고 볼 일 보는 흔히 보던 아주머니들이 대단하시다 느낀 하루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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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hiori★ 2017/09/02 08:32

    라이거즈// 저도 어제 배려와 양보 그리고 덕담을 듣고 참 기분이 좋았어요. 라이거즈님도 기분 좋으시다니 저도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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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hiori★ 2017/09/02 08:33

    스모르고스// 제가 일방적으로 배려받은 일이라 훈훈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기분 좋고 즐겁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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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hiori★ 2017/09/02 08:33

    태태정광// 저도요!! 정말 어제 그런 느낌을 받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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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승호랭 2017/09/02 08:36

    아이 데리고 대중교통 이용하기 엄청 힘들죠 ㅎㅎ
    조카 델고 어디 나갈때마다..한숨부터 나와요
    더구나 서울은 어딜가도 한시간씩 걸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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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hiori★ 2017/09/02 08:47

    우승호랭// 공감합니다. 아이도 다치지 않게 보호해야 하고 사람들에게 피해 주지 않도록 주의하고 그러다보니 무척 힘들더라고요. 대중교통은 아이와 어딜 가려면 일부러 한적한 시간만 골라서 이용했는데... 어제 만원버스 타고 처음에 멘탈이 무너지려고 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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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ark61 2017/09/02 09:30

    수필은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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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치홍이누나 2017/09/02 11:36

    아이셋 데리고 버스타고 다니셨던 우리엄마 생각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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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리로이 2017/09/02 13:23

    좋은 글은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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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키수 2017/09/02 13:49

    양보해주시는 분들도 훈훈하고 아이가 재치있게 귀엽네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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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요마요 2017/09/02 14:06

    아 훈훈해...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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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hiori★ 2017/09/02 14:24

    park61// 낙서 수준인데 수필이라시니 감사합니다. 복 받으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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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hiori★ 2017/09/02 14:25

    치홍이누나// 네 아기 키우면서 늘 느끼는 것 중 하나는 내 엄마는 참 힘드셨겠다 인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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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hiori★ 2017/09/02 14:26

    제리로이// 감사합니다. 재미가 빵빵 터지는 주말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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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hiori★ 2017/09/02 14:28

    바키수// 살면서 버스에서 양보한 일은 정말 수백 번도 넘지만 양보받은 일은 이번이 처음이어서 저도 참 기분이 묘하면서도 그래도 아기 배려해서 다들 앉으라 해주시니 따뜻한 기분이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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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hiori★ 2017/09/02 14:29

    마요마요// 마요님께서도 훈훈한 주말 보내시길 바라요! (예를 들자면... 로또당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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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호위반 2017/09/02 15:54

    저는 몸이 불편하시거나 노인분들, 아이많이 데리고 타시는분들이 못 앉으면 자리 양보해달라고 승객들한테 부탁하는데 그래도 양보안하는분들이 많아서 놀랄때가 많습니다.
    제 차만 그렇겠지요ㅎ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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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직한사람 2017/09/02 15:55

    아이가 귀엽네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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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로또콩등 2017/09/02 16: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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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이언졸귀 2017/09/02 16:16

    너무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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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산독수리 2017/09/02 16:17

    간만에 불펜에서 보는 훈훈한 글이네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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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샤키레또 2017/09/02 17:15

    작년에 조카 안고 지하철을 탔는데 할머니가 자리를 양보해 주시더라구요...ㅠㅠ
    애기 앉히라고....뭔가 뭉클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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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hiori★ 2017/09/02 17:42

    신호위반// 아.. 버스 기사님이시군요. 고생 많으십니다. 하하 앞으로 차츰 좋아질 거라고 믿고 있습니다. 늘 건강 유념하셔서 스트레칭도 많이 하시고 행복하셨음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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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hiori★ 2017/09/02 17:43

    정직한사람// 하하 제 자식이라 그런지 제법 귀엽긴 합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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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hiori★ 2017/09/02 17:43

    로또콩등// 여유로운 토요일 저녁 보내시길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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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hiori★ 2017/09/02 17:44

    라이언졸귀// 좋으셨다니 다행입니다. 저도 어제 참 기분이 좋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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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hiori★ 2017/09/02 17:44

    일산독수리// 가끔 몇몇 글이나 기사에 이상한 분들의 이야기가 많이 언급되지만 좋은 분들도 참 많은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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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hiori★ 2017/09/02 17:45

    샤키레또// 그러게요. 저도 비슷한 느낌이었어요. 뭉클, 감동, 시원함, 따뜻함 그런 감정들이 생기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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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중기 2017/09/02 18:45

    좋으신 분들 참 많으시죠 ㅎㅎ
    훈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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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터마이어 2017/09/02 19:35

    글도 훈훈, 제 맘도 훈훈 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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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G만28년째 2017/09/02 20:31

    공익광고 한편 보는 느낌이었습니다.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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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플리터99 2017/09/02 20:40

    뭉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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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계수 2017/09/02 23:12

    글쓴이 맘씨도 좋으셔도 훈훈한 사람들만 만나시는것 같네요 지난글보니 심성이 국보급이네요 복 받으실겁니다 덕분에 마음 따듯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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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혼을담아 2017/09/02 23:36

    추천하려 로그인했습니다
    훈훈하고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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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ountStars 2017/09/03 00:37

    이런글 추천하는 맛에 불펜하죠.. 훈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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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붉은꽃바리 2017/09/03 00:46

    추천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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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삶은너클볼 2017/09/03 01:20

    아기가 좋은 어르신을 만나
    더 풍족한 마음씨를 얻게 됐겠네요 ㅎㅎ
    훈훈한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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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놈참 2017/09/03 03:26

    하삐가 뭐지 뭐지 했는데 할아버지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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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hiori★ 2017/09/03 03:48

    고놈참// 예~ 할아버지를 하삐라고 부릅니다. 아직 아들이 많이 어려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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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hiori★ 2017/09/03 03:48

    삶은너클볼// 읽어주시고 덕담까지 남겨주시니 제가 훨씬 더 감사한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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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hiori★ 2017/09/03 03:49

    붉은꽃바리// 감사합니다. 시원하고 기분 좋은 일요일 보내시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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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hiori★ 2017/09/03 03:50

    CountStars// 아침 저녁으로 기온차가 심한데 감기 조심하시고 주말 즐겁게 보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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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hiori★ 2017/09/03 03:51

    혼을담아// 저도 그 때 기분이 무척 따뜻하더라고요. 역시 살다보면 좋은 분들도 무척 많은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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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hiori★ 2017/09/03 03:53

    [리플수정]월계수// 아닙니다. 심성이 곱다뇨... 그냥 평범한 아저씨인데 사람복이 좀 있는가 봐요. 늘 주변 사람들에게 고맙게 생각하고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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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hiori★ 2017/09/03 03:53

    스플리터99// 일요일 내내 즐겁고 유쾌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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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hiori★ 2017/09/03 03:54

    LG만28년째// 아... 다시 생각을 해 보니 그런 느낌이기도 했네요. 공익광고 하하 댓글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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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hiori★ 2017/09/03 03:55

    미터마이어// 고운 말씀 감사하고요. 저도 여유를 가지고 주변을 바라보는 자세를 견지해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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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hiori★ 2017/09/03 03:56

    송중기// 네 늘 보는 게 이상한 사건 무서운 일들이라 그렇지 사실 주변에 너그럽고 좋은 분들이 많죠. 좋은 걸 먼저 보고 먼저 떠올려 보는 것도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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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폴렘 2017/09/03 04:58

    누군가를 조롱하고 차별하는 글을 읽고 마음이 무거웠다가
    늦게나마 이 글을 읽게 되어 기분이 좀 풀렸습니다.
    사람들이 조금만 더 여유를 갖고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누군가를 칭찬하는 일에 동참하여 박수를 보내는 건 보기 좋은 현상이지요.
    근데 누군가를 헐뜻는 일에 동참하여 환호를 보내는 현상을 더 자주 보게 되어 씁쓸합니다.
    물론 저부터도 더 여유를 갖고 살겠아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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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담자기 2017/09/03 05:27

    아.. 저런 어르신들이 넘쳐났으면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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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hinup 2017/09/03 07:00

    최근에 대중교통이용하면서 마음상하는 장면들을 꽤 봐서 씁쓸했었는데 이 글보고 마음이 정화됐습니다.
    어른신분도 너무 좋고 저 버스 안의 분들같은 분들이 더 많아지셨으면 좋겠네요.
    다들 아이 키우는 아비 아닌가라는 말에 울컥했습니다. 훈훈한 내용에 아이가 예쁜 행동으로 어른들에게 웃음까지 줘서 더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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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hiori★ 2017/09/03 09:10

    폴렘// 좋은 말씀입니다. 그런데 사실 시대가 많이 변해 조롱, 차별도 쉽게 인터넷 글로 드러낼 수 있게 되었지만 칭찬과 박수 역시 더 잘 표현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과거에는 미디어나 인터넷 발달이 덜 해서 어디에 표현할 곳조차 없어서 아마 조용했을테고 지금은 그런 게 드러나는 것 같아요.
    더불어 저도 제 자신부터 여유를 갖고 주변을 돌아보며 행동해야겠구나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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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hiori★ 2017/09/03 09:12

    [리플수정]비담자기// 예 저도 솔직히 놀랐습니다. 대단히 깨어있는 사고를 지니신 아버지 덕분에 격이나 허물 없이 사람을 대하려고 애쓰는 편인데 마음 속으로는 어르신들의 대부분을 꼰대로 규정짓고 있지 않았나 반성도 많이 했습니다.
    결국 그 사람이 중요한 거지. 전체가 어떻다고 판단하는 건 답답하고 마음 상하는 일을 겪더라도 해서는 안 될 일이구나 했고요.
    아마 지금도 많은 어르신들은 좋은 분들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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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hiori★ 2017/09/03 09:15

    chinup// 다들 아이 키우는 아비다...라는 말씀에 뭔가 참 울컥하는 게 있더라고요.
    우리는 누군가의 자식이면서 또 누군가의 아비이기도 하고 그런 의미로 좀 더 사람을 다정하게 여유롭게 바라볼 줄도 알아야겠다 싶었습니다.
    댓글 감사합니다. 평온한 일요일 보내시길 바랍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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