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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역사] 알성시 장원급제자 김이익의 흑화(?).jpg

 

어제밤에 올린 글인데 수정하다


실수로 삭제버튼 눌러서 왕창 날려 버렸습니다.


멘붕 왔다가 다시 처음부터 작성해서 지금에야 올리네요. 


댓글 달아주신 분들께 정말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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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김이익이란 사람의 교지를 보여 드리려 합니다.


'교지(敎旨)'는 조선시대 관료의 임명장입니다. 


학술적인 용어 또는 유식한 말로 '고신(告身)'이라고 부르기도 했죠.


행세 꽤나 했다는 가문에서는 다른 건 몰라도, 


교지와 족보는 소중하게 모시고 보관했습니다.


그 이유는 아시다시피, 선조가 이러이러한 


벼슬했다는 것을 자랑하기 위함입니다.


벼슬 자랑은 우리나라에만 유별났던 건 아닙니다.


일본인들 역시, 조상들이 일왕에게 훈장이나 기념장 같은 걸 받으면 


액자로 꾸며 시선이 잘 가는 곳에 걸어 두고 자랑했습니다. 


중국은 더 심했습니다.


최부의 표해록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최부는 홍문관 교리로 있다가 중국에 표류했던 사람입니다.


그는 중국 체류중 '장보'라는 명나라 선비를 만났습니다. 


자신은 1차 시험인 향시에 합격한 거인(擧人)이 되어 


합격 기념으로 본가 정문을 2층 누각으로 꾸몄다고 최부에게 자랑했습니다. 


이걸 들은 최부는 겨우 1차 시험 합격이냐?


자신은 대과 시험에 2번이나 


최종 합격(2번 합격한 것은 사실임)해 


조선에 가면 3층짜리 정문이 있다는 말로 대꾸했지요. 


물론 최부의 말은 명나라 선비의 콧대를 꺾기 위한 장난이었습니다. 


또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구한말에 서양 선교사 '제임스 게일'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천로역정'이라는 책을 번역한 분으로 우리나라 기독교사에


커다란 공헌을 한 분입니다.


게일 선교사의 후손이라며 미국 대형부동산 사업가가 


한국 연동교회에 연락을 했었죠. 


선조인 게일 선교사 자랑을 엄청 해대다가 


같이 사업을 해보자고 교회 측에 제안했는데 


알고 보니 후손을 사칭한 미국인 사기꾼이었다고...


벼슬 자랑, 조상 자랑 같은 허세는 그저 만국 공통의 본성일 따름입니다. 


본론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어쨋튼 교지(또는 관교)는 4품 이상의 관리들에게 임금이 직접 내리는 임명장입니다.


그와 더불어 교첩이라는 게 있는데 


이는  5품 이하의 문무 관리들에게 해당관청이 발급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5급 사무관 이상은 대통령이 직접 임명하고, 


6급 이하 주무관은 부처에서 발령을 내는 것과 유사합니다. 


오늘 소개할 주인공인 


김이익은 청음 김상헌의 후손이자 노가재 김창업의 증손으로, 


도덕, 의리, 절개로 이름 난 장동의 안동김씨 사람입니다. 


김이익은 세도 정치를 연 김조순의 숙부뻘 되기도 했습니다.



그의 등장은 정말 화려합니다.


1785년 알성시에 장원급제하고, 


단번에 정 6품 성균관 전적이란 실직을 부여받습니다. 


춘향전 이몽룡이 장원급제하고 특명으로 암행어사에 제수되었던 


그 시험이 바로 이 알성시입니다. 


임금님이 장원급제자에게 그 자리에서 


성균관 전적에 제수하는 것은


일찍부터 있어 왔던 관례로 보입니다. 


보통, 문과에 급제하면 '4관 분관'이라하여 


예문관, 승문원, 성균관, 교서관에서


일정기간동안 수습을 밟는데 장원급제자는 예외적용을 받아 곧바로


6품 실직에 임용된 겁니다. 


그러므로 춘향전 알성시 장원 '이몽룡'이 성균 전적을 거치지 않고


암행어사에 발탁되는 건 실제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이겠지요. 


그저 소설 속에서나 가능한 일입니다. 


김이익은 몇달 후 청요직인 예조좌랑으로 임명됩니다. 


그 후, 사간원 정언, 홍문관 부수찬, 교리 등을 지내고


예문관 검열을 뽑는 한림회권에 들기도 했습니다. 


죄다 핵심부서에다가 청요직들입니다. 



그럼 그의 고신을 한번 볼까요?


많이 낡기는 했지만, 글씨를 알아보는 데는 지장이 없습니다.


읽어보겠습니다. 



이조 건륭 51년 8월 21일 


'봉(奉) 교(敎)


부사과(副司果) 김이익(金履翼)


위(爲) 통덕랑(通德郞) 행(行) 홍문관(弘文館) 부교리(副校理) 


지제 교(知製敎) 겸 경연(經筵) 시독관(侍讀官)


춘추관(春秋館) 기주관(記注官) 서학 교수(西學 敎授) 자 (者)



건륭 오십일년 8월 일


판서 신(臣) 유 (서명)


참판, 참의, 정랑, 좌랑 '




'이조(吏曺)' 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이조는 6조 가운데 문관 인사를 담당한 핵심부서입니다.


그러므로 이 임명장은 임금이 아니라 


해당관청에서 임명한 5품 이하 관리의 고신임을 알 수 있습니다. 


건륭 51년 8월 21일.


건륭 51년은 1786년으로 정조 10년입니다. 


조선 후기의 르네상스 시기인 정조 치세입니다. 


현명한 군주 밑에서 부림을 당하던 김이익은 과연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분명 무언가 재밌는 이야기거리가 있을 법 합니다. 


'봉(奉) 교(敎)' 라는 말은 임금의 명을 받든다는 의미입니다. 


부사과 김이익이라는 이름이 나왔습니다. 


부사과는 5위에 속한 종육품의 벼슬로 현직을 맡지 않은


관리를 군직(軍職)에 붙이고 녹봉을 주던 형식적 벼슬입니다.


'위 통덕랑 행 홍문관 부교리 지제교 겸 경연 시독관 춘추관 기주관 서학 교수 자'


관직명 정말 기네요.


하나 하나 분석해 봅니다. 


통덕랑은 정 5품의 관계(계급)입니다.


홍문관 부교리는 홍문관에 딸린 종 5품의 관직(직급)입니다.


그래서 행수법에 의거해 '행'자를 홍문관 부교리 앞에 적어 놓았습니다.


유식한 말로 '계고직비(階高職卑: 품계는 높고 벼슬은 낮음을 이르는 말)'인 셈이죠.


행수법이란, 자신의 계급이 해당 직급보다 높으면 '행(行)'을 달고,


그 반대로 자신의 계급보다는 직급이 더 높으면 '수(守)'자를 달았습니다.



지제 교는 임금의 글을 대신해 짓는 직책으로


홍문관 관료면 응당 겸직하는 직책입니다. 


아주 영광스런 관직이죠. 


경연 시독관 역시, 홍문관 관리가 겸직하는 자리로 


임금의 공부시간이었던 '경연'에 참여해 학술을 강론하기도 했습니다. 


임금님 옆에서 학문을 서로 토론하는 자리이니 


이것 역시 문관으로서 영광된 자리입니다. 


춘추관 기주관은 조선왕조실록의 사초를 생산하는 사관의 직책입니다. 


한 나라의 역사를 서술하는 일, 아무나 하는 건 아닙니다. 


홍문관의 교리나 부교리라면 지제교와 경연 시독관, 춘추관 기주관 세자리를 겸임하는 건 상례였습니다. 


그런데, 김이익은 이 관직에 더불어 서학 교수의 직책까지 맡고 있습니다.


서학(西學)은 한양에 두었던 중등교육기관인 동학,서학,중학,남학 가운데 한 곳입니다. 


김이익은 홍문관 교리+지제교+경연 시독관+춘추관 기주관+ 서학 교수 


무려 다섯 자리의 직책을 겸직하고 있습니다. 


엘리트 관료를 싼 값(?)으로 굴리는 건 


오늘이나 옛날이나 다를 게 없나 봅니다


조선시대 관료들이 그저 놀았다고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엄청난 격무에 시달렸음을 알 수 있습니다. 


승정원 일기를 보면, 툭하면 병이 나서 출사를 못한다는 내용이 정말 많은데요. 


그건 꾀병일수도 있겠지만 의외로 사실을 가능성도 많습니다. 


이렇게 고생한 것을 어디에서 보상받았을까요? 


당연히 외직 수령입니다.


왕의 대리자로서 한 지방의 통치자가 되어


기생의 수청도 받으며 그 간의 스트레스를 풀었을 겁니다. 


어쨋튼, 김이익이란 인물은 청요직인 홍문관 부교리의 직책을 도맡던 인물입니다.


옥당(홍문관 별칭) 관원이던 이 사람은 상당한 실력과 문벌을 지녔음이 확실하네요. 




이 사진은 김이익의 교지들입니다. 


교지라 함은 앞서 말했다시피, 4품 이상의 문무 관원에게


발급하는 사령장입니다. 


4장의 교지중 윗부분 왼쪽 교지부터 차례로 읽어보면, 


건륭 52년 5월 어모장군 행 제주진관 명월 수군만호 임명.

 

건륭 59년 6월 통정대부 이조참의 임명.


건륭 59년 4월 통정대부 승정원 좌부승지 겸 경연 참찬관 춘추관 수찬관 임명.


가경 5년 4월 가선대부 행 용양위 호군 임명. 



그중에 제 눈이 번쩍 뜨인 교지가 하나 있습니다. 


여러분은 아실런지요? 


바로 첫번째 교지인 


'제주진관 명월 수군만호(濟州鎭管 明月 水軍萬戶)' 임명 사실입니다. 


이 글을 쓰는 이유도 바로 저 교지 때문입니다. 


장원급제하며 조정에 혜성처럼 등장해 


중앙 요직을 두루 거친 파워 엘리트 김이익이


수륙 일천리를 가야 겨우 도착하는 변방의 


보잘 것 없는 무장(武將)으로 좌천된 겁니다.  


문관이 무관직책인 만호에 임명된 사실은 정말 뜻밖의 사건입니다.


지금으로 치자면, 


행정고시 재경직 수석으로 경제부처에 입부하여


금융위 사무관, 국무총리실 사무관, 청와대 경제수석실 행정관


등등 탄탄대로를 거쳐가며 잘 나가던 엘리트 재경직 관료가 


울릉도나 서해 5도 면사무소 면장으로 발령받은 거예요. 


신문에 크게 날 기사거리가 분명합니다. 


이 사건을 밝혀보기 위해, 


다시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 일기를 검색해 보았습니다.


사건의 개요는 이렇습니다. 


상계군 이담의 역모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담은 음독자살을 했는데, 그 이유가


'연비'라는 종년의 입에서 나온 알 수 없는 모모한 사실때문인데요. 


이한창과 조규진이라는 좌우 포도대장이 


이 여종을 족치다가 그만 죽여버렸습니다. 


이로 인해, 상계군이 음독자살한 이유와 단서가 


영원히 사라져버렸습니다.


정조 임금은 슬며시 이 사건을 묻으려고 했는데, 


사헌부의 대관들이 연루된 포도대장들을 당장 삭직하라고 임금에게 요구했습니다.


정조 임금은 이 둘을 다른 자리에 임명했다 얼마후 포도대장으로 복직시키려 합니다.


이때, 김이익이 홍문관 부교리로 연명상소의 소두가 됩니다.


그리고 정조 임금을 공격하게 되죠.


홍문관 관원들도 사헌부, 사간원 관리와 더불어 


언론을 담당한 삼사 관리중 하나입니다. 


당연히 임금의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간언할 수 있는 직책입니다. 


뿔이 난 정조 임금은 상소의 주범인 김이익과 송익효를 


비난하면서 김이익은 제주 명월진 만호로, 송익효는 제물포 만호로 


임명해 당장 부임하라며 엄명을 내립니다. 


게다가, 기일 안에 부임하지 못하면 


그곳에 유배보내겠다고 으름장까지 놓아대죠. 


승지 조윤대가 정조 임금의 명을 받들기가 어렵다고 말하자,


조윤대마저 백치 첨사로 임명해 변방으로 보내버립니다. 


여기서 정조 임금의 불같은 성미와 함께 


자신에게 대항하는 신하들을 이리저리 


조련하는 모습을 엿볼 수 있어 재미가 있습니다.


여기서 끝난게 아닙니다. 


궁중 제사를 진행하는 제관 명단에 


시골 변방의 장수로 임명된 김이익, 송익효, 조윤대를 


그대로 밀어넣어 여럿사람에게 조리돌림을 당하도록 창피를 줍니다.


참고로 조선후기 첨사, 만호라는 자리는 문관들이 


무부,무변이라 부르며 무시하던 직책입니다. 


그래서 대부분 양반집 서출이나 중인 또는 


한미한 집안의 무과 급제자들이 흔히 임명되던 자리죠. 


금관 조복의 문관들 가운데 


덜렁덜렁한 벙거지를 쓰고 군복을 입은 이 세 명을 


상상해 보면 실소를 금치 못할 거 같습니다.


물론, 이 해프닝은 여기서 끝납니다. 


김이익 등 세 명은 조리돌림이 끝난 후, 곧바로 원래 있던 직책으로 복귀합니다. 


정조 임금의 뒷끝이 얼마나 대단한지 세삼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그런데 이런 정조 임금의 행동은 어딘가 오버랩이 됩니다. 


정조 임금은 규장각 각신이나 초계문신들이 본인 마음에 안들면, 


창덕궁 후원에 파놓은 연못에 유배보내며 


여러 신하들에게 조롱거리로 삼은 적이 꽤 있었습니다. 


다산 정약용도 이런 정조 임금의 장난에 


상당히 불쾌 했다고 회상하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김이익은 과연 임금에게 막돼 먹은 신하에 불과 했을까요?


아닙니다.


그는 조정의 실세들을 쉴새없이 탄핵하던 굳은 심지의 인물이었습니다.


홍문관 교리로 있으면서 영의정 김치인, 남인의 영수 채제공을 꾸짖었습니다.


사헌부 장령(지금의 검찰관)재직시엔 오만방자함이 극에 달했지만


그 누구도 건들이지 못했던 성역이자 정조 임금의 스승이었던 


우의정 김종수을 공격하는 등


임금의 복심 또는 권세 있는 고관들의 잘못된 점을 찾아내 


과감하게 탄핵하던 인물이 김이익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유배도 몇번 갔다 왔습니다. 


장원급제자라는 이력에다가 


청음 김상헌과 노가재 김창업의 직손. 


집안 역시 좋아 자부심이 하늘을 찌른 그였기에 


여타 다른 사람들과 달리 김이익은 언론을 주도할 수 있었던 것이죠. 




그의 증조 할아버지인 노가재 김창업의 초상화. 단원 김홍도의 스승이다. 



정조 임금도 김이익의 기개를 익히 경험해서  


어떤 때에는 그가 얄밉기도 했지만, 


조정에 꼭 필요한 인재라는 걸 알고서는 요직에 등용하고 밀어 줍니다. 


이런 신하 하나 있으면 조정의 생태계가 건강해지는 법이죠. 


그는 정조 임금 사후 노론 벽파의 공작에 걸려 시파로 몰리고 금갑도로 유배를 갑니다. 


유배 시절 몇십편의 한글 시조와 한글 가사를 남긴 그는 


척박한 우리 한글 문학에 큰 기여를 하기도 합니다. 




금갑도 유배중 김이익이 쓴 한글시조집, 금강영언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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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도 선왕(정조 임금) 신하! 


죽어도 선왕 신하!


사랑하옵다. 


선왕의 아드님 [즉, 지금 나의 임금님이시다.]


내 비록 죄명은 지중하나 


이 마음이야 변할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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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발탁했던 정조 임금을 생각하며, 


변함없는 마음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현명한 임금이 있을땐 현명한 신하가 되지만, 


현명한 임금이 사라지면 우둔한 신하가 되는 것일까요?


정조 임금이 승하하고, 순조 임금이 등극하자 


김이익은 같은 안동김씨 김조순의 일파로 들어가서 


뜬금없이 '세도정치'의 당위성을 주장하게 됩니다. 


여기서 세도정치는 당연히 김조순 주도의 세도입니다.


강한 주인 앞에선 꼬리를 내렸다가


만만한 주인에겐 이빨을 드러내는 건 


인간이나 짐승이나 다를바가 없나 봅니다. 


김이익의 이것 역시, 변절이라고 보면 너무 나간 걸까요?


어이없는 그의 모습에 실망감이 가득 합니다. 


정조 임금 살아 생전엔 강한 기개를 보이며 


노회한 실력자들을 탄핵하던 모습은 온데 간데 없고


권력자에게 아부하는 그의 모습이 참으로 아쉽네요. 


그는 김조순 집권 이후, 


대사헌, 한성판윤, 공조판서, 예조판서, 형조판서, 병조판서 등 승승장구했고


70세에 은퇴했습니다.  


그리고는 봉조하가 되어 인신으로써는 최고의 영예를 누리게 됩니다. 


김이익은 경기도 양근으로 낙향해 


별장을 지어놓고 아들 손자 며느리와 행복하게 살며


88세에 세상을 떠납니다. 


시작도 좋고 끝도 좋았던 인생입니다. 


물론, 임금과 시대를 잘 만나고 


머리를 잘 굴려 시세를 잘 탔기 때문에 이런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이겠죠.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댓글
  • 룬의아이들 2017/08/28 13:01

    추천 드리고 갑니다 .

    (uMHYX8)

  • 후로게이 2017/08/28 13:07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쓰레기 같은 vs글들 틈속에서 단비와 같은 고퀄 글이네요

    (uMHYX8)

  • [식윤RanomA탱율팁] 2017/08/28 13:09

    김상헌의 후손들이 맡는 지위들을 보면 뭐... 조선 후기 최고 권력가 집안이라고 봐야겠죠. 동래 정씨도 한 수 접어줘야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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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밴혜자 2017/08/28 13:19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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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r.김재규 2017/08/28 13:19

    재밌게 잘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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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수찬 2017/08/28 13:23

    룬의아이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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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수찬 2017/08/28 13:23

    후로게이// 과찬의 말씀이에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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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수찬 2017/08/28 13:24

    [식윤RanomA탱율팁]// 장동의 안동김씨. 회동의 동래정씨 라는 말이 있지요. 둘다 알아주는 경화세족들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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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수찬 2017/08/28 13:24

    밴혜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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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수찬 2017/08/28 13:24

    Dr.김재규//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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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ixie 2017/08/28 14:09

    줄 사이를 이렇게 많이 띄우는 이유가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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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나영 2017/08/28 14:15

    너무나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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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Ohnexen 2017/08/28 15:00

    올려주시는 글 늘 재밌게 보고있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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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젤링젤링 2017/08/28 15:12

    재미있는 한편의 역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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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ONo.25 2017/08/28 16:02

    언제나 감사합니다. 이런 글엔 그저 조용히 추천하고 스크랩이라 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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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옥마을 2017/08/28 16:04

    역사관련 다른 한분과 더불어..
    제가 가장 기대되는 분의 글입니다..
    정말 이런 글을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uMHYX8)

  • 소풍왔니 2017/08/28 16:26

    역시 장수찬님ㄷㄷ 이분 글 진짜 재밌게 잘쓰심... 만화도 재밌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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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GoogleChrome 2017/08/28 16:49

    추천 눌러놨던것 같은데 날라갔었군요 ㅎㅎ 다시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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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숩니다 2017/08/28 17:20

    굿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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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팡글로스 2017/08/28 17:20

    줄 간격 덕에 편하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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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전골든벨 2017/08/28 17:49

    가볍게 읽기 딱 좋음 ㅋㅋㅋ ㅊ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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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RPETERS 2017/08/28 17:49

    역사 공부가 이래야 됩니다.
    재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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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Vajra 2017/08/28 17:52

    [리플수정]제가 출판사 한다면 쓰셨던 글 모아 책 내자고 하고 싶네여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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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물댄정원 2017/08/28 18:08

    젊은 시절의 기개가 가문의 이익 앞에서 무너졌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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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수찬 2017/08/28 22:37

    dixie// 가독성을 높이기 위해서 띄어 쓰는 편이에요...붙어 쓰면 눈이 아픈 거 같더라고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uMHYX8)

  • 장수찬 2017/08/28 22:37

    임나영// 감사합니다!

    (uMHYX8)

  • 장수찬 2017/08/28 22:37

    Ohnexen// 감사합니다!

    (uMHYX8)

  • 장수찬 2017/08/28 22:38

    BONo.25// 감사합니다!

    (uMHYX8)

  • 장수찬 2017/08/28 22:38

    젤링젤링// 고맙습니다!

    (uMHYX8)

  • 장수찬 2017/08/28 22:38

    소풍왔니// 감사합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uMHYX8)

  • 장수찬 2017/08/28 22:38

    보숩니다// 감사합니다!

    (uMHYX8)

  • 장수찬 2017/08/28 22:38

    팡글로스// 감사합니다!

    (uMHYX8)

  • 장수찬 2017/08/28 22:38

    DRPETERS// 고마워용~

    (uMHYX8)

  • 장수찬 2017/08/28 22:46

    물댄정원//네 맞습니다. 왕이 주인이고, 사대부들이 대리인인데, 채찍질 해대던 군주가 사라지니, 대리인들이 물 만난 고기처럼 사익이나 추구하며 이리저리 도덕적 헤이(모럴 헤저드)를 일으킨거죠.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uMHYX8)

  • 도선법사 2017/08/28 22:50

    참..저렇게 뜨르르한 안동김씨 가문도 오늘날에는 창문여고 이사장으로 있는 집 말고 다 몰락해서
    선조 묘를 팔고 유해는 화장하고 이민가버린 집안도 많더군요...

    (uMHYX8)

  • dalmae 2017/08/29 00:31

    잘 읽었습니다

    (uMHYX8)

  • 짐금님 2017/08/29 07:57

    [리플수정]그냥 정조때 올곧았던 게 아니고 남 잘되는게 배아팠던 인물인듯

    (uMHYX8)

  • 실수투성이 2017/08/29 08:13

    늘 흥미롭게 정독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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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蓬川 2017/08/29 10:18

    흑화라고 하신 부분이 조금 더 설명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정조 사망 이후의 정국변화는 정조가 자초한 면도 있는데다가, 정조 집권기의 연장선상에서 봐야한다는 해석도 있어서요. 선대의 충신이 세도집권기에 잘 나갔다는 것만으로 흑화라고 보기는 조금 무리가 있지 않나 시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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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꽃의은하수 2017/08/29 14:34

    만호나 첨사가 종4품, 종3품 아닌가요? 병사, 수사 바로 아래 무관직이라 대우받는 지위인줄 알았는데 꽤 안좋은 자리였군요...
    김이수라는 사람 책읽다가 본 기억이 있긴한데 체제공을 비판했는데 시파로 몰린게 좀 뜻밖이네요. 안동김씨였으니 순조 초기에 벽파가 견제하면서 물러난건지도 모르지만 그러기에는 정순왕후 섭정이나 심환지가 득세할때도 김조순은 우대받았는데...
    정치라는게 참 오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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