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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세 여배우의 몰락

" 내가 놀랄만한 사건을 보여준다면, 주인공으로 캐스팅하겠네. "

세계적인 거장 두석규 감독의 제안은, 세 여인을 긴장하게 했다.
한물간 배우 임여우, 최정상 배우 홍혜화, 대세 신인 배우 장진주. 셋은 저마다의 이유로 주인공 역할이 간절했다. 

" 말해줄 순 없지만, 이번 주인공 역할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몰락하는 여배우'일세. 최종 후보로 자네들 셋을 생각 중인데.. 난 이 자리에서 평범한 오디션 연기를 보고 싶진 않단 말이야. 그러니까 이 방을 나가서, 전 국민을 상대로 연기를 해보게. 내가 깜짝 놀랄만한 그런 연기로 말일세. "

두석규는 이곳 사무실의 한구석을 가리켰다.

" 지금의 이야기는 모두 비디오로 녹화되는 중이고, 보름 뒤에 공개할 걸세. 자네들은 그 보름간 대중들을 속일만한 연기를 펼쳐보게나. 보름 뒤엔 이 영상이 공개될 테니 뒷일은 안심해도 되네. 좋은 광고효과도 볼 수 있겠지. 자네들 중에 내가 가장 놀랄만한 모습을 보여준 사람을 주인공으로 캐스팅하겠네. 어떤가? "

말은 간단해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이미지로 먹고사는 배우들이 스스로 몰락을 한다? 광고주와 소속사에 고소를 당해도 할 말이 없다.
하지만 매력적인 일이기도 했다. 세계적인 거장 두석규의 이름값이라면, 대중을 속인 것 정도는 용서받을 수 있다. 후에 모든 게 연기였다는 사실이 밝혀진다면, 사람들이 얼마나 놀랄까? 화제를 끄는 건 물론이고, 뜻밖의 평가가 나올지도 모른다. 

" ... "

고민하는 듯했지만, 세 여배우는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절대 놓치고 싶지 않은 주연이었고, 기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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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우 임여우 씨의 '갑질 동영상'이 논란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문제의 동영상은, 임여우 씨가 신인 매니저를 향해-. . . ]

임여우의 갑질 동영상이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었다. 신경질적인 모습의 임여우가 운전 중인 매니저의 뒤통수를 치고, 발로 의자를 차는 블랙박스 영상이었다.
요즘은 한물갔다지만, 청순한 이미지로 유명했던 임여우의 반전은 대중들에게 큰 충격이었다.

" 너네 임여우 갑질 동영상 봤어? 그년 쓰레기야 완전! "
" 아무리 연예인들이 겉과 속이 다르다지만, 임여우가? 와~ 충격적이다. "
" 지가 뭐라고 갑질이야? 한물간 배우 주제에! "

재벌의 갑질 논란 때와는 달랐다. 연예인의 갑질 논란에는 대중들이 적극적으로 들고일어섰다.
온통 임여우에 대한 욕이 난무하는 가운데, 임여우가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임여우는 눈물을 흘리며 변명했다.

[ 불미스러운 모습을 보여드려, 정말 죄송합니다. 하지만 그날은, 그 매니저가 제 속옷을 훔쳐서 팔려다가 걸렸던 날이었습니다. 그것을 알게 되어 너무나 화가 난 나머지... 지금은 다 용서하고 지내지만, 당시에는 저도 제 감정을 자제할 수가 없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

소리가 없는 동영상이어서 가능한 변명이었다. 
그녀의 눈물은 효과가 있었는지, 대중의 여론은 바뀌었다.

" 사실이면 그 매니저가 쓰레기네. "
" 세상에! 나 같아도 그렇게 때렸겠다! "
" 와~ 그걸 봐주고 자르지도 않았어? 천사네 천사야! "

두석규 감독은 이 대목에서 감탄했다. 왜냐면 다음날, 동영상 속 매니저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 그냥 참아보려 했는데, 저희 부모님이 우는 모습까지 보고 나니까 참아선 안 될 것 같습니다. 제가 속옷을 훔쳤다고요? 정말 웃기시네요! 임여우 씨가 제게 보낸 문자 내용 공개합니다. ]

그가 공개한 내용은, 기자회견에 입을 맞춰달라는 임여우의 협박성 문자였다. 뿐만이 아니라, 통화 녹음까지도 공개되면서 임여우의 기자회견 내용이 모두 거짓이었단 사실이 밝혀졌다.
당연히 대중의 분노는 폭발했다!

" 와~ 임여우 진짜 완전 개쓰레기네! "
" 기자회견장에서 서럽게 울던 모습은 뭐야? 다 연기였던 거 아니야? 소~름! "

갑질 논란에 괘씸죄까지 추가되어, 배우 임여우의 이미지는 더할 나위 없는 바닥까지 추락했다. 
팬카페는 탈퇴 러쉬에 욕설이 난무했고, 모욕적인 패러디들이 생성되고, 작품의 평점 테러까지 일어났다. 다시는 그녀를 스크린에서 볼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정말로 완벽한, 여배우의 몰락 그 자체였다.

그런데 임여우 사건이 식기도 전, 장진주 스캔들이 터졌다.
사건의 시작은, 장진주가 출연한 한 예능 프로그램이었다.

[ 장진주 씨는 일주일 전 점심으로 뭘 먹었는지 기억하시나요? ]
[ 글쎄요. 잘 기억이 안 나는데요? ]
[ 지금부터 그것을 최면술로 알아내 보려고 합니다. 여기 저희가 미리 입수한 일주일 전 점심 메뉴 사진이 있습니다. 과연 장진주 씨는 최면술을 통해 그것을 떠올릴 수 있을까요? 실제 최면 수사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이제부터 보여드리겠습니다. ]

MC의 소개로 나온 최면술사는, 편하게 앉은 장진주를 상대로 최면술을 펼쳤다. 
얼마 안 가 잠이 든 것처럼 빠져든 장진주의 모습이 화면에 비치고, 최면술사가 물었다.

[ 일주일 전으로 돌아갑니다. 무엇이 보입니까? ]

그러나, 이 부분에서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미간을 찌푸린 장진주가 온몸을 사시나무떨듯이 벌벌 떨면서 하는 말이-,

[ 요,용서해줘! 죽일 생각은 없었어! 일부러 그런 게 아니야! 용서해줘 제발! ]

스튜디오의 모두가 당황했지만, 장진주는 침까지 흘려가며 공포에 질린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주었다.

[ 제발 용서해줘! 오빠가 죽을 줄은 몰랐어! 정말이야! 죽일 생각까지는 없었다고! 제발! ]

방청객들도 웅성거리기 시작하고, 당황한 최면술사가 빠르게 손가락을 튕겼다.

[ 장진주 씨! 깨어납니다! 레드선! 레드선! 레드선레드선레드썬!! ]
[ 아아아악! ]

비명을 지르며 벌떡 일어난 장진주는, 주변을 둘러보며 오들오들 떨었다.
수습이 안 되는 분위기에서, 최면술사가 참지 못하고 묻고 말았다.

[ 장진주 씨, 죽일 생각은 없었다는 건 어떤...? ]

그 말을 듣자마자 새하얗게 질린 장진주는 어떤 대답도 하지 못했고, 뒤늦게 프로그램 MC가 영화 얘기라느니, 드라마 얘기라느니 하면서 억지로 수습했다.
대중들은 이 방송이 나가자마자 흥미로운 가설들을 떠들어댔는데, 다음 날 전해진 충격적인 소식이 그 가설에 확신을 심어주었다.

[ 배우 장진주 씨가 사업가 김 모씨의 살해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게 되었습니다. 김 모 씨 아내분의 증언에 의하면-. . . ]

일주일 전부터 실종신고가 접수되어있던 사업가 김 모 씨. 그의 아내는 경찰에게 장진주가 용의자라고 주장해왔는데, 그 이유로 든 것이 장진주와 남편이 스폰서 관계였다는 사실이었다. 계속된 아내의 요청에도 움직이지 않던 경찰은, 방송이 나간 이후로 장진주에게 접근한 것이었다.
사람들은 이 영화 같은 스토리에 열광했다.

" 대박! 장진주가 스폰서가 있었어? 그럼, 장진주가 그 남자를 죽인 거고? "
" 남자가 협박했겠지! 장진주가 요즘 대세로 떠오르고 있었으니까. 장진주는 스폰서가 부담됐을 거야. 그래서 어쩌다 보니, 살인까지 하게 되고-. . . "

자칭 네티즌 수사대라는 이들에 의해, 실제 일주일간 업데이트가 없는 피해자의 SNS가 밝혀지고, 장진주의 SNS와 같은 배경으로 찍은 사진들까지 밝혀졌다.
장진주 스폰서 설이 기정사실로 되자, 이어지는 장진주의 살인설까지도 사실로 여겨졌다.

대세 신인 장진주는, 국내 최초의 살인자 여배우가 된 것이었다.

두석규 감독도 설마 살인까지는 예상하지 못했었다. 게다가 최면술 연기를 통해서 끌어낼 줄이야? 그는 솔직하게 감탄했다.

집에서 두문불출하고 있던 임여우도, 장진주의 모습을 보며 긴장했다.
과연 자신의 몰락이 더 인상적이었을까, 장진주의 몰락이 더 인상적이었을까?

예정된 보름까지 남은 시간은 3일. 그 둘은 홍혜화는 젖혀두고, 서로 중 한 명으로 결정될 줄 알았다. 이것을 뒤집을만한 한방이 홍혜화에게 있을 리 없으니까. 

하지만 있었다. 홍혜화는 아주 간단한 방법으로, 가장 강력한 몰락을 보여주었다.

[ 충격적인 소식입니다. 배우 홍혜화 씨의 O스 비디오가 유출되었습니다. ]

" ... "
" ... "

뉴스를 접한 임여우와 장진주는 할 말을 잃었다. 
인터넷에 퍼진 동영상 속 홍혜화는, 실제 O스를 하고 있었다. 절대 조작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완벽한 리얼이었다.

홍혜화는 장진주와 임여우에 대한 모든 뉴스를 잠재웠다. 대중들에겐 인성 쓰레기의 갑질보다도, 사람을 죽인 살인보다도, 'O스 비디오'였다. 
임여우와 장진주는 허탈해하면서도 인정했다. 자신들은 절대 홍혜화만큼 할 자신이 없었다. 우리나라에서 여자 배우가 차라리 사람을 죽이면 죽였지, 홍혜화처럼은.


보름이 끝나는 날, 거장 두석규의 깜짝 발표는 온 나라를 들썩이게 했다.

" 미친! 그것들이 결국, 다 오디션이었단 말이야? 두석규 감독 미쳤네 진짜! "
" 세상에, 임여우의 기자회견이랑 그 모든 게 연기였다고? 대박이다 진짜! "
" 장진주는 어떻고! 처음 최면술부터 다 설계한 거잖아? "
" 홍혜화는 뭐, 아무리 연기를 위해서라고 해도 그렇게까지 했단 말이야? 헐 "

사람들은 충격을 받은 만큼, 솔직하게 감탄했다. 거장 두석규의 차기작에 대한 기대가 커졌다.

많은 사람이 예상했던 대로, 두석규가 발표한 주연은 '홍혜화'였다. 그건 장진주와 임여우도 깔끔하게 인정하는 바였다.

사실, 두 여인은 손해 볼 게 없었다. 
임여우는 갑질 피해자 역할을 했던 매니저와 함께 출연할 프로그램 섭외가 밀려있었고, 장진주도 마찬가지였다. 그동안의 연기력 논란은 깔끔하게 사라졌고, 주연 작품 제의가 끊임없이 쏟아졌다.

다만, 홍혜화는 조금 애매했다. 

'연기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는 배우다 vs 솔직히 너무 과하게 나갔다'

두 여론이 팽팽히 맞섰던 것이다.

그래도 영화의 주연으로 낙점받은 건 홍혜화였고, 그 영화의 흥행은 개봉하기도 전에 보장된 상황이었다. 
그것만으로도 홍혜화가 받은 이익은 적지 않았다. 해외에까지 화제를 일으켜, 유명 감독들의 SNS에 오르내릴 정도였으니까.

이제 홍혜화가 할 일은 기자회견을 열어, 자신의 연기에 대한 열정이 얼마나 대단한지 어필하는 것이었다. 
어쨌든 그녀가 보여준 연기에 대한 열정은, 어느 쪽이든 누구나 다 인정하는 것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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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전.
차기작에서 홍혜화를 주연으로 쓰려던 두석규 감독은, 면접에서 뜻밖의 고백을 듣게 되었다. 

" 리벤지 포르O라고?? "

" 예. 제가 지금 데뷔하기 전에 사귀었던 남자에게 협박을 받고 있거든요.. 그래서 감독님 작품에 함께 할 수 없어요. 만약에 영화가 공개된 후에 그놈이 동영상을 퍼트린다면, 감독님께 큰 폐를 끼치게 될 거예요. 죄송해요. 저는...배우 인생이 끝난 사람이에요. "
" ... "

쉽게 말하기 어려운 사실을 솔직하게 고백하는 홍혜화. 그 모습은 두석규의 마음을 움직였다.


" ...그놈이 보낸 동영상을 지금도 가지고 있나? 어쩌면 내가 자네를 도울 수도 있을 것 같은데. "

댓글
  • 복날은간다 2017/08/25 23:24

    행복한 주말 보내시길 바랍니다! 저도 늦은 저녁을 지금 먹으러 갑니다;;

    (Y2aGwz)

  • staccato 2017/08/25 23:31

    1빠

    (Y2aGwz)

  • 가담항설 2017/08/26 00:19

    베스트 가기 전에 추천!!
    복날님도 주말 잘 보내세요~

    (Y2aGwz)

  • 라인레인저스 2017/08/26 00:28

    오늘의 이야기는 전개에 위화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고 깔끔한 느낌이었습니다. 저번에 어떤분이 요괴시리즈 좋아하신다고 한 걸 본 적 있는데 저는 연예인 시리즈가 제일 재밌네요 작가님이 요즘 이슈인 유출 동영상을 두 번이나 소재로 쓰셨지만, 저번엔 딸의 파멸이 예상되는 결말, 이번에는 두석규의 재치로 위기를 극복하는 결말을 보면서 완전 다르게 전개 되는 이야기에 또 한 번 놀라움을 느꼈습니다

    (Y2aGwz)

  • 벚꽃향기 2017/08/26 00:28

    와 . . 두석규 천재다 . . .
    세계적인 거장은 다르네요ㄷㄷㄷ

    (Y2aGwz)

  • 이상해너네 2017/08/26 00:31

    기발하네욯ㅎㅎㅎㅎ 왁 대단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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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isolet 2017/08/26 01:03

    헐 소름...ㅋㅋ
    마지막은 그거 하는 비디오겠네
    그리고 반전으론 감독이랑 미리 짜고
    그걸 덮어주는게 아닐까? 하고 봤는데 ..
    작가님이랑 생각이 같다니 ㅋㅋ 소름소름
    정말 팬 다 됐네요 ㅋㅋ

    (Y2aGwz)

  • 당신을위해서 2017/08/26 01:41

    큰 그림에 소름돋고 갑니닼ㅋㅋㅋㅋㅋ
    오랜만에 댓글남기네욥
    항상 글 읽는 재미를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도 행복한 하루 보내셔요!!!

    (Y2aGwz)

  • 쿵코앜우쾅 2017/08/26 02:10

    뒷통수 얼얼하네여 꿀잼꿀잼

    (Y2aGwz)

  • 진호쨔응 2017/08/26 02:43

    이번 이야기는 전개도 좋고 반전도 좋네요!!!
    너무 잘읽었습다 ㅎㅎ

    (Y2aGwz)

  • 복날은간다 2017/08/26 03:05

    얼마나 좋아해주시는지 새삼 댓글로 또 보고 갑니다! 행복행복행복하세요~

    (Y2aGwz)

  • 구너구 2017/08/26 03:11

    글 재밋어여!!
    깊은 새벽에 잘보고가요
    작성자님 행복한 주말 보내세요!

    (Y2aGwz)

  • 문엠프레스 2017/08/26 03:53

    항상잘보고있어요 작가님!!
    나머지 두 여배우들도 일이 잘풀려서 다행이예요 ㅎㅎ오랜만에 해피엔딩인듯?!

    (Y2aGwz)

  • 폼폼푸린 2017/08/26 04:06

    와 정말 감히 말씀드리자면 복날님 글 중에 가장..? top3안에 들만큼 좋아요!!!

    (Y2aGwz)

  • 대역전4Life 2017/08/26 04:29

    이거 정말 대단하네요
    복날님 글은 단편 단편으로 드라마 제작해도 꿀잼일듯
    요괴는 어쩌지.....

    (Y2aGwz)

  • 프리시엘 2017/08/26 04:36

    복날님 이야기는 대부분 어두운 분위기들이 많았던거 같은데 이번 이야기는 오히려 해피엔딩이라 색다른 묘미로 재밌었습니다. 복날님 글에 덧글은 이게 처음이지만 매번 잘 보고 있습니다, 건필 ^^

    (Y2aGwz)

  • 신들린검사 2017/08/26 05:41

    상상력의 끝은 어디인가...ㄷㄷㄷ

    (Y2aGw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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