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머천국 코하비닷컴
https://cohabe.com/sisa/3332278

모로코 (5) - 메디나의 뒷골목.. 그리고 여행의 예절 ^^^^^^^^^^

여럿이 함께 하는 여행에서는 예절을 지켜야 한다.
왜냐하면, 여행자는 모처럼 큰 맘 먹고 떠나는 여행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행 중에는 일행에게 민폐 되는 일은 하지 않아야 하고
즐거워야 할 여행에 타인을 불쾌하게 만드는 말은 삼가해야 한다.





아침 일찍 메디나 골목시장을 돌아보고 마조렐 정원을 방문하는 일정이다.
나는 여간해서 사각필터는 쓰지 않는 편이다.
렌즈 앞에 직사각형의 유리가 떡하니 올라와 있으니
휴대성이 떨어질 뿐만 아니라 수납도 껄끄럽고 이모 저모로 다루기가 편치 않기 때문이다.
정오 무렵의 야외 정원 촬영이라 어쩔 수 없이 사각필터를 장착했다.
직사각형 GND 필터는 위 아래로 콘트롤할 수 있어서 기능적으로는 더없이 좋다.




일행 중 한 남자가 다가 오더니,
남자 : 카메라 앞에 필터는 왜 쓰냐? 포토샵이면 다 되는데?
나 : 화이트 홀 때문에 씁니다.
남자 : 나도 예전에 이런 거 다 해 봤다. 포토샵이면 다 되는데 뭐하러 필터 쓰냐?
(나보다 연장자이긴 한데 대뜸 반말이다.)

더 설명하기도 그렇고 해서.. 말을 말았다.
일행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가더니 큰소리로
"저거 다아~ 쓸데없는 짓이다. 요즘은 포토샵으로 다~ 된다."



포토샵이면 다 해결되는 자신의 비싼 카메라를 자랑하려고 한 말인지는 모르겠으나,
그의 단호한 판결에 의하면, ND 필터 사용자는 다 '쓸데없는 짓' 하는 거 되시겠다.




이 사람은 도대체 입을 다물 줄을 모른다.
나이가 들면 지갑은 열고 입은 닫으라고 했다.
입만 열면 자기 자랑에, 아는 체에, 타인의 행위에 사사건건 말을 얹는다.

여행 가기 전 단톡방에서
'아랍계 국가로의 여행은 처음이라 기대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라는 글을 올렸더니,
득달같이 '거기는 아랍이 아니고 아프리카입니다.' 라는 답글을 달았다.
지정학적 명칭과, 종교와 국가 정체성에 따른 명칭도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과 논쟁해서 무엇하겠냐마는.

(참고로, 모로코는 베르베르인도 섞여 살고 있지만 국민의 대다수는 아랍계이다.)




말 얹기 좋아하는 사람치고 자기 행실 바른 사람을 보지 못했다.
목적지에 도착하면 버스로 돌아오는 시간을 정해준다.
이 사람은 번번히 지각이다.
뒤늦게 버스에 탑승하지 않을 걸 확인하고
트래픽이 심한 복잡한 도로에서 큰 몸체의 버스가 어렵게 유턴해서 돌아온 적도 있다.
시간 약속을 지키지 않아 일행을 불편하게 만들었음에도 미안한 기색도 사과 한 마디도 없다.


이 사람이 할머니 사진을 찍었단다.
"할머니가 화를 내는 거야~ 엄청 화를 내더라고~ 주절주절~~~"

고가의 카메라로 할머니 정면에다 대고 초점 맞춘다고 한참 그랬을 거다.
시골의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촬영에 조심해야 한다.
정면 사진이나 근경 촬영은 삼가하는 것이 좋다.

설사 촬영을 눈치채고 거부의 손짓을 하시면 바로 공손한 태도로 사과하면 된다.
관대함은 이슬람교의 '인샬라' 정신이다.
이미 벌어진 일은 '신의 뜻'으로 이해한다.
한국인처럼 꼬치꼬치 따지고 물고 늘어지지 않는 종교적 관용이 있다.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할머니가 화 내신 걸 도리어 성토하다니.. 쯔쯧..



사하라 사막에서의 일이다.
가장 높은 모래 언덕에 나를 포함해 대여섯 명이 촬영 중이었다.
그 사람은 서쪽 하늘을 찍고 있었고, 나는 앵글이 겹치지 않은 남쪽을 찍고 있었다.
그 사람이 반대쪽인 동쪽으로 돌아서면서 앵글을 바꾸었다.
촬영에 전념하던 내가 돌아선 그 사람을 미처 의식하지 못하고 내 후드가 그의 렌즈를 건드렸나 보다.
'초점 맞추고 있는데 건드리면 어떻하냐?' 며 성질을 부린다.
나는 그대로 있었고 방향을 바꾼 건 본인인데 도리어 화를 낸다.
에효.. 나이를 거꾸로 자셨는지..




하는 말마다 상대방 기분 상하게 하는 말이라 말 섞지 않으려고 거리를 두지만
따라 다니면서 말을 얹는다. 에효..
설사 제 눈에 거슬리는 일이 있어도 그건 인솔자나 가이드가 조용히 불러서 조정할 일이지 나설 일은 아니다.
단골고객인 것 같은데 다시 만날 지도 모를 일이니 이 패키지는 패스하는 걸로.






모로코의 도로에는 자동차, 오토바이, 자전거, 거기에 마차까지.
고급 자동차에서 마차까지가 언밸런스하지만 지극히 평화롭게 다니고 있다.

생활과 물류의 이동에 마차가 많이 이용되는 것 같다.
농업국가이니 부산물로 사료를 주면 되고 비싼 자동차 비용도 기름값도 걱정없는 최적의 교통수단이다.

WIDE 화면으로 보세요~

2T0A3814_815_p22.JPG
2T0A3816_821_p22.JPG
메디나 앞 도로변에도 고택들이 늘어서 있다.
2T0A3820_826_p22.JPG
메디나의 뒷골목은 좀 다르다.
현지인의 삶의 면모를 보고 싶다면.. 모름지기 뒷골목으로 들어가야 하는 법이다.
2T0A3837_909_p22.JPG
2T0A3851_860_p22.jpg
2T0A3861_907_p22.JPG
2T0A3865_866_p22.JPG
2T0A3903_913_p22.JPG
2T0A3908_914_p22.JPG
2T0A3910_955_p22.JPG
우리네 성남 인력시장 같은 곳이다.
아주머니들이 앉아서 일거리를 기다리고 있다.
대개는 부잣집의 가정부로 가는데 밤 늦도록 온갖 구박을 받으며
얼마 주지도 않으면서 쉴 틈도 주지 않고 부려 먹는다고.




띵헤르에서 일어났던 일이다.
아이들 몇 명이 꼬질꼬질한 비닐 봉지에 담긴 도토리를 사달라고 내밀었다.
마침 지갑을 가져오지 않아서 돈이 없다는 손짓으로 떼웠다.


버스에 오르니 갑자기 바깥이 소란하다.
일행 중에 누군가 아이에게 돈을 건네었다고 한다.
어디선가 우르르 십여 명의 아이들이 나타나더니 돈을 건넨 사람을 둘러 쌌다.
그리고 한 아이만 돈을 받으니 아이들끼리 싸움이 났다.


결국 현지인인 버스 기사님이 나가서 해결해야 했다.
인솔자의 말에 의하면,
아이들 불쌍하다고 돈 주면 그 아이를 망치는 길이란다.
어른도 하루 온종일 일해야 고작 10~20디르함(1디르함= 약130원) 정도를 받는데
관광객을 콕 찔렀더니 10디르함이 나오니 학교도 가지 않고 관광객만 쫓아다닌다고.
여행 다녀온 뒤 엄청 바쁘게 지냈다.
오자마자 사흘 동안 김장하고,
아래 지방으로 시가 쪽 사촌계에 다녀오고,
어제는 남편 고교동기 모임 송년회에도 다녀 왔다.
밀린 업무에, 블로그 찐이웃 답방까지..


9년 만에 사촌계 모임이 있었다.
일 년에 한 번 씩 국내 여행을 가는데 코로나와 이런저런 일로 여행은 커녕 정기모임도 가지지 못했다.
집안 대소사에서 뵙는 거 말고는 9년 만의 남편 고향에서의 모임이다.
사촌까지 친목계라 모두 26명인데 9년 동안만 일곱 분이 노환으로 돌아가셨다.


사촌계 여행 일정이 솔직하게 말하면 큰 재미는 없다.
남편처럼 어린 시절 추억을 나눈 사이도 아니고,
문화 차이도 있고, 연노하신 분들이라 세대 차이에다가
모셔야 하는 시댁 아주버님과 형님들이시니.. 내 입장에서는 재미가 있을 리 없다.
결혼한 지 30년이 넘어가는 시점인데 아직도 나의 호칭은 '새댁'이다.
헌댁도 오감한데 이 나이에 새댁이라니.. ㅎㅎ





남편 고향에 갈 일이 있을 때면 늘 우리 쪽에서 경기 광주에 사시는 형님 내외를 모시고 간다.
뒷자리에 앉으면 멀미를 더 심하게 하는 편이라 양해를 구하고 조수석에 탑승했다.


친지, 남편 친구, 후배, 선배를 막론하고 이웃집 아저씨까지도 예외없이 조수석엔 남자가 타고
나는 눈을 감고 (눈 감으면 멀미를 좀 덜 함) 멀미를 참아가며 뒷자리에 탔었다.
나이 드니, 이제는 멀미의 고역을 참는 것이 쉽지가 않다.
아니, 이젠 그러고 싶지가 않다. 이 정도 살아주었으면 투스타 반열이다.


사촌계 마치고 귀경하는 길에 근처 사시는 사촌형님을 댁까지 모셔다 드리기로 했다.
남편이 나에게 뒷자리로 가면 어떻겠냐고 묻길래 그냥 있겠다고 했다.
형님이 자기 남편인 아주버님과 자리를 바꾸라고 채근하며 은근히 갈군다.
남자는 앞자리에, 여자는 뒷자리에 타야 한다는 법이 헌법에 씌여 있는 건지.


중형차라 뒷자리에 세 명이 앉기에 충분하다.
뒷자리에서 편하게 다리 뻗고 가시라고 조수석 의자를 바짝 땡긴 상태라
넉넉한 뒷자리보다 오히려 앞자리가 더 협소한 상태다.
내 자리 발 밑엔 가방과 물과 간식거리가 든 쇼핑백도 있다.
5분 정도 거리를 모셔다 드린 후 아주버님께 다시 자리를 바꾸자고 요청하기도 난감한 일이다.


시대가 바뀌었다. 비록 손아래 동서라 할지라도 존중해 주는 것이 마땅하다.
편하게 모시려고 편승해 드리고 뒷자리도 넓게 확보해 드렸는데
나라면 감사한 마음으로 느긋하게 다녀오련마는.


언제나 그렇듯이 형님과의 여행이 즐겁지가 않다.
여행에서는 내 고집대로 판단하지 말고 기분 좋은 말만 하면 된다.
댓글
  • 해린Loveⓕ 2023/12/03 16:43

    정말 공감되는 얘기입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43jHZR)

  • 고래공주 2023/12/03 16:58

    남초 사이트라 공공의 적이 되나.. 했는데 공감해 주시니 캄사합니다. ㅎㅎㅎ

    (43jHZR)

  • 청-산 2023/12/03 16:58

    무조건 추천 ~

    (43jHZR)

  • 고래공주 2023/12/03 16:58

    무조건 캄사~ ㅎ

    (43jHZR)

  • 순간의기록[不良文原] 2023/12/03 16:59

    메디나의 뒷골목., 잘 봅니다.
    잘못할 수도 있지만, 사과를 모르는 사람은 참 어렵습니다!!

    (43jHZR)

  • 고래공주 2023/12/03 17:02

    제 말이요~
    저 포함해서 누구나 잘못할 수 있지만 진심으로 사과하면 될 것을.
    저도 나이 들어가면서 어디 가서 말 많이 하면 안 되겠구나.. 되돌아 보는 기회였습니다.

    (43jHZR)

  • 오양골金完起 2023/12/03 17:35

    사람사는 곳은 다 고기서 고기인가 봅니다
    고기가 최고죠 ㅎㅎ

    (43jHZR)

(43jHZ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