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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은 이상하게 촉이 좋은 날이었다. 그리고,



나는 눈치는 보통이고


촉? 그런건 모르겠다.


애초에 그런게 있나 싶다.


라고 생각한다.


한번 믿으면 끝까지 믿어주는,


절대 의심하지 않는


절대적으로 당신을 믿고야마는 내 성격은


캐묻거나 핸드폰을 몰래 본다는 그런 건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연인 간에도 어쨌든 사생활은 존중받아야하니까.


그 날은 여느날과 다른 날이 아니었다.


무슨 영화나 드라마처럼


복선은 전혀 없었다.


아니 있었는데 내가 몰랐던 것일지도.


항상 잡던 그녀의 손길,


항상 웃던 그녀의 미소,


항상 가던 길가,


항상 가던 카페,


항상 먹던 음료,


항상 앉던 창가의 테이블,


그리고 너는 화장실을 갔다온다고 하곤


핸드폰을 두고갔다.


그 날은 정말 이상했다.


내가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아주 묘한 기분이었다.


마치 핸드폰이 


"날 빨리 열어봐. 아주 재미있을거야!"


라는 말을 하면서 손짓하는 듯 했다.


안다.


이 글을 보는 사람들도 알거고,


나도 알고 있으며


지금 옆에 있는 사람에게 물어봐도 안다.


보면 안되는 것.


손대면 안된다는 것을.


이 것을 무슨 말로도 포장하고 싶지는 않다.


좋지 않은 행동을 한 건 맞으니까.


그 것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음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손은 저절로 그녀의 핸드폰으로 움직였다.


그녀는 항상 핸드폰을 두고 나갔고


무방비 상태였던 핸드폰이 한두번이었던 적이 없다.


그러나 그 날은 그랬다.


다른 날은 절대 만지지도 않던 그녀의 핸드폰을,


그 묘한 끌림에 나는 핸드폰을 열었다.


잠금 같은건 없었다.


그녀도 나의 성격을 알았고, 그녀 역시 잠금을 하지 않는 성격 탓이기에.


카카오톡에는


어떤 낯선 이에게 온 카카오톡이 있었다.


나에겐 낯선 이였고


그녀에겐 또 다른 친밀한, 


아니 사랑한 남자였겠지.


사랑스러운 카톡의 내용이 가득했다.


하트가 가득했으며,


오늘은 몇시에 볼거냐는 내용이었다.


지금은 기억이 많이 흐려졌지만


그 내용만은 아직도 생생하다.


보자마자


손에서 땀이 났다.


덩달아 등에서도 땀이 났다.


심장은 쿵쾅대기 시작했으며


머릿속은 요동쳤다.


난생 그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학생 때 선생님에게 걸렸을 때


군대에서 수류탄을 던질 때


처음 차 사고가 났을 때


아니, 그 것과는 완전히 다른 별개의 경험이자 기분이었다.


그 날은 이상하게 촉이 좋은 날이었다.


그리고,


그녀와 이별을 한 날이었다.


내 생애 첫 연애이자


첫번째 이별은 그렇게 순식간에 찾아왔다.


내 마음에 차디찬 칼을 댄 것 마냥.


그렇게 차가웠던 느낌은


난생 처음 느꼈다.


갑자기 일어났다.


예고도 없이,


그렇게 2년이라는 긴 시간이 무색할 만큼


고작 몇 초만에 우리의 관계는 끝이 났다.


그렇게.


끝이 났다.
댓글
  • 압락사스 2017/07/27 19:30

    시간이 해결해 주더이다... 2년이란 시간 길지도 짧지도 않은 그런 시간... 새로운 인연을 만나서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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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햄보가 2017/07/27 20:18

    불과 일주일전만하더라도 달달하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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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핵변태 2017/07/28 04:23

    저랑 비슷하네요 ㅋㅋ
    저도 절대 손 안대고 클럽가던 뭐하던 존중하는데
    그 날은 유독 노트북에 손이 가서 사진 보다가...다른 남자와 스킨쉽하던 사진이 이ㅛ더라구요
    제 첫사랑이였는데..충격이 너무커서 헛구역질 날 것 같고
    토할거같고 온몸이 떨리고 열이 나고 땀나고...
    겪어본 사람만이 표현할 수 있는걸 너무 정확하게 표현하셔서 놀람...
    전 아직도 회복중 ㅋㅋ

    (cROZlY)

  • 레드a 2017/07/28 04:28

    말 같지도 않은 말이라 생각 했는데
    전 "상처 받기전에 먼저 주라"는 말의 뜻을 첫 이별하면서 알게 됬죠

    (cROZlY)

  • 냐옹이는냐옹 2017/07/28 04:30

    연인에게 사람에게 미련을 갖지 말아야 하는 이유지요. 그들은 언제든 당신을 떠날 준비가 되어 있기에

    (cROZlY)

  • 똘이애비 2017/07/28 05:14

    판도라의 상자....열면 후회할걸 알지만. 열어보게되는....
    작성자님의 판도라의상자에는. 그래도 다행이네요 하루라도 빨리. 끝을 보여줘서...

    (cROZlY)

  • 선생닝 2017/07/28 07:59

    작정하고 헤어지려고 일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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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곰녀우 2017/07/28 08:03

    저도 그런촉이 오면 판도라상자가 쨘 하고 나타났더랬죠
    판도라 상자는 제 직성상 다 열어보고 까봐야 제맛! 미련도 덜남고
    시간낭비할것도 단축되고 다만 가슴에 스크라치는 생각이상으로 깊긴하지만
    시간이라는 약이 있어 버틸만 하더라구요

    (cROZlY)

  • 전진앞으로 2017/07/28 08:08

    이 기분 왠지 이해할것 같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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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랑빠 2017/07/28 08:16

    남으로 변하는데 진짜 몇일 안걸리더라고요
    8년 사귀었는데 그냥 남이에요 이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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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산피플 2017/07/28 08:18

    글 참 잘쓰시네요. 담담하게 읽어내려가는데도 아찔했던, 어지러웠던, 혼란했던 상황을 잘 표현하신거 같아요.
    남이야기 같지 않아서 감정이입이 되어서 그런가...
    잘 봤습니다.

    (cROZlY)

  • 비키니야미안 2017/07/28 08:29

    조상신이 도우신거네요..달콤할수록 독한거예요
    실체를 아셨으니 벗어나신걸 축하드려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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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랭천사 2017/07/28 08:52

    아....... 정말 그기분은.... 몇개월 되지 않아 더 생생하고 더 싫은 기억이네요
    전 그 후로 더 있다 헤어졌지만... 온갓 포장이란 포장은 다 해놓고 결국엔 헤어지자 한지 한달도 안되서 그남자랑 사귀네요 ㅎㅎ
    더 웃기고 더 싫은건.... 사내연애였고, 매일매일 얼굴맞대고 일해야 하는 것이에요. 1년은 더 봐야하는데.... 그래서 전 나름대로의 최선의 배려를 해줬는데 돌아오는건 지금 이순간이더라구요. 안지 이제 일주일됬는데 헤어지고 추스러지던 맘이 어지러워 미치겠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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