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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아내가 내 외도를 알았을까?

애매한 상황에 놓였다. 정말로 애매한 상황이었다.

아내가 내 외도를 알았을까?

애초에 배불뚝이 사장 놈이 추천한 맛집을 찾아간 것이 빌어먹을 실수였다. 거기서 그녀의 직장 동료를 만날 줄이야?
그녀가 못 봤을 리는 없다. 분명 나와 눈을 마주쳤고, 그 눈동자가 옆으로 조금 움직이는 것도 확인했다. 내 곁에 앉아 팔짱을 끼고 있는 미스홍 쪽으로 말이다. 빌어먹을! 사장 이 새끼! 월급도 안 올려주는 새끼! 맛집만 찾아다니는 돼지 새끼!

" 후.. "

나는 주방으로 걸어가 찬물을 한잔 따라 마시고 시간을 확인했다. 아내의 퇴근까지 30분.

그녀가 아내에게 지난 주말의 일을 말했다면, 오늘은 내 인생 최악의 월요일이 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알 수 없다. 애매하다. 
그날 나도 그녀의 옆에 선 남자를 보았기 때문이다. 그래, 그게 내 희망이었다. 그녀도 바람을 피우고 있었다면? 그렇다면 그녀는 말할 수 없다. 단언컨대 말할 수 없다.
혹 그 남자가 남편일 수도 있었다. 난 그녀의 남편을 모르니까, 남편일 수도 있다. 하지만 누가 배우자를 위해 일부러 그런 맛집까지 찾아가겠는가? 그 나이에 애들도 안 데리고 말이다. 90% 이상 외도가 확실하다. 그녀는 말할 수 없다.

냉수 한 컵을 싹 비우고 내려놓으니 싱크대에 쌓인 설거짓거리가 보였다. 기다리는 동안 저거라도 다 해치울까? 설거지해놨으니 바람피운걸 용서해달라고?

" ... "

불안했다. 생각해보면, 그녀는 내 아내와 철천지원수 사이지 않은가? 
몇 달 전, 그녀와 아내가 거래처 영업권 문제로 다툰 이후 둘의 사이는 최악이었다. 아내는 스트레스가 쌓여 누군가를 씹고 싶을 땐 항상 그녀의 험담을 늘어놓았다. 그녀도 마찬가지겠지.

그럼 그녀가 사실을 말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때 결국 영업권을 따낸 것은 아내였고, 그녀는 아내에게 창녀라는 욕까지 했었다고 했다. 누구보다 내 아내를 미워하는 그녀에게 이보다 더한 기회가 있을까?

'네 남편은 딴 년이랑 붙어먹는 중이라고! 남편 간수나 잘하라고!' 제대로 한방 먹일 기회 말이다.

" 옘병.. "

본인의 외도가 들킬 리스크를 감수하고서라도 아내에게 복수할까? 아내의 망가진 얼굴을 보고 싶어 할까? 알 수 없는 일이다.
방금 냉수를 들이켰음에도 속이 탔다. 어쩔까, 문자로 아내의 분위기를 떠볼까? 아니다. 무섭다. 단 몇 분이라도 매를 먼저 맞고 싶지는 않다.

나는 절대 아내와 이혼할 생각이 없었다. 아내는 내게 이제 재미가 없을 뿐, 나쁜 여자가 아니었다. 미스홍과의 외도는 그냥 무료한 일상의 자극제였을 뿐이지, 내 가정을 깨트릴만한 모험이 아니었다. 애들에게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주는 건 끔찍하다. 설마 주변에 소문이라도 난다면 정말로 견딜 수 없다. 

" 아으.. "

너무 초조했다. 그녀가 직장에서 말을 했을까? 말을 하지 않았을까? 
나는 거실 소파로 가서 억지로 TV를 틀었다. 어떻게든 신경을 돌리고 싶었지만 그럴만한 채널은 없었다. 

같은 화면만 여섯 번쯤 돌았을 때, 현관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아내다.
나는 척추부터 신경이 곤두서는 걸 느끼며 현관을 주시했다.

' 띠리링 띠- '

문을 열고 들어선 아내의 표정은 애매했다. 정말로 애매했다.
평소처럼 피로한 얼굴 같기도 하고, 폭발 직전의 무표정 같기도 하다. 어느 쪽이지??

나는 '왔어?'라고 평소처럼 말하려 입을 열었지만, 소리를 내지 못했다. 긴장으로 성대가 굳은 듯했다.
아내는 가방과 겉옷을 벗고는 곧바로 주방으로 가서 물을 한잔 따라 마셨다. 빈 컵을 싱크대의 설거짓거리에 내려놓는 뒷모습이 멈칫한다. 곧, 싱크대의 물을 틀고-

' 촤아아- '

" ~~ ~~~ ~~~~. "

아! 듣지 못했다! 아내가 분명 무언가 중얼거렸는데 듣지 못했다. 내게 한 말인가? 혼잣말인가? 뭐라고 했지??

' 촥. '

싱크대의 물이 멈추고 아내가 돌아서 나를 보았다. 눈이 마주치자,

" 했어? "

" 어 어?? "

뭐지? 뭐가 했어지? 알았나? 들켰나??
심장이 터질 듯 뛰었다. 나는 간절한 마음으로 되물었다.

" 어 어, 못 들었어.. 뭐라고? "

내 말을 들은 것인지 어떤 것인지, 아내는 욕실로 향하던 걸음을 멈추지 않고 들어갔다. 별것 아니었나? 아니면 극도의 분노 상태인 건가?
나는 내내 속이 울렁거렸지만, 아내가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나온 뒤에 안정을 되찾았다.

" SBS 드라마 틀어봐. "
" 어, 어. "

나는 얼른 아내가 좋아하는 드라마에 채널을 맞췄다. 그녀가 아내에게 말하지 않았음에 무한한 감사를 드리며.

아내는 소파 옆자리에 앉아 TV 화면을 보았다. 
한데,

" ... "

옆에서 관찰한 아내의 얼굴이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원래 이렇게 생겼었나? 이렇게 남처럼 생겼나? 아내의 얼굴을 자세히 본 적이, 아내의 기분을 살피려고 해본 적이 언제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원래 이런 얼굴인가? 드라마를 볼 때 집중하는 얼굴이 이랬나??

진정되려던 심장이 나도 모르게 조금씩 빨라졌다. 아내는 그때, 입을 열었다.

" 당신 귀 좀 파야겠다. "

뭐?

" 뭐..? "
" 귀 좀 파야겠다고. "

아내는 말과 동시에 소파에서 일어났다. 뜬금없을 정도의 빠른 움직임, 나는 아내의 행동을 막을 수 없었다.
안방에 들어갔다 나온 아내의 손에 들린 은빛 귀이개. 나는 기다란 그것을 뚫어져라 보았다. 왜인지, '아프다'라는 감정을 눈으로 느꼈다. 

아내는 곧장 내 옆에 앉아 무릎을 내었다.

" 누워. "
" ... "

그때 난 왜 그랬는지, 아내가 퇴근 후 한 번도 웃지 않았다는 점이 떠올랐다. 
나는 아내의 무릎에 머리를 대고 누웠다. 아내는 한 손으로 내 옆머리를 눌러 귀를 드러냈다. 

" 왜 이렇게 힘을 주고 있어? 힘 빼. "
" 어, 어.. "

나는 곧, 귓속에 차가운 느낌이 들자마자 티 나게 움찔했다.

" 힘 빼. "

아내는 귀이개를 전진시켰다. 매우 조심스럽다는 게 느껴졌다. 마치 붓칠을 하는 것처럼, 살살살살...

" 임여우 알지? "
" ! "

나는 또다시 크게 움찔하고 말았다. 
그녀가 말했나? 왜 갑자기 그녀 이름을 부르는 거지? 말했나? 말한 건가?

" 힘 빼라니까. 목이 시뻘게. "

아내는 내 옆머리를 누른 손에 무게를 더했다. 나는 아내의 말처럼 힘을 뺄 수가 없었다. 귀이개는 좀 더 깊이까지 들어와 있었다.

" 임여우 그 여자 말이야. "

왜 그 년이 아니라 그 여자지?
아내의 얼굴이 보고 싶다. 지금 어떤 표정이야? 방금 억양이 어땠지?? 빌어먹을! 이 자세는 아내를 볼 수가 없다.

" 아! "

아내의 귀이개가 끝에 닿는 게 느껴졌다. 끝에 닿아, 두드리고 멈칫. 물러나고, 다시 두드리고.
나는 아내의 손아귀에서 당장 벗어나고 싶었다. 
한데,


" 글쎄, 그 여자가 죽었대. "

뭐라고??

" 계단에서 굴렀대. "
" 그, 그 여자가 죽었다고? "
" 응. "
" 아-! "

하느님 감사합니다! 
와- 설마 죽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죽은 사람에게는 미안하지만, 정말 고마운 일이다.
나는 목에서 힘을 뺐다. 이제야 아내의 애매하던 모습이 무엇 때문이었는지 알게 되었다. 항상 죽었으면 좋겠다고 욕하던 여자가 진짜 죽어버렸으니, 그 심정이 얼마나 복잡하겠는가? 

" 안됐네. 쯧. "
" 부조는 해야겠지? "
" 그래야지. 그래도 몇 년을 알고 지냈는데. "

나는 아내의 무릎에 편안히 머리를 묻고 귀를 맡겼다. 아내는 오래도록 귀를 팠다. 긴장이 풀린 내가 깜빡 잠이 들 정도로 아주 오래도록.

.
.
.

' 까톡! 까톡! 까톡! '

" 으음...! "

아내의 핸드폰 소리에 깨어난 나는, 내가 간밤에 소파에서 잠들었음을 깨달았다. 
나는 욕실에서 들리는 소리로 아내가 씻고 있음을 파악했다.

' 까톡! 까톡까톡까톡! '

" 끄응.. "

도대체 누가 아침부터 이렇게 시끄럽게 메시지를 보내는지! 나는 아내의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잠결에 잘 떠지지 않는 눈으로 화면을 드래그한 나는, 내용을 확인하고 고개를 갸웃했다.

[ 언니! 지금 회사 완전 난리 났어! 임여우 과장 말이야! 그 여자가 죽었어! 비상계단에서 죽어있는 걸 아침에 경비 아저씨가 발견했대! ]

" ... "

뭔가 이상한... 어딘가 좀... 뭔가 이상...


" . . .-안 들려? "

" ?! "

어느새 다가온 건지, 바닥에 물방울을 흘리며 서 있는 아내가 나를 무심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 당신 정말 귀 좀 파야겠다. "

" ... "

나는 귀가 따끔거리기 시작했다.
댓글
  • 복날은간다 2017/07/10 17:58

    그냥 잔잔바리로.. 약간 실험적으로 한번 흐하하..;
    항상 감사합니다! 행복하세요!

    (7yInJL)

  • 엘뤼에르 2017/07/10 17:59

    오예~!! 선추천 후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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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r.Soong 2017/07/10 18:18

    무슨 내용인지 이해가 잘 안되요 ㅠㅠ

    (7yInJL)

  • 곧3 2017/07/10 18:44

    아내가 임여우가 죽었다고 말한건 전날 밤
    임여우가 죽은채로 발견된건 다음날 아침
    그렇다면?

    (7yInJL)

  • LOVELINUS 2017/07/10 20:06

    말했겠네요 거짓말하지마! 하면서 밀친게 죽은건가

    (7yInJL)

  • 신이내린미모 2017/07/10 20:37

    와우ㄷㄷㄷㄷ 내가 바람핀마냥 바짝 긴장하고 읽었네요.... 아내가 임여우를 죽인거군요ㄷ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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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reket 2017/07/10 20:52

    선추천 후감상... ㅎㅎ

    (7yInJL)

  • 질풍의라빈 2017/07/10 20:57

    잘봤습니다...흠
    이번편은 쪼금 이해가 잘 안되네요 ㅎㅎ 좀 애매모호함...
    그러니까...미스홍이랑 바람피는데....아내의 직장동료인 임여우랑 마주쳤고....
    임여우가 아내랑 견원지간인데 남편이 바람핀다는 사실을 비아냥거리다가
    아내가 계단에서 밀쳐서 죽인 후 퇴근하여 남편의 귀를 파준거 맞죠? ^^;;
    아내는 누구랑 바람을 피는걸까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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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법의성 2017/07/10 21:39

    와..최고  긴장감 쩔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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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너이새키 2017/07/10 22:12

    역시 좋은 임여우는 죽은 임여우 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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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arp 2017/07/11 03:18

    귀는 이미 망가졌군요.
    다가온지도 모르니...
    마지막은 사형선고...
    근데...
    진짜 엄마가 파줘도 긴장감 엄청난데,
    그걸 소재로 선택하신 기발함...
    진짜 귀파주는 것부터 긴장감이 몰아쳐뿌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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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Y2NkW 2017/07/11 03:19

    단순하게 생각해요.
    아내가 바람피우다 임여우과장에게 걸려서 임여우과장을 계단에서 밀어서 살해한 사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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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rente 2017/07/11 03:23

    재밌게 봤습니다
    이해가 잘 되지 않는 부분이 있는데요..
    카톡소리를 듣고 깼으니 아직 소리는 들린다는 건데, 한쪽이 안들린다는 암시가 따로 있는 건 또 아니고.
    단순히 긴장되는 순간이었다는 의미는 아닐 것 같은데, 단서를 못찾겠네요.

    (7yInJL)

  • Overwatch 2017/07/11 03:49

    임여우조아 하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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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용이2 2017/07/11 04:21

    아무리 그래도 귀를 이상하게 후볐으면 남자 본인이 알았겠죠 그냥 귀파는 장면 자체가 주는 긴장감이 있었고 그런 의미같아요.
    셋째줄에 '애초에 배불뚝이 사장 놈이 추천한 맛집을 찾아간 것이 빌어먹을 실수였다. 거기서 그녀의 직장 동료를 만날 줄이야?
    그녀가 못 봤을 리는 없다. '
    위 그녀는 아내같고 아래 그녀는 아내 직장동료 뜻하는 거 같은데 바로 앞뒤에 두번 쓰여서 의미가 상당히 헷갈렸습니다. 수정해주시면 가독성이 나아질 거 같아요.

    (7yInJL)

  • 95고딩 2017/07/11 04:23

    남편의 외도사실을 임여우가 아내한테 말했군여...
    근데 창녀라고 말할 정도로 사이가 안 좋은데
    그런 여자가 말한다고 아내가 선뜻 믿을까요?
    미친x 하면서 남편한테 그 여자 뒷담 할거같은데
    오히려 사이가 엄청 좋아야 말할거같아요

    (7yInJL)

  • eyess 2017/07/11 06:44

    지극히 현실적인 소소한 상황으로 이렇게 긴장감을 주시다니..
    이제 완전히 물이 오르신듯!
    판타지인 요정 얘기도 좋지만 이쪽이 좀더 제 취향이네요ㅎ

    (7yInJL)

  • sweetalien 2017/07/11 07:53

    귀파주는 장면에서 영화 아가씨의 이 갈아주는 장면이 생각났네요. 또 다른 느낌의 긴장감이었습니다.
    이런 심리?물 너무 좋아요

    (7yInJ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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