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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덩케르크 보기전에 덩케르크에 대해 알아보자.jpg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덩케르크




덩케르크를 보기전에 덩케르크르 알아보자











덩케르크는 지명이다


덩케르크의 위치









덩케르크 앞에서 기념촬영하는 독일군
덩케르크는 40만명 영프 연합군의 대규모 철수작전이었던 다이나모작전이 실행되었던 지역(항구)의 이름입니다.
이야기하기전에 앞서
1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전쟁의 양상은 완전히 바뀝니다.
기존 기병돌격의 전투에서
기관총과 화기,가스전이 벌어지면서 참호전으로 전재양상이 완전히 바뀌어버리죠
그러한 장면들은 최근 개봉한 원더우먼에서 가장 잘 나타납니다.

1차대전 수만명의 사상자를 낸 참호전
베르사유조약으로 종전이 되고
프랑스는 항상 독일을 경계합니다.
언젠간 또 전쟁이 터질걸 미리 알았던거죠
그리고 그에 대비하여 만들어진 마지노선



마지노선은 독일 국경을 향해 칼처럼 뾰족하게 들어간 저 부분 수십km를 콘크리트르 부어 만들어졌다.
마지노선은 건설비만해도 160억 프랑이라는 실로 막대한 수치였다.
이름은 건설을 제안한 육군성 장관 앙드레 마지노 (André Maginot, 1877년 2월 17일 ~ 1932년 1월 7일)의 이름에서
유래한 거지만, 실제로 이 계획을 실현시킨 사람은 후임인 폴 펭르베(Paul Painlevé)였다. 
이 사람은 프랑스의 수학자이자 정치가 이지만, 아마도 우리에겐 그의 정치적 업적보다 '펭르베 방정식'이 더 유명할 것이다.
그가 장관으로 있던 1926년에 계획을 입안했고 이듬해인 27년부터 공사가 시작됐다.
콘크리트 두께만 3.5m로 그당시 전통적인 전술로는 절대 돌파하지 못했다.
지금도 전쟁사학자들은 만약 독일이 마지노선을 돌파하려했다면 실패했을거라고 말한다.
아무튼
이렇게 견고한 마지노선을 쌓고 국경방어에 사활을 걸고 있던 프랑스와는 달리
독일에서는 히틀러가 국민투표로 총통으로 뽑히고 실권을 장악하였다.
으레 히틀러하면 독재자이자 전쟁광으로 생각해서 쿠테타나 무력을 이용해서 정권을 잡았을거라고 생각하지만
실상 국민투표로 압도적으로 승리하여 권좌에 올랐다.
이때문에 독일사람들은 히틀러 언급자체를 더욱 싫어한다.
권좌에 오른 히틀러는 군대를 정비하여 오스트리아 합병, 폴란드 침략으로 프랑스와의 일전을 준비했다.
당연 프랑스와 영국도 알고 있었으나, 전쟁이 날 걸 두려워하여 히틀러를 최대한 달래라겨 했으나
사실 당시 상황으로 보면 독일과 프랑스와의 일전은 예정된 수순이었다.
히틀러가 프랑스 침략을 군부에 지시하였으나 독일 군부는 처음엔 반반이었다.
프랑스와의 일전은 불가피하나 당장의 전력으로는 힘들다는 계산
독일도 당연히 마지노선의 존재를 알고 있었고 현재 독일의 기갑전력으로는 돌파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었다.
그러나 히틀러의 강압적인 태도로 결국 작전계획이 수립된다.
그 유명한 낫질작전


당시 독일 기갑사단을 지휘하여 엄청난 정공을 세운 구데리안과 롬멜
당시 독일의 주력은 역시 전차, 기갑부대였다.
그러나 아무리 독일의 기갑부대라도 프랑스의 마지노선을 돌파하기란 무리수였다.
누구보다도 그 사실을 잘 알았던 독일군 수뇌부는
기발한 작전을 수립, 낫질작전을 수립하였다.


독일에서 프랑스로 진격하는 길은 두가지였다.
1. 마지노선 정면돌파
2. 네덜란드와 벨기에 돌파
마지노선은 너무나 견고하여서 프랑스는 걱정하지 않았고
문제는 네덜란드와 벨기에 였다.
이를 위해 영국, 프랑스 40만대군이 네덜란드 벨기에 국경방어에 총 투입되었고
모든 물자도 그쪽으로 보냈다.
프랑스로 가는 길 두개는 이미 막혀버린 상황
그러나 독일은 그 사이 허점을 하나 발견한다.
마지노선과 벨기에 사이 허점을 교묘히 돌파하는 작전

아르덴 숲
아르덴숲은 유럽에서도 보기 드문 고목들이 높이 뻗어있는 울창한 숲이였다.
프랑스도 사실 이곳을 알고 있었으나 독일 기갑부대가 여길 돌파할것이라고는 생각치 않았다.
왜냐면 이 울창한 삼림을 기갑전력으로 돌파할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하였다.
참고로 아르덴숲은 2차대전 대규모 격전지의 중심지였는데
밴드오브브라더스 의무병편에 나오는 곳이 바로 아르덴숲이다.


독일은 3갈래로 나누어 공격했다.
주공은 당연히 아르덴숲을 공격하는 롬멜의 기갑사단
조공은 2개로
마지노선을 돌파하는척 하는 집단군 하나와
벨기에 네덜란드를 공격하는것처럼 보였던 집단군
3개의 병력은 공격을 시작했고
영프 연합군은 그럴줄 알았다는듯 벨기에 네덜란드에 모든 병력을 집중시킨다.
작계를 세운 초기 그리고 작전 실행 직전까지 독일 군부는 반반으로 나눠 싸웠다.
낫질작적은 그만큼 힘들고 성공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결국 실행되었고
구데리안과 롬멜이 지휘하는 기갑사단은 아르덴숲을 돌파하기 시작
어떠한 저항도 사상자도 없이
돌파해버렸고
결국 낫의 앞쪽이 프랑스를 찔러버린 상황
주공인 3번(아르덴숲 돌파 기갑사단)은 돌파 후 네덜란드 벨기에에 주둔한 영.프 연합군의 허리를 끊어버린다.
그리고 한 부대는 마지노선을 뒤에서 쳐버렸고 결국 마지노선은 무력화된다.
그리고 네덜란드에 주둔중이었던 40만 연합군은 보급로가 끊겨버린채 고립되어 계속 밀려나고
마지막 희망인 바다 건너 영국으로 가는길을 찾기 시작한다.
가는길은 3곳의 항구
칼레, 브루고뉴, 그리고 마지막 덩케르크가 있었다.
고립된 연합군...
그러나 이를 눈치 챈 독일군이 칼레와 브루고뉴를 점령해버렸고
남은 마지막 희망인 덩케르크뿐이었다.
수십만 병력이 덩케르크로 몰려 들었고
독안에 든 쥐가 된 연합군은 구출을 기다린다.
그러나 이게 웬걸
갑자기 독일군에 진격 중지 명령이 하달된다.
덩케르크를 눈 앞에 남겨둔 시점
영국은 이때 구출한 병력을 바탕으로 미국의 지원을 받아 재 무장을 할 수 있었으며 독일군에 맞서 싸울 수 있었다.
만약 이때 40만 병력이 모두 전멸해버렸다면 영국도 항복했을것이다.
왜 히틀러가 진군을 중지시켰는지는 본인만 알 듯....
지금도 미스테리로 남아있다.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처칠은 철수작전 : 다이나모작전을 내리고
수백척의 군함, 수송선, 순양함, 민간어선을 가리지 않고 작전에 동원되었다.
목표는 단 하나 연합군
9일에 걸친 대규모 철수작전에 약 860척의 선박이 동원되었으며
수송인원은 331,226명
영국군 19만, 프랑스군 14만 여명이 살아남았다.
그러나 당시 인원을 우선적으로 구출하다보니
모든 군수 물자와 무기들은 그대로 방치되었고
고스란히 독일군 손으로 떨어진다.
이 작전으로 많은 이명을 구했으나 독일 공군에 수백척의 민간어선과 군함이 격침당했으며
수송선단 보호를 위해 영국공군은 472기가 격추되어 큰 피해를 입었다.


격침당하는 순양함
작전 종료 후 처칠은 하원연설에서
"우리들은 이 구출이 승리를 표시하는 것이라 의심치 않는다, 철수했어도 전쟁은 아직 이기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영국과 연합군의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고 독일은 두고두고 남을 실책을 범했다.
영화 덩케르크는 9일에 대규모 철수작전을 그린 실화에 바탕한 영화이다.
출처 : 락싸 - 쿠마몬
댓글
  • 참치잡이배 2017/06/30 12:57

    흥남철수작전과 대략적으로 비슷비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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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lueCrew 2017/06/30 12:59

    추천과 스크랩을 부르는 글이네요 ㅎ
    잘보고 갑니다^^
    9일 기대됩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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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ybrid: 2017/06/30 13:01

    기대되네요 재밌을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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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주매 2017/06/30 13:05

    무조건 봐야할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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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눈초 2017/06/30 13:48

    꼭 볼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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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혁Bros아빠 2017/06/30 16:35

    우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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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asyway 2017/06/30 16:37

    덩케르크에서는 민간인은 그냥 두고 연합군만 탈출...
    연합군에 협조한 민간인들의 피해가 컸다네요.
    흥남 철수때 민간인들을 거제도로 실어나른건
    지금봐도 꽤나 대단한 결정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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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하스 2017/06/30 16:49

    잘봤습니다. 영화 보기전에 좋은 공부 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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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은서바 2017/06/30 17:02

    라이언 일병 구하기 이후로 제일 히트 예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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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onde 2017/06/30 17:06

    우와 재밌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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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푸른탄환 2017/06/30 17:25

    히틀러가 2차대전에서 베푼 선행(?)이 여럿 있는데
    이걸로 서막을 열었읍죠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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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이페츠 2017/06/30 18:52

    히틀러가 뎡케르트 공격을 완전히 중지하진 않았고, 실제로 중지한 시간은 3일이었습니다. 3일 후에는 다시 재공격 결정을 내렸지만, 전쟁터에서 3일이면 어마어마한 시간이긴 합니다. 실제로 그 3일간의 준비 기간이 없었다면 연합군은 궤멸했을 것입니다.
    히틀러가 뎡케르트 공격 중단 결정을 내린 이유로는 2가지 설이 가장 유력한데, 첫번째 설은 육군의 전공 독차지를 우려한 공군 원수 괴링이 이후의 공격은 지친 육군 대신 공군이 맡겠다고 진언하여 히틀러가 받아들였다는 설, 두번째 설은 프랑스의 남부군을 잡아둬야 할 이탈리아가 전혀 미덥지 못 해서 (여기서도 고통 받는 이탈리아 ㅠ) 프랑스 남부군의 역습을 우려한 히틀러가 그 쪽에 대한 정보를 먼저 얻은 후 덩케르크에 대한 진공을 결정하느라 3일의 시간을 지체했다는 설이 있습니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히틀러가 제2차세계대전 중 저지른 가장 큰 실책임은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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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적당히하자 2017/06/30 19:01

    역사 말머리도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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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단칠정 2017/06/30 19:02

    교과서나 전문서적 공식 명칭 됭케르크인데 왜 덩케르크라고 할까요? 쥬라기처럼 되는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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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트라부세 2017/06/30 19:08

    또 한 가지 가설은 독일은 영국과 휴전조약을 맺을 수 있을 거란 희망을 버리지 않았기 때문이란 것입니다.
    나중에 본격적으로 독소전이 벌어지지만 히틀러가 지구상에서 쓸어버려야 할 두 가지 족속은 유대인과 슬라브족들. 반면 거기에 비하면 앵글로색슨족들은 게르만의 친척쯤으로 여겼죠.
    그러자면 영국 군대를 몰살시켜서는 휴전협정의 가능성이 모두 사라지니 그 정도로 압박하진 않았다는 거.
    물론 처칠은 이런 독일의 꼬득임을 일언지하에 거절했고 영국과의 휴전가능성이 전혀 없음을 깨달은 히틀러는 다음 작전으로 영국 침공, 즉 바다사자작전을 준비하죠.
    그리고 그 유명한 배틀 오브 브리튼이 시작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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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요거트쉐잌 2017/06/30 20:48

    애시당초 히틀러 아니었으면 덩케르트 철수 작전 저기 까지 이루지도 못했음.
    아르덴 돌파를 독일 육군 사령부 OKH 반대에도 불구하고 보병 사단장으로 거의 쫏겨난 만슈타인이 1:1 독대에서 간청을 받아들이고 허락 한게 바로 히틀러입니다.
    크게 보면 적어도 뮌헨협정에서부터 스탈린그라드 작전 이전까지는 대부분 그의 큰 그림으로 독일 제3제국이 확장을 이룬것들이 대부분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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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항상웃자구^^ 2017/06/30 21:08

    첫번째 인물 사진이 둘 다 롬멜 이네요. 참고로 다음 블로그 '세계사 1001장면'을 운영하시는 주인장님께서 7월 중에 이 영화의 배경 설명회를 주최하시니 관심 있으신 분은 검색해서 가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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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axpack 2017/06/30 21:40

    충격적인건 저때 영국으로 탈출한 프랑스군 14만명을 프랑스 정부가 방어전에 필요하다고 해서 다시 프랑스 본토로 돌려보내달라고 요청했죠. 결국 죽을 고생해서 영국으로 탈출한 프랑스군 대다수가 본토로 돌아가서 방어전 준비하다가 독일에 항복하고 포로가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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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군사령 2017/06/30 23:21

    또 다른 최근설(그래봤자 10년도 넘었지만) 로는 애당초 독일군 기갑부대도 너무 달린 나머지 더 공격은 모험이라서 굳이 귀한 기갑전력을 그렇게 소모하느니 재충전해서 이미 거두어 들인 승리인 프랑스 남부를 마무리 하는게 좋다고 판단했다는 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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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레미코빈 2017/06/30 23:39

    하이페츠// 두번째 가설이 나름 설득력 높습니다. 덩케르크 철수 이후에도 프랑스군 65개 사단이 남아있었습니다. 덩케르크 포위 이전엔 히틀러와 독일군 최고사령부가 이들의 존재를 두려워할만 했습니다. 그때까지 전격전이 이뤄진게 천행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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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ustin 2017/07/01 02:10

    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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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전본부 2017/07/01 03:00

    덩케르크의 포위망이 좁혀지면 좁혀질수록 독일군의 손실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습니다.
    이미 승리한 전투에 큰손실을 감내할 필요가 없다는 게 독일군의 생각이었죠.
    덩케르크 포위망이 완성되어 영프군 주력이 소멸한 시점에서 이미 전쟁은 독일의 승리로
    끝났다는게 당시의 생각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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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revorKing 2017/07/01 08:16

    잘 읽었습니다. 재밌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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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타이거전차 2017/07/01 10:28

    독일 티거 전차의 활약이 눈부셨을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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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xwing47 2017/07/01 10:31

    자 당시 독일군 전차부대에 티거 전차는 있지도 않았고 3, 4호전차 조차 극소수...대부분은 전차인지 장갑차인지도 애매한 소형 경전차 1, 2호 전차가 주력이었습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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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xwing47 2017/07/01 10:33

    이 조악한 경전차들은 제대로 된 프랑스 전차부대나 대전차포 진지를 만나면 거의 깡통수준에 불과했습니나. 다만 독일 전차들은 무전기가 보급되어있어 유기적인 작전이 가능했으나 프랑스 전차들은 무전기가 없고 보병부대 지원용으로 소규모 분산배치 되어 유기적 작전도 못한채 각개 격파 당하는 경우가 많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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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xwing47 2017/07/01 10:37

    흔히 독일군이라 하면 뭔가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병사들 집단이란 이미지가 강하지만, 저 당시 독일군은 오히려 일선부대 지휘관의 재량을 최대한 중시하는 분위기였습니다. 반면 프랑스군은 후방 벙커에서 전황을 제대로 파악도 못한 고위 지휘관들이 일선부대까지 사사건건 간섭을 하는 경직된 구조여서 빠르게 변하는 전황을 읽지 못하고 종이 지도위에서 무의미한 장기말 놀이만 한 꼴이 되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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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xwing47 2017/07/01 10:42

    당시 독일군은 화력이나 병력숫자면에서는 열세였지만 그나마 자신들이 가진 기동력, 통신능력, 그리고 일선부대 지휘관의 폭넓은 재량등에 힘입어 연합군이 예상치 못한 속도로 진격을 하였고, 연합군은 사실 병력 손실자체는 크지 않았으나 저렇게 포위 당하면서 군 작전능력이 마비 되어버립니다.
    이후 연합군측은 이를 전격전이라 부르면서 수 많은 분석을 내놓기도 했지만 최근 연구로는 이게 독일군의 정식 교리였다거나 하다가 보다는 그냥 현장에서 임무수행을 위해 어떻게든 하다하다보니 나온 결과에 가까웠다...라는게 정설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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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즈레몬 2017/07/01 10:51

    영화 기대중인데 정보 감사합니다. 드릴건 추천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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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허슬두유 2017/07/01 11:09

    마치 알쓸신잡을 보는 느낌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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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따가운햇살 2017/07/01 11:13

    와 이런 사실을 알게 되다니. 글도 댓글도 잘 읽고 갑니다. 역시 불펜은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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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KIRA 2017/07/01 11:54

    역시 불펜이네요. 이글읽고 영화보면 더 잼있게 볼수있을듯..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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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미파파 2017/07/01 12:08

    xwing47님 말씀대로 저때 재밌는건 프랑스 화력이 굉장히 좋았다는 점이죠.
    보통 프랑스가 너무 어이없는 교환비로 맥없이 무너져서 독일의 월등한 장비로 인해 상대가 안됐다고 생각하지만, 실상 프랑스가 모든 면에서 우위였죠.
    철저히 지휘관들의 전략, 전술을 통해 개전 초 독일이 저런 무시무시한 성과를 낸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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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atch666 2017/07/01 12:38

    maxpack// 그런 뻘짓이. 묵혀뒀다 노르망디 작전에 프랑스군을 썼으면 제대로였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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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동구유지 2017/07/01 12:39

    와 요즘 불펜에 좋은글 마니 올라옵니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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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요거트쉐잌 2017/07/01 12:47

    그 당시 프랑스 기갑 전력은 독일보다 약간 아래 수준이었지 무슨 프랑스가 더 강하고 그런건 결코 아닙니다.
    물론 방자의 입장으로는 충분히 방어할 만한 전력이었지만 프랑스가 더 강하고 무슨 독일군 전차가 프랑스 전차 앞에서 깡통이고 그런건 전혀 아니었어요. 그 당시면 독일이고 프랑스고 영국이고 간에 경전차 비율이 높던 시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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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요거트쉐잌 2017/07/01 12:52

    프랑스가 폴란드가 독일에게 유린당할때 전쟁 선포 하고도 지크프리드 라인 앞에서 소위 말하는 가짜 전쟁을 한 이유가 있습니다. 당시 프랑스 전력 자체가 독일보다 아래였습니다. 그래서 감히 독일내로 쳐들어갈 엄두를 못내었죠.
    물론 그렇다고 프랑스가 그렇게 독일에게 속절없이 무너질 정도는 아니었죠. 영국과 베네룩스의 연합군 병력이랑 합치면 서부전선 방어하기에는 충분하고도 남았죠, 다만 그렇다 치더라도 프랑스가 독일군보다 더 강하다 이런건 결코 사실이 아닙니다.
    1:1로 당시 1940년 당시 독일 육군과 프랑스 육군 비교하면 독일이 확실하게 우세합니다. 그차이가 서부전선에서 프랑스가 그리 빨리 무너질 정도의 전력차가 절대 아니어서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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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주매 2017/07/01 13:30

    아르덴숲 돌파한 전격전술도 후세에 2차대전 초반 독일의 큰 승리를 안겨준 신의한수로 추앙받지만..
    실제로는 xwing47님 말씀처럼 어케 하다보니 나온 결과물이라는 평가도 있죠.
    당시 세부적으로 들여다보면 전격전이라고 하면 독일 탱크들이 아르덴 숲속을 가르며 달려가는 장면이 연상되지만 실제로는 숲속에서 극심한 교통정체(?)로 고생했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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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만슈타인 2017/07/01 17:00

    일주매// 멍청한 프랑스 지휘부는 아르덴숲에서 놀고잇는 기갑부대를 보고서도 보고무시햇죠 전격전의 전설 읽어보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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