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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1년 넘게 AF를 거의 안 쓰는 게 습관이 되었습니다.

(아래의 글은 기술 무용론이 아님을 먼저 명확하게 밝혀 둡니다)
저는 취미시절 포함 20년 가까이 니콘 DSLR, 마지막 10년 정도는 플래그십 기종들만 사용했었습니다.
미러리스 카메라로 넘어오면서 제일 곤란한 것이 AF, 특히 AF-C 였습니다.
세간의 많은 사람들이 소니 미러리스의 AF가 무슨 마술방망이 수준인 것처럼 이야기하는데, 물론 사용해 보면 정말 좋고 미러리스 카메라들 중에서는 가장 높은 수준으로 뛰어난 것도 맞지만 다양한 환경에서 실사용해보면 의외로 2010년대 중후반의 니콘 D5에 비해 천지 개벽 수준으로 좋아졌는가 하면 그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확실히 좋아졌다고 느끼는 것은 카메라의 기본 시스템의 변화로 훨씬 고성능의 카메라 컴퓨터가 AF에 직접적으로 개입할 수 있게 되면서 커버 가능한 면적이 넓어지고 목표물을 판단하는 똑똑함이 생겼다는 것 정도입니다. 아무튼 완벽하지 않습니다. 특히 빛이 급격하게 변하거나 컴퓨터가 목표물을 잘 구분하지 못하는 상황 등 열악한 상황에서는 여전히 미스가 많습니다.
그리고 제일 큰 문제는 이렇게 AF가 가장 뛰어난 소니 기종들이 여전히 가장 완벽한 기종도 아니라는 점입니다. 과거 대비 밸런스나 안정성은 상당히 개선된 것 역시 사실이지만, AF에 극도로 치중한 나머지 여전히 밸런스가 나쁜 부분이 있다는 것도 많은 이들의 의견이고, 그래서 다른 회사 기종들의 대표 상위 호환이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저도 소니 A7c를 두 대 갖고 있고, 아주아주 잘 사용하고 있긴 하지만, 이 기종을 절대로 올라운더라고 말하긴 어렵습니다.
AF 성능에 관해서 좀더 코멘트하자면 올림푸스는 E-M1 mk3 정도 되니까 AF가 상당히 쓸모있어졌습니다만, 여전히 고질적 문제인 후핀 현상(초점이 배경으로 왔다갔다하는 현상)이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파나소닉은... 좋은 것 같아보이는데 안좋습니다. (카메라가 기분이 좋을 때(!)만 좋습니다) 후지필름은... X-H2s 정도 되니 확 달라진 건 맞는데 제가 사용중인 X-T4는 별로 안좋습니다. 아무튼 안 좋습니다. 저조도/저 컨트라스트 상황이 되면 정신을 못 차립니다. 니콘은... 20년 사용자로서 최소한의 의리는 여전히 남아 있기에 그냥 말을 아끼고 싶습니다. 제가 Z9는 사용 안 해 봤지만 그 외 다른 기종들은 여전히 평균적 성능이 과거 중급기종인 D750만도 못 합니다. 솔직히 이런 기종을 실무용으로 어떻게 쓸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결국 안 되겠다고 판단했고 몇 달간의 사용을 종료했습니다.
수동초점을 많이 쓰게 된 데에는 이렇게 미러리스 카메라들의 AF가 전반적으로 맘에 안 들어서가 컸습니다. AF가 맞기 위한 답답한 시간을 기다리는 것, 그리고 AF가 잘 되었는지 확인하는 불안한 과정을 거치는 것 보다 그냥 제가 맞춰서 쓰는게 더 빨랐고 정확할 때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물론 미스가 많지만 점점 익숙해지니 결과물에서 평균적으로 초점이 나가는 비율이 AF를 쓰나 안 쓰나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가 되더라구요. 2022년 이 시점에도 수동만 가능한 라이카 카메라가 존재하는 이유를 조금 알 것 같더라구요.
그리고 기존의 니콘 F마운트용 단렌즈가 많았기도 했고, 미러리스 환경 덕에 아무튼 DSLR보다 초점 맞추기도 쉬워졌고, 이종교배가 가능하니 비용을 절감하기 위한 것도 있고, 그리고 최신 렌즈들이 기술적 스펙이 높아지면서 표현적 개성이 빠르게 실종 중이라 AF 렌즈들의 표현 자체가 마음에 안 들 때도 많았고... 암튼 여러가지 이유였습니다.
카메라에서 다른 걸 제쳐 놓고 무조건 AF 성능이 중요할 때도 있기에 그럴 때만 소니 A7C를 씁니다. A7C가 소니 기종들 중에서 최상급 AF 성능을 갖춘 기종은 아니지만 제 기준에서는 그 정도만 되어도 충분하다고 느꼈습니다. 그리고 E-M1 mk3을 사용하는 작업의 일부에서 AF를 활용할 뿐 그 외 모든 나머지 환경에서는 요즘 무조건 수동 촬영을 사용하는 중입니다. 사실 제가 좋아하는 수동 렌즈들을 사용하려면 싫어도 손으로 돌려 맞춰야 합니다.
수동 초점 사용에 익숙해지면 정말로 초점을 즉시 잡을 수 있습니다. 감각만 생긴다면 굉장히 정확할 뿐만 아니라, 은근 비껴 맞추거나 그 비껴가는 정도를 조정하는 기술을 사용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그리고 손가락만 조금씩 움직여서 화면상의 원하는 포인트에서 포인트로 초점을 바로바로 이동시키는 것도 가능합니다. 이런 작업이 카메라에 프로그램되어 있을 경우 손으로 직접 하는 것보다 더 잘 될 수 있지만, 문제는 카메라의 프로세서에는 사람이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조건들이 다 프로그램되어 있진 않다는 것입니다. 결국 사람이 한 고민을 카메라에 전달하는 적절한 인터페이스가 필요한데 아무튼 화면 터치 정도 이상의 무언가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미러리스 카메라는 고급 기종의 경우 일단 파인더가 훨씬 큰데다 피킹 기능이 있고, 파인더 화면에 표시가 안 되더라도 초점이 맞게 되면 어딘가 자글거리는 느낌이 나타나기 때문에 최상급 OVF에 비해서도 초점 맞추기가 훨씬 쉽습니다. 피킹 기능은 사실 신뢰하면 안되는데 나름 참고는 됩니다. 카메라의 시스템이 무언가를 결정하게 하기보다, 사용자가 결정하기 위한 참고 정도로 사용하기에는 미러리스 카메라의 시스템이 DSLR보다 확실히 우수합니다.
그리고 카메라에게 초점 맞추는 일을 안 시키게 되면 프로세서에 여유 성능이 생겨서인지 전반적으로 작동이 쾌적해지고 부드러워집니다. 발열도 사실상 없어집니다. 예를 들어 후지 X-T4의 경우 아주 확실한 수준의 차이가 있습니다. 올림푸스 E-M1 mk2의 경우 IBIS 작동을 끄면 카메라 작동이 쾌적해진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미러리스 카메라는 이미지 프로세서 칩이 카메라의 모든 일을 관장하므로 근거가 없는 이야기는 아닐 겁니다.
이런 방식의 사용 습관이 몸에 익숙해지다보니, 카메라를 보고 선택하거나 사용하는 기준도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그리고 어떤 카메라의 표현가능한 방법이나 범위도 확 달라졌습니다. AF가 분명 유용한 기능이긴 하지만, AF가 카메라의 가치를 판단하는 기준까지는 아니라는 생각도 들 정도입니다. 솔직히 AF를 제외하고 사진 결과물이나 가능성, 총 소유 비용(경제성)만 놓고 본다면 가격이 훨씬 비싼 소니 A1보다 니콘 Z7 시리즈가 훨씬 좋습니다. 특히 스튜디오에서 플래시 동조 촬영할때면 니콘이 더 좋습니다. 소니는 고성능 프로세서를 최대한 활용하고 프리뷰 성능을 높이기 위해 조리개를 설정한 값으로 조이고 프리뷰를 보여주는 방식으로 구동되는데 아무래도 이 문제 때문인지 플래시가 터지면서 빛이 급격하게 변할때, 그리고 조리개를 최대한 조이고 팬 포커스 촬영을 할 때 프리뷰 품질이 극도로 나빠집니다. 순간순간 대상을 구분하기 어려운 수준까지도 떨어집니다. 그리고 그 좋은 AF가 이 때 정신을 못 차립니다. 소니 카메라 리뷰하는 분들이 왜 이 중요한 부분을 제대로 이야기 안 하는지 저는 이해가 안 가더라구요. 암튼 니콘은 그렇게 작동 안 하거든요.
그리고 한 가지 다른 기술에 대한 여담이 더 있는데, 액티브 손떨림 방지를 사용하지 않고 (촬영 조건이 가능하다면) 카메라를 삼각대에 거치해 사용하면 굉장한 화질 향상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냥 카메라 블러만 줄어드는 게 아닙니다. 초점 정확도까지 높아집니다. 사람의 몸이 얼마나 흔들리는 존재인지 경악할 수준입니다. 아무리 성능좋은 IBIS, 렌즈 OIS 라고 해도 튼튼한 삼각대를 당할 수 없습니다. 생각해보면 단순한 것이, 어쨌든 카메라가 보간해 만든 이미지와 잘 찍힌 이미지를 비교할 수가 없겠죠. 결국 자유를 위해서 안정성을 희생했고 그것을 보완하는 기술일 뿐인거죠.

댓글
  • 슈완 2022/10/05 09:46

    아마 AF의 신뢰도를 극상으로 원하는 분들은 글쓴분같이 스튜디오가 아니라 야외에서 사용하는 빈도가 현저하게 높기 때문에 AF를 그렇게도 원하는 거일 겁니다.
    저도 여러가지 바디를 운용하고 파나바디에 애착이 높지만 야외에서 원하는 대상을 마음대로 찍기엔 그 찰나의 시간차가 크다는 것을 번번히 느낍니다
    덕분에 A9을 사용하면서 야외에서의 촬영이 재밌어졌고 무겁다 하더라도 큰 백팩을 메면서 가지고 나가는 것은 날아가는 새를, 흘러가는 찰나의 낙엽을 기타 아름답다고 느껴지는 그 순간을 찍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AF를 제외한다면 말하신대로 니콘의 뛰어난 암부 표현이라던가 바디의 신뢰성들이 높은 올림푸스, 색감이 좋은 후지 등등이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조도에 블러가 높은 이미지보다 ISO가 높은 이미지가 더 낫다고 생각하듯, 암부표현이 조금 좋지않고 신뢰도가 떨어지는 카메라라고 할지라도 그 찰나의 순간을 멋스럽게 담아낼 수 있다면 그게 더 낫다고 생각해서 저는 AF가 빠른 카메라를 선택했습니다.
    글쓴 분처럼 어느순간 저도 AF가 필요하지 않는 순간이 오면 좋겠네요 그 때는 또다른 사진의 맛을 느낄 수 있을거 같습니다

    (oHAZDs)

  • dancersdomain 2022/10/05 11:08

    저도 무대에서 무용 공연 촬영할때는 상술했듯 a7c를 씁니다 :) 이건 눈으로 따라잡을 수 없을때가 많으니...:)

    (oHAZDs)

  • 샤울라 2022/10/05 21:20

    미러리스 초창기에는 파나소닉과 올림푸스의 컨트라스트 af 성능을 그 어느 회사도 따라오지 못하던 시절이 있었는데요. 그리 오래된 것 같지도 않은데 세월이 무상하네요.ㅎㅎㅎ
    그 시절에는 af나 손떨방 등 카메라의 기술적 성능보다는 촬영자의 테크닉을 더 중시하는 경향이 있었던 것 같은데 카메라가 워낙 좋아지다보니 af성능에 의존한 촬영이 디폴트가 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이제 출사 나가서 반셔터로 초점면 잡은채로 ftm으로 수동초점 잡거나 구도 이동해서 촬영하면 원시인 보듯 하더라구요.

    (oHAZDs)

  • 내가니꺼 2022/10/05 21:28

    동감합니다...

    (oHAZ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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