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검을 뽑는 자, 왕이 되리라.
가장 유명한 신화이자 상투적인 전설.
야망 있는 자들의 목표이자 어리석은 자들의 꿈.
이 이야기는 온 세계 곳곳에 존재했다네.
이야기로 그치지 않았지.
검은 실존했으니.
당연히 그렇지 않겠나.
나라는 많고 다스릴 사람도 그만큼 많이 필요했겠지.
하지만 그 중에 진짜는 얼마나 있었겠나?
어떤 거? 검?
검 뿐만이 아니지.
검의 이야기는 곧 왕의 이야기이기도 하니.
어떤 검은 날이 끝나지 않았다네.
아무리 당겨도 당겨도 끝을 드러낼 마음이 없었지.
그렇다면 그 앙큼한 무기는 무엇을 요구하는 것일까?
용기? 대담함? 신위?
아니면 아랫도리의 크기?
모를 일일세.
베루나 왕국의 검은 고집이 드셀 뿐만 아니라
아주 고약한 심보를 가지고 있었지.
누군가는 말하지. 왕은 손가락이 필요 없다고.
펜은 서기가 들고 검은 기사가 들며 물건은 왕비가 드는 거라고.
적합한 자에게 떠넘기는 거야말로 왕의 능력이니
본인이 칼을 쥐면 왕이 아닐세.
그러고보니 기억하는가? 검의 밀당에 당한 소년의 이야기를.
그 이야기를 모르는 자가 없을텐데.
그 소년만큼 위대한 성장을 이룬 이가 있었을까!
그 소년만큼 강인하게 전쟁을 마주한 이가 있을까!
검은 소년의 가치를 잘 알아봤지.
힘은 주지 않았지만 기회를 줬던 거야.
그리고 소년은 분노로 화답했지.
검은 분노에서 소년이 완성됨을 느꼈다네.
하지만 늙어버린 왕에게서는 더 이상 지혜와 온정이 남지 않았어.
분노는 광기로, 결단력은 핍박으로.
검은 그에게서 자격을 앗아갔지만 왕은 끝까지 검을 놓지 않았다네.
이미 왕이 된 자에게 자격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아.
알겠나?
검은 소년을 왕으로 만들어준다네.
하지만 왕은 무엇을 만드는가?
검은 그 걸 알지 못하지.
검은 다른 목소리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네.
쇳덩어리는 울리는 것밖에 할 줄 모르니까.
현자와 마술사, 소년을 따라다니는 스승...
이번에는 요정이 직접 검을 바치는 이야기.
이런 이야기도 있었지.
정말 감동적인 이야기야.
왕에게는 언제나 요정의 손길이 함께 했으니까.
호수 다음에는 숲도 빠질 수 없지.
그 둘은 이 세계에서 가장 마법적인 공간이니까.
숲의 요정 세나리투는 왕이 되는 자는 나무를 잘 보살필 필요가 있었다고 느꼈나 보군.
그렇다고 나무를 휘두르는 거랑은 다를텐데.
요정에겐 정치 체제가 없으니까 이해해줘야 할지도.
이건 뭐야?
맙소사 여기 가져올 이야기가 아닌데.
빨리 다음 장으로 넘겨.
어떤 경우는 왕 본인이 검을 남기기도 하지.
본인이 살아있을 때 후계를 남길 만큼 지혜롭지 않았으니
그 눈과 손가락의 역할을 검에게 맡기는거지.
하지만 -영웅들이 말하곤 하는- 그 통칭 '왕 엿먹이기'는
요정만 하는 건 아니었다는 걸 보여줄 뿐이네.
천둥왕은 장난꾸러기였거든.
매사에 진지할 줄을 몰랐지. 마치 바람처럼.
어떨 때는 대놓고 드러내도 모르는 경우도 있지.
그 바보들은 10년간 항해를 지속하면서도
바다왕의 비보를 알아보지 못했으니까.
그거 아나? 다 엿먹으라고 하세.
지금껏 검을 탓하고 있었지만 도구에게 무슨 잘못이 있겠나.
이 모든 장난질을 한 마술사, 마법사 -혹은 요정이든 뭐든간에- 그들을 탓해야겠지.
그리고 도구가 망가져도 화낼 사람은 그들 뿐이고.
왕의 자리는 주어지는 게 아니야. 쟁취하는 것이지.
그리고 말일세, 그 모든 전설과 신화, 그리고 역사.
그 둘의 결말은 큰 차이가 없다네.
검은 피를 부르고 피는 왕좌를 불렀지.
왕좌는 언제나 피에 굶주렸으니까.
하지만 모든 이야기가 끝나고 역사에 어스름이 짙어진 후,
이 세상에 왕이 없는 시대가 도래해도
검은 남아있을 거야.
검이 왕을 고르는 시대가 저물어도
사람은 검을 고를 테니까.
Tanova
2022/08/31 21:36
????: 아 훌륭한 대화수단이었지 그 검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