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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개들 수준
아직도 일본인을 중국인이라고 주장하고 있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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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가 일본인?
뭔 소린지?
윤동주 시인은 일본인이라는 거죠
2022년 자게는 좀 둥글게 하려고 했는데 참 힘드네.
새해부터 개념은 어디에....
ㄷㄷㄷㄷㄷㄷ
"조선민족의 실력과 민족성을 향상해 독립이 가능하게 한다."
2010년에 공개된 윤동주의 재판 판결문에 나온 윤동주의 어록. [6]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조선인 시인이자 독립운동가. 직접적인 무장투쟁은 하지 않았지만,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은 저항시, 그리고 삶의 고뇌에 대한 시로 일본 유학으로 인해 민족의 걸어가야 하는 길과 다른 길을 걷는 것처럼 보이는 자신의 행적을 반성하고 이에 대한 부끄러움[7]을 나타낸 것으로 유명하다.
윤동주를 주로 시로 투쟁한 인물이라고 배우지만 2010년에 세상에 공개된 재판 관련 문서를 살펴보면 놀라운 점이 많다. 윤동주는 당시 악명 높았던 특고 앞에서도, 일제 재판관 앞에서도 당당했다. 부끄러워하던 소극적인 이미지의 시인은 사라지고, 형사 앞에서도 조선 독립에 대한 열망과 대책을 열정적으로 토로하기를 마다하지 않은 저항의 독립투사의 이미지가 선명히 다가온다. 윤동주의 판결문에는 민족의식을 고취하여 독립을 쟁취하기 위한 구체적인 운동 방침을 논의했다는 사실이 적시돼 있다.
아명은 해처럼 빛나라는 의미인 ‘해환(海煥)’이다. 동생인 윤일주[8]는 ‘달환(達煥)’, 갓난아기 때 세상을 떠난 동생은 ‘별환’이다.[9][10]
짧은 생애를 살았지만 특유의 감수성과 삶에 대한 고뇌, 독립에 대한 소망이 서려 있는 작품들로 인해 대한민국 문학사에 큰 기여를 한 문인이다. 더군다나 1930년대부터 일제의 강압과 회유책에 의한 문인들의 절필, 변절이 심화되어 1940년대쯤부터는 다수의 문인들이 절필하거나 친일파로 변절했기 때문에[11], 윤동주는 이육사와 더불어 1940년대를 대표하는 민족시인으로 추앙받는다.[12]
2. 생애[편집]
1917년 12월 30일 중화민국 길림성 화룡현 명동촌(현 중국 지린성 연변 조선족 자치주 룽징시 즈신진 밍둥촌)의 유복한 집안에서 개신교 장로이자 소학교 교사인 아버지 윤영석(尹永錫, 1895. 6. 12 ~ ?)과 어머니 김용(金龍, 1891. 8. 30 ~ ?) 사이의 7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출생 당시, 위의 손윗 누이 둘이 연이어 요절한 후에 태어난 아이라 집안의 기대가 남달랐다고 한다.[13] 명동촌[14]은 윤동주의 생애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장소인데, 그 마을의 실질적인 정신적 리더는 목사인 김약연이었다. 그는 윤동주의 외삼촌이기도 하다. 윤동주는 일제에 맞서 저항하기 위해 민족의 지도자를 신앙으로 양육한 외숙부의 영향을 깊이 받고 자랐다. 항일과 통일 운동으로 유명한 민족주의자 문익환 목사도 바로 이 명동촌 출신이며, 윤동주와 함께 자랐다. 참고로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했던 안중근 의사도 거사전 이 명동촌에서 사격 연습을 하며 마음을 가다듬었다고 알려져 있다.
원래 무식한건 답이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