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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2호선 내선순환 열차에서 있었던 일

사건이 일어난건 오늘 12시쯤으로 기억한다.


난 평소처럼 새벽에 아버지 출근하는걸 도와드리고 앓고있는 지병땜시 예약되어 있던 병원까지 가야 했는데


4시간밖에 못자고 새벽부터 아부지 부축해서 만원지하철을 탄데다 대형병원은 알다시피 30분 이상 진료 지연이 생기는건 아무일도 아니었음


덕분에 너무 피곤해서 죽을맛이었음...


그래도 아부지 주간근무셔서 주간에는 내가 쉴수 있어서 몇달만에 바람쐴겸 12시가 가까운 오전 서초역에서 내선순환 열차를 타고 홍대쪽으로 향했어


사람이 많은곳을 찾아간게 아니라 작년 2월 코로나로 인해 마지막으로 성우 내한공연이 있던 자리에 함 찾아가 보고 싶어서 지하철을 탔지


평소와는 다를게 없었는데... 분명 다를게 없었는데 4번째칸에 타서 그랬던걸까


누군가가 내가 메고있던 가방을 툭 치길래 돌아봤더니 어느 여자애가 중심을 못잡고 쓰러져버렸더라고


그냥 지하철 흔들려서 쓰러졌다기에는 너무 부자연스러웠는데


아니나 다를까 그 애는 간질을 일으킨거였음...


내가 그 애가 간질인지 알았냐면 나도 간질로 인해 상당히 고통받았으니깐...


순간 난 머리속이 하얗게 변해버렸어


다들 그러잖아 몸은 움직여야 하는데 뇌는 당황해서 아무것도 못하겠는거


그런데 그 애가 쓰러졌을때 그 칸에 있던 사람들이 누가 말한것도 아닌데 열명정도가 일어서서 도움을 주기 시작함


내 바로 옆에 있었던 아저씨는 바로 119에 전화를 걸었고 내 뒤에 있던 나이드신 아주머니와 어느 여성분이 적극적으로 의식을 확인하시더라


어느분은 그 아이가 떨어트린 핸드폰이랑 카드를 주섬주섬 모아 그 아이 주머니에 넣어주고


그때 정신이 깨더라고 이러고 내가 가만히 있으면 도와주지 않으면 지금 간질 일으킨 애는 죽는다


마침 열차는 방배->사당을 향해 가고 있었고 아무래도 계속 이동하다보면 119에서 못올께 뻔하니 아주머니랑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단 같이 내리는거에 동의를 했어


정신차린 나는 사당역 문이 열리자마자 앞서서 경련을 일으키던 여자애를 다른분들과 함게 들어올려 승강장으로 옮겼는데


근데 하필 겨울이다 보니 내린 사당 역사 안이 추웠거든 그래서 같이 내리신분중 한분이 바로 외투를 덮어서 최대한 체온 보존시킬려고 하셨고...


119에 신고하신분은 그 아이가 있는곳 위치를 계속 설명하시고 계셨지


그러다 계속 눈을 뒤집고 숨을 쉬기 힘들어 하길래 주도하시던 아주머니 말대로 옆으로 살짝 기울여서 목에 있던 이물질을 제거를 했어


시국이 시국이다 보니 코로나로 위험한데 그 아주머니는 사람이 먼저라고 일단 숨을 쉴수 있게 적극적으로 입에 물고잇던 이물질을 제거하시더라


난 그저 그 애가 경련으로 뒤틀리는거 막는다고 상체를 고정시키느라 바빴고 다른분들은 계속 주물러서 혈액순환되게 하셨고


그렇게 시간이 얼마쯤 지났을까


여자애 의식이 돌아오더니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라고


의식이 완전하게 돌아온건 아닌지 비틀비틀거리고 갈피를 못잪길래 아주머니와 다른 사람들이 점퍼랑 챙겨서 의자에 가서 앉히시면서


아주머니는 아픈건 부끄러운게 아니다 우리들이 있으니 괜찮다 하시면서 마스크 써야하니 다른분들한테 마스크 빌려달라고 하셨고


다른 한분은 계속 옆에서 안아주시면서 괜찮다고 다독이시더라고


같이 내린분들중 아무래도 여분 마스크가 없는 사람이 많았는데 같이 내린 회사원분이 마스크 있다고 하시면서 나눠주시더라고


그사이 119에 전화한 아저씨는 이제 금방 올거라고 괜찮을거라고 하셨고


계속 다독이시던분은 이제 괜찮으니 본인이 119에 인계하겠다 하셨어


아주머니는 아픈건 죄가 아니니 부끄러워 하지 말고 꼭 치료받으라고 하시고 다른곳으로 가셨고


같이 내렸던 사람들은 그 아이가 진정되고 119가 도착한다 하니 서로 아무일 없다는듯이 들어오는 열차를 타고 뿔뿔히 흩어졌어


그저 지나가던 사람 한명이 아파서 쓰러졌던것 뿐인데


십수명의 사람들이 어떻게든 그 사람 살리겠다고 달려들고


상태가 많이 호전되고 119에 접수되어 인계된다 하니 다들 그 상황에 안도하고 서로 가던길을 가는걸 보고


아직... 세상은 따뜻하다는걸 느꼈어


오늘 그 시각 2호선 내선순환 열차 4번째 칸에 타고있던 모든 사람은 영웅이라고 생각해



번외)


나는 홍대입구역으로 가면서 도움을 주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내리는걸 봤지만...


사실 나는 그 아픈애한테 큰 도움이 되지 못했나 하고 자괴감이 생겼었어


나도 그러한 질병때문에 고통받았는데 같은 질병을 앓고있는 사람에게 큰 도움이 되지 못했으니깐...


어느 사람은 은 119에 신고하고 온몸에 피 통하게 사지 마사지 하는 사람도 있었고 줍지 않게 자신의 외투를 덮어주는 사람


그 아이가 떨어트린 물건을 수습해 주머니에 넣어주던 사람, 괜찮다며 다독여주는 사람, 남아서 119 올때까지 기다리는 사람, 의식이 돌아오고 새 마스크를 건내주던 사람


그리고 그 아이가 숨을 쉴수 있게 고여있던 이물질을 닦아준 사람...


하지만 난 실질적으로 그저 그 아이를 들어서 역 승강장으로 옮기고 이물질을 뱉어내는 동안 잡아준것 말고는 없었으니깐...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 홍대입구역에 도착해서 화장실을 갔는데 사람들의 시선이 이상하더라고 알고보니 내 가슴팍에는 엄청나게 많은 털들이 붙어있던거야


그아이를 옮길때 묻은거지...


어떻게든 털도 털어내고 내 정신을 추스르고 일정있는데로 움직였는데


충격이 컸던 모양인지 홍대에서 볼일이 끝나고 합정역을 가야했는데 길을 잘못들어 상수역까지 가버리고 아주 난리도 아니었지


결국 일도 제대로 처리 못하고 집에 돌아온 다음 아버지 모시려 아버지 직장에 갔어


돌아오면서 아버지에게 이러한 일이 있다 했더니 잘 했다고 하시더라... 무서웠겠지만 내 행동으로 사람 하나가 살은거라고


난 더 해주지 못해 죄책감이 생기고 그것 때문에 자괴감에 빠졌는데


그 행동이 옳았다고 하니깐 그때 눈물이 터지더라...


긴글 읽어줘서 고마워...

댓글

  • 스네이크☆박
    2021/12/16 22:52

    아니야 넌 최선을 다했어

    (4lz0hs)


  • 감귤4호
    2021/12/16 22:55

    네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여기길 바래

    (4lz0hs)


  • gpu맛 맛스타
    2021/12/16 22:55

    언론에도 안나오는 대단한 일들이 많이 있을텐데,
    넌 그 한가운데서 열심히 했네.. 수고했다.

    (4lz0hs)


  • 직장돌리기
    2021/12/16 22:56

    그자리에 네가 있었기때문에 같이 했기때문에 넌 잘한거야

    (4lz0hs)


  • 카나데쟝
    2021/12/16 23:14

    너는 충분히 잘해낸 거야.

    (4lz0hs)


  • 블랙세이
    2021/12/16 23:23

    넌 잘한거야. 괜찮아.

    (4lz0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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