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렵군요... "
노인의 표정은 어렵다. 정말 그 말대로 두려운 것인지, 혹은 그냥 하는 말인지, 얼굴만 봐서는 알 수가 없다.
하지만 나는 노인이 정말로 두려워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병원 침대에 누워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에? 아니다.
내가 그에게 가져다줄 한 장의 서류 때문이었다.
" 친자확인 결과가 나왔습니다. "
" ... "
노인은 내 손에 들린 서류를 뚫어져라 바라보았지만, 선뜻 손을 내밀지 않았다.
나도 서류를 내밀지 않았다.
지독한 약물치료로 비쩍 마른 노인의 몰골은 나를 조심스럽게 했다.
심부름센터 일을 하면서 수많은 고객을 만났지만, 죽음을 앞둔 고객은 처음이었다.
죽기 전에 친자확인 검사를 하는 사람의 심정은 어떤 심정일까?
나는 노인의 사연이 궁금했다. 당장 서류를 건네고 돌아가면 그만인 것을, 이렇게 기다린다는 것이 그랬다.
그걸 아는지, 노인은 마침 입을 열었다.
" 궁금하십니까? 이런 다 늙은이가 왜 친자확인을 하는지... "
" ...솔직히 그렇습니다. "
노인은 얼핏 웃음 같은 걸 보이더니,
" 죽을 때가 되니까 이런 생각이 듭디다. 죽기 전이라면 알아도 괜찮지 않을까? "
무슨 일인지도 모르지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죽기 전이라면 뭐든 괜찮지 않겠는가?
" 40년 전에...애엄마는 성폭O으로 생긴 아이를 낳을 순 없다며, 아이를 지우려 했었습니다. "
" 아...! "
" 누구의 애인지 확신할 수 없다는 이유였지요.. 저는 반대했습니다. 확률은 모르는 일이었고, 적어도 당신의 아이인 건 확실하니 꼭 낳아야 한다고 설득했습니다. 그렇게 아들이 태어나고 지난 40년간... 저는 철석같이 내 아이라 믿었습니다.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그런 생각을 해선 안 된다며 스스로를 다잡았습니다. "
나는 단숨에 노인이 안타까워졌다. 그의 40년이 어땠을지 자동으로 그려졌다.
" 하지만 힘들었습니다.. 커갈수록 나를 닮지 않는 아이를 볼 때마다, 가슴 속에서 불쑥불쑥 악마가 나타나 속삭였습니다. 저 애는 네 아들이 아니라고! 너는 헛짓거리를 하고 있다고! "
" ... "
" 그래도 저는 저를 다잡았습니다. 아내를 많이 닮아서 그럴 수 있다, 혈액형도 아내를 따른 혈액형이다, 발가락 어디 하나라도 나를 닮았을 것이다... 그런 마음으로 아이를 사랑했습니다. 일부러 똑같은 옷과 신발들을 선물하고, 헤어스타일도 똑같이 맞췄습니다. 누굴 만나더라도 아들 사진을 보여주며 내 아들이라며 자랑하고 다녔습니다. 저는 그렇게 내 안에 있는 악마를 죽이고, 40년간 내 아들이라 믿고 살아왔습니다. "
점점 말이 격해지는 노인의 얼굴엔, 지난 40년의 세월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 그런데 죽을 때가 되니,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죽기 전에는 확인해봐도 괜찮지 않을까? "
" ... "
" 이런 제 생각이 쓰레기인 겁니까? 이제 와서 그걸 확인하려는 제가 나쁜 아버지인 겁니까? "
" 아! 아니,아니요. 아닙니다. 저라도-... 어-음... "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쉽게 성의 없는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그 사이 노인은 고개를 흔들었다.
" 결과는 상관없습니다. 만약 내 친자가 아니라고 해도, 그게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
" 예. 예 그렇죠. 예. "
" 저는 다만...궁금할 뿐입니다. TV 드라마의 결말이 궁금하듯이, 야구 경기의 결과가 궁금하듯이, 그렇게 궁금할 뿐입니다. 그 서류 안의 결과는 제게 아무런 영향도 주지 않을 겁니다. 만약 이대로 확인하지 않아도 상관없습니다. 저는 단지 단순한 호기심을 채우고 싶을 뿐입니다. "
노인은 스스로에게 변명이라도 하듯이 주절거렸다. 나는 그런 노인을 보며 크게 호응했다.
" 예 그렇죠. 이 서류를 확인한다고 아들을 배신하는 게 아닙니다. 누구에게 손가락질당할 행동도 아니고요. 그냥 단순히 궁금증을 풀어보는, 대수롭지 않은 일일 뿐입니다. "
" ... "
노인은 입을 다물고 서류를 바라보았다. 나는 더 말하지 않고 가만히 기다려주었다.
노인의 얼굴에서 나는 노인의 첫말을 떠올렸다. 두렵다. 노인은 지금 두렵다.
" ... "
곧, 노인은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 대신 좀...봐주시겠습니까? 제 눈은 지금, 글자 하나도 제대로 읽지 못할 지경입니다. "
" ...예 알겠습니다. "
나는 노인 대신 서류 봉투를 찢었다. 급하게 확인하진 않았다. 나로서도 떨리는 일이었다.
노인의 시선은 온통 내게 집중되어 있었다.
내가 담배꽁초와 머리카락이 담긴 지퍼백을 꺼내어 옆에 두는 모습, 서류만 빼내고 봉투를 옆에 내려놓는 모습, 친자확인서를 한 장 한 장 넘기며 확인하는 모습을, 노인은 숨도 안 쉬는 것처럼 바라보았다.
" ... "
나는 곧, 은은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 99.9%입니다. "
" 그건...? "
" 선생님의 친자식이 맞습니다. "
" 아...! 아... 아아아아-! "
노인의 눈시울이 순식간에 붉어졌다. 금세 눈물을 흘리며, 누구에게 하는 것인지도 모를 감사 인사를 연신 되뇌었다.
" 감사합니다...감사합니다...감사합니다...! "
나는 축하드린다는 말을 하려다, 말았다. 당연한 일이니까. 노인의 40년 세월에 당연한 결과였을 뿐이니까.
대신, 고개 숙여 인사드렸다.
" 그럼 전... 쉬십시오. "
" 아! 고맙습니다...! "
나는 빙긋 웃어 보이며, 발을 돌려 병실 밖을 나섰다.
손에 서류를 들고서.
" ... "
나는 서류를 잘게 찢으며 생각했다.
이게 잘하는 짓일까? 일개 심부름센터의 직원이 관여할 범위를 벗어난 행위였을까? 옳은 행동이었을까? 진실을 알려주는 게 맞았을까?
판단할 순 없었지만, 후회는 없었다. 노인의 40년 세월은 보답 받아야만 했다. 비록 그것이 거짓일지라도...
하지만 서류를 찢어버린 건 후회해야 했다. 그날 저녁, 노인이 내게 연락해온 것이다.
나는 내 거짓말이 들킬까 봐 두근거렸지만, 다행히도 서류를 다시 확인해보자는 말은 아니었다.
[ ...부탁드립니다. ]
" 예예. 얼마든지요. "
노인은 아들에게 친자확인서를 보여주길 원했고, 그렇다면 아들에게 사정을 설명할 여지가 있었다. 그도 노인의 임종을 위해 내 거짓말에 맞춰주리라.
나는 새로 발급받은 서류를 들고, 노인이 말해준 주소로 찾아가 벨을 눌렀다.
문을 열고 나온 사내는 확실히, 노인과 닮지 않아서 나를 씁쓸하게 했다.
" 김남우 씨? "
" 예~ 무슨 일이시죠? "
" 아버님께서 이걸 전해달라고 하셨습니다. "
" 네? "
그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서류를 열어보더니,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 야이 씹! 너 이 새끼!! 뭐하는 새끼야?! 이걸 왜 검사했어 이 쌔끼야!! "
" 허락 없이 검사를 한 건 죄송합니다만, 아버님의 요청으로-... "
나는 변명을 끝낼 수 없었다. 그의 다음 외침이 나를 멍청하게 만들었다.
" 누가 아버지래?! 그 강O범 새끼가 왜 내 아버지야!! "
일순, 머리가 돌아가지 않았다. 무슨 소리지? 무슨 소리야? 무슨 말이야??
" 그 미친 새끼! 평생 우리 가족을 괴롭히더니, 이따위 짓거리를 해?! 어딨어 그 새끼?! 어?! 어딨냐고! 이젠 진짜 죽여 버릴 거야 그 새끼!! "
" 무슨 일인데 그러니? "
" 왜 그러냐? "
그의 등 뒤로 노부부가 다가왔다. 가족. 완벽한 가족.
그럼 병실의 노인은? 내게 했던 그 말들은? 그 눈물은?? 40년 전의 성폭O범은 그럼??
" 아..아아...! "
내가 무슨 짓을 저지른 걸까? 40년간 미친 망상에 사로잡혀 있던 싸이코에게, 나는 뭐라고 말을 해주었단 말인가?
뒤늦게 찾아간 병실의 그는, 이미 죽어 있었다.
내 덕택에, 역시 자신의 친아들이 맞았다는 증명을 받고서, 자신의 인생이 옳았다는 증명을 받고서, 편안한 안식을 맞이해 있었다.
어마어마한 죄책감이 나를 감쌌다. 나는 후회했다. 내가 만약 진실을 말했다면. 적어도 그랬다면...
선의의 거짓말이 항상 옳은가에 대해 꼬아보다가...요따위 이야기가; 흐하 참...나원...
항상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하세요!
하지만 힘들었습니다.. 커갈수록 나를 닮지 않는 아이를 볼 때마다, 가슴 속에서 불쑥불쑥 악마가 나타나 속삭였습니다. 저 애는 네 아들이 아니라고! 너는 헛짓거리를 하고 있다고! "
스토커냐..
으어....잘봤습니다 ㄷㄷ
선의에의해 거짓말을했지만 저 경우에는 그렇지못하겠네요...
와 재밌다... ㅠ.ㅠ.
진짜 이거 웹툰이나 미니드라마로 진출해야 하는거 아님?
와.. 진짜 대단하네요
목에 뭔가 턱 걸린듯한 찝찝하고 역겨운 느낌이네요 으
짧고 강하다.......
그 더러운 기분이 그대로 느껴진다는건
글이 훌륭하단거겠죠
이건 정말 짧고 강하네요 ㅜ.ㅜ
길게 가네요 여운이....
읽어가면서 대략 흐름을 이해한다 생각했는데 반전이 있었네요. 역시 작가님의 상상력은 정말 따라갈 수가 없네요. 매번 좋은 글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정말 좋은 글 감사한 마음으로 잘 읽고 있습니다
삶에 지쳐지내지만
복날님 글이 정말 큰 휴식과 위로를 줍니다
감사합니다
우와 진짜 멋있어요 반전 짱입니다
대박 ~~ ㅋㅋ
처음 몰입을 방해한 건 현실에서 저런일이 일어난다면 친자 확인 안합니다 하려면 진작했겠지요 다 키우고서는 절대 안합니다
자기부정이되고 또 기르는 정이 낳는정보다 훨씬 크기때문에 이미 내 자식인거죠~~
그래서 반전이 대박이였어요
윽 소름돋네요
근데 사실대로 얘기해서 저 강O범이 허탈에 빠진 채 죽었다면, 원래 가족에게 연락해서 확인할 일도 없었고, 그렇다면 저 의사는 평생 오해에 기반한 더더욱 큰 죄책감으로 살았겠죠. 의사 입장에서는 차라리 저게 나은듯. 원래 가족들도 아직 그 강O범이 편하게 죽었다는 사실은 모르는 것 같으니 허탈에 빠진 체 죽었다고 잘 둘러대면 그놈이 결국 세상 하직했다며 안심할 것 같고....
소설의 기본은 참신한 스토리라고 생각하는데
이건 뭐 필력도 따라주시고 전혀 예상못한 결말까지
그냥 짱드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