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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헬조선의 부동산거품은 왜 꺼질 수 없었나

“부동산 투기는 이제 끝났다. 부동산 불패의 잘못된 믿음을 깨뜨리고 거품을 제거하여 시장을 반드시 정상화시키겠다.”
참여정부 중반인 2005년 여름 한덕수 경제부총리가 기자회견에서 던진 이 말은 일순간 무주택 서민의 가슴을 뻥 뚫어줬다. 바로 ‘8·31 부동산 대책’ 발표였다. 여기에는 땅은 최대한 공유해야 한다는 참여정부의 ‘토지공개념’ 철학이 녹아 있었다. 이후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국토교통부가 공개한 민유지의 공시지가(재산세 등 과세기준)는 2015년 말 4500조원, 한국은행 추계로는 4830조원이지만,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추산한 바로는 6704조원이다. 공시지가가 실제 가치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아서다.
땅값 상승을 정권별로 보면 노무현 정부에서 3123조원이 상승해 가장 많이 올랐고, 임기 동안 연평균 상승액도 625조원으로 전체 평균(연 131조원)의 약 5배나 됐다고 경실련은 14일 밝혔다. 노무현 정부 다음으로 김대중 정부 시절 243조원씩 총 1214조원 땅값이 올랐다. 연평균 땅값이 가장 적게 오른 때는 이명박 정부로 연평균 6000억원, 총 3조원 상승에 그쳤다. 그러다 2014년 8월 규제 완화에 나선 박근혜 정부에서 연평균 59조원씩 178조원 땅값이 뛰었다. 또 국민들이 땀 흘려 생산한 가치(국내총생산·GDP)는 1964년 7000억원이고, 땅값은 2.3배 높은 1조원 많은 수준이었다. GDP는 2015년 1559조원으로 상승했다. 이는 같은 기간 땅값 상승액의 5분의 1 수준이다.
정권별 땅값 변화는 국내외 경제상황에다 정책의 영향도 많이 받은 것으로 해석된다. 경실련은 “오히려 박정희·전두환 정부는 강력한 분양가상한제로 건설사 이윤을 제한해 서민들을 위한 저렴한 주택을 공급했다”고 밝혔다. 서울 강남의 반포주공아파트를 3.3㎡당 70만원에 분양한 게 일례다. 노태우 정부 때는 부동산 투기 몸살로 땅값이 상승했으나 ‘토지공개념’(택지소유상한제, 토지초과이득세, 개발이익환수제)을 도입한 데 의미가 있다.
땅값, 집값 거품을 급격히 키운 건 이른바 ‘민주정부’ 때였다. 김대중 정부는 1997년 말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 대거 규제 완화를 추진했다. 선분양 때 분양가 자율화 허용, 그린벨트 해제 등이 대표적이다. ‘부동산과의 전쟁’을 선포했던 참여정부에서 땅값이 폭등한 것도 아이로니컬하다. 당시 상황을 지켜본 정동영 국민의당 의원실 김헌동 보좌관은 “시민사회의 분양원가 공개 요구 등은 거절하며 미봉책만 발표했다. 여기에 국토균형발전을 내세워 혁신도시, 기업도시, 골프장 건설 등 무분별한 개발사업을 전국에서 벌였다”고 지적했다. ‘집값을 안정시키겠다’며 추진한 판교, 송파, 검단 등의 신도시에서 고분양 아파트가 속출하며 주변 집값까지 끌어올린 결과를 초래했다.
경실련은 “정부가 후분양제 도입,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 도입, 종합부동산세 도입 등을 추진했으나 분양원가 공개 같은 근본적인 부동산 안정책을 도외시한 채 추진돼 효과는 미흡할 수밖에 없었다”고 평했다.
다만 노무현 정부의 부동산 가격 급등을 놓고 상반된 해석도 있다. 일단 경제호황 분위기에서 땅값, 집값이 오르는 건 불가피했다는 인식이 적잖다. 이들은 이명박 정부 때 집값이 떨어진 것도 미국발 금융위기 등 영향으로 경제가 나빠진 데 따른 결과라고 본다. 또한 공시지가를 현실화하면서 가격이 오른 측면도 제기된다.
경기 영향은 받았겠지만 과연 이것이 땅값, 집값 폭등의 주요인일까. 당장 박근혜 정부 들어 부동산 가격 상승은 경제가 침체되는 상황에서 나타난 점에서 경기와 동조된다는 설명에는 한계가 있다. 고도성장기 박정희·전두환 정권에서 땅값 상승률이 상대적으로 낮았던 것도 설명이 안된다.
진짜 문제는 투기 수요다. 이를 제대로, 특히 제때에 억제시키지 못하면 집값, 땅값은 걷잡을 수 없이 치솟고 만다. 조명래 단국대 교수는 “노무현 정부 때 부동산 가격 급등의 원인은 공급 부족이 아니라 투기 수요 때문”이라며 “분양권 전매제한 등을 통해 강남 재건축을 제대로 견제하지 못한 건 잘못이다. 여론의 반발 아래서도 그것만 잡았어도 달라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성달 경실련 부동산감시팀장은 “LTV, DTI 규제가 필요하지만 본질적인 것은 아니다. 종부세 같은 세금 규제로 사회적 갈등에 부딪혀 효과는 별로 보지 못했다”며 “무엇보다 투기 수요를 억제하는 분양가상한제, 분양원가 공개, 분양권 전매제한 같은 조치가 더 급선무였는데 노무현 정부가 오판했다”고 지적했다. 김 팀장은 “예컨대 초과이익환수제 같은 경우 반발은 컸지만 당시 거둬들인 것은 수억원에 그쳤다. 종부세도 ‘세금폭탄’이란 갈등에 비해 효과는 적었다”고 말했다. 세금을 걷어서 환수하기 전에 분양 규제로 가격 급등을 막는 게 더 급하고 효과적이었다는 얘기다.
김대중 정부 때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비정규직 노동자가 대량 양산됐고 이는 현재 사회 양극화의 주범으로 작용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노동·교육 문제와 함께 서민의 삶을 옥죄는 주거 문제도 당시 정책 실패에서 비롯됐다는 평가가 적잖다. 경제 살리기라는 명분 아래 부동산 취득세·등록세·양도소득세 감면, 분양가 자율화에 분양권 전매 허용 등 각종 부동산 경기 부양책을 쏟아냈기 때문이다.
경제학계 원로인 이준구 서울대 명예교수는 최근 한국경제학회지 ‘한국경제포럼’에 게재한 논문에서 정책 후퇴를 비판했다. 이 교수는 “부동산 투기 억제의 기조를 단숨에 뒤집는 대대적 변화였지만, 외환위기로 인해 죽어가는 경제를 살리기 위한 고육책이라는 인식 때문에 별다른 저항에 직면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노무현 정부의 주택 가격 이상 급등의 씨앗은 이미 김대중 정부가 뿌리고 간 것이었다”고 지적했다. 두 차례 ‘민주정부’의 뼈아픈 경험이다.
‘2017년 3월10일 오전 11시21분.’ 촛불 시민혁명을 이어받은 헌법재판소 결정으로 한국 민주주의에 새 역사가 각인된 시각이다. 다만 냉정히 보면 이는 1987년 민주화 체제를 겨우 되돌리는 작업의 하나일 뿐이다. 실질적 민주화를 향한 주요 이슈인 땅값, 집값 문제는 차기 정부에 ‘재시험 과제’로 넘겨졌다.
*투기 수요를 억제하는 분양가상한제, 분양원가 공개, 분양권 전매제한 같은 조치가 헬조선에는 더 효과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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