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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로 살면서 경험한 썰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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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나 기다리는분들이 있을까 싶지만 오랜만에 쓰게 되었네요.


개인사정이 생겨 요며칠 좀 바빴습니다.


복잡한 가운데서도 컴퓨터 앞에 앉아서 과거를 회상하면 참 행복합니다. 그래서 쓰는거 같기도 하네요.



제 이야기를 다룬만큼 읽기전용으로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동의없는 퍼나르기에 강력 대응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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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녀의 과거를 묻지마세요



그녀가 퇴사 했다. 그녀에게 2년간의 병원 생활이 어떠했냐고 묻자 눈물의 연속이었다고 말했다. 사실 내 앞에서 울었던건 (내가 남자친구이기 이전이었던) 직원식당에서 운 것 밖에 없었다. 외유내강의 그녀는 그토록 본인의 가슴팍을 치면서 버텨왔다. 

나또한 인턴생활 내내 오줌 똥 핏물의 연속이었기에 대학병원은 분비물과의 전쟁이구나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오랜만에 여유를 찾고 여느 아가씨처럼 예쁜 카페도 다니고 친구들과 만나 즐겁게 놀았다. 그모습이 보기 좋았다. 대학병원에 있을때도 그녀는 나를 보고 웃고 있었지만 웃음가면 뒤로 항상 슬픔이 보였다. 슬픔을 감추려고 힘들게 웃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그랬기에 이제라도 웃음을 찾은 그녀가 보기 좋았다.


사실 그녀에 대해 설명하지 않은것이 있다. 나와 그녀의 나이차이는 한살. 대개 간호전문대를 졸업하고 대학병원에 취직하면 23~25세쯤이다. 그녀는 동기들에 비해 2년정도 늦게 입학했다. 

그녀는 고등학교시절 발레리나를 꿈꾸던 미래의 무용수였다. 그녀말에 의하면 촉망받는 학생이었다고 한다. 그 꿈을 이루기위해 국내의 무용학과를 진학하는 대신 프랑스 파리로 유학을 떠났다. 파리의 유수의 무용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1년간 미친듯이 훈련하고 오디션 을 봤다. 동양인을 무시하는 분위기와 낯선 공간속에서 그녀는 살아남기위해 발버둥 쳤다. 그 결과 감사하게도 한 학교에 합격하여 입학을 앞두고 있었다.

그러나 무리했던걸까? 그녀는 발목부상을 당하게 된다 (발목 외측측부인대 손상 및 골절). 그녀가 흘렸던 땀과 눈물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는 순간이었다. 그녀는 걸을수 조차 없었지만 아파할 수도 없었다. 남들과 다르게 어렵게 유학까지와 이제 한걸음 내딛었을뿐인데 발레 인생이 끝날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얼마나 절망적이었을까?


그녀는 결국 1년간의 프랑스 유학생활을 정리하고 국내로 복귀했고, 더이상 무용수로의 길을 가지 않기로 했다. 몇달간 방황을 했지만 이내 그녀는 마음을 고쳐잡았다. 그리고 그때 생각한 길이 간호사로서의 길이었다. 

간호사가 되기로 마음먹은 첫 이유는 간단했다. 운동만 한 사람이 다른 전공을 선택했을때 그나마 입학하기가 쉬울것 같다고 생각했단다. 맞다. 처음부터 누구나 원대한 꿈을 가지고 시작하는건 아니다. 나같으면 좀더 부풀려서 얘기했을텐데 담백하게 말하는 그녀에게 더 연민을 느꼈다.


그런 이유로 그녀는 남들보다 늦게 간호사가 되었다. 그러나 그녀는 누구보다 성실히 그리고 악바리처럼 일했다. 발레 꿈나무시절 매일 체중과 몸 관리로 스스로와의 싸움에 익숙했던 덕분인지 겉으로는 잘 적응하는것 같았다. 그러나 그녀가 눈물의 연속이었다고 말하는순간 마음이 무너지는것 같았다. 그동안 힘이 돼 주지 못해 미안했다. 그녀는 나보다 어렸지만 때때로 어른스러웠다. 펜대 잡고 책상에서 공부만 하던 나와 다르게 스스로 미래를 위해 노력한 과거덕분인지 훨씬 늠름했고 용감했다. 나는 그런 훈장같은 모습에 속아 그녀의 속사정을 알지 못했다. 나는 연신 미안하다고 말했고 그녀는 연신 웃으며 오빠가 귀엽다며 나를 눌려댔다. 그녀는 속상한 이야기를 하는 도중에도 계속 웃고있었다. 그녀의 웃음만이 아직 기억나는 이유이다.






2. 공무원


프랑스 파리. 그녀에게 어쩌면 지옥같았을 그 곳. 그러나 흔쾌히 가고싶다고 했고 떠나게 되었다. 나는 여태껏 가장 멀리 가본 곳이 중국 베이징이었다. 유럽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프랑스 파리. 그 단순한 이유로 파리에 가자고 했고 나는 덕분에 그녀의 과거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유럽하면 역시 스페인이지' 하고 바르셀로나를 갔어야 했다... 이놈의 손아... 왜 파리를 가자고 한거니...


그녀가 파리에서 해보고 싶은게 있다고 했다. 파리에 있을 시절엔 훈련에 바빠 정작 여행을 해본적이 없단다. 그래서 예쁜 카페도 가보고 싶고 라뒤레 마카롱도 먹어보고 싶단다. 체중관리 때문에 훈련장 주위 라뒤레를 그저 지나쳐만 다녔다는 그녀. 내가 그 라뒤레에 간다면 가게에 있는 모든 마카롱을 사주고 말겠다 다짐했다.


공중보건의가 해외여행을 가기 위해선 두번의 허가가 필요하다. 첫째는 지자체가 해외여행에 대해 보증해준다는 허가. 둘째는 그 허가서를 바탕으로 미필자들은 다 아는 국외여행허가서를 병무청에서 받는다.

그러나 나는 몇주전 도감사에서 경고를 받았고 1년간 해외여행이 금지된 상태였다. 그 사실을 모르는바 아니었으나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지자체에 허가서를 제출했다. 역시나 전화가 걸려왔다. 진료실 전화기로 전화가 온다는건 좋지 않은 징조였다. 아픈사람이거나 민원넣는 사람이거나 아니면 이번처럼 너 해외여행 못가 하는 사람이거나...


나는 정말 억울했다. 정당하게 받고 나간 오프기간에 생긴 응급환자를 보지 않았다는 이유로 내게 경고를 내리는건 말도 안 되는일이었다. 지자체는 의사를 충원해주겠다는 말만 반복했지 3달이 지나도록 충원하지 않았다. 24시간 내내 일하도록 강요하면서 당직비는 한푼주지 않았고 정작 쉬고 있을때 발생한 응급상황에 대해 내 책임이라며 징계를 내렸다. 

방법이 없을까 고민했다. 알고보니 도감사의 감사 결과에 대해 징계를 내리는건 보건소장의 소관이었다. 그래서 보건소장을 설득하기로 했다. 아까운 휴가 하루를 쓰고 보건소에 갔다. 그리고 나는 설득하기 위한 많은 증거자료를 가져갔다


리스트1) 정당하게 써야할 휴가에 대해 지자체가 결재해준 결재내역

리스트2) 초과근무 및 당직 근무 기록 그리고 당직비 미지급 내역

리스트3) 응급환자 발생 당시 전화통화로 적극적으로 응급환자 이송에 가담했다는 통화내역

리스트4) 농어촌의료특별법에 따라 연륙되지 않는 섬에는 최소 의사 2인을 배치해야한다는 법조항


보건소장실을 두드렸다. 결재라인할때만 보던 이름이 명패에 쓰여 책상에 놓여있었다. 

섬에서 수고하신다며 내게 악수를 청했다. 쇼파에 앉았다.

나는 지체없이 바로 준비한 자료를 꺼내 보였다.


"소장님. 제가 받은 징계내역에 동의하기 힘듭니다. 그런 이유로 도장을 찍지않았는데 도청에서는 제 의사는 불필요하다며 바로 징계처리를 해버렸습니다. 일반 공무원에게 경고 징계는 아무렇지 않을지 모르나 군복무를 병행하고있는 저에겐 꽤 큰 징계입니다. 더군다나 이 징계는 말도 안됩니다. 소장님께서 잘 판단하셔서 재고해주셨으면 합니다"


"선생님 고생하시는거 잘 압니다. 그러나 상위기관에서 내려온 징계에 대해 제가 어찌할 방법이 없습니다"


" 아니 보건소에서 의사를 한명 더 파견해줘야하는걸 제가 혼자 일하며 버티고 있는데 부당하게 당한 징계에 대해서도 도와주지 못하시는건가요?"


"선생님. 그부분은 지금도 채용하려 노력하고 있는데 아시다시피 섬으로 들어가려는 선생님이 없어서... 어쩔수가 없네요"


빡돌았다. 정말 화가났다. 내가 힘들게 일하고 있다고 해놓고선 정작 해주는게 없었다. 위로금이라도 10만원을 줬다면 차라리 그 족쇄에 반대편 발 한번 더묶고 섬에서 일할 생각도 있었다. 그런데 보건소장은 그 족쇄로 내 머리를 내리쳤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저는 현역입대를 감수하고 지금부터 근무하지 않겠습니다"


"네?"


옳다구나. 당황하기 시작했다. 

그렇다 겨우 의사 한명으로 돌아가는 섬에 그나마 있던 선생마저 도망간다면 보건소장이 그토록 싫어하는 상황이 올게 뻔했다. 사실 가기전부터 이 상황을 염두해두고 있었다. 공무원들이 가장 싫어하는것은 민원발생이다. 내가 섬을 나가는것만큼 가장 큰 민원상황도 없을 것이다. 아차 싶었는지 보건소장이 따라나왔다


"선생님. 여태껏 잘해주시고 현역으로 가시면 고생만 하실텐데 다시한번 생각해주세요"


"그러면 의사도 필요없으니 소장님이 섬으로 들어오셔서 저랑 같이 일해주시면 다시 생각해보겠습니다"


하고 나는 마지막 배로 섬으로 돌아왔다.


통쾌했다. 소장의 마지막 표정은 잊을수 없다. 본인들이 하기 싫은 일은 말단에게 미루고 문제가 생기자 말단에게 뒤집어 씌웠던 그들. 쥐새끼가 뒤통수를 물줄은 몰랐었겠지....


다음날이 되었다.


내 징계에 대해 징계위원회에 재회부되었고 이튿날 견책으로 변경되었다. 


그때부터 생각한것이 있다. 


'공무원은 계속 난리를 쳐줘야 일을 한다'


그리고 다음날 프랑스 파리 여행 허가서가 떨어졌다.






3. 오늘은 배가 뜨나요? 내일은 배가 뜨나요? 모레는요?


우리의 여행기간은 토요일부터 차주 목요일까지였다. 그동안의 진료는 육지의 보건지소 소장들이 돌아가며 섬으로 들어왔다. 그들에게 살짝 미안했지만 그들에게도 아름다운 섬의 모습을 꼭 보여주고 싶었다. 내가 있던 섬은 꽃들이 예뻤고 파도치는 소리도 좋았다. 

육지에서 꿀빠는 그들에게 이런 공중보건의도 있다는 사실에 꽤 충격이었을것이다.


섬에서 살면 항상 보는 것이있다. 바로 바다날씨 사이트이다. 대개 5일~7일후 파도 높이와 바람세기를 알 수 있는데 파고가 2.0m 이상 되거나 바람이 초속 10m 이상으로 불면 배가 뜨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육지에서 파견온 외지인들은 매일 조마조마 하는 마음으로 사이트를 봤다. 아예 태풍이 오거나 기준이상의 날씨가 예상되면 그나마 낫다. 포기하고 날짜를 바꾸면 되니까.

그러나 토요일 오전의 예상 파고는 2.0m, 바람도 목요일부터 강해질 예정이었다. 만약 배가 뜨지 않아 나가지 못한다면... 비행기는 못탈테고.. 대체 의사도 들어오지 못하니 꼼짝없이 일을 해야했을것이다.


기도했다. 제발 바람이 잦아들게 해달라고.... 그녀와의 첫 여행인데 이렇게 망칠순 없었다. 바람이 많이 불어도 선장님이 배를 띄워주길 바랐다. 제발 제발


토요일 아침이 되었다. 역시나였다. 파도는 내가보기에도 높았고 바람도 세게 불고 있었으며 먹구름이 가득했다. 운 없는놈은 역시 어딜가도 운이 없다. 어떻게 해야할까...? 소변이 찔끔 나올것 같았다. 그녀에게 어떻게 이야기 해야할지 그리고 여행은 어떻게 해아할지 고민이었다. 발을 동동구르며 고민할틈도 없이 환자를 봤다. 육지로 나가지 못하자 섬사람들은 참 많이 진료실에 왔다. 내 마음은 아는지 모르는지... 속타는 의사 선생 앞에서 실없는 농담을 하는 할머니 할아버지들..

말 많이 않고 일단 방으로 올라왔다. 


속타는 마음에 맥주 한캔을 마셨다. 진정 될 리 없었다. 그나마 제대로 돌아가던 머리도 취기에 느려지기 시작했다.

그때쯤이었다. 내가 걱정됐는지 간호사로부터 전화가 왔다.


"선생님. 지금 조업나가는 배가 있대유. 그 선장님께 부탁드려보는건 어떤가유?"


망치로 머리를 맞은것 같았다. 솔직히 못나갈줄 알았는데 왜 사선을 이용할 생각을 안했었던건지....

맞다. 여객선의 경우 기상조건이 안맞으면 칼같이 뜨지 않지만 기상특보가 내려지지 않는한 법적으로 문제 되진 않는다. 그래서 사선들은 종종 뜨기도 했다. 전화를 해보니 마침 진료실에 종종오는 선장님이셨다.


하늘이 도왔다. 그러나 육지까지 데려다주실수 있냐고 물으니 처음에는... 안된다고 하는것이 아닌가....

고기를 잡으려면 남쪽으로 내려가야하는데 육지로 가려면 반대방향으로 가야하니 당연했다. 그래도 어떻게 안되겠냐고 사정사정을 하자 40만원을 주면 데려다 주겠다고 했다. 

하아... 40만원이라니.. 살짝 큰액수에 흔들렸다. 더 깎아주시는건 안되겠죠라고 묻자마자 무시당했다.

섬사람중에 의사선상님과 가장 친한사람이 될 수 있는 기회였는데..... 알았다고 말씀드리고 약속장소로 갔다.


캐리어를 힘들게 끌며 선착장까지 가자 선장님이 계셨다. 아마도 오늘 조업은 포기한것 같았다. 조업 포기한 대가로 꽤 쏠쏠한 수익을 거둔 선장님은 연신 입술을 씰룩거렸다. 씁쓸하지만 한편으론 안도하며 선장실로 들어섰다.


"안챙겨왔어유?"

"뭘요?"

"그거유. 예전 선상들은 챙겨주던디?"

"뭐요?"

"그거 효과 좋더먼 의사선상들이 쓰는 약이라 그런지 약효가 좋더구먼"


그것은 바로 비아그라였다. 비아그라... 한 몇해전까지 진료기록을 보니 비아그라가 있었다. 그걸보고 의아했었는데 왜 그랬을지 이해가 됐다. 의사선상들은 비아그라라는 뇌물로 섬 아재들에게 편의를 제공받았던게 아닐까 싶었다.


마음속엔 화가 났지만 겉으로는 웃으며 "네네 다음에 갖다드릴게요" 라고 말했다. 


그래도 이분이 아니었다면 비행기표를 그대로 날렸을테니 고마웠다. 멀리 항구 주차장에 내 차가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배타고 항구로 들어올때가 가장 좋았다. 뭐랄까... 해방되는 느낌이었달까?

나는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배에서 내렸다. 그렇게 겨우 육지로 탈출하여 발에 땀이나게 엑셀을 밟았고 겨우 비행 두시간전에 도착했다. 나는 이미 지쳐있었고 그녀를 보자마자 자리에 주저앉았다.


"자기 수고했어"

"응응 가게돼서 다행이다 미안해"


나도 멋지게 꾸미고 프랑스 파리로 가고 싶었는데 누가봐도 섬에서 갓 탈출한 시골청년이었다. 반대로 그녀는 누가봐도 서울여자 같았다. 흔히 보지 못했던 원피스였다. 그녀는 누구보다 파리와 참 잘 어울렸다.


10시간의 비행을 끝내고 우리는 누구랄것 없이 호텔 침대에 쓰러져 잠들었다. 그렇게 파리에서의 첫째날이 지나갔다.

댓글
  • Irvine시민 2020/01/07 02:38

    오 첫댓글!!ㅋ
    감사히 잘 읽고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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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겨여왕장미란 2020/01/07 02:41

    푸힛!! 비아그라라니 상상도 못했넹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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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대뽀행인 2020/01/07 02:45

    선추천 후 정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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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마 2020/01/07 02:48

    역시 의사는... 깡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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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감귤나무 2020/01/07 03:14

    덕분에, 수필집에 관심이 많아졌습니다. 일기 쓰는 습관 들이기도요 ㅎㅎㅎㅎ 잘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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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JDC 2020/01/07 03:29

    아..기다리는거 너무 힘들어요ㅠㅠ
    금방 다음편 올려 주실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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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횐곰 2020/01/07 04:59

    소중한 글 잘봤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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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뺑덕어멈 2020/01/07 05:06

    선추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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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가대표 2020/01/07 06:45

    정독 했습니다.
    참 잘 쓰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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