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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로 살면서 경험한 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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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배드림을 우연한 계기에 알게되어 글을 본지 이틀째입니다.


저는 평생 공부만 하고 지냈습니다. 저와 다른 삶을 사신 분들의 이야기를 접하니 참 즐겁고 새로웠습니다.


저 또한 다른분들에게 흥미로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글을 써볼까 합니다.


(참고로 현재는 대학병원을 떠나 병원에 근무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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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인턴 첫날 환자에게 먹은 욕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갓 의사가 되었지만 현실은 학생과 다를바 없었다. 책으로만 배우고 사람 모형에 실습을 한게 전부였으니 말이다. 

나는 대학병원의 인턴을 지원하였고 드디어 첫 근무날이 다가왔다. 흰 가운을 갈아입으며 " 내가 잘할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이 나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당직실 문을 열고 나가는순간 나는 환자에게 의료행위를 해야했다.


내가 처음 돌게된 분과는 내과였다. 내과는 입원환자가 많다. 따라서 인턴이 해야할 일도 많다. 새벽마다 환자를 깨우고 그들의 피를 뽑거나 여러 시술들을 해야했다. 나는 첫날이었지만 시작도 하기전에 10개의 콜이 밀려있었다.

내 첫환자는 신장내과 환자였다. 어버버하는 모습을 들키고 싶지 않아 더 당당한 척 행동했다. 피를 뽑기위해 팔을 걷어달라는 말과 함께 주사기를 꺼냈다. 이제는 직접 환자의 팔을 찔러야 한다.

모형팔은 젊은 사람을 모델로 한게 분명했다. 모형팔에 비해 혈관은 잡히지도 보이지도 않았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혈관은 없어지고 입원을 하면서 혈관이란 혈관은 다 찔러 없어지기도 하니 초짜 의사가 단박에 찾을수 있을리 만무했다.

겨우 잡은 혈관을 향해 주사기를 찔렀다. 그러나 피가 맺히지 않았다. 재차 움직이는 혈관을 향해 찔렀다. 피가 맺히지 않았다.

다시 찌르기 위해 환자에게 양해를 구했다.


" 환자분 혈관이 잘 보이지 않아 다시 찌르겠습니다 죄송합니다"


" XX 어디 어린 돌팔이 같은것을 데려왔어? 교수오라그래"


아직도 환자의 워딩이 생생하다. 내 첫 환자였고 그 첫 환자에게 들은 욕이었으니까.. 나는 재차 양해를 구하고 찔렀다.

다행히 두번째 실린더에 피가 맺혔다. 그러나 처음 다짐했던 내 당당함은 온데간데 없어졌다.

환자의 난동에 새벽6시 병실은 난리가 났다. 스테이션의 간호사들은 뒤에 삥둘러 서있고 옆 병동에서 회진 준비하던 내과 던트 선생님도 멀찌감치 쳐다보고 있었다.


환자가 화내는건 당연했지만 그 환자는 유독 심했다.

바쁘게 다음 환자를 향해 나가는 나를 향해 던트 선생님이 한마디 했다


" 저환자한테 저도 욕 많이 먹었어요 그러니 앞으로 신경써주세요"


나는 지나고나서야 그 말이 기억났지만 당시에는 아무런 정신이 없었다. 밀린 콜만 10개였고 이마저도 빨리 하지 않으면 점심도 못먹을게 뻔했기 때문이다. 

그날 새벽 6시반부터 밀린 콜을 다 처리하고 편의점 삼각김밥을 깐 시간이 저녁 7시였다.

그렇게 정신없이 인턴 첫날이 지나갔다.


(PS. 나에게 욕했던 그 환자는 며칠뒤 교수에게 입원안한다고 난동을 부리다 결국 병원에서 쫓겨났다)




2. 일반적인 인턴의 삶


인턴이 하는 일은 그리 복잡한 일이 아니다. 애초에 Non function이라 생각해서 생각할만한 일을 시키지도 않는다.

간호사를 한명 고용하는것보다 인턴을 시키는게 싸게 먹히고 장비를 하나 구입할바에 인턴을 갈아넣는 쪽이 비용절감이라 잡일들은 온통 인턴들이 맡는다.. 일반인도 며칠만 훈련시키면 할수 있는 그러한 일들을 인턴들이 한다.


인턴의 삶은 똥 오줌 피의 연속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변비로 똥을 못싸는 할아버지의 항문에 손가락을 집어넣고 후벼파며 똥을 꺼내다가 가끔 조절안되는 할아버지의 똥 미사일을 맞기도 하고 밤새 오는 오줌줄 연결 콜에 오줌줄을 연결하다가 내가 소변줄이나 연결하려고 의사가 됐나 하는 회의감도 들었다.

내가 밤 당직비로 5만원을 받았는데 대략 50명정도의 소변줄을 연결했으니 천원도 안하는 꼴이었다. 


피 오줌 똥속의 앞이 안보이는 인턴 생활속에서도 그나마 버텼던것은 옆에 있는 동기 때문이었다. 시발시발 하면서 들어와도 당직 끝나고 친구들과 마시는 맥주속에 그나마 피곤함이 사라졌고 또 출근했다. 


5월 한달간 하루에 2시간 이상 잔적이 없었다. 주당 120시간이 넘게 일을했지만 통장에 찍힌 월급은 230만원이었다.

시급으로 따지면 5천원도 안하는꼴이었지만 부당함을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시간만 있으면 자야했다. 혹시라도 지체하면 주먹이나 욕이 날아오거나 암담한 내일이 찾아올게 뻔했다. 나는 그렇게 한달을 꼬박 병원에서 보냈다.


그렇게 바쁘게 사는사이 사귀던 여자친구와도 헤어졌다. 의사인 여자친구가 아니라면 이런 삶을 이해하기 힘들었을것이다. 의사 여자친구가 아닌 남자 동기들은 대부분 헤어짐을 반복했다. 나는 그 여자친구를 정말 사랑했지만 붙잡을수 없었다. 붙잡을 기력조차 없었고 쓰러져 잠들었다. 헤어지고도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사람처럼 살았다. 


어쩌다 하루 주말 오프가 생겨 집에 도착했는데 내 얼굴이 3년은 늙어 있었다. 나는 빛이 비치지 않는 수술방에서 밤인지 낮인지도 모르게 일을 했고 이후에는 당직실에 쓰러져 잠들었다. 애초에 몸에 좋은 음식을 먹을수도 없었다. 그렇게 늙어버린 내 모습을 보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나는 그제서야 내 옆에 여자친구가 없다는 사실에 슬퍼지기 시작했다. 이제야 슬픔을 정리해야하는데 이미 정리를 마치고 새삶을 보내고 있을 여자친구 생각에 더더욱 슬퍼졌다. 슬픔을 달래는동안 불완전함이 이따금 튀어나와 술취해 전화도 하고 찾아가기도 하고 싶은데 그럴수 조차 없었다. 세상이 원망스러웠다. 내가 뭐때문에 사랑하는 여자친구와 헤어져야하고 내 젊음까지 잃어야 했는지.....

하루 온종일 펑펑 울며 술에 취해 잠들었다가 다음날 새벽 6시 기상알람에 깨어나 병원으로 달려갔다.



다음 이야기 : 수술방에서 만난 새로운 썸 & 인연. 레지던트 지원 후기



댓글
  • 승자의여유 2019/12/21 04:16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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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시15분에안녕 2019/12/21 04:24

    오 ~~ 만인이 성공했다고 생각하는 의사들의 삶 너무 궁금했는데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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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레몬후르츠 2019/12/21 04:33

    100편까지 연재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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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2마일유희관 2019/12/21 04:49

    의사 쌤들 고생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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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두려움을딸쳐버려 2019/12/21 04:51

    하여간 인성 개글러처먹은것들은 치료도 해주지 말아야해요 히포크라테스선서는 개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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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참이슬대마왕 2019/12/21 05:11

    잘보고가요 힘내세요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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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용호쌈박 2019/12/21 05:22

    고생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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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뽀개드림0 2019/12/21 05:29

    우리나라는 왜 이리 모든영역에걸쳐 다 열악한 환경속에서 일해야만하는걸까요..
    미쿡도 인턴들 힘들다지만 하루 2시간 재우고 일하게 하진 않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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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는야멋좽이 2019/12/21 06:00

    하얀거탑 연재나오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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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음만원빈 2019/12/21 06:43

    음...
    나하고는 생활자체가다른사람의삶이야기
    더군다나 일반인도아니고 엘리트의삶이라...
    님덕분에 궁굼했던이야기의 빚장이풀리는군요
    수고스럽겠지만 계속연재좀해주시기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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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enter0419 2019/12/21 07:33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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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펑키푸우 2019/12/21 07:35

    ㅊ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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