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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영화 [레인 오버 미]를 보고.. 공감의 3단계 이론을 떠올리며 (스포 포함)


마이크 바인더 감독의 2007년작
[레인 오버 미 (Reign Over Me)]를
왓챠플레이 맞춤 추천으로 이제서야 보았습니다.
LA 다저스의 전설적인 감독, 토미 라소다는
"1년 중 가장 슬픈 날은 야구 시즌이 끝난 날이다"
라고 말했죠.
개인적으로 LG 트윈스 광팬이고
류현진 선수의 LA 다저스를 응원하는 팬으로서
트윈스가 준플레이오프에서 탈락하고
다저스가 디비전시리즈에서 탈락한 어제는
1년 중 가장 슬픈 날이었습니다.
더욱이, 보고 싶은 영화들이 광풍처럼 몰아친 후
텅 빈 듯이 남은 자리엔 공허함만 가득했는데...
그 공허함을 이 영화가 달래주더군요.
2001년 9.11 테러의 상흔이 여전히 잔존한 뉴욕,
성공한 치과의사 앨런(돈 치들)은 퇴근길에
치과대학 시절 룸메이트인 찰리(아담 샌들러)를
우연히 발견합니다.
찰리는 9.11 테러로 아내, 세 딸과 반려견을 잃고
외상후 스트레스장애(PTSD)에 시달립니다.
가족들에 대한 기억으로부터
의도적으로 자신을 차단시키고
일도 그만 둔 상태에서
게임과 음악, 그리고 영화의 세계 속으로
도피하듯 숨은 인물입니다.
주방을 리모델링하는 데 이상하게 집착하며
집에선 반드시 신발을 벗어야 합니다.
장인, 장모의 접근도, 상담치료도 모두 거부하죠.
그런 찰리에게 조심스럽게 다가서려는 앨런을,
이 영화는 버디무비 형식으로 그려 나갑니다.
그렇다고 앨런에게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완벽한 가정과 직장을 가진 것 처럼 보이는 그도
사실은 중년의 위기를 겪고 있죠.
그의 가장 큰 문제는 착한 사람 강박증입니다.
집에서는 착한 남편, 착한 아빠,
직장에서는 좋은 의사가 되기 위해 애쓰지만
자기만의 온전한 시간과 사색의 여유가 없기에
외면상의 행복과 평화 속에서 그는
삶의 고독과 혼돈을 동시에 겪습니다.
아담 샌들러와 돈 치들의 연기가 참 좋지만
이 영화의 주인공은 늦가을의 뉴욕입니다.
전동 킥보드를 타는 찰리를 뒤따르며
딱 그 속도로 천천히 훑어 나가는 뉴욕의 가을은
쓸쓸하게 아름답고 아름답게 쓸쓸합니다.
뉴욕의 그 쓸쓸한 가을은
삶의 씻을 수 없는 트라우마를 내재한 채
아픔과 고통의 기억으로부터 벗어나려 애쓰는,
가여운 사람들의 가여운 삶을 그대로 닮았습니다.
찰리가 외롭게 타던 킥보드에 앨런이 동승하고
나중에 앨런이 홀로 운전하게 되는 과정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롤페 켄트의 잔잔한 OST가 그들을 지켜주고...
동물행동학자, 프란스 드 발이 주장한
공감(Empathy)의 3단계 이론을 알고 계시는지요.
1단계는 정서적 전염입니다.
누군가 눈물을 흘릴 때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나는.
웬만한 포유류들은 거의 다 이 반응을 보인답니다.
2단계는 동정심입니다.
슬픔에 빠진 타인을 위로하고 싶은.
유인원들 이상이 이 반응을 보인답니다.
3단계는 역지사지(易地思之)입니다.
상대방의 입장에 자신을 대입시킬 수 있는.
이 3단계는 오직 인간만이 느끼는 감정이라죠.
우리들은 모두 삶의 아픔과 고통 속으로 침잠해
모든 관계를 단절시키고
자신 만의 세계에 고립된 경험을 갖고 있습니다.
내가 그 아픔을 앓을 땐
누군가의 동정과 위로마저 싫고
타인의 아픔에 동정과 위로를 주고 싶을 땐
내 동정과 위로가 상대에게
온전하게 전해지지 않을까봐 두렵죠.
영화는 그런 경험을 가진 사람들에게 말합니다.
굳이 동정하거나 위로하려고 하지 말고
그냥 함께 있어주라고.
그들의 입장을 헤아리며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면서.
그러면 그들은 자신 만의 속도에 맞춰
서서히 회복될 수 있을 거라고...
경찰들 앞에서 위악의 행동을 자행하며
사실상의 자살을 시도했던 찰리를
정신병원에 입원시킬 것인가의 문제로
재판이 열립니다.
사위의 강제 치료를 주장하는
장인, 장모측 변호사와 격렬한 논쟁이 벌어지고
판사는 가족들 간의 해결을 요구합니다.
가족에 대한 이야기만 꺼내도 불같이 화를 내고
가족의 기억을 아예 잊은 것처럼 보이던 찰리가
자신을 경계하는 장인과 장모 앞으로 다가가죠.
"아내 얘기를 하거나 사진을 볼 필요 없어요.
사실은 도린을 자꾸 본단 말이에요.
거리를 걸을 때면 다른 사람이 도린처럼 보여요.
두 분이 가진 어떤 사진보다 더 선명하게 보여요.
마음이 아프시겠지만
두 분은 서로 의지할 수 있잖아요. 서로에게요.
전 혼자서 아내와 아이들의 얼굴을 봐야 해요.
어딜 가든지요.
개도 보여요.
그래서 이 지경이 된 거예요.
셰퍼드만 봐도 그 망할 푸들이 보인다고요."
마침내 속마음을 꺼내 놓은 찰리가
장모의 뺨에 입을 맞춥니다.
주방을 리모델링해 달라던 아내의 마지막 통화에
바쁘다는 이유로 대꾸조차 하지 못했던 자신이
너무도 밉고 미워서
멀쩡한 주방을 수백 번도 넘게
고치고 또 고쳤던 찰리가...
신발을 벗지 않는다고 잔소리를 했던 아내가
그립고 또 그리워
앨런에게 똑같은 잔소리를 늘어놓던 찰리가...
가을이 깊어 갑니다...
내가 걷고 있는 이 길이 옳은 길인지
문득문득 의문이 드는 분들과,
곁에 아무도 없는 것 같은 느낌으로
외로움을 앓는 분들과,
떨쳐내지 못한 고통으로 여전히 아픈 분들과,
영화 [레인 오버 미]가 잔잔하게 전해 준
역지사지의 마음을 나누고 싶습니다.
비슷한 의문과,
비슷한 외로움과,
비슷한 아픔을 경험하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댓글
  • 풍데쿠 2019/10/12 04:45

    언제나 좋은 글 써주시는데 대한 감사의 표시로 노래 한 곡 보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TJ6Mzvh3XCc
    마음의 평화를 바라며 ....

    (URdbwr)

  • 혁명전야 2019/10/12 05:05

    풍데쿠// 아... 피아노의 반복적 건반음 몇 개와 첼로만으로 이렇게 아름다운 음악이 가능하다뇨... 제목의 뜻이 "거울 속의 거울"같습니다. 참 의미심장하네요. 글에 대한 음악으로의 화답에 진심어린 감사를 전합니다. 풍테쿠님께도 마음의 평화가 함께 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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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리자 2019/10/12 08:03

    이 영화를 보신 분이 계시군요.. 힘들 때 보면 참 위로 받게되는 영화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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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혁명전야 2019/10/12 08:26

    승리자// 찾아보니 2007년 개봉 당시 관람객이 2,700명이더군요. 존재조차 몰랐던 영화였는데, 참 좋네요. 맞습니다. 위로를 주는 영화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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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희망하나둘 2019/10/12 12:30

    힐링 받고 싶을 당시 봤던 영화네요. 아담 샌들러 연기력이 빛이 났던 영화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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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arikatur 2019/10/12 12:33

    돈 치들하고 아담 샌들러 연기 너무 좋았던 것 같아요.
    초반부에 아담 샌들러가 돈 치들 집 찾아와서 막 철없이 어린아이처럼(?) 구는 행동이나 그걸 바라보며 얘 왜이러지? 하는 돈 치들 모습이나 그거 보면서 괜히 찡했어요. 너무 아담 샌들러는 해맑게 그런 행동들을 하는데 돈 치들은 뭔가 슬픈 듯 바라보고있고.
    말씀처럼 늦가을 풍경들이 좋았던 기억이 나네요. 특히 밤 풍경들. 둘이 저벅저벅 걷는 풍경들이 엄청 쓸쓸해보였던 기억이 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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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스닭 2019/10/12 13:03

    엘지트윈스광팬으로 같은마음 느끼고있네여.제생애 엘지가 우승하는날을 기원하며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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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푸른피김한수 2019/10/12 14:39

    이영화 다시 한번 봐야겠네요. 괜찮게 봤는데 내용이 가물가물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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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정으 2019/10/12 15:38

    영화는 제 취향 아닐거 같은데, 글이 너무 좋아서 ㅊ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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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는나대로 2019/10/12 15:45

    글만 보고 울었습니다.
    지금 옆에 있는 내 사람에게 새삼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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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요정 2019/10/12 15:49

    하~~매번 혁명전야님의 글 언제 올라오나 검색했는데 참 이상한 경로로 보게되네요
    류현진 소식 궁금해서 검색했다가 딱 님의 글이!!^^
    첫번째 두번째 그리고 맨 마지막 단락만 읽었는데도 그냥 가슴을 후벼팝니다..
    1년 중 가장 슬픈 날.....ㅠㅠㅠㅠㅠ
    그 공허감을 채워준 영화...
    이 영화 잠깐 어데서 살짝 지나치면서 본거 같긴한데..
    돈 치들과 아담샌들러....둘다 그렇게 조아하는 배우는 아닌데..그렇다고 싫어하지도 않고요
    이 영화 무조건 봅니다!!
    이 영화 통해서 이 두배우의 갠적 감정이 많이 달라졌음하는 바램이네요!!!
    하~~9.11과 관련된 이야기라니...(이부분은 어떻게 첫줄만 눈에 보여서...^^)
    매번 이렇게 좋은 영화 추천....언제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주말 즐겁게 보내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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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혁명전야 2019/10/12 17:04

    희망하나둘// 펀치 드렁크 러브에서의 아담 샌들러 다음으로 좋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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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혁명전야 2019/10/12 17:07

    Katikatur// 이 영화 있는지도 몰랐었는데... 왓챠플레이 추천 덕에 때마침 위로받았네요. 아담 샌들러, 돈 치들의 티격태격 츤데레 우정이 참 좋았습니다. 좋은 댓글 달아주셔서 넘넘 고맙습니다. 행복한 가을 보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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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혁명전야 2019/10/12 17:08

    푸른피김한수// 꼭 다시 보셨음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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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혁명전야 2019/10/12 17:09

    김정으//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영화도 보셨음 좋겠습니다. 연기와 음악이 좋아서 시간 가는 줄 모른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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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혁명전야 2019/10/12 17:11

    나는나대로//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엔딩에선 정말 눈물이... 옆에 계신 분과 행복한 가을 만들어 가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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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혁명전야 2019/10/12 17:14

    안녕요정// 요정님 취향에 딱 맞을 영화일 겁니다. 지금 이 계절에 보시기 참 좋은 영화랍니다. 보내주신 응원에도 불구하고 가을야구는 또 여기서 중단됐네요...ㅠㅠ 아담 샌들러, 돈 치들 두 배우 모두 좋아하시게 될거에요. 편안하고 행복하게 가을 주말 보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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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빅윅 2019/10/12 18:01

    아내와 세 딸이 동시에 죽는다면 정신이 온전한 사람이 없을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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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키카이로 2019/10/12 22:04

    LG를 평소에 응원하던팀은 아니었지만, 올시즌 후반기나 포스트시즌 들어서 파이팅이 넘치는 모습을 보고, 이번 포스트시즌 응원팀은 여기다!!하고 생각하고 열심히 응원했습니다. 1,2차전 끝내기가 정말 아쉬웠고, 3차전 고우석 선수의 포효가 참 뿌듯했으며, 뒷심이 부족했긴했지만 4차전 경기중반까지의 일진일퇴의 공방전이 얼마나 흥미진진했던지.. 절로 트윈스가 내년에는 더욱더 비상하기를 기원하게 되었습니다. 한편으로는 포스트시즌의 '내팀'이 퇴장한게 그래도 참 아쉽습니다.
    마지막 문단이 유독 더 와닿습니다. 가을이 와서 씁쓸한건지, 주변에 사람들이 어느정도 있어도 외로운건지, 한해 다가고있다는게 느껴져서 아쉬운건지, 현재생활에 적응한 나머지 절실함을 잃고 매너리즘에 빠져 권태로운건지.. 요즈음들어 뭔가 형용할수없는 외로움,안타까움과 불만족스러움이 제 내면에도 존재하는걸 느낍니다. 작성하신글 소중하게 잘 읽었습니다. 영화는 꼭 한번 보면서, 다시금 마음을 정리하고 전진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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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ye66 2019/10/12 23:38

    며칠 전에 아내 과제 도와준다고 이 영화 감상평을 써줬었는데 오랜만에 글을 쓰려니 머리랑 손이 따로 놀아 속상했던 일이 있었습니다. 이 글을 읽고 한 번 더 내용을 정리해서 썼다면 조금 더 아내한테 칭찬받는 감상평이 됐을텐데ㅠ 정말 영화 이상의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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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혁명전야 2019/10/13 00:12

    빅윅// 당연하죠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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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귀두에캔디 2019/10/13 00:14

    항상 보물 같은 글 감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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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혁명전야 2019/10/13 00:17

    키카이로// 응원팀이 아님에도 응원해주셔서 감사드리며 팀에 대한 덕담도 넘넘 고맙습니다. 내년엔 더 나아지리라 믿습니다. 가을은 특히 남자들에게 생각과 상념들이 많아지는 계절이죠. 이 영화 보시면 많은 위로와 도움받으실 수 있을 겁니다. 부디... 삶의 권태, 매너리즘, 쓸쓸함 모두 다 이겨내시고 주변 분들과 많은 공감과 사랑 나누시면서 행복하고 편안한 가을 만들어 가시길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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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혁명전야 2019/10/13 00:19

    tye66// ㅎㅎㅎㅎㅎ 웃으면 안돼는데 웃음이 자꾸 나네요^^
    왓챠플레이가 한 달만 더 빨리 추천해주었담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나저나 아내분이 무슨 공부를 하시길래 이 영화로 과제를 정하셨을까요? ^^;; 암튼 행복하십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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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혁명전야 2019/10/13 00:20

    귀두에캔디// 항상 읽어주시고 응원해주셔서 제가 더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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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혁명전야 2019/10/13 00:24

    코스닭// 댓글이 실수로 지워졌습니다. ㅠㅠ 한 해 동안 응원하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우리 생애 안에는 가능할 겁니다. 사리가 무수히 적립될 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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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인구 2019/10/13 01:13

    죽음을 주체하는 시간이 지나면 죽음은 오롯이 살아남은 자의 몫으로 남습니다.점철된 상실감을 이기지 못해 애써 죽음을 외면하는 것도 어쩌면 죽음을 대면할 수밖에 없는 서러운 자들의 상흔이겠지요.죽음 이후를 관장하고 공유하는 사람들이 갖는 슬픔의 단면도는 서로 비슷한듯 비슷하지 않습니다.로드킬 당한 고양이 곁을 지키는 고양이들의 울음소리가 저마다 다른 것처럼요.
    혁명님의 요리는 언제나 그렇듯 메인디시를 보다 맛있게.아니 메인디시보다 더 빛나는 에피타이져 혹은 디저트 같다는 느낌입니다.
    무단취식하기 죄송해서 한 줄 남기고 갑니다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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