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칸소 주 리틀 록 백인 학교 흑인 등교 사건
1954년 브라운 대 교육 위원회 재판으로 피부색을 이유로 교육을 분리하거나 차별할 수 없다는 판결이 나옴
그 후 3년이 지난 1957년에 최초로 백인 학교에 성적이 우수한 17명의 흑인 학생들이 등록되었고 이중 8명은 백인학교 입학을 포기함
그래서 최종적으로 9월 4일 백인학교에 입학 하는 흑인 학생은 총 9명이고 이들을 리틀 록 나인 이라고 부름
근데 주지사 포버스가 주 방위군을 동원해 입학일인 9월 4일에 흑인 학생 9명이 학교에 오는 것을 막음
포버스가 이러한 결정을 한 이유는 평화에 대한 침해와 폭동, 그리고 소요의 즉각적 위험이 있으며
사람들의 및 재산에 해를 끼칠 상당히 유력한 근거가 있기 때문 이라고 발표함
23일에는 아홉 명 모두 학교에 등교 할 수 있었지만 백인 시위대의 분노가 거세 결국 수업 중 하교하게 됨
이 소식을 들은 아이젠하워 미 대통령은 분노하며 육군 제 101 공수 사단을 투입해 흑인 학생들의 등교를 도움
이로인해 주지사의 명령을 받은 주 방위군과 대통령의 명령을 받은 연방군이 한동안 날이 선채로 대립하였지만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포머스 주지사의 군 통수권한을 박탈하여 주 방위군이 빠지고 연방군만 남아 한 학기 동안 등교를 도움
중간에 씩씩거리는 사람은
나중에 자기 행실을 깨닫고 당사자랑 만나서 화해했다고 함
너 잘아네
혹시 본인이야?
어제 꺼라에서 봄
포레스트 검프에 나왔던게 이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