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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다가 일어났는데

품 속의 고양이가 일어나서 비비적비비적 하네요.
이제 곧 야근중인 남편이 돌아올 시간이고요,
저는 밥 지어놓고 그 사람이 오기를 기다려
찌개에 불을 올리면 여느때와 별 다름 없는 아침이 밝겠네요.
저는 친정 엄마와 연을 끊어 얼굴을 마주하지 않아요.
엄마가 산후우울증이었나, 하는 생각도 하고
엄마는 최선을 다했지만
그저 나와는 맞지않는 방식이었을까, 삼켜볼까 하는
생각도 부질없다는 것도 깨닫고 내린 결정이었어요.
친정 부모님들이 따님들에게 소소하게 애정을 베푸는
모습들이 결게에 올라오면 그게 참 부럽더라고요 ㅎㅎ
아직 시부모님들은 이런 사실을 잘 모르고 계세요.
남편이 그래도 이런 일을 말해서 좋을 건 없다고 해서.
(제가 시댁가서 혹시 몸이 피곤하면
친정과 약속이 있다거나 하는 핑계라도 대고
일어나기 쉬울거라고요 ㅎㅎ
물론 피곤하다면 바로 가라 하실 분들이긴 합니다)
지난 설에 시댁에 가서
소소하게 가족들이 먹을 음식을 하다가 쉬는 타임에
(저희는 제사없애고 명절음식만 좀 만들어 나눠먹어요)
말 끝에 친정 얘기가 나왔어요.
별거아닌 말이었는데 .
친정집은 음식하지않니? 가봐야하는거 아니냐, 이런식의 말.
갑자기 후드득 눈물이 쏟아지더라구요.
왜 그랬나몰라요. 한번도 내색않았는데.
말도 안나오고 눈물이 뚝뚝 떨어지더라고요.
시엄마가 당황하시니
남편이 , 이 사람한테만 모질다 어머니.
짧게 말하더라구요.
우리 시엄마가 등을 두드려주시대요,
우리 엄마도 나한테만 모질더라
그래서 내가 제사도 안해.
울지마라 아가. 울지마라. 하시면서
눈물을 슥슥 닦아주시대요.
그렇게 명절을 보내고
얼마전에 시엄마랑 돌쟁이 조카랑 계시다고 하셔서
김치도 얻어갈 겸 아이도 봐줄겸 남편이랑 같이 갔는데
베란다 화분을 옥상에다 가져다놔달라며
남편을 심부름 시키시더라구요.
저는 조카어르며 시엄마 옆에 앉았는데
시엄마가 하시는 말이,
이거 쟈한테는 비밀이데이.
내가 절에 가서 방생하는데 겨우 니이름도 썼다.
아이고 궁합 안 본다고 했는데 니 생일을 가르쳐줘야말이지!
개띠지? 개띠는 이번이 삼재라 조심해야된다이,
(남편이 무당이든 절이든 물어보는걸 엄청 싫어해서 결혼한지 6년차인데도 제 생일도 여즉 안 가르쳐주고있었어요 ㅎ 근데 제가 이번 생일을 시댁에서 보내서 아셨던거에요)
그러시길래
아이고 엄마덕분에 나 이번해 무사히 넘기겠네요!
울 엄마가 최고네 ! 하는데
시엄마가 우물쭈물 하시는거에요,
뭔데요 뭔데 뭐 하실말 있어요? 말해봐요 엄마.
그랬더니 한숨을 폭 내쉬시면서
내가 뭐라고 말해야할지, 좀 그런데
친정 좀 멀리해도 괜찮지않나싶데이.
니가 마음이 그러면 쫌 줄이그라.
만다 가서 맘 상하고 있을래...
니를 딱 넣으니까 스님하시는 말이
아이고 이래 이쁘고 반짝반짝한데 왜 그늘이 져있습니까..
하드라. 그런 사람있단다 , 니만 그런거 아니고
그냥 부모랑 잘 안 맞는 사람.
우리 엄마도 내를 어찌나 섦게하던지!!!
나도 그렇다. 그러니까는 니 편한대로 해라이,
그거 뭐 흠도 아이고 그럴수 있다
니가 참 밝고 이쁜데 어두워져있어서 되겠나?
밖에도 나다니고 맛있는거 먹는다고
쟈한테 돈도 좀 달라하고 옷도 사입어라
계속 집에만 있으면 안낫는데이
(제가 공황장애가 있어서 바깥 출입을 거의 안해요)
물어본거는 쟈한테 말하지말고 비밀이다 알았제?
이러시더라고요.
근데 정말
우리 시엄마 모습이 딱 떠오르는거에요.
절에 가셔 방생하시면서 얼마나 속이 상하셨을지.
스님하는 말에 (우리야 미신이 어쩌고하고 넘기지만)
아이고 아이고 하고 묻고 듣고 하셨을 생각하니까
맘이 너무 아픈거에요.
나 설에 울었던거 엄마가 다 맘에 담아두고 계셨구나.
맘이 아프셨었구나.
그러면서 사돈댁일이라 쉽게 말 꺼내기 힘드셨겠지,
그런 생각도 들고.
항상 내가 있어야 할 곳을 찾다가
이제 여기 내 자리가 정말 생겼구나.여기였구나.
이런 생각도 들고.
이제 나도 엄마가 생겼구나 내편인 엄마.
그런 생각을 했어요.
우리 시엄마야 항상 저 이뻐하셨지만
딱히 부딪히는 일도 없었고
고만고만 잘 넘어가고 별 탈 없이 지내서
좋아하는 아들 며느리니까 그러지, 했는데
또 무뚝뚝한 시누이보다는 제가 말투가 살가운 편이니
아가아가 하시는구나 생각했었어요.
시누이네 육아가 고되니까 한달에 한두번
엄마 데리고 나와서 남편이랑 영화보여드리고하니
좋으셨겠지 생각했었어요.
그냥 이제 가족이구나,
사랑하는 장남의 아내가 아니라 가족.
저랑 남편 간다니까
아이데리고 나오셔서 배웅하시며
손을 이렇게 이렇게 크게 흔드시는데
햇살은 좋고 눈부시고 날은 따뜻하고
몸은 나른하고 정말 기분이 좋았던 날이었어요.
생각나 곱씹으니 엄마가 보고싶어 ,
아직은 손주들 채비하시느라 바쁠 시간이셔서
여기에 써 봅니다.
이따가 남편오면 엄마한테 전화해서
보고싶다고 말해야겠어요.
또 데이트가자고,
좋아하시는 스파게티 먹으러 같이 가자고요.
엄마 좋아하시는 액션 영화들 개봉했으니
또 가자고요.
우리 엄마 손주들 육아에서 벗어나
마실간다고 얼마나 기분좋아하실지,
내가 선물한 립스틱 예쁘게 바르고 나오셔서
이거 계속봐도 예쁘다 하시며 또 자랑하시겠죠 ㅎㅎ
너무 보고싶네요 우리 엄마.
댓글
  • 빨간허브 2017/02/22 08:02

    부럽네요..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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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합니다♡ 2017/02/22 08:13

    너무 사랑스러운 가족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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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트북실45 2017/02/22 08:28

    아침부터 울컥했어요.
    진짜 가족이 되셨네요.  축하드려요.

    (aTgcb7)

  • 민트색☆팬티 2017/02/22 08:42

    좋은 분들이시네요...진짜 가족이란게 이런거겠죠..한편으론 부럽습니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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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룡코딱지 2017/02/22 08:53

    요시모토 바나나 작가 냄새가 나네요
    단편 소설 읽은 느낌 마져 드네요 ㅎㅎ
    나도 말 잘하고 글 잘쓰고 싶어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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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히야히야호 2017/02/22 09:07

    부럽습니다!
    행복하셔요 항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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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hom2me 2017/02/22 09:11

    저도 울컥... 결혼 하고도 가족애 라는걸 잘 못 느꼈는데 언젠가 확....오더라구요.
    가족이 이런거구나....... 시어머니께서 가끔 신경써주실때 참 감사드려요. 친정이 워낙 멀고 시댁은 바로 옆이라 자주 뵙고 하니 친정보다 편하고 그러네요. 어려서부터 뭐가 그리 부정적이었는지 친부모님에게 사랑 받았다는 느낌 못 느꼈는데 결혼하니 좀 달라지네요..이래서 나이들어 뒤늦게 효도하게 되나봐요..
    글쓴님도 행복한 날 오래오래 즐기시길 바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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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따봉따봉 2017/02/22 09:13

    눈물나요ㅠㅠ 어무니 감동 님도 감동 남편도 감동
    이뿌다이뻐~~
    출장나온 저대신  애기보느라 고생하고 계신
    울시엄마 생각나네요ㅠ
    출장 끝나고 뭘해드려야 제일 좋아하실지~
    생각 많이 해봐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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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17149 2017/02/22 09:20

    부러워요
    저도 언젠가 엄마가 생기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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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장이텅~장 2017/02/22 09:31

    진짜 좋은분들을 곁에두고계시네요 부러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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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tardustt 2017/02/22 09:42

    추천도 잘 안하고
    댓글도 잘 안다는데...
    추천댓글찍고가요ㅠㅠ
    출근하려고
    정류장에서서 사락사락 오는 눈
    맞으면서 이글 읽었는데
    아 청승맞게
    계속 눈물이 울컥울컥
    너무 예쁜 글쓴님마음과
    남편의 배려
    시어머니의 사랑
    아.. 그죠 가족이란 이런거죠ㅠㅠ
    무조건
    마냥 그냥 행복하세요ㅡ♥
    엄마의 부재(?)를
    시어머니께서 채워주시니
    힘내시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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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터뷸런트 2017/02/22 09:43

    따뜻한 이야기 나눠주셔서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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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kungi 2017/02/22 09:43

    아침부터 울컥합니다.
    항상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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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의난다 2017/02/22 09:54

    요즘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눈물이 많아지네요
    항상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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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가결정 2017/02/22 10:09

    딱히 구박하지도 모질게 대하지도 않지만 결혼하고서 뭔가 시댁은 시댁이다 라는 말에 자꾸 공감만 하고 있는데... 님글 보면서 마음이 넘 따뜻해졌어요 감사해요
    그리구.. 역시 좋은 사람 곁엔 좋은 사람들이 머무는가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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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생겼으면좋겠 2017/02/22 10:11

    글이 맑고 반짜반짝 해요. 님도 그런분 같아요. 포근한 엄마가 계셔 좋네요. 따순정 많이 받으셔요. 님은 그래 마땅하신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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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녀가말했다 2017/02/22 10:15

    서럽고 오갈데 없었던 마음이 안식처를 찾았네요.
    저도 나중에 결혼하면 시어머니랑 이렇게 잘지냈으면 좋겠어용. 언제나 행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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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쿵쾅 2017/02/22 10:27

    시어머님 너무 따뜻하세요. 저까지 감동받아서 눈물이 나네요.
    공감해주고 다독여주시고...
    남편분도 어머님 닮으셔서 그런지 배려심 많으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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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양이. 2017/02/22 10:45

    마음에 하나하나 새겨지는 글이네요 저도 이런 엄마 만나고 싶어요... 결혼에 대한 환상 필요성 같은거 다 무너져 있었는데 이런글 읽으면 또 새록새록 솟아요 ㅋㅋ 무엇보다 어머님이 이해 해주시며 그런 집 있다고 섧게 하는 엄마 있다고 해주시는데 괜히 눈물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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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ummers 2017/02/22 10:51

    눈물났어요ㅠ 작성자님도 남편분도 시어른도 정말 좋은사람들끼리 연이되어 서로 보상받으며 사시는거같아요. 저희 사촌 올케언니도 친정보단 시댁이 좋다며 하루가 멀다하고 시엄마랑 데이트예요. 그런 연들이 있더라구요.
    참 따뜻한글 기분좋게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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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뉴월같아라 2017/02/22 11:01

    글 지우지 말아주시면 안될까요 ? 제가 요 몇년 참 서러운데 ㅠㅠ 그동안 큰딸이라 그렇다고 막연히 생각해왔던 것이 실은 제가 엄청 못받고 자랐다는거 차별 받으면서도 그게 아니라고 세뇌 되었었다는거 참 여러모로 느끼는데 몸이 좀 안좋은데
    너무 서러웠는데 ㅠㅠ 여기서 토닥토닥 받고 가네요 ... 님 너무 다행이고 시엄마도 복받으실거고 님도 잘 살아와서 그런 분들 만난 걸 거예요.
    누가 그러더라고요. 인생에 밸런스가 있는 거 같다고 .. ㅠㅠ
    글 써주셔서 고맙습니다 ... ㅠㅠ 오늘도 서러웠어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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