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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까지 생존한 것으로 밝혀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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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1-04-30 18:44 수정 2009-09-20 20:19

일제시대 정지용에 버금가는 토속적인 서정시로 명성을 날렸던 민족시인 백석(白石·본명 백기행).

1963년을 전후해 북한에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됐을 뿐 미스터리로 남아 있던 백석의 북한에서의 행적이 처음으로 공개됐다.

90년대 중반부터 중국과 일본을 돌며 백석의 행적을 취재했던 소설가 송준씨(39)는 최근 백석의 미망인 리윤희 씨(생존시 76세)와 장남 화제 씨가 1999년 2월 중국 조선족을 통해 보내온 서신과 말년의 백석 사진 두 점을 공개했다.

◇소설가 송준씨 北유족 통해 서신·사진 입수 공개

이에 따르면 백석은 1963년 북한 협동농장에서 51세로 사망한 것으로 국내에 알려진 것과는 달리, 압록강 인근인 양강도 삼수군에서 농사일을 하면서 문학도들을 양성하다가 1995년 1월 8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것으로 밝혀졌다. (탄생 1912년 7월 1일)

백석이 오랫동안 생존했다는 사실은 함께 공개된 사진을 통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백석이 70대 중반이었을 즈음, 집 근처에서 부인 리씨, 둘째 아들 중축, 그리고 막내딸과 함께 찍은 가족사진과 북한 인민증에 붙어있던 독사진이 그것이다. 청년기 때 사진에서 볼 수 있던 그의 맑은 인상이 말년에도 남아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국내 문단에는 백석이 일제 말기에 만주에서 살았으며 해방 이후 국내로 들어와 신의주와 평안북도 정주에 거주했다는 사실만 알려져 있으며 한국전쟁 이후 행적은 거의 전해지지 않았다.

부인 리윤희 씨에 따르면 백석과는 1945년말 북한에서 결혼했으며 슬하에 3남2녀를 두었다는 것. 리씨는 백석의 두 번째 부인이다.

리윤희 씨는 둘째 아들 중축씨가 대필한 편지를 통해 남한에 알려지지 않았던 백석의 거취를 상세하게 적었다.

리씨는 편지에서 “남편과 결혼한 이후 평양시에서 살다가 1959년 ‘붉은 편지 사건’ 이후 삼수 관평리로 옮겨와 현재까지 살고 있으며 남편은 95년 83세의 나이에 노환으로 별세했다”고 전했다.

‘붉은 편지 사건’이란 북한에서 ‘천리마 운동’이 한창이던 1959년 당성(黨性)이 약한 것으로 지목받은 작가들을 지방 생산현장으로 내려 보낸 운동이다.

한편 백석은 1959년 이전까지 평양 동대원구역에 살면서 ‘조선작가동맹 중앙위원회 외국문학 번역창작실’에서 러시아 소설과 시 등 번역과 창작에 몰두한 것으로 밝혀졌다.

부인 리씨는 “글 밖에 모르는 사람이었던 백석은 삼수군으로 내려와 농장원으로 일했지만 농사일을 제대로 못해 마을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었다”고 전했다. 백석은 도리깨질을 못해 처녀애들에게 배웠을 정도였으며, 너무 창피해서 달밤에 혼자 김매기를 연습했다.

하지만 백석은 ‘하루에 한 사람을 열 번 만나도 매번 가슴에 손을 얹고 다정하게 인사를 나누고 지나가곤’ 할 정도로 성품이 겸손해 삼수군 사람들 중 백석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

그 후 백석은 삼수군 문화회관에서 당시 문학에 포부를 지닌 청소년들에게 문학 창작지도에 힘썼으며, 그에게 문학을 배운 많은 청년들이 중앙에서 우수한 평가를 받았다고 전했다.

백석은 평양을 떠난 이후 거의 창작 활동을 하지 않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가 1961년 북한의 조선작가동맹이 발행하는 문학지 ‘조선문학’ 12월호에 ‘돌아온 사람’ 등 농촌 정경을 담은 시 세 편을 발표한 것이 마지막이다.

백석의 집에는 그의 창작 노트 등 그에 관한 자료가 남아있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장남 화제 씨는 송씨에게 보낸 편지에서 “아버지가 생존시 남겼던 번역소설 원고도 이젠 많은 세월이 흘러오면서 다 휴지로 써 버렸다”고 말했다.

‘백석 전집’(창작과비평사·1987년)을 펴낸 이동순 교수(영남대 국문과)는 이들 자료를 검토한 뒤 “편지에 담긴 내용이 기존에 단편적으로 알려져온 백석의 행적과 시간적 논리적으로 딱 맞아 떨어진다”면서 “지금까지 나온 백석의 연표를 모두 새로 써야할 만큼 국문학사에서 중요한 자료”라고 평가했다.

송준씨는 2년이 지난 지금 관련자료를 공개한 이유에 대해 “이제는 이산가족이 오고갈 정도로 남북 관계가 좋아져서 지금 편지를 공개해도 북한의 유가족이 피해를 입지 않을 것으로 생각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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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인민증에 붙어 있는 백석의 증명사진(왼쪽). 1980년대 중반에 촬영한 가족사진(오른쪽). 백석 옆에 있는 이가 부인 이윤희씨이고 뒤는 둘째 아들과 막내 딸이다.

댓글
  • 일월아 2019/07/14 23:00

    반짝이던 잘생긴 청년이  나이를 먹어 그동안의 고달팠던 삶이 어때여는지 얼굴에서 보여지네요  갑자기 궁금하네요 그가 북에 안가고 남에 남았다면 그의 삶은 어때을지 이념의 논리로  고초를 겪었을지 아니면 순탄한 삶을 살았을지  나이를 먹어서도 잘생긴 얼굴과 눈빛은 여전하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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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glow 2019/07/14 23:26

    이러한 글자들이 지나간다
    -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어가도록 태어났다
    그리고 이 세상을 살어가는데
    내 가슴은 너무도 많이 뜨거운 것으로 호젓한 것으로 사랑으로 슬픔으로 가득찬다
    그리고 이번에는 나를 위로하는 듯이 나를 울력하는 듯이
    눈질을 하며 주먹질을 하며 이런 글자들이 지나간다
    - 하늘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
    초생달과 바구지꽃과 짝새와 당나귀가 그러하듯이
    그리고 또 '프랑시쓰 쨈'과 도연명과 '라이넬 마리아 릴케'가 그러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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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S64F 2019/07/14 23:42

    "백석의 집에는 그의 창작 노트 등 그에 관한 자료가 남아있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장남 화제 씨는 송씨에게 보낸 편지에서 “아버지가 생존시 남겼던 번역소설 원고도 이젠 많은 세월이 흘러오면서 다 휴지로 써 버렸다”고 말했다."라는 내용을 보고 문득 떠오른 건데요.
    백석 시인의 문학 세계는 대단히 토속적, 향토적이고 민속적이며 서정적인 것으로 대개 알려져 있음을 감안해볼 때 어쩌면, 말이 좋아 '다 휴지로 써 버렸다'라고 하지만서도 사실은 8월종파사건을 비롯한 이런저런 숙청 당시에 사상무장이 안 되어 있고 당성이 약해뵌다는 이유로 조선노동당에서 죄다 걷어가 제껴(..)버린 걸 대놓고 말할 수 없어(대놓고 '당에서 다 걷어갔시요!'라고 불만을 표하면 '동무레 교화소에서 당성을 좀 무장해야갔소!'라고 끌고 갔을테니......) 휴지로 다 썼다고 변명으로 둘러댄 것이거나 혹은 숙청 시기에 빌미를 잡히지 않기 위해 집안 사람들이 자체검열해 영영 묻어버린 게 아닐지 싶기도 합니다.
    그러고보니 본문 중에도 백석 시인이 그렇게 '당성이 약한 문인들을 지방으로 내려보내 굴렸다'고 하는 소위 '붉은 편지 사건'에 관련되어 낙향했다고도 되어 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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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ramise 2019/07/15 01:13

    여승
    여승은 합장을 하고 절을 했다.
    가지취의 내음새가 났다.
    쓸쓸한 낯이 옛날같이 늙었다.
    나는 불경(佛經)처럼 서러워졌다.
    평안도의 어늬 산 깊은 금덤판
    나는 파리한 여인에게서 옥수수를 샀다.
    여인은 나어린 딸아이를 때리며 가을밤같이 차게 울었다.
    섶벌같이 나아간 지아비 기다려 십 년이 갔다.
    지아비는 돌아오지 않고
    어린 딸은 도라지꽃이 좋아 돌무덤으로 갔다.
    산꿩도 설게 울은 슬픈 날이 있었다.
    산절의 마당귀에 여인의 머리오리가 눈물방울과 같이 떨어진 날이 있었다.
    - 백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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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봄고양이 2019/07/15 03:09

    https://youtu.be/YOmNQGrpnIw
    트루베르 - 나와 나타샤와 힌당나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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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는누나남친 2019/07/15 07:08

    뭐 다른건 모르겠고.. 머리숱 진짜 부럽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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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뒷북일까나 2019/07/15 07:39

    그래서 나타샤가 누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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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킷트 2019/07/15 08:05

    시대가 그랬네요.
    순응하는 사람이 아닌듯 하니 이쪽에 있었어도 엄혹한 시절을 맞았을거고.
    저쪽은 더했을거고.
    반짝반짝하던 재능을 가진 젊음이 그렇게 지나가버렸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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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겨울sori 2019/07/15 08:43

    아름다운 사람이 이렇게 힘들게 지나가셨네요
    행복하고 서럽고 고다팠을 삶 뒤에 내내 평안하시길 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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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축구화팅 2019/07/15 09:37

    젊은 시절은 배우 박정민씨 닮은듯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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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월동뚠뚠냥 2019/07/15 11:23

    왜 저런 재능있는 사람들은 요절하는걸까 생각했었는데 살아계셨군요 왠지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미망인이라는 단어가 아직도 쓰이는군요. 좋은뜻이 아닙니다 그냥 고 누구씨의 아내라고 씁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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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유재건위원 2019/07/15 14:04

    친일파 친군부 ㅅㅂㄴ들은 지들이 불리하면 다 납북되어서 북한에서 죽었다고 개드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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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커피트럭 2019/07/15 15:17

    (여승 )은
    정말 명시임...
    지금도 기억이 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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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텀블러18호 2019/07/15 18:25

    젊었을대 잘생겼으면 나이먹고도 훈훈한 할아버지였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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