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 부터 400여년전인 1592년 4월 13일
부산진성을 함락시킨 3만의 왜군은
14일 뒤이어 군인과 피난온 민간인 3000~5000가량이 모여있던
동래읍성으로 몰려들었습니다.
명을 정벌하게 길을 빌려달라는 왜군을 말도 안돼는 요구에
동래부사 송상현은 "죽는 것은 쉬우나 길을 빌려주기는 어렵다"라고 대답했고
이어 벌어진 전투끝에 15일 결국 동래읍성은 함락되었으며
7년간에 걸친 임진왜란은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동래부사 송상현은 동래부에 부임한후 일본의 움직임을 의심하여
여러가지로 성을 방어할 준비를 해놨으나...
읍성 수준으로 막기에는 무리인 규모의 공격에 큰 실효는 거두지 못했습니다)
부산 지하철 4호선 수안역 공사중 이 발견은 이루어지게되었습니다
.
그로부터 413년이 지난 2005년 3월 부산 지하철 4호선 공사중
혹시나 하는 마음에 공사현장에 나가있었던
경남문화재연구원 정의도 학예실장은 해자로 보이는 흔적을 발견하고
당국에 신고하여 조사가 이루어 졌는데
이로서 동래성전투에 관련된 많은 사실들이 밝혀지게 되었습니다.
발견된 곳은 동래성의 해자가 있던 곳인데 해자란
물이 성을 둘러싸서 방어하기 좋게 만든 구조물이죠
당시 동래성 재현 미니어쳐, 검은 원부분이 발굴된 위치
동래성 해자에서 발견된 조선군이 사용하던 화살촉
역시 해자에서 발견된 조선군이 사용하던 칼 (환도)
길이 3m 가량의 조선군 창과 칼(환도)
현장에서 유일하게 발견된 왜군의 창날
조선군 갑옷(찰갑)
실존하는 유물이 거의 없는 조선초기의 창이나 갑옷등이 출토되어 관계자들을 흥분시키기도 했지만
그보다 앞서 보는 이들을 비통하게 하는 것들이 있었으니....
바로 당시 희생된 이들의 유골이었습니다.
겨우 97평의 발굴현장에서 확실하게 확인된 것만 81구(최대 114구)의 유골이 발견되었으며
이 유골들은 10~40대의 남자 59명 여자 21명 유아1명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성밖에서 시신이 발굴된 점이나
발견된 갑옷의 주인으로 보이는 장교이상급 군관의 두개골이 발견되지 않는 점
남자들의 평균 신장이 163.6cm가량으로
당시 일본인의 평균신장인 155~156보다 훨씬 크며 골상이 한국인과 유사한 점
아이와 여자들의 시신들도 다수 발굴되며 부자연스러운 상처들로 봐서 전원 조선인으로 보이며
전사한 조선군들과 학살한 민간인들의 시신을 해자에 던져넣은걸로 보입니다.
몇몇 유골에 남은 상처는 사망당시의 상황을 추정할수 있게 해주기도 했습니다.
유골들이 보이시나요?
골반뼈와 두개골
머리에 구멍이 난 두개골 아마 머리를 창에 찔리거나 총에 맞은걸로 추정됩니다.
해자에서 발견된 20대 여성의 두개골,
왜군은 이 여인의 왼쪽에서 뒤통수 부분을 칼로 내리쳤으나 빚맞자
다시 앞부분을 내리쳐 벤것으로 추정됩니다.
칼자국이 난 위치를 볼때 끓어 앉히고 베었거나 허리를 숙이게 한뒤 옆에서 칼로 벤걸로 보이는데
이건 어떻게 봐도 학살의 흔적입니다.
5세미만 유아의 유골, 뒤에서 조총을 맞아 앞으로 관통되었으며 즉사한걸로 보입니다.
아마 이 아이의 어머니도 같이 희생되지 않았을까 추정합니다.
창날에 잘려나간 아래턱
조사결과 얼굴 정면을 칼에 베이고 고개를 돌린상태에서 다시 한번 가격당했으며
고개를 숙인 상태에서 뒤통수에 치명상을 입고 사망한것으로 추정됩니다.
둔기에 맞아 함몰된듯한 두개골
상처는 매우 다양해서 창칼뿐 아니라 둔기에 맞아죽은 남녀도 발견됩니다.
그당시 부산엔 어떤일이 있었던 걸까요...
당시의 고통과 슬픔이 담겨 있는 기록들을 한번 살펴 보겠습니다.
총성이 울리고 그 검광은 대낮을 무색하게 했으며,
적군이 성중에 들어와 사람으로 메우다시피했다.
성은 협소하고 사람은 많은 데다 적병 수만이 일시에 성으로 들어오니
성중은 메워져 움직일 수조차 없었다
임진동래유사(壬辰東來遺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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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상현의 애첩 김섬은 함흥의 기녀였는데 송상현이 순절할 즈음에 적에게 붙잡혔다.
그녀는 사흘 동안이나 적을 꾸짖고 욕하다가 죽음을 당했다.
적도 이를 의롭게 여겨 관구를 갖추어 송상현의 곁에 장사를 지냈다
동래부민 김상(金祥)은 동네 아낙 두 사람이 깨 준 기와로 적병을 내리쳤다.
적이 떠난 뒤 김상의 어머니가 보니 김상과 두 아낙이, 적병 세 사람과 함께 죽어 있었다.
임진유문(壬辰遺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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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군수 조영규의 아들 조정로가 아버지의 유해를 찾으러 동래성에 갔는데,
성 안이 온통 시체로 덮여있어 유골을 수습하지 못했다.
조공유사기(趙公遺事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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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15일 청명에 집집마다 곡소리가 일어났다
늙은 아전에게 물으니 이 날이 (동래)성이 함락된 날이라 했다.
송상현 부사를 좇아 모인 성안 백성들은 피바다로 변하고
쌓인 시체 밑에 투신하여 천 명 중 한 두 명이 생명을 보전할 정도였고,
조손·부모·부부·자매 중에 살아남은 자는 죽은 친족을 제사지내며 통곡한다는 것이었다.
이 말을 듣고 내가 눈물을 흘리자 늙은 아전은
‘곡해줄 사람이라도 있으면 그나마 다행입니다.
적의 칼날에 온 가족이 죽어 곡해 줄 사람조차 남지 못한 집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라고 말했다
맹하유감사(孟夏有感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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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된 유골 수는 대개 열둘이지만 이는 특별히 그 형체와 해골이 완연한 것이고,
그 잔해의 조각조각이 떨어져 부스러진 것은 이루 헤아릴 수 없다
1731년 동래성을 보수하다 발굴한 유해를 뭍은 임진망전유해지총(壬辰亡戰遺骸之塚)의 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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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래부사 송상현은 굽히지 않다가 살해당했으며부산의 군사와 백성들도 도륙되어 살아남은 자가 없었다.
만약 부산이 그들의 땅이 었다면 도륙과 참살을 어찌 이처럼 참혹하게 했겠는가?
상촌집(象村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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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군 장수를 비롯하여 조선인 5000명이 죽었다.
루이스 프로이스의 일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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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수된 조선인이 3000명이었고 500명이 포로가 되었다.
종군승 케이넨의 "서정일기(西征日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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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래부사 송상현은 성이 무너지자 예복으로 갈아입고 남문 성루에 올라
임금이 계신쪽으로 절을 한후 아버지께 보내는 편지를 썻다
왜군이 들이닥쳐 잡으려하자 걷어차며
"이웃의 법도가 이런 것이더냐?
우리는 너희를 저버리지 않았거늘 너희는 어찌하여 이런 짓을 하느냐"
리고 꾸짓다 죽음을 맞았다는 이야기와
활을 들어 왜적 하나를 쏜후 검을 집어들고
왜적들에게 뛰어들어 둘을 베고 자신도 죽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무엇이 옳은지는 알 수 없다.
난중잡록(亂中雜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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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지하철 4호선 수안역 대합실에 출토된 유물들을 전시한
"동래읍성 임진왜란 역사관"을 운영중에 있다니
부산사시는 분들은 지나가는 길에 한번 들러보시는것도 좋으실듯 하네요
전쟁은 예나 지금이나 끔찍하네요
그나저나 저건 발견되어서 다행이지 공사하다가 쓸려 사라진 유물,유골들 전국에 정말 많을 듯
잘 읽었습니다.슬프네요..ㅠ
[리플수정]일본이 지구상에서 없어지지 않는한 일본은 영원히 한반도를 노림....
일본애들 DNA에 각인된거임....
남자들의 평균 신장이 163.6cm가량으로, 조선시대 평균신장이 꽤 컷군요.. 오히려 일제시대보다 더 큼..
저 근처에 대규모 재개발 예정지역과 복천동 고분군이 있습니다. 재개발구역도 파면 역사적 자료가 많이 나올 것으로 생각됩니다.
10만 양병설 지켰더라도 운명은거스를수없었다고 봅니다 고려시대 몽고침입처럼
징비록 되새겨서 미래를 대비합시다
이 사실을 언론에서 봤었던 것 같은데 막상 사진으로 보니 더 마음이 아픕니다. 일본은 언제나 경계해야 할 듯 합니다.
죽는 것은 쉬우나 길을 빌려주기는 어렵다
죄송합니다 글을 끝까지 읽지않고 빨리 내렸습니다 이후 저녁 편한 시간 다 보겠다고 약속하면서 지금 바로 드는 의문점 하나만 묻습니다 아니 평소에 진짜 궁금한점 인데요 왜 그 읍성이 400년 이상이나 땅속에 묻혀있어야만 했나 입니다 비단 동래읍성 뿐만이 아니고 전국 도처에 읍성 규모 정도의 성들이 대부분 땅속에 묻히게된 이유가 정말 궁금합니다 역사나 고고학(?) 뭐 암튼 관련 분야에 문외한인 1인으로써 역사가 일순간 뚝 끊어지지 않은이상 조선시대 성곽이라면 그 자취가 분명 했을텐데 땅속에 묻힌 이유가 계속 의문으로 남습니다
[리플수정]그래10위다// 일제시대때 많이 성벽들을 철거하기도 했고. 이후에도 인구가 늘면서 거주지확보차원에서 철거하기도 한걸로 압니다..성벽철거하면서 해자같은거야 당연히 메웠구요..
일본도 주적
일본넘들 지나간곳은 어디나 학살..강O. 수백년전이나 태평양이나..비교할만한게 터키정도임
수백년이 지나도 전쟁의 고통과 상처가 그대로 전달되니 정말 가슴아프네요..
주위 국가중에 주적 아닌곳이 없네요 씁쓸
why구들의 본성은 지금도 그대로입니다.
우리가 약하고 미국의 힘 떨어지면 언제든 똑같은 짓 벌일 놈들이죠
슬픈 역사네요 ㅠㅠ 죽는 것은 쉬우나 길을 빌려주기는 어렵다 ...
이런데도 친일파들 쥐들처럼 들끓는거 보면 속 터짐
일본인들 어렸을때부터
일본인은 착하다 예의바르다 평화를 사랑한다
이렇게 세뇌교육 시키는 이유가 있죠..
사실 그렇지 않다는걸 감추기 위해서임
마음이 너무 아프네요ㅠㅠㅠ
다시는 이런 슬픈 역사가 없길 바랍니다
충무공이 왜 그렇게 저들을 한명도 살려서 보내지 않으려 했는지 확실히 알겠네요.....
글 잘 읽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집근처인데 한번 가보겠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와 우리집 앞이다
정성글엔 추천
임진왜란때 왜군의 반이 왕을 미워하던 조선백성이었죠
글고 민간인 학살의 주범은 조선왕이 불러들인 명나라에 의해 엄청 일어났죠
경계도 좋지만 사실은 알고 판단합시다
모쓰김// 임진왜란이 시작이 부산진전투인건 아시나요? 저건 왜군에 의한 학살이 맞죠. 평양성을 발굴하다가 저런 유골이 나오면 명군에 의한건지 의심을 해볼만 하지만요
모쓰김// 절단기상......
모쓰김// ??? 아주 황당한 말씀을 하시네요. 임진왜란때 왜군 병력의 구성은 일본측 사료에 다 나와 있습니다. 정 궁금하시면 나무위키 임진왜란 항목에라도 들어가보세요. 일본군 병력구성을 보시면 일본군 각 구성부대와 규모, 지휘관 다 나와 있습니다. 도대체 어느 사료에 조선인들이 그렇게 많이 일본군에 참가했다고 나와 있습니까? 잘 모르면서 아는척 좀 하지 맙시다. 그리고 조선인들은 일본군의 학살과 폭압에 대항해서 싸웠고, 조선 조정이 그렇게 신망을 잃지도 않았습니다.
모쓰김// 어디 아픔?
일본놈들은 몇백년이 지나도 안변하네요
전쟁에서 학살질 해댄거 전근대까진 당연시 되는거였는데 역시 일본 들어가니 반응이 폭발적이군요. 흠...
[리플수정]모쓰김// 야! 이런 글에도 쌍욕 먹을 소리를 하니?! 뻘소리말고 느그 징글 징글한 X베 친구들이랑 느그 동네가서 쎄쎄쎄를 하든, 똥을 싸든, 진흙탕에서 뒹굴든지 해라!! 낄 때 껴라 이런 녀석들은 꼭 이런 글에 X을 묻히네 현실에서도 너 그런 소리 할 수 있니? 할 수 있으면 해봐라 어떤 꼴 나는지 영상 찍어줄게ㅋㅋ
모쓰김// 일베로 돌아가라
.
별 그지 같은 인간이 다 있네.
좋은글 읽다가 친일파 한명이 부들부들 하네요
이런 정성 글에 달라붙어 역사를 왜곡하는 자의 지난글을 꼭 보세요.
지금 우리나라가 꼴이 말이 아닌데 한심하내요.일본은 호시탐탐 노리는데..역사는 반복됩니다
절단기 멀티로 또 왔네요
릊거운인생// 당연시 되어서 욕하지 말라고요? 일본이라서 과민 반응한다 말하고 싶은건가요?? 뭔 말같지도 않은 소리를
정말 슬픈 역사네요ㅠㅠ
모든 쪽뽕들과 중뽕들 본인과 가정에 처참하고 끝 없는 불행과 저주가 가득하길
일본한테 너무 줘터졌어요 복수할날을 기다립니다
이지역 근처 공사하면 옛날 자료들 엄청 나오죠....
모쓰김// 뭔 정신나간 소릴 하고있나;;
해자의 진흙때문에 저렇게 보존될 수 있었겠군요.
지금이라도 전부 발굴한다면 해자속에 보존된 유골들과 유물들이 엄청날 것 같습니다..안타깝네요. ㅠㅠ 전부 발굴해서 국민들에게 살아있는 역사의 교훈을 알려줄 수 있다면 좋으련만..
동래 래미안 아이파크 기초공사하다가 유물 많이 나왔는데 공사중단될봐까 보존안하고 묻었음 이거 모르는 사람 많은데..
저 위에 근거도 없는 개뼈다구만도 못한 헛소리하는 유사 왜인어 있네요. 어디서 택도 아닌 소리 하고 자빠졌어
본국가면 히키고모리 되기에 딱좋은 넘이 하나 있네
일본에서도 안하는 헛소리를 당당하게 하는
이런데도 조선왕조 빠는애들은
총맞은거. 이거 다 조선왕들이 문제였음
이때도 조선통신사 보내서 정찰 시켰는데
기와집 천지에다가 잘사는거 다 봐놓고도
당파싸움 이길려고 거짓보고 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