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동대지진 후 어떤 일이 일어났느냐에 대해서는 '역사저널 그날'에 나온 캡쳐가
어제 좌측담장에도 올라가있으니 그걸 참고하시면 될 거 같고......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관동대지진이 특히 일본에서는 어떻게 기억되고 있느냐에 대해서입니다.
도쿄에 여러번 가보신 분들은
분명히 도쿄가 꽤 역사가 오래된 도시이고, 특히 1600년대 이후 계속 정치의 중심지였음에도
옛날 건축물이나 유적이 거의 남아있지 않다는 것에 의아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서울은 그래도 경복궁도 있고, 창덕궁도 있는데 하면서 말이죠.
그나마 아사쿠사 정도를 꼽을텐데, 사실 아사쿠사의 센소지도 1960년대 콘크리트로 복원한 겁니다.
왜 도쿄에는 예전 건축물이나 유적이 거의 없냐면
첫번째가 1923년 관동대지진으로 대부분 박살났고, 그후에 1945년에 미군의 도쿄대공습으로 다시 박살나서입니다.
이걸 특히 느낄 수 있는 곳이 료고쿠 역에서 금방 가면 닿는 '에도도쿄박물관'입니다.
말그대로 에도 이후 현대 시대까지 도쿄의 모습이나 생활사 등 역사를 담아놓은 곳인데
1920년대 이전에 도쿄를 담은 사진 풍경에는
'현재 남아있는 건물은 관동대지진 이후 복원되었다.'
또는 '이 건물은 관동대지진 이후 소실되었다.'가 꽤 많이 설명으로 붙어있습니다.
게다가 아예 박물관의 한 코너가 '관동대지진'일 정도로 도쿄 역사에서 뺄 수없는 큰 사건으로 취급합니다.
그 코너를 가면 대부분이 관동대지진의 피해와 피해 이후 폐허가 된 도쿄의 모습으로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뭐 큰 피해를 입었다. 그리고 우리가 열심히 복구했다
뭐 그런 내용이 나와있습니다만 그건 제가 지식이 모자라서 패스하고......
그렇다면 여러분이 궁금해하는 관동대지진 이후의 조선인 학살 부분은 들어가있느냐.
들어가있습니다.
관동대지진 코너에서 안내문들이 여러개 붙어있는데, 관동대지진 이후를 설명하는 부분에 한두줄 정도 들어가있습니다.
기억은 안나는데 '대지진 이후 부정확한 정보와 소문으로 인해 조선인들이 살해당했다.' 이렇게 적혀있었을 겁니다.
그리고 그 글의 마지막이 '정확한 정보의 필요성으로 인해 라디오가 많이 보급되었다.' 이렇게 끝날겁니다.
혹시 제가 틀렸을 수도 있으니 저곳에 가보신 분들이 원문을 직접 확인해주시기 바랍니다.
근데 내용이 제가 적은 거랑 비슷할겁니다.
에도도쿄박물관 홈페이지에 관련 내용이 있나 찾아보려고 했더니 여기는 딱 이 내용까지만 나오는군요.
사실 저는 나름 역사를 많이 관심있어하는 입장이라서 에도도쿄박물관을 갔다가
1920년 전 사진에서 '관동대지진으로 소실' 이라는 부분을 보고
과연 일본사람들이 관동대지진의 그 학살 부분을 제대로 적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는데
뭐라고 할까...... 보고 나서 좀 허탈한 느낌을 지울 수는 없더라구요.
마지막 문장 보면 사람들을 죽여놓고 결국 부정확한 정보가 원인이라 라디오 보급이 많이 되었다.
제가 안내판 보는 영어실력이 부족해서 잘못 이해했을지 모르겠지만.
그 때 떠오르던게 히로시마 원폭입니다.
원폭 투하 이후 조선인 노동자들도 꽤 많은 피해를 입었습니다.
그리고 조선인 피폭자들이 해방 후에도 일본과 끊임없는 투쟁을 벌여왔지만
일본에서도 무시당했고, 국내에서도 잊혀진 존재가 되어버렸죠.
히로시마 원폭 기념관을 가보면 거기서도 조선인 피해자에 대한 내용이 한두줄 들어가 있긴 합니다.
물론 그 의도야 어쨌든 제 눈에는 맨날 원폭 피해 이야기하는 히로시마 측에서
조금이라도 자기 편 더 끌어들이려고 저기 넣어놓은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더 들었지만 말입니다.
(실제로 그렇게 원폭 피해와 평화를 외치던 히로시마시가 평화기념공원에 조선인 위령비 하나 들어가는 걸
자리가 없다는 핑계로 수십년 동안이나 허가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면 더욱 그렇게 느껴지죠)
일본인들이 더 야비하고 비겁해서 그럴까요? 흐음...... 글쎄요. 어디든지 파보면 이런 경우는 있거든요.
사실 누구라도 부끄러운 건 감추고 넘어가고 싶어하죠. 그게 더 쉬워보이니까.
그렇지만, 감춘다고 해결될 일은 없죠. 그냥 외면하는 것뿐.
그걸 기억하는 누군가가 있는 한 사실이란 덮어지지 않죠.
그렇기 때문에 부끄러운 사실은 드러내고 솔직하게 고백하는 편이 더 낫죠.
일본인들에게 관동대지진이 크나큰 상처로 남아있다는 걸 박물관에서 이해했지만
수백 수천명을 이유없이 죽여댔던 그 상황을 한두줄의 문장이나 라디오 보급으로 마무리 하는 것까지 이해하긴 힘들었습니다.
어쩌면 마지막 문장에는 라디오 보급보다 우리의 잘못이 있었다는 마무리가 더 필요한게 아니었을까.
뭐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기나라 지진난걸 죄없는 조선인들한테 화풀이하고 그걸또 방조했던 일본정부-최소 일본이라는 국가의 정부한테만은 일말이나마 반성을 기대하는게 무리죠.(시민들중에는 그나마 개념인들도 있으니)
도쿄대지진 기도합니다
[리플수정]부실한 기술이긴 한데, 조선인 학살을 부실하게 조차도 아예 안 넣었을 줄 알았는데, 그렇게라도 넣었다니 살짝 놀랍긴 합니다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ㅊㅊ
나가사키 원폭 공원에 가면 조선인 위령비는 아주 작게 구석에 있더군요. 간 김에 구글지도 켜서 찾아갔는데, 지도상 위치에 갔는데도 잘 안보여 좀 헤맸습니다. 뭐 길치인지 몰라도 적기도 하고... 그거 세운 것도 일본 공식 기관에서 새운 것도 아니었고.
확실히 기억을 제대로 안하는 게 크다 싶더군요.
이사건을 잘모르시는 분들이 의외로 많더군요 진짜 가슴아픈 역사인데
회색남// 근데 방송보니 그나마 기술한 것도 점점
축소되고 있다네요.
잘 알려진 원폭 추모 조각상 앞에서 일본 초등생 애들이 뭐라 뭐라 단체로 읊고 있던데, 죄없는 애들임에도 불구하고 뭔가 곱게 안보이더군요.
일본이 북한 납치에 대해 끝까지 물고 늘어 지듯
한국도 이런 일본의 잔학한 만행에 대해 끝까지 물고 늘어 져야됨~
한국인 살해한 일본인 기록을 찾아 누군지 밝히고 역사서에 남겨야될일임
[리플수정]회색남// 감추기에는 워낙에 큰 사건이기도 했죠. 게다가 중앙정부 입김이 약한 곳에서는 일본에서도 제목소리 내는 세력들 목소리가 어느 정도 먹히는 영향도 있을겁니다.
대신 김경기님 말씀대로 일본의 우경화가 심해지다보니 점점 힘싸움에서 밀리는게 보이죠. 그래도 예전에는 사회당이 어느정도 버티고 있었고, 진보세력들도 목소리낼 정도는 되었는데......
나가사키 원폭 박물관 가시면 더 심해요. 전쟁가해자가 아닌 원폭 피해자 코스프레하면서 평화를 외치는 그 역겨움에 토를 하며 나왔습니다.
유지현// 히로시마도 마찬가지입니다.
죽음에는 차별이 없지만, 추모에는 차별이 존재한다는 씁쓸한 뒷이야기를 알면 더욱.
일본에서도 양심적인 분들이 있기는 해요. 야마모토 세이타 변호사님 같은 분들은 강제징용 사건 진행하는데에도 큰 도움을 주었고, 일본에서도 강제징용 피해자, 위안부 할머니들을 돕기 위해 정말 노력하고 계십니다. 안타까운 것은 이런 분들의 목소리는 날이 갈수록 작아지고 있다는 부분입니다. 일본의 우경화가 너무 속도가 빨라서 참 걱정이에요.
말도 안되는 변명이죠. 이미 1923년 정도의 일본 특히 도쿄는 국민 대부분이 공통교육을 마친 상태고, 지진으로 많은 사람이 죽었는데 국가기능이 멈춰 사체처리조차 제대로 안되어 질병으로 죽는 사람도 많아지자 정부에 대한 반발이 엄청났는데, 그 반발의 중심이 당시 유행하는 공산주의자다 보니까 공산주의자 처럼 보이는 사람은 죄다 때려죽였는데 거기서 공산주의=조선에서 건너온 사상 이 겹치면서 조선인 학살로 이어진겁니다.
그 윗분들께서 말하는 일본 내의 양심적인 일본인들도 죄다 공산주의 비슷한 것으로 일본 내에서도 탄압받던 사람들. 이건 뭐 박열이라는 영화에서도 잘 다루어져있다고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