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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금사랑없는 사람들의 사랑이야기. (103)

 


  9



 주차할만한 자리가 마땅치 않았다. 유성현이 자취하는 집 근처에는 도무지 차를 댈 자리가 없었다. 아무데나 불법주정차라도 할 자리가 없어서, 아직 문을 열지 않은 술집 앞에 차를 댔다. 


 조금 걷다가 큰 길도 건너야 했다. 신호등을 기다리고 있는데, 건너편 버스정류장에 멈춘 버스에서 민효정이 내렸다. 곧 신호등에 파란불이 들어왔지만, 난 건널 수 없었다. 민효정은 분명히 유성현의 자취방 쪽을 향해 걷고 있었다. 


 효정이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다 편의점에 들어갔다. 



 “담배 주세요.”


 “어떤 거 드릴까요?”


 “아.......아무 거나요.”


 “네?”



 알바가 뭐 이런 여자가 다 있냐는 표정으로 눈을 껌벅였지만, 잠시 나를 바라보더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담배는 몸에 해로워요.”


 “.......저거 주세요.”



 그냥 아무거나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알바가 조금 씁쓸한 표정으로 담배를 건네며 말했다.



 “4,500원입니다. 라이터는 있어요?”


 “아. 라이터도 주세요.”



 이제 알바가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왜 그러고 있냐는 표정을 지으니, 알바가 주머니를 뒤적여 쓰던 라이터를 꺼내주며 말했다.



 “이거 쓰세요. 전 또 라이터 있어요. 어차피 버릴 거잖아요?”


 “아. 고마워요.”



 예쁘다는 건 여러모로 편리하다. 꽤 많은 상황에 이런 친절을 제공받는 편인데, 대신 귀찮은 일도 감수해야 한다. 알바가 담배를 계산해주며 말했다.



 “혹시 모델이세요?”


 “아뇨. 제가 모델 같나요.”


 “네. 뭐 미인이시니까. 이 근처에는 그런 분들도 많이 살고 그러니까요.”


 “아.”



 번화가에서 적당히 떨어진 원룸이 많은 동네였다. 모델이냐고 물었지만, 술집여자냐고 물어본 것과 같은 의미겠다. 평소라면 그냥 감사해하며 편의점을 나왔겠는데, 평소와 기분도 다르고 시간을 때우고 싶기도 했다. 알바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니, 꽤 부담스러워하면서도 부끄러워하는 것 같은 표정이 귀여웠다. 내가 물었다.



 “몇 살이세요?”


 “24살이요. 얼마 전에 군대 전역했어요.”


 “전 몇 살처럼 보여요?”


 “저랑 비슷할 거 같은데.......”


 “그럼 우리 친구할래요?”


 “예? 아~ 저야 좋죠.”


 “알바 하면서 손님이랑 따로 만나 본 적 있어요?”


 “아뇨?”


 “그럼 저랑 만나볼래요?”


 “네?”


 “알바 몇 시에 끝나요?”


 “11시에 끝나요.”


 “그럼 그때 봐요. 참. 건강해요?”


 “예?”



 알바의 경악스러운 얼굴에 만족하며 편의점을 나왔다. 다니는 사람들이 많아 담배를 피우기엔 불편했다. 저녁에 출근하는 젊은 여자들이 지나고 있었다. 그런 동네인 모양이다. 신호등을 건너 유성현의 집으로 향했다. 조금 걷는데 민효정과 다시 마주쳤다. 민효정이 동네 놀이터의 벤치에 앉아 휴대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그런 민효정을 멀리서 바라보며 담배를 물었지만, 여전히 담배는 피우기 어려웠다. 기침이 나오는 걸 참느라 힘들었다. 눈도 매워지는 것 같았는데, 그래도 천천히 연기를 마셔봤다. 민효정을 보고 있으니 그럴 수 있었다. 


 갑자기 민효정이 자리에서 일어나 내가 있는 방향으로 걸어오기 시작했다. 숨을 장소가 마땅치 않아 담배를 끄고 근처 국밥집으로 들어갔다. 



 “혼자 왔어요?”


 “아. 네”


 “순댓국 드려요?”


 “......네”



 아줌마에게 대강 대답하며 국밥집 앞을 지나는 민효정을 지켜봤다. 딱히 기운이 없어 보이거나 슬퍼 보이는 얼굴은 아니었다. 아니, 민효정은 원래 저랬다. 학창시절 내내 별다른 표정의 변화가 없었던 것 같다. 효정이네 집이 어려울 것이라고는 상상하기도 힘들 정도로 항상 일관된 태도를 유지했었다. 


 효정이가 지나갔다. 민효정이 얼마나 자주 유성현의 집을 찾아 왔을지 궁금했다. 그냥 돌아가는 걸 보니, 성현이와 연락이 되지 않은 모양이다. 당연히 미리 약속 같은 걸 하지도 않았겠다. 나처럼 그냥 하고 싶은 생각으로 찾아오진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불편해졌다. 


 난 지금 뭘 하고 있는 건지. 스스로에게 실망하고 있는데 국밥집 아줌마가 말했다.



 “밥 안 먹어요?”


 “아. 죄송해요. 얼마죠?”


 “먹지도 않을 거면서 왜?”


 “다음에 와서 먹을게요.”



 지갑에서 대충 만원을 꺼내 카운터에 놓고 가게를 나왔다. 아줌마가 됐다고 했지만, 난 빠른 걸음으로 걷기 시작했다. 뒤에서 아줌마가 다음에 와서 꼭 먹으라고 외쳐주기까지 했다. 


 민효정은 이미 시야에서 사라졌다. 민효정을 따라가 볼 이유는 없었는데, 걱정됐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또 왜 유성현과는 연락도 못하고 이렇게 무작정 찾아와야 했었는지 걱정됐다.  


 휴대폰이 울려서 또 유성현인 줄 알았는데, 차를 빼달라는 전화였다.



 [아니! 남의 가게 앞에 주차하면 어떻게요! 당장 빼지 않으면 신고합니다!]


 [금방 갈게요.]



 엄청 화가 난 목소리였다. 계속 빠르게 걸어 다시 신호등 앞에 섰다. 횡단보도 건너편의 편의점 알바가 가게 앞을 청소하고 있다가 나를 발견했다. 내가 무표정한 얼굴로 바라보고 있으니 약간 긴장한 얼굴로 부랴부랴 가게로 들어갔다. 


 신호등에 파란 불이 들어왔다. 길을 건너며 계속 편의점 안의 알바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알바는 몇 번이나 내 눈을 피하면서도 계속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 알바에게 쓴 웃음을 보였더니, 알바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다른 누군가를 찾기 시작했다. 


 주차된 차에 갔더니, 작은 트럭이 내 차 앞에 세워져 있었다. 트럭 주인이 내게 버럭 화를 냈다.



 “아니! 이 아가씨야! 차를 남의 가게 앞에.......”


 “죄송합니다.”


 “아....... 근처에 차 댈 곳이 없죠?”



 예쁘면 여러모로 편리하다. 30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남자가 나를 보더니, 화를 내려다말았다. 차를 빼려 시동을 걸었는데, 그가 다시 말했다.



 “볼일은 다 보셨어요? 아직 볼일이 남았으면, 차를 좀 뒤로만 빼줘요. 트럭에 짐을 실어야 하거든요.”


 “아. 장사하실 거 아닌가요?”


 “장사요? 아~ 여기 가게 정리하는 중이에요. 짐만 좀 옮기면 되니까. 차를 뒤로 좀만 빼줘요.”



 이제 볼일도 없겠고 그냥 차를 출발시켜도 되겠는데, 차를 뒤로 조금 빼서 정차시켰다. 그가 차 뒤에서 수신호까지 해줬다. 어차피 후방카메라를 보고 있었지만, 그에게 감사해하며 차에서 내렸다. 


 그가 내 얼굴과 몸을 수시로 옮겨가며 바라보다 말했다.



 “새로 오픈할 가게 준비하느라 이제 왔거든요. 길이 어찌나 밀리던지. 뭐 그래도 이제 여기 짐만 좀 정리하고 나면 이제 이 가게랑 안녕이네요. 아~ 시원섭섭하네.”


 “장사가 잘돼서 확장하시나 봐요.”



 보통의 남자들은 내게 그런 편이었다. 내가 근처에 있기만 해도 친절을 베풀려 했고, 말을 걸어주면 하지 않아도 될 말까지 주절거렸다. 가게를 보아하니 작은 맥주 집을 운영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는 장사가 얼마나 잘됐었는지 장황하게 떠들기 시작했다. 주말에는 자리가 없어서 기다리는 손님들도 있을 정도였단다. 동네 맥주를 마시려고, 아니 술을 마시려고 기다리는 손님이라니 믿겨지지 않았다. 그나저나 이 남자는 그렇게 떠들면서도 쉴 새 없이 내 몸을 훑어보느라 눈동자가 바빠 보였다. 


 그리 튀게 차려입지도 않았다. 학교에 출근하는 복장이었다. 무릎근처까지 오는 단정한 진회색 치마에, 하얀 블라우스 위에 짙은 갈색 카디건을 걸치고 있었다. 그냥 내 몸이 야한 모양이다. 


 이런저런 말을 주저리던 그가 또 다시 내 전신을 훑어보며 물었다.



 “생맥주 한번 마시러 오세요. 맛은 제가 보장할게요.”


 “아. 예”


 “그런데, 여긴 무슨 일로 오셨어요? 이 근처에 사는 분처럼 보이진 않는데”



 아무 이유도 없었다. 그가 그렇게 주저리고 내 몸을 훑어보는 데에는 이유가 없었다. 그냥 나를 보자마자 사랑에 빠진 것이다. 흔히 많은 남자들이 그러는 것처럼 그도 그랬을 뿐인데, 내가 그의 가게 앞에 불법주정차를 했던 게 미안해서 기다려주고 있었다.


 평소처럼 그냥 떠났으면 그만이다. 아까 차에 시동을 걸었을 때, 그냥 차를 출발시켰어도 괜찮았다. 


 난 유성현의 몸에 불법주정차를 했었다. 좀 전에 민효정의 뒷모습이 마치 나를 비난하는 것 같았다. 벤치에 앉아 있던 민효정의 쓸쓸한 모습이 나를 나무라고 있었다.


 여전히 뭔가 떠들던 가게 주인이 이제야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참. 볼일이 있는 거 아니에요? 제가 너무 오래 붙잡고 있었네요.”


 “아뇨. 사실 오늘밤 여기에 주차 좀 해도 괜찮은지 궁금했어요.”


 “아! 그래요? 괜찮아요. 네 뭐 상관없어요. 어디 가시나 봐요?”


 “글쎄요........이 동네로 이사를 와야 할 거 같은데, 살만한 동네인지 궁금해서요. 낮이랑 밤의 분위기는 다르잖아요. 오늘은 그냥 좀 돌아다니다가 근처 모텔에서도 자 보려고요.”



 어쩜 이런 거짓말이 이리도 술술 나오는 걸까. 단지 오늘 다른 계획이 없었을 뿐이다. 사실 유성현이 언제 돌아올지 궁금하기도 했다. 간단히 전화를 걸면 해결될 일이겠는데, 통화는 아까 이미 유성현과 했었다. 유성현은 오늘 술이 마시고 싶다고 했고, 여자가 필요해 보였다. 그런 유성현이 민효정의 연락을 받지 않고 만나는 사람이 궁금했다.


 뭘 하며 시간을 때울까. 



 “아니, 아가씨 같은 분도 모텔에서 혼자 자요?”


 “보통은 그렇지 않죠. 그 동네 분위기를 알려면 모텔이 가장 적절하니까요”


 “하하. 그런가요? 아가씨 오늘 운 좋으시네. 제가 이 동네에서 2년 장사했잖아요. 뭐가 궁금해요? 제가 도와줄게요.”


 “왜요. 모텔에 저랑 같이 가고 싶어서요?”



 헛기침을 하면서도 굉장히 기대한다는 눈빛을 반짝였다. 나와 어떻게든 조금 더 같이 있고 싶다는 태도였다. 어쩜 이렇게 쉽게 사랑에 빠지는 걸까. 아니, 여자와 자고 싶어지는 걸까. 


 그를 비난하고 싶지는 않았다. 오래전부터 내게 그런 태도를 보이지 않는 남자는 없다시피 했다. 그냥 시간이나 때워야겠다.



 “커피 있어요?”



 내가 물어보기가 무섭게 가게 문을 열어주면서 들어오라고 했다. 이미 상당히 정리가 진행 중인 가게의 내부는 휑해서 앉을만한 자리도 없었다. 그가 급하게 수건을 가져와 창가의 난간을 닦아줬다. 걸터앉기에 조금 높은 난간이라, 치마가 조금 말려 올라갔는데 그냥 뒀다. 어차피 충분히 긴 치마였다. 


 앞트임이었다는 게 조금 문제였던 것 같다. 벌어진 치마사이로 드러난 내 허벅지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가 커피를 준비하며 조심스레 물었다.



 “그~ 이 근처에서 일하시나요?”



 이 근처에서 일하냐는 질문은 술집에서 일하냐는 것이겠지. 난 대답대신 미소로 대답했고, 그는 꽤 놀랍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그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누구나 남처럼 살아보고 싶다는 상상은 하지만, 실제로 그러기는 어렵다는 걸 안다. 술집여자처럼 살아보는 건 어떨까. 나쁠 게 있을까? 지금 내 삶은 그녀들보다 낫다고 할 수 있을까. 



 “이 가게가 서향이라 좀 덥네요.”


 “아. 에어컨을 치웠는데 어쩌죠?”


 “괜찮아요.”



 카디건을 천천히 벗으며 다시 말했다. 이제 그의 눈에서 불을 뿜을 것 같다.



 “이 동네 월세가 싼 편이더라고요.”


 “비싼 거 아닌가요?”


 “한 번이면 벌 수 있는데요. 뭘”


 “.........아. 역시 비싸네요.”


 “싸긴 싼 거예요.”



 그가 커피를 쏟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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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죄송합니다. 갑자기 일이 있어서 좀 늦었습니다. 

댓글
  • 4Justice 2019/03/06 14:07

    바쁘셨나보군요 ㅋㅋㅋ 102화에 항의 리플 꽤 있을 겁니다 ㅋㅋㅋ

    (urPRHb)

  • NorthWind 2019/03/06 14:13

    4Justice// 기다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ㅎㅎ

    (urPRHb)

  • 헬렐레교관 2019/03/06 14:13

    4Justice// 북풍님아니고, 이명박원망입니다.

    (urPRHb)

  • 워니유니31 2019/03/06 14:16

    저를 포함하여 목 빠지게 기다리는 분들이 엄청 많습니다~! ^^
    오늘도 잘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urPRHb)

  • NorthWind 2019/03/06 14:17

    오늘도 이야기를 계속 할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urPRHb)

  • 배불러용 2019/03/06 14:21

    시점이 바뀔 때마다 시점의 주인공에게 감정이입 되었는데...
    아쉽게도 이 글에서는 편의점 녀석이 꼭 저 같네요...

    (urPRHb)

  • 한량 2019/03/06 15:01

    오늘 안올라오는줄 알았습니다. 늦게라도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urPRHb)

  • NorthWind 2019/03/06 15:05

    12시 반쯤에 오늘은 포기하려다가. 그럼 내일도 포기할 것 같아서 썼습니다. ㅎㅎ

    (urPRHb)

  • 란제리 2019/03/06 18:55

    미녀들에게 친절하다는 말에 진짜 뜨끔했네요 ㅋㅋ 나중에는 그녀 주변에 다 나같은 넘들 뿐이라 좀 틔어보일라고 나쁜남자 컨셉으로 다가가 봤는데..
    나쁜게 아니라 그냥 쓰레기가 되었네요 ㅋㅋ
    급한 일이 있으리라 짐작은 했습니다. 일은 잘 마무리 되었길 바랍니다~

    (urPRHb)

  • 헬렐레교관 2019/03/07 13:27

    104를기다리며103을한번더읽습니다.
    인생도이렇게하루씩되짚어볼수있다면
    뭔가좋은쪽으로달라지지않을까하는생각이듭니다.

    (urPRHb)

  • NorthWind 2019/03/07 13:56

    헬렐레교관// 죄송합니다. 오늘도 늦었습니다.

    (urPRHb)

(urPRH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