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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문자 그리고 나의 '두번째 엄마'

두번째 엄마_효과.jpg


  ※ 안녕하세요 스릴러/공포소설 전문 창작자 '야설왕 짐보' 입니다. 
     일단 장르는 스릴러이며, 신작이 아닌 예전 글의 수정/보완판임을 먼저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아마도 기억나시는 분 계실 듯! 너무 예전에 써서 엉망이길래 새로 싹 써 봤어요 ㅠㅠ)
     요즘 세태에 맞지 않게 글은 조금 길지만, 첫 게시 당시 반향이 꽤(?) 좋았던 글이니
     인내를 가지고 끝까지 참고 읽으시면, 가슴 한 켠... 무언가 남는 것이 있지 않을까?
     그와 같은 생각으로 감히 일독을 권해 봅니다.
    


문자 그리고 나의 두 번째 엄마
*
우리 아빠! 그 년이 죽였어!
조금은 당황스러운 하진의 말에 유정의 시선은 갈 곳을 몰라 허둥댔다. ‘아무리 새 엄마라지만 아까는 하진이 니가 좀 심했어...’ 생각없이 내뱉은 입 바른 소리, 그 놈의 입이 방정이었다. 버스는 어느덧 도심을 벗어나 한적한 교외로 접어 들었건만 동갑내기 친구인 하진과 유정, 두 사람 사이에는 어색한 침묵만이 흘렀다.
괜히 문자 얘기를 해가지고...’
입술을 꾹 다문 채, 유정은 뒤늦게 후회해보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머쓱해진 분위기가 풀어지려면 시간이 필요했다.
*
5시간 전의 모 패스트 푸드점, 흥겨운 음악소리 사이로 지금은 쉬이 찾아보기 힘든 단음으로 된 휴대폰 벨소리가 울려 퍼지자 몇몇 사람이 피식 조소를 머금었다. ‘엄마가 섬 그늘에 굴 따러 가면으로 시작하는 익숙한 멜로디의 동요때문이었다.
잠시 후, 비품 정리를 위해 자리를 비웠던 하진이 창고에서 돌아오자 유정은 뭐가 계속 울리길래 봤더니 전화랑 문자가 계속 오더라라는 말과 함께 휴대폰을 내밀었다.
역시나 요즘은 도통 찾아 보기 힘든 은색의 구식 2G폰이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창피했던지 하진은 급히 휴대폰을 갈무리하고는 구겨진 얼굴로 뒤돌아 버튼을 눌렀다.
같은 사람에게서 온 부재중 전화가 5, 그리고 문자가 하나 와 있었다.
[아무리 전화해도 받지 않아 문자 남긴다. 네가 말한 그 돈, 마련해 볼게... 그러니 알바 끝나고 집으로 오렴. 8, 늦지도 이르지도 않게 8, 잊지마 8시야! 꼭 시간맞춰 오길 바라 순옥-]
하지만 문자를 확인한 하진은 대뜸 인상을 구기며 소리쳤다.
..! 지가 뭔데 오라가라야!”
평소 욕설은 커녕 언성을 높이는 일조차 드문 하진이었기에 친구인 유정은 물론 애꿎은 계산대 앞 손님조차 놀라 두리번거렸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얘가 원래 이런 애가 아닌데...”
유정이 연신 손님을 향해 사과하는 와중에도 하진의 흥분은 가라앉을 줄을 몰랐다. 그 뿐인가? 알바중인 것도 잊은 채 곧장 어딘가로 전화를 걸더니 대뜸 악다구니부터 내질렀다.
당신 미쳤어? 나 되게 바쁜 사람이거든? 꼴랑 100만원가지고 사람 귀찮게 하지 마! 계좌 찍어 줄 테니까 계좌로 부쳐!”
하진아 바쁜데 미안해... 그치만 꼭 만나야 돼. 만나자! 오늘 아니면 안돼! 8, 너 알바 7시에 끝나잖아. 끝나고 오면 8, 8시에 맞출 수 있어. 그 전엔 안돼. 알았지?”
하진의 엄마인 순옥이었다. 유정도 건너건너 들은 바가 있었다. 엄마지만 진짜 엄마가 아닌 새 엄마, 그래서일까?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순옥의 목소리에선 간절함을 넘어 애달픔마저 느껴졌지만 대꾸하는 하진의 음성은 냉랭하기 그지 없었다.
시끄러! 당신이 뭔데 오라가라야! 내가 그 날, 분명히 얘기했지!”
“......”
당신이랑 나, 다시 만나는 날은 당신 죽는 날, 그때 뿐이라고! 보란 듯이 가서 웃어줄거야! 당신이 그랬던 것처럼 당신 영정에 대고 보란 듯이 웃어줄거라고!”
하진의 독기 서린 음성이 울려 퍼지자 모두가 놀라 입을 다물었다.
유정도 샌드위치를 주문하려던 손님도...
들려오는 것은 오직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 즉 순옥뿐이었다.
하진아... 안그래도 지금 내가... 많이 아파! 그러니까 8시까지 집에... 꼭 와줘, 내가 너 좋아하는 식혜도...”
매몰찬 거절에도 순옥은 집으로 와달라는 말만을 거듭 반복했다. 그러자 끝내 격분한 하진이 수화기를 향해 소리쳤다.
수작부리지마! 당신이 만든 식혜를 내가 왜 먹어! 그러니까 그깟 돈 몇 푼 주는 걸로 유세 떨지 말고 통장으로 부쳐! 아니면... ! 그럼 되겠네. 당신, 죽어! 죽어 버려! 그럼 내가 갈께! 됐어?”
끔찍했다. 그야말로 끔찍한 폭언이었다. 그럼에도 수화기 너머의 순옥은 화를 내기는커녕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 했다. 그저 끅끅대는 목구멍 안 쪽의 서러움만이 간간히 새어나올 뿐이었다.
하진아! 그만해...”
오죽했으면 곁에서 듣던 친구 유정이 나서 만류할 정도였다.
그럼에도 순옥은 꿋꿋했다. 떨리는 음성으로 같은 말을 반복했다.
... 그래도 와. 8시야! 오면 돈을 줄께. 잊지마 8시야. 더 일러도, 더 늦어도 안돼. 그게... .... .... ....
안 가! 안 간다고! 몇 번을 말해야 돼! 안 가! 이 미...!”
통화는 그걸로 끝이었다. 하진이 별안간 휴대폰을 내동댕이쳤기 때문이었다.
..... 흑흑... 누가! 누가... 엄마야! 크흐흑...”
하진이 얼굴을 감싸 쥔 채 주저앉았다. 순옥의 마지막 말 때문이었다.
잊지마 8시야. 더 일러도 더 늦어도 안돼. 그게... 엄마로서에 내 마지막 부탁이다.
*
5년 전, 급히 마련된 빈소 앞, 몇몇의 사람들이 모여 수군대고 있었다.
뭐예요? 저 여자 미친 거 아니에요?”
그라게 내 말이... 즈그 남편 빈소에서 처 웃는 년은 내 생전 처음봤다아이가! 거 참 망측스럽고로...”
사람들의 시선은 온통 상주이자 피투성이 환자복을 입고 실성한 듯 웃는 순옥을 향해 있었다.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죽은 영정사진 속 그녀의 남편, 즉 하진의 아버지도 활짝 웃고 있었건만, 죽은 이와 달리 산 자의 웃음은 타인을 설득하기 어려웠다.
비록 그것이 기구한 제 인생과 기어이 찾아온 끈질긴 불행에 대한 허탈감 때문일지라도 말이다.
하지만 인간은 늘 쉽고 얄팍하며 또 자극적이서 본인이 이해하기 쉬운 상황을 믿게 마련이다. 그들이 그랬다.
어허! 몰랐소? 저거 원래 미..년이요.”
? 그건 또 뭔 말이오?”
조울증인가 뭐신긴가? 원래부터 정신병 있던 여자라 안 하오! 하진애비도 그렇지 어디서 재혼상대라고 데려와도 저딴 걸... 어이구 쯧쯧
하이구... 어쩐지 정신병 있는 년이었구만! 하이구 무셔라... 그래서 즈그 서방 잡아 먹고 쳐 웃고 있구만... 으이구! 내가 복창이 터져서 원!”
즈그 서방을 잡아먹어요? 그건 또 뭔말이래? 장서방 사고로 죽은 거 아니오?”
! 몰랐소? 저 년이 자살한다고 난리를 피워서 그거 살린다고 하진애비가 급히 차를 몰다 빙판길에서 그 사단이 난 거 아니오! 으이구... 저승사자는 뭐 하나 몰라? 죽겄다는 년은 따로 있는데, 저건 안 데려가고, 왜 애 꿎은... 어이구! 하진아 언제 왔냐! ... 들었냐? 어이구 어린 것이 이를 어쩐다냐...”
어린 하진의 눈이 이글거렸다. 실성한 듯 웃고 있는 새 엄마 순옥과 그녀에 대해 수군거리는 사람들 그리고 사진 속에서 활짝 웃고 있는 아버지의 얼굴, 모든 것이 하진에겐 견디기 힘든 현실이었다.
*
3년 전의 가을, 노랗게 변한 은행나무들이 창가를 가득 채운 그런 날이었다.
그 날, 하진의 방도 거실도 집 전체가 온통 노랗게 물들었다.
안돼요! 이건 우리 아빠 집이에요! 저 여자 집이 아니라구요!”
어린 하진의 아우성이 울려 퍼졌지만 소용없었다. 법원에서 나온 사람들은 무심한 표정으로 은행잎을 닮은 노오란 딱지를 여기저기에 붙여댔다.
압류물품
순옥 탓이었다. 회원 둘을 모으면 그 둘이 넷을 모으고 그 넷이 다시 배가 되는 유망한 사업이라고 했다. 조울증과 싸우느라 세상을 잘 몰랐던 순옥은 그것이 흔히 말하는 다단계임을 몰랐다. 하지만 진실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남편의 사망보험금과 담보로 잡힌 집이 넘어간 뒤였다.
울지마! 당신이 왜 울어! 이 집은 우리 아빠 집이고, 당신이 날린 돈도 당신 돈이 아니라 우리 아빠 목숨값이야! 근데 아무 상관 없는 당신이 왜 울어! 꼴보기 싫으니까 울지마! 차라리 웃어! 그 날처럼 차라리 웃으라고!”
그 날로 하진은 집을 나왔다. 처음엔 친구들의 집을 전전했지만 다행히 한 복지단체의 도움으로 거처를 마련했다. 예전과 다른 환경에도 하진은 악착같이 적응해나갔다.
*
나 때문이야. 내가 대학 얘기만 안 했어도...”
쉼 없이 달리는 버스 안, 먼저 침묵을 깨트린 쪽은 친구인 유정이었다. 그녀의 잦아들어가는 목소리에는 진심어린 자책이 묻어났다.
하진이 말했다.
아니야. 내가 미안해. 그 여자 일로 화낸 거... 절대 니가 미워서 그런 게 아니야. 그리고 대학... 니가 아니어도 갔을 거야. ‘우리 딸 언제 대학생이 되나그거 우리 아버지 입버릇이었거든...”
그랬구나... 후아... 근데 니 말 들으니까 갑자기 나도 화 난다.”
그러게... 미안! 내가 말이 너무 심했지?”
아니 너 말고, 대통령 말야!”
갑자기 대통령은 왜?”
반 값 등롱금이니 뭐니... 말이나 안 했으면... 밉지나 않지! 확 탄핵이나 당해버려라! 키키킥
그러게 이게 다 대통령 때문이다. 반 값 등록금, 그것만 해줬어도 내가 몇 년째 연 끊고 살던 그 미..년 한테 연락할 일도 없었을텐데...”
하진의 마음이 조금은 풀렸다 싶었을까? 유정은 문득 무언가 떠올랐는지 주섬주섬 가방을 뒤지다 캔 음료 두 개를 꺼내어 내밀었다.
흔히 볼 수 있는 노란 색의 캔 식혜였다.
뭐야?”
뭐긴 뭐야! 식혜지! 아까 점장님이 일 끝나고 가려는데 설 이라 몇 박스 주문했다면서 너랑 먹으라고 두 개 챙겨주더라! 뭐해 안 먹고?”
나 식혜 딱 질색이야!”
? 맛있는데?”
몰라! 그냥 그 밥알이 떠다니는 느낌이 싫어! 괜히 설거지 통에 들어 있는 밥풀생각나고!”
얘는! 하여튼 까칠해요! 됐어! 그럼 내가 두 개 다 마시지 뭐!”
니 맘 대로 하세요.”
두 사람이 티격태격하는 사이 어느새 버스는 언덕진 비탈길을 넘고, 행여나 목적지를 놓칠까 정류장 도착을 알리는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댓글
  • 글라라J 2017/01/24 18:05

    명절 앞두고 부모의 정에 관한 글을 읽으니 찡하네요 . ㅠ.ㅠ 즐겁고 따뜻한 명절되시고 건강하세요 항상 잘 보고 있어요 ㅅ.ㅅ

    (kW1p3q)

  • mercurius 2017/01/24 18:21

    이런 감동적이고 스리러같은 글도 좋은데 닉 값은 언제하실거죠?(엄진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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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복날은간다 2017/01/24 19:50

    아이고 참...어휴~!
    잘 봤습니다! 늘 느끼지만, 대사 참 찰지게 쓰시네요! 격한 감정 같은 거를 특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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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nebwbxksk 2017/01/24 19:56

    결말이 계속해서 궁금해지는 이야기였어요
    빠르게 몰입해서 읽었어요
    너무 재밌었어요

    (kW1p3q)

  • 요를레이요우 2017/01/24 22:15

    ㅜㅜㅜㅜ..눈물 ...ㅜㅜㅜㅜ...너무  가슴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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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audillo 2017/01/24 22:24

    으허... 완전히 몰입해서 읽었네요 좋은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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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죠르노_죠바나 2017/01/24 23:32

    글을 읽다보니 문득 그동안 제 감정이 조금 메말라 있었음을 느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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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샤프지우개 2017/01/25 00:15

    예전에 봤던 기억 나요
    그 때도 잼났었고, 결말을 기억하는 지금도 재밌네요
    다들 안타깝네요

    (kW1p3q)

  • 용여사 2017/01/25 01:36

    와...진짜 감탄하며 잘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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