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년 8월 12일
JAL 보잉 747기가 추락해 520명이 사망한
단일 항공기 사고론 최대 희생자를 낸 사고가 발생한다
이 사고는 지금 시점에 있어서도 의혹이 끝없이 제기되는데
비행기 추락당시 기적적이게도 비가 내리고 있어 비행기에 화재나 폭발이 발생하지 않았고 나무등에 의해 감속되어 상당한 사람들이 생존해 있는 상태였다. 게다가 일본 내륙에 추락한 상태여서 사고지점 파악도 상대적으로 쉬웠다.
문제는 이후였다
1. 도쿄공항은 사고를 파악하고 있었음에도 구조요청을 2시간이나 지나서나 하게된다. 공항측은 '정확한 사고지점을 모르는 상태서 구조를 요청할수 없다'라고 답했다
2. 미군은 사고를 파악하고 있었기에 즉시 항공기를 급파했다. 미군의 항공기는 20분만에 사고지점을 찾았으며 이후 헬기를 사고지점에 보낼수 있었다. 미군은 의료진과 헬기들을 대기시키고 일본정부가 구조작전을 허가하길 기다렸지만 일본정부는 미군의 구조작전을 거절했고 미군은 사고지점에서 철수한다.
3. 항공ja위대 소속 헬기는 현장에 도착할때는 현장이 어두워진 시점이었다. 문제는 이 헬기엔 야간탐색장비가 없었고 많은 생존자가 살려달라며 손을 흔들고 소리를 첬지만 생존자가 확인할수 없다고 보고하며 철수했다. 이후 도착한 육자대와 경찰헬기도 마찬가지였다.
4. 일본 공정부대 지휘관은 사고 현장에 야간 공정작전을 허가할것을 요청했다. 상부는 위험하다며 이를 기각했으며 공정부대가 정부허가없이 구조작전을 수행하려하자 ja위대가 정부통제에 따르지 않은 이유로 지휘관은 좌천됐다.
5. 사고지점 파악에 ja위대는 물론 민간헬기와 경찰헬기등을 동원했는데 이들이 제공한 사고지점이 달라 실제 구조대는 어디로 가야하는지 확인하는데 시간을 허비했다.
6. 항자대, 육자대, 경찰등의 지휘정보체계가 복잡해 정보전달에 시간이 상당히 허비하고만다. 육자대 구조대가 정확한 사고지점으로 도착할수 있었던건 사고 14시간 뒤였다.
7. 앞서 생존자를 찾지못했다는 보고를 들은 일본정부는 애당초 생존자가 없다는 판단을 성급하게 내리고 생존자 구조가 아닌 기록수집등을 우선시하고 있었다. 사실상 이 성급한 판단이 늦장구조의 모든 시작이었다.
덕에 사고직후 생존했던 상당수의 생존자는 대다수 그날밤을 넘기지 못하고 사망한다.
덕에 내셔널지오그라픽 항공사고수사대 해당 화 제목이 '늦장대응의 대가' 이다.
일본정부의 늦장구조덕에 많은 사망자가 발생했고 미군의 구조를 거절했으며 정부가 상당한 정보를 통제하고 있기때문에. 지금도 미군에 알려져서는 안되는게 사고기에 있었다느니, ja위대의 무인기에 충돌해서 난 사고라느니 하는 음모론이 책으로 출판되거나 방송되기까지 한다.
수십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논란중인 사건이다.
세월호 닮은꼴 이네요.
관료제가 개쓰레기인걸 알려주는 사고
사람 살리는대 자존심이 필요하냐 미군 도움좀 받아 그러라고 있는 군대자너
저 사고의 직접적 원인은 정비사의 실수 였고
견디다 못해 ㅈ살을 했다고 전해진다..
뭐 일본 정부 하던거 보면 숨기려고 정보통제일 가능성은 낮다 봄
개쪽팔려서 묻으려고 애쓰는 거겠지
세월호 닮은꼴 이네요.
저거 추락직후에 살아남은 생존자 상당수가 저체온증으로 사망했다고 들은거 같음..
관료제가 개쓰레기인걸 알려주는 사고
사람 살리는대 자존심이 필요하냐 미군 도움좀 받아 그러라고 있는 군대자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