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머천국 코하비닷컴
https://cohabe.com/sisa/806408

문화[역사툰] 서양 기술을 활용한 정조 임금과 다산 정약용 이야기.jpg

 













정조 이산, 백과사전을 수입하다. 



1777년 2월. 서적수입 금지가 풀리면서, 최대 백과사전 중 하나인 이 조선에 들어왔다. 정조 임금은 왕위에 오르자마자, 우문지치(右文之治, 학문을 드높이는 정치이념)을 표방했고, 이에 부응하듯이 보여준 첫 성과가 바로 의 구입이었다.


영조 말년이던 1771년(영조 47)부터 조선에는 서적 수입이 금지되었다. 사연은 이렇다. 주린이 지은 은 청나라에서 가져온 책인데, 여기엔 태조 이성계가 고려 권신 이인임의 아들이라고 소개되어 있었다고 한다.


이런 내용은 정통성 문제에 민감했던 영조 임금을 자극했다. 영조는 이와 관련된 인물들을 처벌하고 차후로, 중국으로부터 신서를 사오지 못하도록 엄명을 내린다. 책을 들여올 경우, 현직 관료는 종신금고에 처하고, 벼슬 없는 선비는 유생명부인 청금록에서 이름을 지워버리기로 했다.


정조 이산이 즉위하면서 상황은 반전한다. 최신 학술 동향에 관심이 많았던 이 젊은 군주는, 세계 최대의 백과사전인 사고전서가 출간된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사행단으로 하여금 이를 구입하도록 했다. 그러나, 사고전서는 아직 간행중이라 구입하지 못하고, 대신에 도서집성을 구입한다. 이런 사정은 에 실려 있다. 



진하 겸 사은 정사正使 이은李溵, 부사副使 서호수徐浩修 등이 장계하였다. 대략 이르기를 “…… 
삼가 생각건대, 『사고전서』는 실로 『도서집성』에 의거하여 그 규모를 확대한 것이니, 『도서집성』이 바로 『사고전서』의 원본原本입니다. 
이미 『사고전서』를 구득하지 못할 바에는 먼저 『도서집성』을 사오고 나서 다시 공역이 끝나기를 기다려 계속 『사고전서』를 구입하여 오는 것도 불가할 것이 없을 것 같기에, 
서반(序班:조선 사신을 접대하던 청나라 하급관리)들에게 문의하여 『고금도서집성』을 찾아냈는데, 모두 5천 20권에 5백 2갑匣이었습니다. 그 값으로 은자銀子 2천 1백 50냥을 지급했는데, 지금 막 실려 오고 있습니다.” 하였다. 
-『정조실록』 권3, 정조 1년 2월 24일





도서집성의 제목을 5022번이나 쓴 송하 조윤형


원교 이광사의 제자인 송하 조윤형은 글씨를 잘 하기로 소문이 났다. 그의 아버지인 조명교도 글씨를 잘 썼다. 조윤형의 사위는 조선 말기 대문장가이자, 서예가인 자하 신위였다.


당시, 왕실에서는 원나라의 조맹부체(안평대군이 조맹부체를 잘 썼다고 한다)를 전수받고, 대대로 익혀 왔다. 하지만, 정조 임금은 조맹부체보다는 당나라 시대 유공권체와 안진경체를 좋아했다고 한다. 조윤형이 안진경체와 유공권체를 잘 써서, 정조의 총애를 받은 것이다.


도서집성이 들어오자, 조윤형은 5022권이나 되는 책의 제목을 하나하나, 사자(寫字: 글자를 적음)하는 임무를 부여받는다. 40일을 꼬박 매달리고서, 조윤형은 이 작업을 끝낼 수 있었다. 



의 표지와 내용. 네 글자는 조윤형이 쓴 것이고, 내용에 보이는 도장 4개(가장 위에 2개는 제외)은 모두, 정조 임금의 소장인이다.


한편, 큰 고생을 한 조윤형에게 이덕무는 농으로 ‘도서집성’이라고 쓴 글씨를 얻고 싶다고 부탁했다. 조윤형이 그 이유를 묻자 이덕무는 5,022번이나 쓴 글자이니 명필 왕희지의 글씨보다도 더 나을 것 같아 글씨 연습을 하는데 사용하려고 한다고 대답하여 한바탕 웃음을 자아내기도 하였다.


이 이야기는 이덕무의 절친이었던 유득공의 저서 에 전하는 내용이다. (참고 문헌: 18세기 동아시아의 백과전서 『고금도서집성古今圖書集成』, 노대환 동국대학교 사학과 교수)





을 완독한 유일한 인물, 이덕무


이덕무는 청나라 사신단의 일행으로 연경을 방문한 일이 있었다. 그곳 서점가인 유리창에서 을 보고, 쉽게 얻을 수 없는 서책이라며 감탄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책이 조선에 수입되어 규장각 열고관에 보관되었고, 이곳 검서관으로 일하면서 5천 권의 대백과사전을 직접 열람하게 된 이덕무는 감격했다. 자신의 저서 에서 다음과 같이 그 감회를 적고 있었다. 




“덕무(德懋)가 무술년(1778, 정조 2) 북경(北京)에 유람할 때 서점(書店)에서 책을 사다가 도서집성의 산질(散帙)이 있는 것을 보고, 
길광편우(吉光片羽, 신비로운 짐승의 한 털을 얻은 것처럼 아주 귀중함을 비유한 말)를 얻은 것같이 으스대며 기관(奇觀)으로 여겼었다. 
이제 성지(聖旨, 임금의 어명)를 받들어 손수 5천여 책을 열람하게 되었으니, 참으로 평생의 안목(眼目)을 저버리지 않게 되었다.”
-『청장관전서』 제57권 / 앙엽기 4(盎葉記四)





다산 정약용, 을 토대로 거중기를 만들다.


정조 임금은 1794년 화성 건설을 시작하면서, 에 소개된 서양 기술을 공역에 접목하기로 결심한다. 이때, 정조는 홍문관에 근무하던 신진관료 정약용을 불러들인다. 그는 예수회 선교사 테렌츠의 저작 을 정약용에게 하사하면서, 거중기를 비롯한 여러 기계들을 제작하도록 명한다.


5년 전인 1789년, 정약용은 정조 임금이 화성 현륭원(사도세자의 무덤)으로 행차할 적에 주교(배다리)를 만들어 임금의 신임을 얻은 적이 있었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정조가 다시 한번, 정약용에게 기계 제작의 임무를 맡긴 것이다. 
정약용은 기기도설을 기초로 를 만들었고, 이전에 있었던 를 개량해 도르래가 달린 새로운 를 만들었다. 또, 제갈공명이 를 만든 것처럼 정약용은 라는 수레를 만들어 인부들이 돌을 나르는데, 편의성을 가져주도록 했다.


수원 화성을 만들면서 벽돌을 보급했다는 점도 눈에 띈다. 벽돌 제조술은 영조시절에 최천약이란 인물이 청나라로부터 배워온 선진기법이었지만, 상용화하지 못했다. 그러나, 화성을 만들면서 벽돌을 대량으로 규격화하는 방식을 알 수 있었다. 화성 공역 이후부터 조선에는 벽돌이 사용되었고, 벽돌을 가미한 성곽, 주택 등이 빠르게 출현했다.
어쨋튼, 이런 신지식과 신기술을 활용했더니, 10년이 걸릴 것으로 본 화성의 공역이 단 2년 만에 끝 마칠수 있었고, 거중기 사용으로 노임 비용 4만 냥도 절약하였다.





수원화성에서 사용된 , 를 재현한 디오라마(diorama)



과학기술의 힘을 알게 된 정약용은 이후, 이란 관청을 세울 것을 주장한다. 이용감에 수학과 중국어에 능한 관리를 집중 배치시키고, 이들이 정기적으로 북경을 방문하여 생산 기술을 익히고 생산 기구를 구입하게 하자는 것이었다.



자신이 가지고 온 기구를 수도권에서 시험 제작하여 사용해 보고, 성과가 좋으면 이를 전국으로 확대 보급시키는 방안이었다. 그리고 실적이 좋은 관리에게 승진의 혜택을 부여하면 이들이 더욱 좋은 기술을 습득하기 위해 분발할 것으로 기대하였다고 한다.(참고 문헌: 국사편찬위원회-우리 역사넷)
재미있는 이야기를 소개해보면, 의 주인공 테렌츠(Johann Terrenz Schreck, 鄧玉函, 1576~1630)는 갈릴레오 갈릴레이(1564~1642)의 친구이자 동료라는 사실이다. 1603년 이탈리아 Padua 대학의 학생이 된 테렌츠는 그곳에서 갈릴레이를 만난 것이다. 테렌츠는 의학을 전공했지만, 갈릴레이를 만나 천문학에도 정통할 수 있었다. 또, 테렌츠는 유명 천문학자 케플러와도 친분이 있었다. 천문학에 의문이 생길때마다, 그는 케플러에게 편지를 보내 의문점을 해소하기도 했다.


테렌츠는 어학에도 매우 뛰어났는데 라틴어, 독일어, 영어, 포르투갈어, 프랑스어, 고대 그리스어, 히브리어, 고대 아람어까지 구사할 수 있는 멀티링구얼이었다. 예수회 신부가 된 테렌츠는 마테오 리치의 부름을 받아, 마카오로 가서 중국어를 배웠다.


중국 본토로 들어간 후엔 본격적으로 그는 중국인들에게 천문학을 전수하기도 하며, 서양의 여러 과학 기술들을 중국어로 번역하며 책을 만들기도 했다. 도 그 가운데 하나였다. 천주교 신부 테렌츠의 설계이론을 정약용이 직접 조선에서 구현했으니, 다산 정약용이 한때, 천주교 신앙에 관심을 지녔던 인물이었던 점을 상기해보면 만감이 교차하는 사건임에는 분명하다.


댓글
  • DC코믹스 2018/11/07 15:51

    선추천 후감상

    (O13Zkj)

  • 박경태 2018/11/07 15:56

    잘 보고 있습니다 :)

    (O13Zkj)

  • pernish 2018/11/07 15:57

    정조는 뼛속까지 유교적 사고방식인 사람이지만..

    (O13Zkj)

  • 누렁이 2018/11/07 15:59

    선추천 후감상

    (O13Zkj)

  • The_Angel 2018/11/07 15:59

    [리플수정]선추천 후감상

    (O13Zkj)

  • 명문구단 2018/11/07 16:02

    요즘 뜸하시더니 무슨일 있나했네요.. 좋은 작품 감사합니다

    (O13Zkj)

  • 장수찬 2018/11/08 00:45

    DC코믹스// 넵, 항상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O13Zkj)

  • 장수찬 2018/11/08 00:45

    박경태// 감사합니다!

    (O13Zkj)

  • 장수찬 2018/11/08 00:54

    [리플수정]pernish// 네, 맞습니다...유교적 사고방식을 지니고 있었지만, 노비 추쇄 금지시키고, 공노비를 해방(실시는 아들인 순조 시대)시킨 걸 볼 때 위선적인 유학자는 아니고, 진실한 유학자인건 분명한 거 같아요...감사합니다.

    (O13Zkj)

  • 장수찬 2018/11/08 00:54

    누렁이// 감사합니다!

    (O13Zkj)

  • 장수찬 2018/11/08 00:54

    The_Angel// 고맙습니다!

    (O13Zkj)

  • 장수찬 2018/11/08 00:55

    명문구단// 색칠하려면 품이 많이 들어가더라고요! 감사합니다...

    (O13Zkj)

  • BTS7 2018/11/08 01:21

    잘 보았습니다~

    (O13Zkj)

  • 띵까띵까 2018/11/08 01:34

    재밌게 잘 밨습니다 감사합니다 ㅎㅎ

    (O13Zkj)

  • 어리버리왕 2018/11/08 01:44

    이번 편은 재미도 있지만 유익함요.
    유투브 정책에 빵터졌고..ㅋ
    최저임금에 고개를 끄덕끄덕..
    퀄이 점점 좋아지는군요.

    (O13Zkj)

  • 그린블루 2018/11/08 01:49

    늘 잘보고 있어요~ 강추!!

    (O13Zkj)

  • GreinK 2018/11/08 02:01

    최근에 역사에 관심이 생겼는데, 아는만큼 보이는지 재미있네요. 만화도 훌륭합니다

    (O13Zkj)

  • 영표지성빠 2018/11/08 05:36

    새벽에 일어나 불펜에 접속하여 이런 재미지고 유익한 것을 보니 어찌 아니 좋을손가~ 어허헣

    (O13Zkj)

  • 나는야짱가 2018/11/08 05:48

    옛날 그림 느낌도 나고 넘 좋네요ㅋ추천

    (O13Zkj)

  • 그냐안그냐 2018/11/08 06:20

    어우 너무 꿀잼. 선감상 후추천하고 갑니다

    (O13Zkj)

  • 제대로공갈포 2018/11/08 07:04

    추천이요. 잘봤습니다.^^

    (O13Zkj)

  • Vajra 2018/11/08 07:53

    한동안 안올라와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작가님 ㅎㅎ
    천재와 천재가 만나니 이런일이 생기는군여 ㅎㅎ

    (O13Zkj)

  • 사도숙희 2018/11/08 08:53

    선추천 후감상

    (O13Zkj)

  • 마산아재 2018/11/08 09:28

    항상 잘 읽고 있ㅅ.ㅂ니다.
    감사합니다

    (O13Zkj)

  • 양현종3246 2018/11/08 09:29

    [리플수정]추천요 제가 좋아하는 정조대왕과 정약용 얘기네요ㅎㅎ 재미있게 잘읽었습니다^^

    (O13Zkj)

  • 막일꾼짝손 2018/11/08 10:47

    다산이 얍삽하게 야리끼리를 적용할 생각을 하다니 ㅠㅠ

    (O13Zkj)

  • 중견수 2018/11/08 10:51

    항상 감사합니다!
    오늘도 유익하게 잘 보았습니다.

    (O13Zkj)

  • 수리이글 2018/11/08 11:16

    잘 보았습니다~

    (O13Zkj)

  • Ohnexen 2018/11/08 12:01

    늘 잘보고 있습니다^^

    (O13Zkj)

  • 알투베 2018/11/08 12:07

    조선이 사관의 나라라고할만큼 문헌 기록이 쩔었는데 특히 영정조 시대는 임금 똥누는 습관까지 세세히 분석할만큼 정보량이 엄청났다고하죠

    (O13Zkj)

  • 바다소리 2018/11/08 12:15

    와...이정도 퀄리티면 솔직히 돈내고 봐도 감사한 정도입니다. 느무 감사해용~~~~

    (O13Zkj)

  • 똑딱안치홍 2018/11/08 12:22

    정조가 언론이 만들어낸 이미지처럼 근대적 계몽군주는 아니어도 성군이긴 성군.

    (O13Zkj)

  • 카라와함께 2018/11/08 12:41

    수원이 고향인데 그 城을 그 시절에 2년만에 건축했다는건 정말 대단한겁니다.

    (O13Zkj)

  • LG大路 2018/11/08 13:31

    글 (만화)이 솜사탕처럼 내 눈에 녹아버립니다.
    18세기에 최저임금을 지급하는 대규모 공사라니...
    민족뽕이 되는 걸 꺼려하는 저조차도 앞선 뉴딜이 여기 있었구나... 하고 놀랄 정도입니다.

    (O13Zkj)

  • 인스파이어 2018/11/08 13:34

    직접 그리신거에요? 와우
    예전에 그 맹꽁이서당 느낌이 많이 납니다 잘 보고갑니다

    (O13Zkj)

  • 엔젤이너스 2018/11/08 14:52

    잘 봤습니다.

    (O13Zkj)

  • mygoyang 2018/11/08 15:25

    넘 재밌게 읽었습니다. 추천!

    (O13Zkj)

  • 모요바돌 2018/11/08 15:25

    선감상 후추천

    (O13Zkj)

  • 에베레스트 2018/11/08 15:42

    책 내시면 이곳에 꼭 알려주세요.
    태어날 제 아이가 유익하고 즐겁게 탐독할 책이 되기를 바랍니다ㅎㅎ

    (O13Zkj)

  • 가을엔전어 2018/11/08 15:56

    알투베// 동시에 정조의 요청으로
    사도세자 시기의 승정원 일기에 대한 자료파기가 있었죠
    실록에 들어가지 않는 세세한 내용이 실리는 승정원 일기의 특성을 생각하면
    파기된 부분 내용에 왕권에 위협이 될만한게 실렸기에 파기하는 점에 이의가 없지 않았나 싶긴 합니다

    (O13Zkj)

  • 디모테오 2018/11/08 16:55

    흥미진진하게 잘 읽었습니다 ㅋ 정조대왕과 정약용 짱이시네요!!

    (O13Zkj)

(O13Zk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