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교익 씨가 오늘 페북에 이렇게 글을 올렸었죠.
https://www.facebook.com/kyoik.hwang.7
이기문 교수는 1930년생이다. 평북 정주 출신이다. 1953년에 서울대학교를 졸업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가 평양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정주 출신이니 그 동네를 잘 안다고 말을 할 수는 있을 것이나, 학문은 다르다. 술집에서 하는 고향 풍문 떠들기가 아니다. 근거가 있어야 한다. 이기문의 말에는 그 어떠한 근거도 없다. 불고기가 평양의 사투리라 할 만한 문헌이 그 어디에도 없다는 말이다.
평양에서는 적어도 1930년대에 불고기라는 말을 거의 쓰지 않았을 것이라 추측할 수 있는 문헌이 있다. 야끼니꾸라는 말이 일상의 말이었음을 확인해주는 문헌이기도 하다.
이효석 선생이 1939년 이라는 잡지에 쓴 글이다. 이효석 선생은 1934년 평양 숭실전문학교 교수로 취직을 하여 평양에서 살았다. 그러니까 이효석 선생이 평양에서 적어도 5년 정도 살면서 쓴 글이다. 그냥 한번 방문하여 들었다거나 이기문 교수처럼 어릴 때에 어디서 들었다는 정도의 글이 아니라는 말이다. 1930년대 당시 평양에서 불고기라는 말이 일상에서 사용되었는지 확인할 수 있는 더없이 좋은 문헌이다.
“중요한 음식의 하나가 야끼니꾸인데 고기를 즐기는 평양 사람의 기질을 그대로 반영시킨 음식인 듯합니다. 료리법으로 가장 단순하고 따라서 맛도 담박합니다. 스끼야끼같이 연하지도 않거니와 갈비같이 고소하지도 안습니다. 소담한 까닭에 몇 근이고간에 량을 사양하지 않는답니다. 평양 사람은 대개 골격이 굵고 체질이 강장하고 부한 편이 많은데 행여나 야끼니꾸의 덕이 아닌가 혼자 생각에 츄측하고 있읍니다. 다만 야끼니꾸라는 이름이 초라하고 속되어서 늘 마음에 걸닙니다. 적당한 명사로 곳처서 보편화시키는 것이 이 고장 사람의 의무가 아닐까 합니다. 말이란 순수할수록 좋은 것이지 뒤섞여 범범하고 옮겨온 것은 상스럽고 혼란한 느낌을 줄 뿐입니다.”
이 문헌에 불고기가 있는가. 야끼니꾸밖에 없다. 이효석 선생은 야끼니꾸가 듣기 싫다며 다른 말로 고쳤으면 좋겠다고까지 말한다. 여타 문헌을 살피면 1939년이면 불고기라는 말이 조금씩 쓰였을 것으로 보이는데, 이효석 선생과 평양 시민들은 이 말의 존재 자체를 모르고 있다. 불고기라는 신조어가 1920년대 말에 만들어졌지만 1930년대 평양에서는 일상의 언어로 쓰이지 않았음을 이 문헌이 증명하고 있다.
자 반박하겠습니다.
30년대 동아일보 기사를 살펴봤습니다.
첫번째 기사는 1932년 3월 20일자 기사입니다.
[기호, 습관을 떠나 보건식품을 취하라]라는 제목 아래
불고기 1점의 열량이 15칼로리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미 1932년에 불고기라는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두번째 기사입니다. 1935년 5월 5일자 동아일보 기사인데, 매우 흥미롭습니다.
평양 [모란대의 명물 "불고기" 금지]라는 제하의 기사입니다.
기사 자체가 평양발 기사입니다.
내용을 보면,
평양 모란대의 소나무숲속을 놀이터 삼는 주객들에게는 섭섭한 일이나,
모란대 송림의 명물인 "불고기"는 옥외에서 굽지 못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고지하고 있습니다.
모란대는 풍치가 좋은 곳이라 부민의 유람지요 유원지인데, 불고기 굽는 연기로 말미암아 소나무가 시들고
고기굽는 냄새로 유람객들에게 불쾌감을 주어 불고기 옥외 영업은 일체 금지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황씨는 본인의 페북에서 "불고기라는 신조어가 1920년대 말에 만들어졌지만 1930년대 평양에서는 일상의 언어로 쓰이지 않았음을 이 문헌이 증명하고 있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기사를 보면, 1935년에 이미 불고기 옥외 금지를 신문에서 공고하고 있습니다. 신문 기사 제목도 무려 "모란대 명물 불고기" 금지입니다. 이미 불고기가 평양 모란대의 명물이라는 소리를 듣고 있었는데, 어찌된 일일까요?
세번째 기사는 1940년 2월 8일자 기사입니다.
화문행각이라는 기사로 화는 화(그림)과 문(글)을 함께 실은 기사인데, 위의 그림은 캡처하지 않았습니다.
이 기사는 평양의 풍속을 소개하고 있는데, 평양사람이 무뚝뚝한 성격이라는 점을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네요. 평양 남자들의 성격을 설명하면서 10년된 친구 사이에 서로 귓뺨을 후려친 다음 날 싸운 것을 씻은 듯
잊고 소주에 불고기를 나눠 먹는다는 얘기를 소개하고 있네요. 물론, 이 글은 1940년 기사라서 황씨가 인용한 이효석의 1939년 기사보다는 1년 뒤의 기사네요. 그러나 여기에서도 분명히 "소주와 불고기"가 언급되고 있습니다.
도대체 이효석은 평양 어디에서 사느라 "불고기"를 안 먹고 "야키니쿠"를 먹어가지고 황씨가 엉터리 주장을 하게 하는지 모르겠지만, 위의 세 기사만 봐도 평양에서 불고기라는 말은 흔히 쓰이고 있습니다.
1932년 기사에서 영양 칼로리 소개하면서 불고기 1점의 칼로리를 소개하고 있는데, 당시 독자들이 '불고기'가 어떤 음식인지 모른다면 이런 기사가 나올 수 있을까요? 황씨는 "평양에서는 적어도 1930년대에 불고기라는 말을 거의 쓰지 않았을 것이라 추측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웃기는 얘기네요. 1935년에 이미 불고기는 모란대의 명물이 되어 있고, 불고기 옥외 영업 금지라는 기사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1940년에 평양의 풍속과 평양사람들의 성격을 소개하는 기사에서는 전날 싸운 친구끼리 다음날 불고기에 소주 먹는 것이 평양 남자들이라고 소개하고 있고요.
황씨는 자신이 불고기의 어원 연구에 수십년간 공을 들였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효석의 야키니쿠설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며 저명한 국어학자들의 견해까지도 사그리 무시하는 오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10년을 연구해서 이효석 선생의 야키니쿠 한 건 찾으신 황교익 씨? 전 10분 검색해서 위의 세 기사를 찾았습니다. 도대체 10년간 뭘 찾으신 건가요? 공부 좀 하시죠. 아 이 기사들도 보시고 버리신 자료인가요? 최소한 1930년대 평양에서 불고기라는 단어가 익히 쓰였다는 증거로는 충분한 것 같습니다만... 저는 "공부하는 사람"이 아닌지라, "반론을 제기하면서" 썩 예의를 갖추지는 못했습니다. 문장이 약간 비아냥거리는 것처럼 보일 수 있는데, 사실 이 말투는 짐짓 황선생의 그간 어투를 오마주한 것입니다.
여기에 덧글을 달진 않으시겠지만, 이 글을 검색을 통해 스캔하고 곧 페북에 답을 올리실 것으로 기대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