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어릴때부터 일본음악을 듣기 시작했는데 커플링 포함 두곡 정도 들어있는 싱글 CD 를 사면 가라오케 버전이라고도 할 수 있는 주 보컬을 뺀 인스트 버전 트랙이 보너스로 들어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특히나 애니메이션 OST 라던지 성우들의 앨범같은 경우 굉장히 획기적 기획들이 쏟아져 나왔었죠)
일본은 고도의 경제성장으로 한때 미국을 위협했고 대중문화는 버블경제의 영향으로 80년대와 90년대의 퀄러티가 굉장히 뛰어났죠 (문화의 인프라가 발전하려면 경제력은 중요한 요소입니다)
일본의 다양한 문화 매체들이 너무나 부러웠던 제게 인스트 앨범도 그런 콘텐츠중 일부였습니다
90년대보다 경제가 더 발전했고 케이팝이 해외로 뻗어가고 있는 한국의 경우 최근 걸그룹들이 몇몇 인스트 음원을 공개하기도 했지만 그런 인스트 버전을 모아 앨범으로 발매하는건 굉장히 이례적 케이스라는 관념이 지배적이었죠
보통 음악의 3요소를 멜로디, 화음, 리듬이라고 합니다만 가요에서 정말 중요한 보컬의 주 멜로디가 빠진다는건 마치 축구에서 최전방 공격수나 양쪽 윙을 빼버리고 경기하는거만큼 커다란 요소이기 때문이죠 (특히나 아직까지 한국의 리스너들은 영미권 리스너들보다 멜로딕한 곡들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러블리즈의 기획사 울림은 그런 분위기속에서 큰일을 해냈습니다
한국 걸그룹 최초로 러블리즈의 곡들의 인스트 버전을 모아 발매한거죠
3CD 와 기타 피크 그리고 악보 등등 이 모든 구성품을 온라인에서 3만원 미만의 가격으로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 (케냥이는 별도 구매입니다)
음 쓰고 보니 홈쇼핑 광고 같네요
축구에서 전방 공격수들이 레드카드를 받고 경기에서 빠져도 남은 미드필더진, 디펜스, 골키퍼 멤버들로 경기를 치룰수 있듯 러블리즈 곡들같은 경우도 훌륭한 화음과 사운드를 더 돋보이게 함으로 공백을 커버할 수 있다는것을 이번 앨범을 통해 보여줬습니다
아무래도 가요는 보컬이 중요하다보니 보통 보컬이 잘 들리게끔 다른 악기 파트 포지션을 조정하죠 (음악도 축구나 야구나 농구같이 구성 요소의 포지션이 중요합니다)
믹싱을 하다보면 마스킹 현상 (큰 소리와 작은 소리가 동시에 들릴때 큰 소리에 묻혀 작은 소리를 잘 듣지 못하는 현상) 고려해야 할때가 있는데 리스너가 보컬 멜로디에 집중할때 보컬 소리에 다른 파트가 묻혀 이런 사운드가 있었나 ? 하고 알아채기 힘든 경우들이 많죠
하지만 보컬이 빠진 인스트 앨범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음악은 굉장히 섬세한 존재입니다 피아노나 기타로 코드를 칠때 텐션을 넣음으로 해서 세련미가 더해지기도 하고 그루브를 살리기 위해 벨로시티와 퀀타이즈를 조절하며 현악기를 비롯 많은 악기에 오토메이션을 겁니다
들릴듯 말듯 고스트 노트를 심어놓기도 하고 f(x) 효과음을 깔기도 하죠
즉 인스트 앨범은 작곡자나 엔지니어들이 정성을 다해 만든 사운드 위주로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일반 리스너들에게 제공할 수 있다는 얘기죠
최근 트렌디한 곡들의 경우 미니멀한 사운드를 가져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리고 화성도 주요 코드 몇개로 노래 끝날때까지 리드하는 경우가 많죠 (퀄러티의 우위를 논하자는건 아닙니다 즉 스타일의 차이죠)
하지만 러블리즈는 좀 독특합니다 윤상 피디님의 원피스를 비롯해 많은 작곡자님들이 써준 곡들을 보면 화성이나 악기 어레인지가 굉장히 돋보이죠 (원피스의 경우 트렌드와 상관없이 멜로딕한 초반 인트로는 시그니처 느낌입니다)
예를 들어 안녕의 경우 스트링이 아름답고 Hug me 같은 경우는 마치 뮤지컬에 쓰이는 음악처럼 전개가 발랄하며 화성이 다채롭습니다
그중에서도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진 아츄의 악보를 보며 간단히 설명해보겠습니다
다이아토닉과 논다이아토닉의 코드들의 조화가 돋보이는 진행, 분수코드를 이용해 베이스 라인을 매끄럽게 연결해주는 센스 그리고 많은 전조의 시도
보통 운전을 할때 일정한 루트로만 가면 다이나믹한 부분이 많이 떨어집니다 그러나 레이싱을 하는거처럼 기어를 수동으로 변속해가며 여러 코스의 운전을 즐긴다면 ? 훨씬 더 다양한 느낌이 나오겠죠 ? (속도는 템포와 관련이 있지만 제가 얘기하고 싶은건 기어 변속 시점의 느낌입니다)
일반적으로 한국식 발라드 같은 경우를 빼면 대중음악의 많은곡들은 하나의 정해진 Key 안에서 쓰여지는 경우가 많습니다만 러블리즈의 곡들은 자동차 기어의 변속처럼 Key 가 도중에 바뀌는 곡이 많죠 아츄만 해도 4개의 다른 Key 안에서 쓰여진 곡입니다
초반의 발랄한 아이돌 분위기에서 전조를 하며 본격적으로 아련하고 뭉클한 분위기를 가져가고 브릿지 부분과 엔딩에서는 좀 더 Deep 한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더욱이 윤상 피디님은 어떤 기준으로 보면 한국 EDM 1세대 뮤지션으로 볼 수 있습니다 더욱이 해외로 유학까지 갔다 오셨죠 즉 80년대부터 최신 사운드에 관한 굉장한 지식과 경험을 가지고 계십니다
전반적으로 러블리즈의 곡들은 보컬을 떼어놓고 봐도 어쿠스틱에서 전자악기까지 텍스쳐 느낌이 굉장히 섬세하고 조화가 뛰어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스타 버전 자체로 충분히 들을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예전에 외국의 아티클을 검색하다 페니실린을 발견해서 사회에 위대한 공헌을 했던 과학자 알렉산더 플레밍의 대단함을 새삼 느낀적이 있는데 어떤 분야든 개척자의 긍정적 영향력을 높게 평가하고 싶습니다
한국 최초의 풀타임 메이저 리거 박찬호 혹은 빙판 위에서 퍼포먼스로 한국의 위상을 알린 김연아 등등 최초라는 단어는 우리에게 특별한 의미로 다가옵니다
이미 울림은 올해초 한국 걸그룹으로서는 전례가 없었던 밴드 라이브 사운드 + 1080 + 5.1 오디오의 블루레이를 발매해 업계 역사를 썼던적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걸그룹 최초의 인스트 앨범을 발매해준 울림과 좋은 곡을 만들어주신 작곡자님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리며 글을 마칩니다
80년대에도 마지막 건전가요 바로 전 트랙에 타이틀 인스트 하나 넣어주고 그랬던 것 같아요.
정성글 잘 읽었습니다. 예전 일본의 싱글 8cm cd들 보면 인스트 꼭 있었죠
일본은 그게 시스템으로 자리잡았었죠
상술이나 다양한 시도는 일본의 버블 시대 이후 굉장한 발전을 가져왔습니다
애니메이션을 봐도 작화의 퀄러티가 뛰어났고 음악 방송 쇼프로를 제작해도 스케일이 컸죠
싱글 시디를 기억하시는 분이 있군요 이래서 엠팍을 좋아합니다
감상하면 할수록 더 크게 다가오는 러블리즈 블루레이의 장점 중 하나가
(아니, 이건 따지고 보면 러블리즈 콘서트의 장점... ㅋㅋ)
바로 그 밴드 사운드가 아닐까 싶더라고요
그동안 발매된 다른 아이돌 블루레이 보면 결국 어디서나 듣던 곡을
콘서트에서도 듣는 그 정도였다면
러블리즈 블루레이는 콘서트에 맞춰 편곡까지 새로 하기 때문에
곡에 따라선 오히려 앨범 수록 버젼보다 훨씬 더 매력적으로
재발견을 하게 되는 경우도 있더라고요
그런 시도에 이어, 이제는 이런 인스트 앨범까지 시도를...
다음에는 부디 어쿠스틱 앨범도 좀 ㅋㅋㅋ
[리플수정]러블리즈 이전에 1080p 와 5.1 오디오로 블루레이를 발매한 걸그룹은 있었습니다
하지만 밴드 사운드로 시도해 그 현장을 담은건 러블리즈의 유니크함이었죠
그 현장에서 직접 사운드가 만들어지기 때문에 공간감이나 그루브가 특별하죠
편곡도 많은 부분이 오리지날과 차이가 있었습니다
들으면 들을 수록 이미 인질 잡힌거 같은 마음 넣은 인스트 2와
라이브앨범이 나오기를 기대하게되네요
마음이 이거저거 갈아넣은 원피스의 역작이라고 보는데 그걸 빼다니
한곡한곡 새로운 부분들이 있어 감상하는데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아요
빠진곡들을 아쉬워하기엔 33곡도 많네요 ㅎㅎ night 파트는 아직 시작도 못함
비밀여행은 이게 오리지널이 아닌가 할 정도로 멋지고
러블리즈를 좋아하는 이유에 음악이 큰 부분이긴 하지만 사실 이정도로 즐거움과 만족감을 줄거라고는 생각못했는데,,
좋네요
[리플수정]본문에도 있지만 러블리즈 음악들은 화성이 강점이예요
감성 발라드 같은 진행의 곡들도 많고요 그렇기 때문에 화려한 신스 사운드도 좋지만 어쿠스틱한 느낌의 피아노나 현악기 사운드의 세세한 부분을 자세히 들어보시는것도 좋은 감상법이라고 봅니다
좋은글이네용 ㄷㄷㄷ
[리플수정]감사합니다 더 쉽게 풀어쓸까 하다 올린 글도 긴데 더 길어지면 읽기 지루할수도 있어 많이 줄였습니다
화성학중에 대선율이라는게 있습니다 러블리즈 곡들은 악기 어레인지가 굉장히 좋아 보컬은 빠져도 현악기라던지 다른 악기들이 대선율을 연주하고 있죠
그렇기에 여전히 아름다운 감성을 느낄수 있는 곡들이 많습니다
다 좋지만 원피스 곡들은 뭔가 급이 다른거 같은..
전 와우가 제일 좋네요
원피스의 윤상 피디님은 한국에 재즈가 유행일때도 음악 활동을 하신 분입니다 곡을 뜯어보면 여기저기 재즈 코드들을 발견할 수 있고 진행도 장조와 단조 분위기를 넘나들죠
그리고 사운드 역시 섬세하게 짜죠 트렌디함을 떠나 원피스만의 특징이 있습니다
와우 같은 경우도 대중적이라 보긴 힘들지만 그루브한 베이스 리듬의 어프로치와 마이너틱한 멜로디가 합쳐진 사운드적으로 봤을때 기발한 특징을 가졌죠
노래가 없으니까 좀 심심한 느낌이 들다가도, 계속 듣다보니 또 새롭게 좋네요.
그보다 케이스가 완전 고급스러워서 요즘같이 CD를 듣는다기보다는 수집하려는 느낌으로 사는 팬들에게는 큰 선물이 될것 같습니다.
[리플수정]좋은 얘기를 해주셨습니다
보증서같이 생긴것도 들어있더군요 (명품 같은거 사면 들어있죠 보증서)
한국 아이돌 걸그룹 최초의 인스트 앨범이기 때문에 소장가치는 좋다고 봅니다 한국 음악사에 있어 최초라니까요
제가 러블리즈를 좋아해 찾아봤는데 각종 미디어에서도 기사들이 나오더군요
인스트 앨범 저도 오늘 받아봤네요^^
인스트 앨범만 쭉 듣다가... 갑자기 생각나는게 있어서 멜론에서 플레이 리스트 편집해서
인스트 앨범의 전곡 바로 뒤에 그 노래 원곡을 넣어서 듣고 있는데 되게 새롭습니다.
데스티니(inst) - 데스티니 - 비밀여행(inst) - 비밀여행 이런식으로 듣고 있는거죠...
플레이리스트 편집하기 좀 귀찮았습니다만 ㅎㅎㅎ
인스트곡들만 쭉 듣는 것도 좋지만 한곡 한곡 인스트 먼저 듣고,
거기에 보컬이 입혀진 곡을 바로 들으면서 인스트에서 들었던 사운드를 보컬 사이사이에서
찾아내는 맛이 있더라구요 ㅎㅎㅎ 덕분에 매우 만족스러운 플레이 리스트가 나왔습니다.
요즘은 아이돌 음악중에 상당히 퀄러티 뛰어난 음악들이 많죠
리스너들이 인스트와 보컬이 들어가 있는 곡과 비교해 듣다보면 편곡적 요소를 더욱 느껴보실 수 있을거 같네요
해당곡을 좀 더 깊이 이해할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겠죠
그런 리스너들의 리액션들이 케이팝 뮤직씬을 더 발전시키는 동기부여를 제공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