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화재가 나면 질식사가 보통인데, 저 사고는 사체 수습이 안 될 정도로 불이 크게 났었죠. 지금도 기억 나는 게 쓰레기 더미에서 유골이 나왔었는데 유가족 입장이 어떨지 참...
그러고보니 이 사고도 승무원이 대피 안내를 부실하게 해서 사고를 키운 걸로 기억 하는데, 세월호 사고가 어쩜 이리 대구 지하철 참사랑 판박이로 났는지 길 나서면 서바이벌 백팩이라도 들고 다녀야 하나 싶네요.
탈퇴한회원임2018/08/27 18:24
이 사고후 어느정도 수습되고 난 후 갔었습니다.
거기서 불탄 벽 앞에서 의자를 놓고 앉아 하염없이 새까맣게 그을린 벽만 쳐다보시던 어머니가 계셨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벽만 보시다 일어나길래 그곳을 지키고 있던 경찰분이 말해주시더군요
매일 오셔서 그렇게 하염없이 벽만 보다가 가신다고..당시 사진 찍은게 있는데 집에 있어서 올리진 못하겠네요..
빵구쟁이2018/08/27 18:31
미친 개.새끼 한 놈에 관계 기관의 무능한 대응과 불량 부품 등으로 더 큰 피해가 일어난 2003년의 대한민국 아픈 인재
만취곰2018/08/27 18:48
더 열받는건 기관사 이새끼 지혼자 살려고 지하철문 잠그고 탈출함...ㅅㅂ
그냥또2018/08/27 18:51
이거 가족들 인터뷰 본거중에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게 외동딸 타지 대학에 보냈던 아빠가 딸 좋아하는 귤을 한상자 싣고 만나러 왔다가 비보 전해 들었던거 ㅠㅠㅠ 절규하시던 모습이 지금도 잊혀지지가 않음 ㅠㅠ
당수8단2018/08/27 19:06
통화내용들 보니 울컥거려...
호놀루야2018/08/27 19:20
이거 볼 때마다 먹먹하고 눈물이 나..
눈물 닦고 나면 너무 화가 나 개새.끼들..
英碩2018/08/27 19:20
저날이 계명대학교 졸업식날이었죠
저에게도 아찔했던 기억이었습니다
발터PPK007빵2018/08/27 19:39
불에 잘 타면서도 유독가스 내뿜는 재질의 내장제를 쓴 원인도 있었고 사령실에서 기관사에게 마스터키 뽑고 탈출하라는 잘못된 지시도 원인이었고
이미 화재가 난 상황에서 반대편에서오는 열차에 천천히 진입하라는 사령실 지시도 원인이었고.....
방화셔터도 있음에도 불구하고 문방향이 밀고나가야하는데 당기고 열게끔 반대로 설치된것도 원인이지만....가장큰건 방화한새끼......
네오똥2018/08/27 19:42
문잠그고 튄 이유도 컸죠 ㅜ
오월에핀꽃2018/08/27 19:45
갓자대 전입했을때 천생연분 안한다고 대구 산다는 이유 만으로 갈군 쓰레기 잘살고 있나 모르겠네..
짬딸려서 전화도 못돌려서 안절부절하고 있는데 그딴 개소리나 하고 너땜에 없던 지역감정도 생겼어 쓰래기 같은것..
pinacolada2018/08/27 19:49
중앙로역에 가면 사고당시 기둥을 유리벽으로 보존하고 있어요. 볼때마다 생각합니다. 사고는 여러 원인들이 겹쳐서 일어나는 것이고 그중 하나라도 제 기능을 하는 것이 있다면 사고가 커지진 않아요. 그러니 안전을 위해서 더욱 관리하고 감독하고 매뉴얼을 만들고 사고상황에 대비해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이미 많은 사람들을 잃었습니다.
長門有希2018/08/27 19:50
뭔4ㅏ 쓸모없는 태클이긴 한데
Am 12시면 한밤중 아닙니까..?
갓다니엘2018/08/27 19:52
사고의 원인을 제공한 범인인 김대한(당시 56세)은 경상북도 예천이 고향으로
2001년 뇌졸중으로 쓰러져 오른쪽 상. 하반신의 장애가 오게 되어 지적장애 2급 판정을 받았다
김대한은 방화 사유로 심한 우울증 뒤 정신 질환이 심해져 판단력이 상실된 것으로 알려졌다
김대한의 아들은 대구 중부 경찰서에 출두해서
"아버지가 심한 우울증을 앓았으며, 남의 말도 잘 알아듣지 못하는 등 정신적으로 심한 문제가 있었다"고 밝혔다
김대한은 2003년 2월 18일 오전 9시 53분 12초경
대곡역에서 안심역방향으로 운행하던 제1079열차의 1호 차에서 경로석에 앉아 있다가
중앙로 역에 열차가 진입하고 있을 때 라이터와 페트병 2개에 나눠 담은 휘발유 2리터로 불을 질렀다
당시 주위 승객들이 위험을 감지하고 몸싸움까지 벌이며 그를 막았지만
김대한은 불이 붙은 페트병을 그대로 열차 안에 집어던졌다
당시 김대한이 타고 있던 제1079열차는 중구 남일동 대구 도시철도 1호선 중앙로 역에 정차 중이었고
불은 순식간에 퍼져 대부분의 승객들은 열려있던 출입문을 통해 대피하였고
당시 제1079열차의 기관사(당시 31세)도 화재를 감지하고 대피했다
그러나 제1079열차의 기관사는 지하철 사령에 화재 사실을 즉각 보고하지 않았고
아무런 보고도 받지 않은 상태에서 화재 경보가 울리자 오작동으로 치부, 열차를 계속 운행했다
그 사이 정상 운행 중이던 제1080열차가 중앙로 역에 도착, 정차했다
뒤늦게 화재 상황을 파악하고 지하철 사령에서는
제1080열차의 운행을 멈추라는 지시를 내렸지만
이미 제1080열차와 역 안은 화재로 전등이며 전기도 모두 꺼진 뒤였다
화재는 무섭게 제1080열차로 옮겨붙었고 제1080열차 기관사(당시 37세)는
승객들의 안전을 확보, 확인하지 않은 채 마스터키를 빼들고 탈출해 버렸고
출입문이 닫힌 제1080열차 안에 타고 있던 승객 142명은 그대로 열차 안에 갇혀 유독가스에 질식하거나 불에 타 사망했다
차량에는 출입문의 비상개방장치가 갖춰져 있었지만 위급한 상황 속에서 사용할 줄 아는 승객은 아무도 없었고
열차 내에도 그 사용법이 적혀 있지 않았다
그나마 마침 제1080열차에 타고 있던 철도 직원이 비상개방장치를 취급해 문을 열고 주위 승객들을 대피시켜 피해를 다소나마 줄일 수 있었다
실제로 불이 난 제1079열차보다 불이 옮겨붙은 제1080열차에서 더 많은 사상자가 나와
제1080열차에 대한 운행 중지 조치만 빨리 이루어졌어도 사고의 규모는 많이 줄어들었을 것이다
감자샐러드2018/08/27 21:31
저날 저시간에 지금은 없어졌는데 중파 근처 kfc에서 친구랑 아침겸 점심으로 햄버거랑 치킨 먹고 있었어요 오전 10시가 좀 넘었던걸로 기억하네요... 중앙로역에서 불났다는거 매장안에 tv로 봤는데 저랑 제 친구는 치킨 먹으면서 근처네? 금방 꺼지겠지 그러고 있었는데 아빠, 엄마, 외할머니 등등 친지들한테서도 괜찮냐고 전화오더라고요... 집이 시내 근처이긴한데 어머니 직장이 역 앞이었는데(지금은 안하시지만 근처 토익학원에서 토익 가르치셨어요) 아침에 학원에 수강하러오던 학생분도 안타깝게 돌아가셨다는 말은 그 뒤에 들었어요 속보볼때만 해도 진짜 별거 아닌줄 알았는데..... 한동안은 근처도 가지 못했어요 그때 별거 아니겠지 생각했던것조차 죄송하더라고요
술이취한다2018/08/27 21:48
그 당시 부모님이 중앙로역과 연결되어있는 지하상가에서 신방 장사를 하셨습니다. 당시에 상인들이 화재로 인해 상품 훼손을 우려해 출입문을 막았다는 잘못된 보도와 소문들로 인해 엄청난 욕들을 많이 들었었죠... 사고 시간엔 대부분의 가게 오픈 전이라 사실이 아니였음에도 불구하고... 이후에 까만 재가 뒤덥힌 가게를 청소하고....하나라도 팔아볼려고 신발을 하나 하나 닦으시고 밤 낮게 까맣게 그을음이 온몸에 가득 묻은채로 퇴근하시던 그 모습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단순한 그을음이 아니라....사람들이 타서 그런건지 기름기까지 있어서 너무 힘들다고 하시던 그 모습도요...
정말 너무나도 안타까운 사고였고... 세월호사건을 보면 지금도 그때랑 별반 달라지지 않은것 같아 가슴이 아픕니다.
모든게유심조2018/08/27 22:00
먼저 삼가 고인들의 명복을 빕니다...
대구 지하철 참사는 사망자 뿐만 아니라 생존자들에게도 큰 고통이었죠...ㅜㅜ
제가 본 다큐에서는 생존자 아주머니가 정신 질환이 발생해서
낮에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가스레인지 같은 데 불만 보면 소리 지르면서 끄고 그래서
남편이 일도 못 나가고 아내 돌보고... 그래서 남편이 일을 못 하니 생활은 곤궁해지고...
참 가슴 아픈 역사적 비극이죠...ㅠㅠㅠ 다시는 같은 일이 있지 않기를
(이라고 하기엔 2014년에 이미 같은 비극을 되풀이해서... 참 슬프고 안타깝습니다...)
침대위의여왕2018/08/27 22:02
저 날, 제 친구와 그의 동생이 같이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나란히...
HaMa2018/08/27 22:07
일본의 어떤마을 촌장님이 그러셨다지요 두번격은 일을 3번 격을수는 없다 대구지하철과 세월호로 책이 져야할 사람이 책임을 지지 안으려 할때 어떤일이 일어나는지 우리는 모두지켜보았습니다. 3번째는 우리가 막읍시다. 절대 책임의 무게를 가벼이 여기지말고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합시다
환상님이시다2018/08/27 22:09
김대한 이 시발새끼 니 면상은 꼭 기억한다
내가 죽어 저승에서 만나면 갈갈이 찢어죽여주마
불 질러 놓고 다쳤다고 병원간 십새끼 넌 철벌을
받을거야 꼭
소방차먼저2018/08/27 22:14
카더라(?)중에 미군이 우리 소방대보다 더 좋은 장비를 갖추고 있었던 아이러니...
낭만코치2018/08/27 22:23
아.. 엉엉엉...
안티개독2018/08/27 22:56
기관사 욕했는데 기관사도 지시를 받고 이행한거네요. 그 윗대가리들은 아무런 처벌안받은게 확실한가요? 이거 씨랜드 화재사건이랑 후처리가 똑같네 어쩜
노비+학생2018/08/28 00:02
정말로... 재앙 급이였죠
저 이후 언론등에 의해 지하철 방화 실험이 공개적으로 실시되었고 경악을 금치 않을 수 없었습니다
지하철 알루미늄 의자가 나온 것도 그 즈음.... 한동안 천쪼가리 덮인 의자는 구경하기 힘들었었죠
저 외에 커플 중 희생자가 죽음을 직감한 뒤 보낸 듯한 상대방에게 헤어지자고 하는 등 진짜 안타까운 사연이 많았습니다
kagetsu2018/08/28 00:10
저때 친구랑 오전에 대구역인지 동대구역인지 가려고 평소에 탈 일 없던 쟈철 타고 역에 도착해서 부산에 갔는데 엄마가 살아있냐고 전화를 하더라구요. 웃으면서 뭔소리냐고 했더니 지금 대구 지하철에 불나서 난리라고.... 제가 지나간 몇십분 후의 일이더라는...
대구 도착하니까 완전 난리도 이런 난리가.... 중앙로 일대에는 버스 통제되고... 타는 냄새...
그 이후에도 시내 가면 타는 냄새가 오랫동안 났죠.
미유님2018/08/28 00:14
당시에 지하철 타고 갈까 하다가 이상하게 택시를 타야겠다는 생각에 택시를 타고 가다가 지하철 역에서 연기나는 걸 보고 뭐지 하고 생각했네요.
아시는 분이 사고 당시 살아 나오셨는데 입구를 향해 쓰러진 사람들을 밟고 나오셨다고....
일년간 코에서 검은 게 나왔고 그 뒤로는 외상장애 스트레스에 시달리시다가 이제는 외상장애 스트레스 상담사가 되셨어요. 참 무서운 사건이었어요.
Steel2018/08/28 00:33
저때 유가족의 아픔을 보고 바로 달려간 변호사가 있었죠.
그때 유가족을 위해서 물심양면으로 도왔는데, 그걸 또 알리지 않고 묵묵히 도왔어요.
그럼에도 그 지역에선 가장 욕을 많이 먹고있는 사람이에요.
바로 문.재.인. 입니다.
RYU류2018/08/28 00:33
저 때 당시 대구에 있었어요. 마침 중앙로역 근방에. 뭔가 세상이 끝나는 것 같았던 비현실적이고 참담한 기분이었는데...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지금 다시 봐도 그러네요.
더 슬퍼지는 슬픔이 분명 세상에는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늦은 저녁 먹다가 조금 울게되네요..
프로과식러2018/08/28 01:14
저는 그당시,저 시간대, 저열차를 제가 타고 있었고
저는 3역전인 현충로역에 내려서 출근중이였어요.
내리는 역을 잘모르시는 부모님이 전화를 하셨고
저는 영문도 모른체 "응?" 이러고만 있었고
출근후에 사실을 알고 엄청 충격이였죠.
제앞에, 혹은 옆에 앉으셨던 분들이 생사를 달리
했을수도 있단 생각에 소름도 끼치면서 마음이 복잡하고
슬프고... 한동안 지하철을 못탔던 기억이 있네요ㅠㅠ
정말..가슴이 먹먹 했어요...
o애플망고o2018/08/28 03:09
친구야 보고싶다
imagine2018/08/28 03:36
진짜 너무나 충격이었어요.....
삼풍-대구지하철-세월호
안전문제
삼풍: 환풍기
대구: 가연성 소재들 등
새월호: 노후된배
기득권측과 책임자의 잘못된 판단
삼풍: 알고있었고, 자기들만탈출, 붕괴
대구: 상황실에서 불난 역으로 맞은편 열차가 들어가도록함, 승객들에게 가만있으라함, 문을잠그고기관사탈출, 화재와연기로...
세월호: 가만있으라함, 선장탈출, 해경과 정부 오락가락, 여러가지 은폐, 배 좌초...
왜 계속 반복되는 걸까요 왜!!!! 너무너무 화가 납니다
매번 보는 것이지만 볼 때마다 가슴이 먹먹합니다......
아니 이거.. 무슨.. 왜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보통 화재가 나면 질식사가 보통인데, 저 사고는 사체 수습이 안 될 정도로 불이 크게 났었죠. 지금도 기억 나는 게 쓰레기 더미에서 유골이 나왔었는데 유가족 입장이 어떨지 참...
그러고보니 이 사고도 승무원이 대피 안내를 부실하게 해서 사고를 키운 걸로 기억 하는데, 세월호 사고가 어쩜 이리 대구 지하철 참사랑 판박이로 났는지 길 나서면 서바이벌 백팩이라도 들고 다녀야 하나 싶네요.
이 사고후 어느정도 수습되고 난 후 갔었습니다.
거기서 불탄 벽 앞에서 의자를 놓고 앉아 하염없이 새까맣게 그을린 벽만 쳐다보시던 어머니가 계셨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벽만 보시다 일어나길래 그곳을 지키고 있던 경찰분이 말해주시더군요
매일 오셔서 그렇게 하염없이 벽만 보다가 가신다고..당시 사진 찍은게 있는데 집에 있어서 올리진 못하겠네요..
미친 개.새끼 한 놈에 관계 기관의 무능한 대응과 불량 부품 등으로 더 큰 피해가 일어난 2003년의 대한민국 아픈 인재
더 열받는건 기관사 이새끼 지혼자 살려고 지하철문 잠그고 탈출함...ㅅㅂ
이거 가족들 인터뷰 본거중에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게 외동딸 타지 대학에 보냈던 아빠가 딸 좋아하는 귤을 한상자 싣고 만나러 왔다가 비보 전해 들었던거 ㅠㅠㅠ 절규하시던 모습이 지금도 잊혀지지가 않음 ㅠㅠ
통화내용들 보니 울컥거려...
이거 볼 때마다 먹먹하고 눈물이 나..
눈물 닦고 나면 너무 화가 나 개새.끼들..
저날이 계명대학교 졸업식날이었죠
저에게도 아찔했던 기억이었습니다
불에 잘 타면서도 유독가스 내뿜는 재질의 내장제를 쓴 원인도 있었고 사령실에서 기관사에게 마스터키 뽑고 탈출하라는 잘못된 지시도 원인이었고
이미 화재가 난 상황에서 반대편에서오는 열차에 천천히 진입하라는 사령실 지시도 원인이었고.....
방화셔터도 있음에도 불구하고 문방향이 밀고나가야하는데 당기고 열게끔 반대로 설치된것도 원인이지만....가장큰건 방화한새끼......
문잠그고 튄 이유도 컸죠 ㅜ
갓자대 전입했을때 천생연분 안한다고 대구 산다는 이유 만으로 갈군 쓰레기 잘살고 있나 모르겠네..
짬딸려서 전화도 못돌려서 안절부절하고 있는데 그딴 개소리나 하고 너땜에 없던 지역감정도 생겼어 쓰래기 같은것..
중앙로역에 가면 사고당시 기둥을 유리벽으로 보존하고 있어요. 볼때마다 생각합니다. 사고는 여러 원인들이 겹쳐서 일어나는 것이고 그중 하나라도 제 기능을 하는 것이 있다면 사고가 커지진 않아요. 그러니 안전을 위해서 더욱 관리하고 감독하고 매뉴얼을 만들고 사고상황에 대비해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이미 많은 사람들을 잃었습니다.
뭔4ㅏ 쓸모없는 태클이긴 한데
Am 12시면 한밤중 아닙니까..?
사고의 원인을 제공한 범인인 김대한(당시 56세)은 경상북도 예천이 고향으로
2001년 뇌졸중으로 쓰러져 오른쪽 상. 하반신의 장애가 오게 되어 지적장애 2급 판정을 받았다
김대한은 방화 사유로 심한 우울증 뒤 정신 질환이 심해져 판단력이 상실된 것으로 알려졌다
김대한의 아들은 대구 중부 경찰서에 출두해서
"아버지가 심한 우울증을 앓았으며, 남의 말도 잘 알아듣지 못하는 등 정신적으로 심한 문제가 있었다"고 밝혔다
김대한은 2003년 2월 18일 오전 9시 53분 12초경
대곡역에서 안심역방향으로 운행하던 제1079열차의 1호 차에서 경로석에 앉아 있다가
중앙로 역에 열차가 진입하고 있을 때 라이터와 페트병 2개에 나눠 담은 휘발유 2리터로 불을 질렀다
당시 주위 승객들이 위험을 감지하고 몸싸움까지 벌이며 그를 막았지만
김대한은 불이 붙은 페트병을 그대로 열차 안에 집어던졌다
당시 김대한이 타고 있던 제1079열차는 중구 남일동 대구 도시철도 1호선 중앙로 역에 정차 중이었고
불은 순식간에 퍼져 대부분의 승객들은 열려있던 출입문을 통해 대피하였고
당시 제1079열차의 기관사(당시 31세)도 화재를 감지하고 대피했다
그러나 제1079열차의 기관사는 지하철 사령에 화재 사실을 즉각 보고하지 않았고
아무런 보고도 받지 않은 상태에서 화재 경보가 울리자 오작동으로 치부, 열차를 계속 운행했다
그 사이 정상 운행 중이던 제1080열차가 중앙로 역에 도착, 정차했다
뒤늦게 화재 상황을 파악하고 지하철 사령에서는
제1080열차의 운행을 멈추라는 지시를 내렸지만
이미 제1080열차와 역 안은 화재로 전등이며 전기도 모두 꺼진 뒤였다
화재는 무섭게 제1080열차로 옮겨붙었고 제1080열차 기관사(당시 37세)는
승객들의 안전을 확보, 확인하지 않은 채 마스터키를 빼들고 탈출해 버렸고
출입문이 닫힌 제1080열차 안에 타고 있던 승객 142명은 그대로 열차 안에 갇혀 유독가스에 질식하거나 불에 타 사망했다
차량에는 출입문의 비상개방장치가 갖춰져 있었지만 위급한 상황 속에서 사용할 줄 아는 승객은 아무도 없었고
열차 내에도 그 사용법이 적혀 있지 않았다
그나마 마침 제1080열차에 타고 있던 철도 직원이 비상개방장치를 취급해 문을 열고 주위 승객들을 대피시켜 피해를 다소나마 줄일 수 있었다
실제로 불이 난 제1079열차보다 불이 옮겨붙은 제1080열차에서 더 많은 사상자가 나와
제1080열차에 대한 운행 중지 조치만 빨리 이루어졌어도 사고의 규모는 많이 줄어들었을 것이다
저날 저시간에 지금은 없어졌는데 중파 근처 kfc에서 친구랑 아침겸 점심으로 햄버거랑 치킨 먹고 있었어요 오전 10시가 좀 넘었던걸로 기억하네요... 중앙로역에서 불났다는거 매장안에 tv로 봤는데 저랑 제 친구는 치킨 먹으면서 근처네? 금방 꺼지겠지 그러고 있었는데 아빠, 엄마, 외할머니 등등 친지들한테서도 괜찮냐고 전화오더라고요... 집이 시내 근처이긴한데 어머니 직장이 역 앞이었는데(지금은 안하시지만 근처 토익학원에서 토익 가르치셨어요) 아침에 학원에 수강하러오던 학생분도 안타깝게 돌아가셨다는 말은 그 뒤에 들었어요 속보볼때만 해도 진짜 별거 아닌줄 알았는데..... 한동안은 근처도 가지 못했어요 그때 별거 아니겠지 생각했던것조차 죄송하더라고요
그 당시 부모님이 중앙로역과 연결되어있는 지하상가에서 신방 장사를 하셨습니다. 당시에 상인들이 화재로 인해 상품 훼손을 우려해 출입문을 막았다는 잘못된 보도와 소문들로 인해 엄청난 욕들을 많이 들었었죠... 사고 시간엔 대부분의 가게 오픈 전이라 사실이 아니였음에도 불구하고... 이후에 까만 재가 뒤덥힌 가게를 청소하고....하나라도 팔아볼려고 신발을 하나 하나 닦으시고 밤 낮게 까맣게 그을음이 온몸에 가득 묻은채로 퇴근하시던 그 모습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단순한 그을음이 아니라....사람들이 타서 그런건지 기름기까지 있어서 너무 힘들다고 하시던 그 모습도요...
정말 너무나도 안타까운 사고였고... 세월호사건을 보면 지금도 그때랑 별반 달라지지 않은것 같아 가슴이 아픕니다.
먼저 삼가 고인들의 명복을 빕니다...
대구 지하철 참사는 사망자 뿐만 아니라 생존자들에게도 큰 고통이었죠...ㅜㅜ
제가 본 다큐에서는 생존자 아주머니가 정신 질환이 발생해서
낮에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가스레인지 같은 데 불만 보면 소리 지르면서 끄고 그래서
남편이 일도 못 나가고 아내 돌보고... 그래서 남편이 일을 못 하니 생활은 곤궁해지고...
참 가슴 아픈 역사적 비극이죠...ㅠㅠㅠ 다시는 같은 일이 있지 않기를
(이라고 하기엔 2014년에 이미 같은 비극을 되풀이해서... 참 슬프고 안타깝습니다...)
저 날, 제 친구와 그의 동생이 같이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나란히...
일본의 어떤마을 촌장님이 그러셨다지요 두번격은 일을 3번 격을수는 없다 대구지하철과 세월호로 책이 져야할 사람이 책임을 지지 안으려 할때 어떤일이 일어나는지 우리는 모두지켜보았습니다. 3번째는 우리가 막읍시다. 절대 책임의 무게를 가벼이 여기지말고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합시다
김대한 이 시발새끼 니 면상은 꼭 기억한다
내가 죽어 저승에서 만나면 갈갈이 찢어죽여주마
불 질러 놓고 다쳤다고 병원간 십새끼 넌 철벌을
받을거야 꼭
카더라(?)중에 미군이 우리 소방대보다 더 좋은 장비를 갖추고 있었던 아이러니...
아.. 엉엉엉...
기관사 욕했는데 기관사도 지시를 받고 이행한거네요. 그 윗대가리들은 아무런 처벌안받은게 확실한가요? 이거 씨랜드 화재사건이랑 후처리가 똑같네 어쩜
정말로... 재앙 급이였죠
저 이후 언론등에 의해 지하철 방화 실험이 공개적으로 실시되었고 경악을 금치 않을 수 없었습니다
지하철 알루미늄 의자가 나온 것도 그 즈음.... 한동안 천쪼가리 덮인 의자는 구경하기 힘들었었죠
저 외에 커플 중 희생자가 죽음을 직감한 뒤 보낸 듯한 상대방에게 헤어지자고 하는 등 진짜 안타까운 사연이 많았습니다
저때 친구랑 오전에 대구역인지 동대구역인지 가려고 평소에 탈 일 없던 쟈철 타고 역에 도착해서 부산에 갔는데 엄마가 살아있냐고 전화를 하더라구요. 웃으면서 뭔소리냐고 했더니 지금 대구 지하철에 불나서 난리라고.... 제가 지나간 몇십분 후의 일이더라는...
대구 도착하니까 완전 난리도 이런 난리가.... 중앙로 일대에는 버스 통제되고... 타는 냄새...
그 이후에도 시내 가면 타는 냄새가 오랫동안 났죠.
당시에 지하철 타고 갈까 하다가 이상하게 택시를 타야겠다는 생각에 택시를 타고 가다가 지하철 역에서 연기나는 걸 보고 뭐지 하고 생각했네요.
아시는 분이 사고 당시 살아 나오셨는데 입구를 향해 쓰러진 사람들을 밟고 나오셨다고....
일년간 코에서 검은 게 나왔고 그 뒤로는 외상장애 스트레스에 시달리시다가 이제는 외상장애 스트레스 상담사가 되셨어요. 참 무서운 사건이었어요.
저때 유가족의 아픔을 보고 바로 달려간 변호사가 있었죠.
그때 유가족을 위해서 물심양면으로 도왔는데, 그걸 또 알리지 않고 묵묵히 도왔어요.
그럼에도 그 지역에선 가장 욕을 많이 먹고있는 사람이에요.
바로 문.재.인. 입니다.
저 때 당시 대구에 있었어요. 마침 중앙로역 근방에. 뭔가 세상이 끝나는 것 같았던 비현실적이고 참담한 기분이었는데...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지금 다시 봐도 그러네요.
더 슬퍼지는 슬픔이 분명 세상에는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늦은 저녁 먹다가 조금 울게되네요..
저는 그당시,저 시간대, 저열차를 제가 타고 있었고
저는 3역전인 현충로역에 내려서 출근중이였어요.
내리는 역을 잘모르시는 부모님이 전화를 하셨고
저는 영문도 모른체 "응?" 이러고만 있었고
출근후에 사실을 알고 엄청 충격이였죠.
제앞에, 혹은 옆에 앉으셨던 분들이 생사를 달리
했을수도 있단 생각에 소름도 끼치면서 마음이 복잡하고
슬프고... 한동안 지하철을 못탔던 기억이 있네요ㅠㅠ
정말..가슴이 먹먹 했어요...
친구야 보고싶다
진짜 너무나 충격이었어요.....
삼풍-대구지하철-세월호
안전문제
삼풍: 환풍기
대구: 가연성 소재들 등
새월호: 노후된배
기득권측과 책임자의 잘못된 판단
삼풍: 알고있었고, 자기들만탈출, 붕괴
대구: 상황실에서 불난 역으로 맞은편 열차가 들어가도록함, 승객들에게 가만있으라함, 문을잠그고기관사탈출, 화재와연기로...
세월호: 가만있으라함, 선장탈출, 해경과 정부 오락가락, 여러가지 은폐, 배 좌초...
왜 계속 반복되는 걸까요 왜!!!! 너무너무 화가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