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시절에 중앙정보부에 무기징혁으로 잡혀간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6학년이 쓴 편지라고 합니다.
이 편지와 다른 사람들의 구명운동으로 카터 행정부가 압박해 집행정지로 82년 출소되었으나 88년 옥중 후유증으로 사망했다고 합니다.
현재 이 편지는 카터 대통령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고 하네요.
댓글
숙취엔농약2018/08/26 19:57
유시민작가의 숨겨진 동생인가.
파커파인2018/08/26 19:59
하 ㅂ...ㅅㅂㅅㄲ
愛Loveyou2018/08/26 20:03
제가 꼬릿말을 봐서라도 글씨체에 대한 열등감을 참겠습니다..
dagdha2018/08/26 20:17
[부연설명]
1974년 인민혁명당(인혁당) 사건에 연루되어 무기징역을 선고 받은 대한목재 유진곤 사장의 아들 유동민(당시 13세) 어린이가 카터 대통령 당선자에게 보낸 편지. 카터는 대통령 취임사에 '인권에 대한 우리의 헌신은 절대적이어야 한다. 강자가 약자를 억압해서는 안되며 인간의 존엄성은 지켜져야 한다. 우리는 누구도 위헙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억압자가 벌을 받지 않는 것은 세계 문명에 대한 모욕이다.' 라고 적을 만큼 인권에 관심이 매우 높았음. 그런 카터 행정부가 이 편지를 받고 소위 미국의 우방 중 하나에서 이런 인권유린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인지했으니 가만 둘 리 만무했음.
카터 행정부는 이후 박정희에게 압력을 가하기 시작했는데, 취임 직후 박정희에게 '너네 나라 인권이 심히 우려된다' 라는 친서를 전달하기도 했고, 심지어 그 압박카드 중에는 '주한미군 철수'까지 있었을 정도로 다각도로 압박을 가함. 이에 당시 박정희 정부는 "인권문제 제기가 미국의 내정간섭 아니냐?" 라고 강력하게 반발함 (쉽게 말해서 북한 인권 관련해서 UN에서 뭐라고 하면 왜 북한에서 내정간섭하지 말라고 하는 거 생각하면 됨. 결국 그때 박정희 정권 수준이 그정도 수준이었다는 얘기.)
하지만 미국의 뜻을 거스를 수 없었던 박정희 정부는 결국 긴급조치 9호로 체포된 상당수의 정치범이 석방됨. 유동민 어린이의 아버지인 유진곤 사장도 풀려났으나 고문의 휴유증에 시달리다 1988년 사망함. 이 편지는 현재 미국 카터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음. 카터 입장에서는 "내가 생전에 이렇게 국제 인권에 큰 관심을 쏟았다." 를 자랑할 수 있는 편지이지만 우리 입장에서는 진짜 쪽팔린 흑역사임.
Ruhas2018/08/26 20:51
어린 나이에 저렇게 또박또박 쓰며 얼마나 가슴 아팠을까
유악2018/08/26 21:06
글도 잘쓰는데 글씨도 잘쓰네
랄라찰스조니2018/08/26 21:28
가슴 먹먹하고 슬프네요
악마의딥키스2018/08/26 21:42
지금 59세가 되셨을 유동민님..존경스럽습니다..
BoA*2018/08/26 21:47
박정희 씹.새.끼.
서이독경2018/08/26 22:11
다카키마사오/오카모토미노루는 친일매국민족반역자일뿐..
lucky2018/08/26 22:18
더 끔찍한 건 저 아이와 엄마는 친지와 이웃들로부터 빨갱이 가족이라는 손가락질을 받았을거라는 거...
네오똥2018/08/26 22:33
박정희가 오래살아서 감빵에 잇었으면
박그네도 조용했을텐데... 아쉽
일리아스2018/08/27 00:47
국딩이 저정도면 중고등때는 상상이 안가네요.저런건 나이가 중요한게 아닌가 봐요.ㅜㅜ
된장라떼2018/08/27 02:53
또박또박은 이럴때 쓰는 거구나
봄은고양이2018/08/27 03:19
ㅠㅠ
서로사랑해요2018/08/27 04:35
유동민선생님! 지금은 무엇을 하며 지내고 계시는지 심히 궁금합니다.
Steel2018/08/27 04:36
멀쩡한 사람 빨갱이로 만들어놔서 그 가족들은 수십년동안 생활고에 허덕이고, 취업도 못 하게 막은 사례죠.
박정희 찬양하는 인간들 한테 이 이야기 해 주면, 빨갱이 맞다고 핏대 세우더군요.
한 사람 인생 엉망으로 만들어놓고, 나중에는 재판해서 돈 물어주면 끝인가 하는 생각도 드네요.
실제로 저때 빨갱이 맞다고 잡아넣은 검찰이랑 사법부도 책임이 큰게 아닌가 싶네요. 사실상 인혁당 사건은 사법살인의 중요한 사례로 꼽힙니다.
유시민작가의 숨겨진 동생인가.
하 ㅂ...ㅅㅂㅅㄲ
제가 꼬릿말을 봐서라도 글씨체에 대한 열등감을 참겠습니다..
[부연설명]
1974년 인민혁명당(인혁당) 사건에 연루되어 무기징역을 선고 받은 대한목재 유진곤 사장의 아들 유동민(당시 13세) 어린이가 카터 대통령 당선자에게 보낸 편지. 카터는 대통령 취임사에 '인권에 대한 우리의 헌신은 절대적이어야 한다. 강자가 약자를 억압해서는 안되며 인간의 존엄성은 지켜져야 한다. 우리는 누구도 위헙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억압자가 벌을 받지 않는 것은 세계 문명에 대한 모욕이다.' 라고 적을 만큼 인권에 관심이 매우 높았음. 그런 카터 행정부가 이 편지를 받고 소위 미국의 우방 중 하나에서 이런 인권유린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인지했으니 가만 둘 리 만무했음.
카터 행정부는 이후 박정희에게 압력을 가하기 시작했는데, 취임 직후 박정희에게 '너네 나라 인권이 심히 우려된다' 라는 친서를 전달하기도 했고, 심지어 그 압박카드 중에는 '주한미군 철수'까지 있었을 정도로 다각도로 압박을 가함. 이에 당시 박정희 정부는 "인권문제 제기가 미국의 내정간섭 아니냐?" 라고 강력하게 반발함 (쉽게 말해서 북한 인권 관련해서 UN에서 뭐라고 하면 왜 북한에서 내정간섭하지 말라고 하는 거 생각하면 됨. 결국 그때 박정희 정권 수준이 그정도 수준이었다는 얘기.)
하지만 미국의 뜻을 거스를 수 없었던 박정희 정부는 결국 긴급조치 9호로 체포된 상당수의 정치범이 석방됨. 유동민 어린이의 아버지인 유진곤 사장도 풀려났으나 고문의 휴유증에 시달리다 1988년 사망함. 이 편지는 현재 미국 카터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음. 카터 입장에서는 "내가 생전에 이렇게 국제 인권에 큰 관심을 쏟았다." 를 자랑할 수 있는 편지이지만 우리 입장에서는 진짜 쪽팔린 흑역사임.
어린 나이에 저렇게 또박또박 쓰며 얼마나 가슴 아팠을까
글도 잘쓰는데 글씨도 잘쓰네
가슴 먹먹하고 슬프네요
지금 59세가 되셨을 유동민님..존경스럽습니다..
박정희 씹.새.끼.
다카키마사오/오카모토미노루는 친일매국민족반역자일뿐..
더 끔찍한 건 저 아이와 엄마는 친지와 이웃들로부터 빨갱이 가족이라는 손가락질을 받았을거라는 거...
박정희가 오래살아서 감빵에 잇었으면
박그네도 조용했을텐데... 아쉽
국딩이 저정도면 중고등때는 상상이 안가네요.저런건 나이가 중요한게 아닌가 봐요.ㅜㅜ
또박또박은 이럴때 쓰는 거구나
ㅠㅠ
유동민선생님! 지금은 무엇을 하며 지내고 계시는지 심히 궁금합니다.
멀쩡한 사람 빨갱이로 만들어놔서 그 가족들은 수십년동안 생활고에 허덕이고, 취업도 못 하게 막은 사례죠.
박정희 찬양하는 인간들 한테 이 이야기 해 주면, 빨갱이 맞다고 핏대 세우더군요.
한 사람 인생 엉망으로 만들어놓고, 나중에는 재판해서 돈 물어주면 끝인가 하는 생각도 드네요.
실제로 저때 빨갱이 맞다고 잡아넣은 검찰이랑 사법부도 책임이 큰게 아닌가 싶네요. 사실상 인혁당 사건은 사법살인의 중요한 사례로 꼽힙니다.
명필이며 명문이다!
오유시민권을위해..
에휴 시팔
이게 유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