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을 선진국 선진국 하는데.. 행정 체제를 제외하고 그들이 하는 모습을 보면
자신들의 과오를 인정하고 충격일 정도로 자신들의 치부를 전세계에 널리 알리고 있습니다
사실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면서 동시에 여러곳에 이와 같은 사실을 알린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거든요
근데 그렇게 해야만 자신들이 용서받을 수 있고 또 다시 되풀이 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기인한 것이겠죠
또 어떤이들은 베트남 문제를 일본과 엮어서 혹은 15세기에 있었던 유럽의 식민지 개념으로 퉁치자고 하는데
타국에서 쓰레기짓을 한다고 똑같이 쓰레기되선 안됩니다
비록 베트남 정부에서는 공식적으로 사과 받기를 거부하지만.. 우리나라의 시민으로써 각자 다시한번 생각해볼만한 필요성이 있는 문제입니다
더욱이 베트남전에 참전했던분들은 이와 같은 사태에 대해서 당연하다는 입장이지만 실상은 그분들도 국가에 의한 피해자일뿐이죠
빵빵한궁디2018/08/15 00:26
아아 죄송합니다...
호구아이2018/08/15 00:55
한국이 위안부를 운영했다는 사실도 감춰진 부분이죠 6.25 당시에 사모님 부대란 이름으로 운영했답니다 그 당시 대다수 장교는 일본군에게 배운 작자들 이었으니까요
풍악산도사2018/08/15 00:58
박정희는 자신의 권력유지를 위해서 수백만의 자국민을 학살하려햇고
전두환은실제로 수천명의 자국민을 학살햇다
자국민 자신의삼촌일지도 누이일지도 모르는 이들을 학살하라고 명령하고 실지로 햇는데
타국에서야 말해서 무엇을할까
우리역시 가해자인것은 사실이다
말은 자유를 지키기위해서 간것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미국의 용병으로 참전을햇고 미군이 지금한 생명수당 이런것은 군인들에게 돌아가지도않고
권력자들이 착복해버린 전쟁이 베트남전쟁이다
푸른발걸음2018/08/15 01:26
한분 한분 소중한 댓글 감사합니다.
아마그린티2018/08/15 01:28
처음알았어요..
이 글을 통해 알게되었습니다
알려주셔서 고마워요
ASKY애생겨요2018/08/15 01:32
내가 살던 시대는 아니었지만 한국사람으로서 정말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베트남 여행가게되면 저곳에 꼭 들러보고 싶네요.
구루음달2018/08/15 02:03
이 사건에 대해서 베트남 정부는 공식적인 사과를 거절했다고 합니다.
왜냐면 미국과 싸워서 이긴 승전국인데 니들이 사과할 필요없다는 논리죠.
역대 대통령님들중 김대중, 노무현대통령님 그리고 현재 문재인 대통령님이 베트남 방문하실때 우리는 베트남에 마음의 빚이 있다고 돌려 말씀하셨죠.
이런 울나라 대통령님의 도의적책임지고 사과하려는 모습에 베트남 언론들은 긍정적으로 보고 호의적인 기사도 실어줬죠.
뭐 그렇다고 해서 다 용서했다는게 아니지만..
아직까지 그때의 학살 사건을 기억하고 생생하게 증언하시는 피해 생존자들이 계시니까요.
이를 기념하는 기념비에는 이름없는 신생아 희생자도 있어서 우리로 치면 김아무개라고 씌여 있대요.
무튼 피해자분들이 제발 그만 사과하라고 할때까지 사과는 계속 되어야 하고
우리도 우리 아이들에게 역사 수업시간에 왜 이런 참혹한 일이 생길 수 밖에 없었는지
베트남에 파병한 이유와 왜 이런 끔찍한 일이 일어난건지 자세하게 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교육이 전혀 안되고 있으니 하..
유툽에 한국 일본 역사관련 길거리 인터뷰 영상에서
일본시민이 베트남 민간 학살 사건을 예로 들고 너네도 가해자 똑같지 않느냐라고 했을때 깜짝놀랐어요.
우리도 모르는걸 애네들이 어떻게 알고 있지? 생각해 보니 2차대전 폭망하고 미국 베트남 전쟁에 군수물자 팔아 돈벌어
다시 일어섰다는 자랑스런역사로 교육받아서 알고 있나 싶더라구요.
그나마 일본 너네들이 다르다 라고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대통령의 간접적인 사과와 경제 협력 약속하고
민간단체가 해년마다 베트남 민간인 학살사건 기념일에 참배하고 있다는 사실이죠.
같은 취급하는 일본 이새끼들 꼴보기 싫어서라도
진심으로 미안하고 죄송하다는 진정성 있는 사과는 앞으로 쭉 계속 이어 나가야 된다고 봅니다.
천상병2018/08/15 02:14
미친 독재자와 군부때문에 이 무슨 끔찍한 일이냐..
세줄2018/08/15 02:24
다낭 하미 위령비.
베트남에 간다면 꼭 사과하고 오겠습니다...
노비+학생2018/08/15 03:13
자국 군대가 해외파병 나가서 타국인을 몰살했으니 정말로 죄송하죠....
당시 명령에 의해 다른건 모르고 참전한 군인의 월급을 자기 주머니에 찌른 그양반은 뭐하고 계시나 몰라요
margana?2018/08/15 04:05
근데 7차겨유과정 받은 사람이면 왠만해선 다 알지 않나요? 90년대생인데 국사시간이나 사회시간 혹은 근현대사 시간에 학살같은 문제도 언급되어있는걸로 아는데...일부러 몰랐다고 한사람만 방송에 내보냈다고 믿어봅니다..
스바일2018/08/15 04:42
역사적인 흔적(?)은 몰랐는데,
경험담을 들었었죠...
어떤 이유로, 어떤 행동을 했었었다는 이야기...
표면적으로는 마을사람들이 공비를 돕는다 라는게 표면적 이유였겠지요.
애니게글리젠2018/08/15 07:33
좀 더 강하게 얘기해서 사실 우리도 엄청난 과오를 저질렀다는 점은 분명히 해야 합니다. 위에 분들이 자꾸 노무현이 뭐 사과하려 했는데 베트남이 거절했다 이런 식으로 어떻게든 쉴드 쳐보려고 하시는데
1.일단 학살을 했는데 사과 했다고 떳떳해질 수는 없는 거임(죽은 사람은 사과한다고 돌아오는 게 아님)
2.사과는 하려고 했다고 하니 넘어간다 치고, 그렇다고 학교 정규 교육과정에서 체계적으로 이 사실을 국민들에게 널리 교육하고 반성하게 만드려는 노력은 한 적 없음. (교육과정 내용에 포함이 되어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르는 이상 제대로 교육되지 않았다는 게 사실임)
이 두가지를 분명히 인식해야 됩니다.
lucky2018/08/15 08:17
평소 빵도 주고 잘해주던 군인들이 돌변했다? 그렇다면 돌발상황이라기 보다 지휘계통에서 학살 명령이 내려간 거로 보이네요.
카푸752018/08/15 08:54
이건 우리나라도 꼭 교육에 포함시켜서 어두운 면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엔진켜둘게2018/08/15 08:58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그리운바다2018/08/15 09:29
일본이 우리나라한테 한게
더하면 더했지 덜한 것 같지는 않네요
동일 수준은 절대 아니지만..
동일 선상에서 놓고 봐야하는건 맞는 것 같구요
낮낯낱낫낳2018/08/15 09:36
이 프로그램 목요일 밤 12시 넘어서 해서...
시간대가 너무 아쉬워요.
저는 어차피 그 시간에 안자니까 챙겨보는데, 재밌거든요.
첼로2018/08/15 09:52
사실이라면 국가 차원에서 정식으로 공식사과하였으면 좋겠네요.
우리가 떳떳해야 일본에게도 요구할 수 있지요.
대양거황2018/08/15 10:21
베트남 민간인 학살 주장의 근거 대부분은
한겨레 21 기자인 구수정의 리포트인데,
문제는 그 구수정 리포트의 신빙성이 매우 의심된다는 거죠.
그리고 베트남 증오비들의 내용도 거의 그 구수정 리포트 복붙이라서... http://cafe.daum.net/historywar/Nwp/2864
1999년에 한국에서는 국제민주연대.민변 등 11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한국군에 의한 베트남 민간인학살 진실위원회” 가 모여,
베트남전 한국군 학살의 진실에 대해 조사합니다.
참고로 이 조사가 그저 형식적인 것이 아닌 이유는, 이 조사과정을 주도한 인물들이
바로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의 학살을 열심히 보도하고 알린 한겨레 신문 기자 및 강정구 교수,한홍구교수 등의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이 문서는 인터넷에 검색해보면 나옵니다.
대양거황2018/08/15 10:21
그리고 발견한 세건의 사건이
69명의 사상자를 낸 퐁니퐁넛 사건,
22명의 사상자를 낸 푹미사건
4명의 사상자를 낸 홍차우사건입니다.
이중 푹미사건은 마을 진압과정중 오인사격으로 인해 민간인 피해가 생긴 사건이고,
홍차우 사건은 지뢰등으로 사망자가 생기자 흥분한 해병이 일으킨 사건입니다.
그리고 가장 많이 사상자를 낸 퐁니퐁넛 사건은 의혹이 많은 사건입니다.
짧게 설명하자면 제2 해병여단의 1개 중대가 이동중 퐁넛마을에서 사격을 받자 소탕 작전을 수행했는데, 비슷한 시각에 인근의 퐁니 마을에서
한국군 옷을 입은 사람들이 학살을 저지르는것이 목격되자 학살의 주범으로 이 해병들이 지목된 사건입니다.
근데 당시 채명신 장군은 '100명의 베트콩을 놓치더라도 1명의 민간인을 구해라' 라는 지침을 전군에 내린 상태라는것과,
퐁니퐁넛 마을 주변이 베트콩들이 매일같이 사람들에게 한국군의 잔학성을 홍보하고,
한국군의 옷을 입고 폭력을 저지르는 것이 자주 목격되던 곳이라는 점 때문에 한.미.월합동 조사를 통해서도 뚜렷한 결론을 내리진 못합니다.
(혹시 오해가 있을까봐 언급하는데 절대 설렁설렁 조사가 아닌, 사진자료와 관련자들을 철저히 심문하고 분석한 조사였습니다)
이런 전쟁범죄들에 대한 한국정부는,
69년 중앙정보부의 민간인 학살 진상조사 이후 68~73년 사이 구속군인 561명가운데 전쟁수행과 관련된 자를 제외한
40여명을(상관살해,현지인강O,살인) 미복권 미사면하여 무기징역,종신형,사형등을 집행했습니다.
대양거황2018/08/15 10:22
그리고 또 이후에,
김대중대통령, 노무현대통령, 이명박 대통령이 국빈방문때 정부에 민간인 피해와 베트남 참전에 대해 사과했고
(근데 우리가 이긴 전쟁이고 냉전시대의 어쩔수 없었던 일이었다며 베트남 정부는 사과랑 보상을 받길 거부했습니다)
2004년엔 시민사회들이 모금활동을 벌여 베트남 퐁티에 사망자를 위로하는 위령비를 건립하였습니다.
-------------------------------------------------------------------------------------------------------------
딱 여기까지가 베트남전 한국인 학살의 진실입니다.
위키나 신문기사에 존재하는 빈호아, 타이빈, 고자이, 퀴년, 하미 등등의 사건들은 증언만 있고 근거가 없는 사건들로 밝혀졌습니다.
그리고 그 증언들 자체도 너무 허무맹랑해서 신빙성이 매우 떨어지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자주 나오는 증언의 레파토리가 융단폭격으로 마을을 쓸어버렸다거나 독가스를 썼다는 것인데,
미군의 지원이 있어야만 할수 있는 융단폭격을 일개 한국군 대대가 요청한다고 미군이 들어줄리도 없을 뿐더러,
길을 만들거나 고엽제 살포같은 일에나 쓰이는 전략폭격을 하나의 마을에 쓴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됩니다.
그리고 독가스를 사용했다는건 한국군이 화학전을 했다는건데, 당시 매우 허름한 장비밖에 없었던 한국군이 화학전을 할 수 있을리가 없지요.
대양거황2018/08/15 10:24
그밖에 미군이 벌인 미라이 학살까지 한국군이 한게 되버린다던지, 한국군의 열배가 넘는 베트남인과 함께 합동작전을 해도
도중에 나온 민간인피해는 모두 한국군이 저지른게 되버린다던지, 공병대대밖에 안가지고 있던 불도저가 모든 학살사건에 죄다 등장해서
마을과 시체들을 묻어버렸다던지, 이루 말할수 없는 왜곡이 정말 많습니다.
게다가 이런 학살을 주장하는 글들을 보면 당시 마을사람들에게 무상으로 제공하던 구호물자를
'~학살에 대한 사죄때문에 주는 것'이라고 몰아가고 있고
한국인들이 세운 위령비는 어쩔땐 빈호아 학살때문에, 어쩔땐 고자이 학살때문에 세운거라며 학살의 근거로 돌려가며 쓰이고 있습니다.
구체적인 사건들의 신빙성을 따지자면,
고자이 학살 증언의 경우 하늘을 뒤덮는 헬기가 나타나 380명을 1시간만에 죽였다는데, 한국군은 헬기가 하늘을 뒤덮을 만큼 많기는 커녕,
사건이 일어난 66년엔 한대도 없었습니다. 한국군은 68년이 되서야 헬기를 보급받았습니다.
빈호아 학살의 경우 마을운동장에서 사람들을 기관총으로 쏴댔다고 하는데, 사건이 일어난 66년엔 한국군은 카빈이나 개런드 밖에 없었지
M16같은 연발식 소총은 아직 보급도 안된 때 였습니다.
더 결정적인건 당시 증언에 의해 만들어진 위령비 인데, 한국군이라고 묘사된 군인의 부대마크가 증오비에 써진 가해자인 맹호부대 마크가 아닌
흑표무늬의 마크 입니다. 그런데 흑표무늬는 당시 베트남 레인저부대의 마크였습니다. 위의 채명신 장군의 증언과 연결해 생각하면
진짜 학살의 가해자가 누군지 대충 짐작할 수 있습니다.
증언의 신빙성 이외에도 베트남전 당시의 한국군의 학살은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도 이해가 안되는 점이 굉장히 많습니다.
베트남전 당시의 전과를 평가하는 방법은 노획한 무기의 수량이었지, 귀나 코를 잘라와서 평가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평가방법은 학살이 일어나는 것을 막기위한 방책이기도 했습니다.
또 전시에 군인에 의한 강O은 매우 중한 군법위반으로 엄격히 다스렸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군대에서 그런 행위를 용서할리가 없지요.
게다가 하물며 민간인 살해는 더 위중하게 다스렸습니다.
결과적으로 한국군은
1. 죽여봤자 아무런 성과가 없는 민간인을
2. 군법회의에서 무기징역이나 사형을 받을 위험을 무릅쓰고
3. 살인충동과 성욕을 채우기 위해 학살했다
4. 그리고 이런 학살은 상부의 명령으로 불도저와 비행기를 동원해 조직적으로 이루어졌다.
5. 또한 미군의 기록에 남지 않을 만큼 철저한 기밀속에서 이루어졌다.
라는 건데... 솔직히 납득이 안갑니다. 인터넷에선 이런식으로 무려 9000여명의 민간인 피해가 났다고 주장하는 글이 떠도네요.
게다가 베트남에서 사업차 온 한국사람들이 베트남여자와 결혼한 다음 전쟁이 끝나 귀국해서 생긴 라이따이한문제까지
한국군이 강O을 저질러 일어났다는 글도 보이니 참...
대양거황2018/08/15 10:25
이런 학살 이야기의 문제점은, 오로지 피해자 숫자가 적다는 이유로 위의 푹미나 홍차우 사건같은 진짜 민간인 피해에 여론의 관심이 없어졌다는 겁니다.
사실 한국군의 학살이 퍼진건 국내의 정치적 이유도 있지만, 일본 혐한들의 주요 떡밥으로 퍼뜨려서 이기도 합니다.
한국군의 학살 이야긴 한국어 위키보다 일본어 위키에 더 자세히 설명되어 있지요.
귀목걸이, 코목걸이 이야기하면서 너희도 똑같으니 우리가 학살한거에 대해 떠들지 말라는 거죠. 몇몇 한국사람들은 거기게 동조하기도 하구요.
그런데 이런 과장때문에 정작 우리가 사과해야할 명백한 잘못은 무시되고 있는게 현실입니다. 그네 들이 보기에 푹미나 홍커우사건의 피해는 언급하기엔 너무 피해자 숫자가 너무 적으니까요. 이런 사건은 위키조차 없습니다.
그런데 또 우파쪽 반박하는 사람들은, 이런 적은 피해는 의도한게 아니라 그저 오인사격일뿐이니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주장합니다.
결국 아무도 '진짜' 피해자에 대해선 아무도 언급을 안하는 거죠.
다시말하지만 베트남 정부는 보상받길 거부했으니, 보상을 위해선 베트남 정부를 통해서가 아닌 남아있는 피해자들을 직접 조사하는수 밖엔 없습니다.
그런데 정작 진짜 피해자에겐 관심도 없으면서, 막무가내로 정부에다 보상하라고 우기면 정부는 뭘 어떻게 할 수 있을까요?
대양거황2018/08/15 10:28
수기 '전투감각'으로 유명한 서경석 장군의 경우에는 적을 크게 무찔러서 훈장을 받을 예정이었으나 사로잡은 포로들을 구타한 것이 드러나서 훈장 서훈이 취소될 정도였습니다. 포로 구타 정도로도 상부의 반응이 민감했는데 구수정이나 증오비 주장처럼 한국군이 베트남 민간인들을 강O하고 죽이고 사지를 절단했니 어쩌니를 밥먹듯이 했다는 말은 신빙성이 더욱 떨어집니다.
참고로 월남전 기간 동안 최고로 유명한 학살 사건인 미라이 사건 당시 사망자 수가 300~500명 추산인데, 학살을 실제로 한국군이 수도 없이 벌였다면 선전거리 수집과 심리전에 필사적이던 당시 베트콩이나 북베트남 그리고 현 베트남 정부가 자초지종과 학살 규모를 가장 잘 알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런 대형 사건이 여럿 터졌다면 베트남전쟁 당시에 남베트남 전역에서 한국군 몰아내자는 운동이 벌어지고도 남을 대 사건이었습니다. 그런 일이 벌어졌다면 반전여론을 지지하며 베트남 전역을 들쑤시고 다니던 미국 언론부터 가만히 있지 않았을 것입니다. 미라이 학살을 예로 들자면 미라이 학살 이후로 베트남전에서 미군의 이미지는 완벽히 쓰레기로 전락해서 전쟁지속의 의지와 여론마저 바닥으로 끌고 갔습니다.
학살론자들이 주장하듯이 그런 거대한 사건이 벌어졌으면 기밀로 남기는 것도 불가능할 뿐더러 이미 예전에 다 알려져서 이제와서 발견될 것도 없습니다. 미군 다음으로 많은 병력을 투입한 한국군이 그런 악행을 베트남 전역에서 시도때도 없이 벌이고 다녔다면 이미 진작에 미라이 학살 사건의 여파 뺨치는 대 특종이 되었을 것이란 말입니다.
그러나 살아남았다는 몇 명의 생존자들과 기념비 혹은 추모비 이외에 이런 주장의 근거가 될 만한 학살의 흔적은 하다 못해 유골과 전투 흔적 하나 존재하지도 않습니다. 게다가 일부 학살이 벌어졌다는 마을 이름들은 심지어 지도에서 지명조차 찾을 수 없는 마을들이거나 미국 정부의 극비문서라는 자료 역시 원본이 진짜 존재는 하는 것인지조차 입증하지 못합니다.
따라서 여러 정황을 참고하여 한국군과 파병군인들 측의 의견도 들어야 하며 각각의 글을 그대로 믿는 우를 범하지 말고 자신 스스로 생각하며 판단해야 합니다.
띠리롱2018/08/15 11:45
그런데
조금 아쉬운게
일본이 역사 왜곡 하는것 처럼
우리나라도 역사 왜곡 하거나 축소 하는게 있다
이런식 논리인가요?
그러니 일본이나 우리나라나 똑같다? 뭐 이런건가?
저도 이거 알고있었는데요ㅜ사진도 많이봤구요ㅜ 모르는 사람도 정말 많아요 ㅜ 역사교과서에 실어서 알게해야해요
왁아조2018/08/15 15:11
.
felluca2018/08/15 15:40
"양쪽 다 바뀌어야해요 일본인만 바뀔게 아니라,
사실 한국도 만만치 않죠"
저 독일기자가 한 발언은 물타기의 전형처럼 보이는데;;
국가를 아예 점령해서 36년간 착취하고 문화를 말살하려한 일본과
한국의 베트남전 참전 및 전쟁범죄가 동급으로 비유될만한 일이라고 볼수가 있나???
감사합니다
독일을 선진국 선진국 하는데.. 행정 체제를 제외하고 그들이 하는 모습을 보면
자신들의 과오를 인정하고 충격일 정도로 자신들의 치부를 전세계에 널리 알리고 있습니다
사실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면서 동시에 여러곳에 이와 같은 사실을 알린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거든요
근데 그렇게 해야만 자신들이 용서받을 수 있고 또 다시 되풀이 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기인한 것이겠죠
또 어떤이들은 베트남 문제를 일본과 엮어서 혹은 15세기에 있었던 유럽의 식민지 개념으로 퉁치자고 하는데
타국에서 쓰레기짓을 한다고 똑같이 쓰레기되선 안됩니다
비록 베트남 정부에서는 공식적으로 사과 받기를 거부하지만.. 우리나라의 시민으로써 각자 다시한번 생각해볼만한 필요성이 있는 문제입니다
더욱이 베트남전에 참전했던분들은 이와 같은 사태에 대해서 당연하다는 입장이지만 실상은 그분들도 국가에 의한 피해자일뿐이죠
아아 죄송합니다...
한국이 위안부를 운영했다는 사실도 감춰진 부분이죠 6.25 당시에 사모님 부대란 이름으로 운영했답니다 그 당시 대다수 장교는 일본군에게 배운 작자들 이었으니까요
박정희는 자신의 권력유지를 위해서 수백만의 자국민을 학살하려햇고
전두환은실제로 수천명의 자국민을 학살햇다
자국민 자신의삼촌일지도 누이일지도 모르는 이들을 학살하라고 명령하고 실지로 햇는데
타국에서야 말해서 무엇을할까
우리역시 가해자인것은 사실이다
말은 자유를 지키기위해서 간것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미국의 용병으로 참전을햇고 미군이 지금한 생명수당 이런것은 군인들에게 돌아가지도않고
권력자들이 착복해버린 전쟁이 베트남전쟁이다
한분 한분 소중한 댓글 감사합니다.
처음알았어요..
이 글을 통해 알게되었습니다
알려주셔서 고마워요
내가 살던 시대는 아니었지만 한국사람으로서 정말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베트남 여행가게되면 저곳에 꼭 들러보고 싶네요.
이 사건에 대해서 베트남 정부는 공식적인 사과를 거절했다고 합니다.
왜냐면 미국과 싸워서 이긴 승전국인데 니들이 사과할 필요없다는 논리죠.
역대 대통령님들중 김대중, 노무현대통령님 그리고 현재 문재인 대통령님이 베트남 방문하실때 우리는 베트남에 마음의 빚이 있다고 돌려 말씀하셨죠.
이런 울나라 대통령님의 도의적책임지고 사과하려는 모습에 베트남 언론들은 긍정적으로 보고 호의적인 기사도 실어줬죠.
뭐 그렇다고 해서 다 용서했다는게 아니지만..
아직까지 그때의 학살 사건을 기억하고 생생하게 증언하시는 피해 생존자들이 계시니까요.
이를 기념하는 기념비에는 이름없는 신생아 희생자도 있어서 우리로 치면 김아무개라고 씌여 있대요.
무튼 피해자분들이 제발 그만 사과하라고 할때까지 사과는 계속 되어야 하고
우리도 우리 아이들에게 역사 수업시간에 왜 이런 참혹한 일이 생길 수 밖에 없었는지
베트남에 파병한 이유와 왜 이런 끔찍한 일이 일어난건지 자세하게 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교육이 전혀 안되고 있으니 하..
유툽에 한국 일본 역사관련 길거리 인터뷰 영상에서
일본시민이 베트남 민간 학살 사건을 예로 들고 너네도 가해자 똑같지 않느냐라고 했을때 깜짝놀랐어요.
우리도 모르는걸 애네들이 어떻게 알고 있지? 생각해 보니 2차대전 폭망하고 미국 베트남 전쟁에 군수물자 팔아 돈벌어
다시 일어섰다는 자랑스런역사로 교육받아서 알고 있나 싶더라구요.
그나마 일본 너네들이 다르다 라고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대통령의 간접적인 사과와 경제 협력 약속하고
민간단체가 해년마다 베트남 민간인 학살사건 기념일에 참배하고 있다는 사실이죠.
같은 취급하는 일본 이새끼들 꼴보기 싫어서라도
진심으로 미안하고 죄송하다는 진정성 있는 사과는 앞으로 쭉 계속 이어 나가야 된다고 봅니다.
미친 독재자와 군부때문에 이 무슨 끔찍한 일이냐..
다낭 하미 위령비.
베트남에 간다면 꼭 사과하고 오겠습니다...
자국 군대가 해외파병 나가서 타국인을 몰살했으니 정말로 죄송하죠....
당시 명령에 의해 다른건 모르고 참전한 군인의 월급을 자기 주머니에 찌른 그양반은 뭐하고 계시나 몰라요
근데 7차겨유과정 받은 사람이면 왠만해선 다 알지 않나요? 90년대생인데 국사시간이나 사회시간 혹은 근현대사 시간에 학살같은 문제도 언급되어있는걸로 아는데...일부러 몰랐다고 한사람만 방송에 내보냈다고 믿어봅니다..
역사적인 흔적(?)은 몰랐는데,
경험담을 들었었죠...
어떤 이유로, 어떤 행동을 했었었다는 이야기...
표면적으로는 마을사람들이 공비를 돕는다 라는게 표면적 이유였겠지요.
좀 더 강하게 얘기해서 사실 우리도 엄청난 과오를 저질렀다는 점은 분명히 해야 합니다. 위에 분들이 자꾸 노무현이 뭐 사과하려 했는데 베트남이 거절했다 이런 식으로 어떻게든 쉴드 쳐보려고 하시는데
1.일단 학살을 했는데 사과 했다고 떳떳해질 수는 없는 거임(죽은 사람은 사과한다고 돌아오는 게 아님)
2.사과는 하려고 했다고 하니 넘어간다 치고, 그렇다고 학교 정규 교육과정에서 체계적으로 이 사실을 국민들에게 널리 교육하고 반성하게 만드려는 노력은 한 적 없음. (교육과정 내용에 포함이 되어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르는 이상 제대로 교육되지 않았다는 게 사실임)
이 두가지를 분명히 인식해야 됩니다.
평소 빵도 주고 잘해주던 군인들이 돌변했다? 그렇다면 돌발상황이라기 보다 지휘계통에서 학살 명령이 내려간 거로 보이네요.
이건 우리나라도 꼭 교육에 포함시켜서 어두운 면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일본이 우리나라한테 한게
더하면 더했지 덜한 것 같지는 않네요
동일 수준은 절대 아니지만..
동일 선상에서 놓고 봐야하는건 맞는 것 같구요
이 프로그램 목요일 밤 12시 넘어서 해서...
시간대가 너무 아쉬워요.
저는 어차피 그 시간에 안자니까 챙겨보는데, 재밌거든요.
사실이라면 국가 차원에서 정식으로 공식사과하였으면 좋겠네요.
우리가 떳떳해야 일본에게도 요구할 수 있지요.
베트남 민간인 학살 주장의 근거 대부분은
한겨레 21 기자인 구수정의 리포트인데,
문제는 그 구수정 리포트의 신빙성이 매우 의심된다는 거죠.
그리고 베트남 증오비들의 내용도 거의 그 구수정 리포트 복붙이라서...
http://cafe.daum.net/historywar/Nwp/2864
1999년에 한국에서는 국제민주연대.민변 등 11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한국군에 의한 베트남 민간인학살 진실위원회” 가 모여,
베트남전 한국군 학살의 진실에 대해 조사합니다.
참고로 이 조사가 그저 형식적인 것이 아닌 이유는, 이 조사과정을 주도한 인물들이
바로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의 학살을 열심히 보도하고 알린 한겨레 신문 기자 및 강정구 교수,한홍구교수 등의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이 문서는 인터넷에 검색해보면 나옵니다.
그리고 발견한 세건의 사건이
69명의 사상자를 낸 퐁니퐁넛 사건,
22명의 사상자를 낸 푹미사건
4명의 사상자를 낸 홍차우사건입니다.
이중 푹미사건은 마을 진압과정중 오인사격으로 인해 민간인 피해가 생긴 사건이고,
홍차우 사건은 지뢰등으로 사망자가 생기자 흥분한 해병이 일으킨 사건입니다.
그리고 가장 많이 사상자를 낸 퐁니퐁넛 사건은 의혹이 많은 사건입니다.
짧게 설명하자면 제2 해병여단의 1개 중대가 이동중 퐁넛마을에서 사격을 받자 소탕 작전을 수행했는데, 비슷한 시각에 인근의 퐁니 마을에서
한국군 옷을 입은 사람들이 학살을 저지르는것이 목격되자 학살의 주범으로 이 해병들이 지목된 사건입니다.
근데 당시 채명신 장군은 '100명의 베트콩을 놓치더라도 1명의 민간인을 구해라' 라는 지침을 전군에 내린 상태라는것과,
퐁니퐁넛 마을 주변이 베트콩들이 매일같이 사람들에게 한국군의 잔학성을 홍보하고,
한국군의 옷을 입고 폭력을 저지르는 것이 자주 목격되던 곳이라는 점 때문에 한.미.월합동 조사를 통해서도 뚜렷한 결론을 내리진 못합니다.
(혹시 오해가 있을까봐 언급하는데 절대 설렁설렁 조사가 아닌, 사진자료와 관련자들을 철저히 심문하고 분석한 조사였습니다)
이런 전쟁범죄들에 대한 한국정부는,
69년 중앙정보부의 민간인 학살 진상조사 이후 68~73년 사이 구속군인 561명가운데 전쟁수행과 관련된 자를 제외한
40여명을(상관살해,현지인강O,살인) 미복권 미사면하여 무기징역,종신형,사형등을 집행했습니다.
그리고 또 이후에,
김대중대통령, 노무현대통령, 이명박 대통령이 국빈방문때 정부에 민간인 피해와 베트남 참전에 대해 사과했고
(근데 우리가 이긴 전쟁이고 냉전시대의 어쩔수 없었던 일이었다며 베트남 정부는 사과랑 보상을 받길 거부했습니다)
2004년엔 시민사회들이 모금활동을 벌여 베트남 퐁티에 사망자를 위로하는 위령비를 건립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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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여기까지가 베트남전 한국인 학살의 진실입니다.
위키나 신문기사에 존재하는 빈호아, 타이빈, 고자이, 퀴년, 하미 등등의 사건들은 증언만 있고 근거가 없는 사건들로 밝혀졌습니다.
그리고 그 증언들 자체도 너무 허무맹랑해서 신빙성이 매우 떨어지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자주 나오는 증언의 레파토리가 융단폭격으로 마을을 쓸어버렸다거나 독가스를 썼다는 것인데,
미군의 지원이 있어야만 할수 있는 융단폭격을 일개 한국군 대대가 요청한다고 미군이 들어줄리도 없을 뿐더러,
길을 만들거나 고엽제 살포같은 일에나 쓰이는 전략폭격을 하나의 마을에 쓴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됩니다.
그리고 독가스를 사용했다는건 한국군이 화학전을 했다는건데, 당시 매우 허름한 장비밖에 없었던 한국군이 화학전을 할 수 있을리가 없지요.
그밖에 미군이 벌인 미라이 학살까지 한국군이 한게 되버린다던지, 한국군의 열배가 넘는 베트남인과 함께 합동작전을 해도
도중에 나온 민간인피해는 모두 한국군이 저지른게 되버린다던지, 공병대대밖에 안가지고 있던 불도저가 모든 학살사건에 죄다 등장해서
마을과 시체들을 묻어버렸다던지, 이루 말할수 없는 왜곡이 정말 많습니다.
게다가 이런 학살을 주장하는 글들을 보면 당시 마을사람들에게 무상으로 제공하던 구호물자를
'~학살에 대한 사죄때문에 주는 것'이라고 몰아가고 있고
한국인들이 세운 위령비는 어쩔땐 빈호아 학살때문에, 어쩔땐 고자이 학살때문에 세운거라며 학살의 근거로 돌려가며 쓰이고 있습니다.
구체적인 사건들의 신빙성을 따지자면,
고자이 학살 증언의 경우 하늘을 뒤덮는 헬기가 나타나 380명을 1시간만에 죽였다는데, 한국군은 헬기가 하늘을 뒤덮을 만큼 많기는 커녕,
사건이 일어난 66년엔 한대도 없었습니다. 한국군은 68년이 되서야 헬기를 보급받았습니다.
빈호아 학살의 경우 마을운동장에서 사람들을 기관총으로 쏴댔다고 하는데, 사건이 일어난 66년엔 한국군은 카빈이나 개런드 밖에 없었지
M16같은 연발식 소총은 아직 보급도 안된 때 였습니다.
더 결정적인건 당시 증언에 의해 만들어진 위령비 인데, 한국군이라고 묘사된 군인의 부대마크가 증오비에 써진 가해자인 맹호부대 마크가 아닌
흑표무늬의 마크 입니다. 그런데 흑표무늬는 당시 베트남 레인저부대의 마크였습니다. 위의 채명신 장군의 증언과 연결해 생각하면
진짜 학살의 가해자가 누군지 대충 짐작할 수 있습니다.
증언의 신빙성 이외에도 베트남전 당시의 한국군의 학살은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도 이해가 안되는 점이 굉장히 많습니다.
베트남전 당시의 전과를 평가하는 방법은 노획한 무기의 수량이었지, 귀나 코를 잘라와서 평가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평가방법은 학살이 일어나는 것을 막기위한 방책이기도 했습니다.
또 전시에 군인에 의한 강O은 매우 중한 군법위반으로 엄격히 다스렸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군대에서 그런 행위를 용서할리가 없지요.
게다가 하물며 민간인 살해는 더 위중하게 다스렸습니다.
결과적으로 한국군은
1. 죽여봤자 아무런 성과가 없는 민간인을
2. 군법회의에서 무기징역이나 사형을 받을 위험을 무릅쓰고
3. 살인충동과 성욕을 채우기 위해 학살했다
4. 그리고 이런 학살은 상부의 명령으로 불도저와 비행기를 동원해 조직적으로 이루어졌다.
5. 또한 미군의 기록에 남지 않을 만큼 철저한 기밀속에서 이루어졌다.
라는 건데... 솔직히 납득이 안갑니다. 인터넷에선 이런식으로 무려 9000여명의 민간인 피해가 났다고 주장하는 글이 떠도네요.
게다가 베트남에서 사업차 온 한국사람들이 베트남여자와 결혼한 다음 전쟁이 끝나 귀국해서 생긴 라이따이한문제까지
한국군이 강O을 저질러 일어났다는 글도 보이니 참...
이런 학살 이야기의 문제점은, 오로지 피해자 숫자가 적다는 이유로 위의 푹미나 홍차우 사건같은 진짜 민간인 피해에 여론의 관심이 없어졌다는 겁니다.
사실 한국군의 학살이 퍼진건 국내의 정치적 이유도 있지만, 일본 혐한들의 주요 떡밥으로 퍼뜨려서 이기도 합니다.
한국군의 학살 이야긴 한국어 위키보다 일본어 위키에 더 자세히 설명되어 있지요.
귀목걸이, 코목걸이 이야기하면서 너희도 똑같으니 우리가 학살한거에 대해 떠들지 말라는 거죠. 몇몇 한국사람들은 거기게 동조하기도 하구요.
그런데 이런 과장때문에 정작 우리가 사과해야할 명백한 잘못은 무시되고 있는게 현실입니다. 그네 들이 보기에 푹미나 홍커우사건의 피해는 언급하기엔 너무 피해자 숫자가 너무 적으니까요. 이런 사건은 위키조차 없습니다.
그런데 또 우파쪽 반박하는 사람들은, 이런 적은 피해는 의도한게 아니라 그저 오인사격일뿐이니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주장합니다.
결국 아무도 '진짜' 피해자에 대해선 아무도 언급을 안하는 거죠.
다시말하지만 베트남 정부는 보상받길 거부했으니, 보상을 위해선 베트남 정부를 통해서가 아닌 남아있는 피해자들을 직접 조사하는수 밖엔 없습니다.
그런데 정작 진짜 피해자에겐 관심도 없으면서, 막무가내로 정부에다 보상하라고 우기면 정부는 뭘 어떻게 할 수 있을까요?
수기 '전투감각'으로 유명한 서경석 장군의 경우에는 적을 크게 무찔러서 훈장을 받을 예정이었으나 사로잡은 포로들을 구타한 것이 드러나서 훈장 서훈이 취소될 정도였습니다. 포로 구타 정도로도 상부의 반응이 민감했는데 구수정이나 증오비 주장처럼 한국군이 베트남 민간인들을 강O하고 죽이고 사지를 절단했니 어쩌니를 밥먹듯이 했다는 말은 신빙성이 더욱 떨어집니다.
참고로 월남전 기간 동안 최고로 유명한 학살 사건인 미라이 사건 당시 사망자 수가 300~500명 추산인데, 학살을 실제로 한국군이 수도 없이 벌였다면 선전거리 수집과 심리전에 필사적이던 당시 베트콩이나 북베트남 그리고 현 베트남 정부가 자초지종과 학살 규모를 가장 잘 알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런 대형 사건이 여럿 터졌다면 베트남전쟁 당시에 남베트남 전역에서 한국군 몰아내자는 운동이 벌어지고도 남을 대 사건이었습니다. 그런 일이 벌어졌다면 반전여론을 지지하며 베트남 전역을 들쑤시고 다니던 미국 언론부터 가만히 있지 않았을 것입니다. 미라이 학살을 예로 들자면 미라이 학살 이후로 베트남전에서 미군의 이미지는 완벽히 쓰레기로 전락해서 전쟁지속의 의지와 여론마저 바닥으로 끌고 갔습니다.
학살론자들이 주장하듯이 그런 거대한 사건이 벌어졌으면 기밀로 남기는 것도 불가능할 뿐더러 이미 예전에 다 알려져서 이제와서 발견될 것도 없습니다. 미군 다음으로 많은 병력을 투입한 한국군이 그런 악행을 베트남 전역에서 시도때도 없이 벌이고 다녔다면 이미 진작에 미라이 학살 사건의 여파 뺨치는 대 특종이 되었을 것이란 말입니다.
그러나 살아남았다는 몇 명의 생존자들과 기념비 혹은 추모비 이외에 이런 주장의 근거가 될 만한 학살의 흔적은 하다 못해 유골과 전투 흔적 하나 존재하지도 않습니다. 게다가 일부 학살이 벌어졌다는 마을 이름들은 심지어 지도에서 지명조차 찾을 수 없는 마을들이거나 미국 정부의 극비문서라는 자료 역시 원본이 진짜 존재는 하는 것인지조차 입증하지 못합니다.
따라서 여러 정황을 참고하여 한국군과 파병군인들 측의 의견도 들어야 하며 각각의 글을 그대로 믿는 우를 범하지 말고 자신 스스로 생각하며 판단해야 합니다.
그런데
조금 아쉬운게
일본이 역사 왜곡 하는것 처럼
우리나라도 역사 왜곡 하거나 축소 하는게 있다
이런식 논리인가요?
그러니 일본이나 우리나라나 똑같다? 뭐 이런건가?
http://tv.jtbc.joins.com/replay/pr10010461/pm10041949/ep20024664/view
차이나는 클라스 71회 2018.8.1
저도 이거 알고있었는데요ㅜ사진도 많이봤구요ㅜ 모르는 사람도 정말 많아요 ㅜ 역사교과서에 실어서 알게해야해요
.
"양쪽 다 바뀌어야해요 일본인만 바뀔게 아니라,
사실 한국도 만만치 않죠"
저 독일기자가 한 발언은 물타기의 전형처럼 보이는데;;
국가를 아예 점령해서 36년간 착취하고 문화를 말살하려한 일본과
한국의 베트남전 참전 및 전쟁범죄가 동급으로 비유될만한 일이라고 볼수가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