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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장문) 대한민국 축구인들, 거짓말은 이제 그만.

 * 몹시 장문입니다.

 * 편의 상 반말로 쓰겠습니다.


1. 

 돌이켜보면 이번 신태용 호는 단 한번도 국민적인 성원과 응원을 얻어본 적이 없었다. 신태용 호가 출범한 첫 경기였던 이란 전 만원 관중 이후로, 상당수의 국민들은 신태용 호에 긍정적인 시선을 보내지 않았다. 히딩크 논란은 부정적인 시선에 더욱 더 불을 지폈다. 선수들은 그런 부정적인 시선에 분명 위축되었고, 신태용 감독 역시 부정적인 시선에 대해 언론에서 아쉬움을 표현한 적이 있다. 수많은 부상자가 쏟아졌는데도, 국민들은 온정적인 시선 대신 여전히 삐딱하게 신태용 호를 바라보았다. 어떤 의미에선, 신태용 호는 분명히 억울했다.


 하지만 국민의 마음이 잠시나마 돌아선 순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대표팀 주장 기성용의 인터뷰는 사람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녹였다. "전 지금까지 최종예선부터 많은 팬분들께 '기대해달라', '최선을 다하겠다'고 이야기했다. 어느새 보니 제가 거짓말쟁이가 된 것 같아 마음이 많이 힘들었다." 대표팀의 가장 영광스러운 순간과 가장 힘들었던 순간을 모두 겪었던 대표팀 주장의 말에, 분명 사람들의 마음은 조금이나마 움직였다. 하지만 그 인터뷰조차 대표팀에 대한 수많은 부정적인 여론을 무너뜨리긴 버거웠고, 결국 지금의 대표팀은, (독일 전 전날인 아직까지는) 분명히 좌초했다.


2.

 왜 사람들은 그토록 이번 대표팀을 부정적으로 바라보았을까? 사실 기성용의 말에 그 해답이 있다. 대표팀은 여태껏 계속해서 국민들의 응원을 부탁해왔다. 좋은 성적을 내겠다고, 그러니 응원해달라고 부탁해왔다. 하지만 실제로 대표팀이 그런 말을 지킨 적은 거의 없었다. 잠시나마 기성용의 말에 사람들의 마음이 조금이나마 움직인 것도, 그들 스스로가 '거짓말쟁이'임을 인정하고 진솔한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았기 때문이다.


 스웨덴 전, 멕시코 전 이후 수많은 기사들이 대표팀이 얼마나 지금 힘든 상황인지, 그들이 얼마나 열심히 하는지를 강조하면서 무분별한 비난을 멈추기를 부탁했다. 하지만 그런 기사들은, 현실적으로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이미 너무 많은 사람들이 더 이상 대표팀을 믿지 않기로 결정한 이상, 그 어떤 말도 그들의 부정적인 시선을 바꿀 수는 없었다. 갈팡질팡하는 사람들을 믿게 만드는 것은 그렇게까지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이미 믿지 않기로 결심한 사람들을 다시 믿게 만드는 것은 몹시 어려운 일이다.


3.

 사실, 선수들의 '거짓말'은 용납할 수 있다. 다음 경기 최선을 다해 좋은 결과를 내겠다는 말은 적어도 선의의 거짓말이기 때문이다. 경기를 앞둔 선수의 입장에서, 경기 결과에 확신이 없더라도 그렇게 말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그들은, 분명 실력은 세계 레벨에서는 부족했지만, 멕시코 전에 온 몸을 던지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적어도 그들의 말이 빈 말은 아니었음을 증명했다.


 하지만 과연 감독의 거짓말까지 용납할 수 있을까? 월드컵 직전 볼리비아 전에서 대표팀이 극심하게 부진한 경기를 펼친 이후, 신태용 감독은 '트릭이다'라는 말로 비판 여론을 잠재우려 했다. 그리고 '트릭'이라는 단어는 금세 전국민적인 유행어가 되었다. 물론 금 트릭이라는 말은 조롱의 대상이 되었지만, 분명히 국민들의 마음 한 켠에서는 그 부진한 경기력이 모두 '트릭'이라는 말을 믿고 싶었던 마음 역시 존재했다. 하지만 스웨덴 전 이후 결국 '트릭'이라는 말이 트릭이었음이 드러났고, 그 후로 국민들의 마음은 완벽하게 돌아서버렸다. 멕시코 전에서의 선수들의 그 처절한 혈투조차도, 돌아선 국민들의 마음을 제대로 되돌리지 못했다.


4.

 돌이켜 보면, 축구인들의 이런 거짓말의 역사는 유구하다. 정몽규 축구 협회 회장은 브라질 월드컵 때 '세계를 놀라게 하겠다'고 말했지만, 홍명보 호는 되려 국민들을 아연실색하게 만들었다. 러시아 월드컵을 앞두고도 '브라질 월드컵보다 잘 준비되고 있다'고 정몽규 회장은 말했지만, 현실은 월드컵 사 28년만에 3패 탈락을 목전에 두고 있다. 브라질 월드컵의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 멘탈 코치를 영입하겠다고 축구협회에서는 말했지만, 현재 멘탈 코치는 전혀 없고, 대표팀의 멘탈은 망가질대로 망가진 상태다.


 히딩크 감독의 2002년 신화를 두고, 많은 한국 축구인들은 히딩크 호에 대해서 부정적인 말들을 쏟아냈다. 히딩크가 축구 협회 50년 예산을 홀로 다 썼다느니, 국내 축구인들에게 히딩크가 받았던 기회를 주었다면 더 나은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느니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조광래 - 최강희 - 홍명보 - (슈틸리케) - 신태용으로 이어진 국내 감독 역사는, 국민들을 실망시키기에 충분했다.


 조광래는 대한민국에 티키타카를 입히겠다고 선언했지만, 현실은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을 '조각내'버렸다. 최강희는 조각난 대표팀을 강압적으로 수습하다가 대표팀 선수에게 SNS로 디스받는 최초의 대표팀 감독이 되었고, 월드컵 영웅이자 올림픽 메달 감독이던 홍명보는 '의리'라는 유행어를 부정적인 방식으로 전 국민에게 유행시키는 공로자가 되었으며, 신태용은 그에 뒤쳐질 새라 '트릭'이라는 새로운 유행어를 퍼뜨렸다. 그 과정에서 대표팀은 한번도 국민들의 눈높이를 만족시킨 적이 없었다.


 축구인들은 인프라만 받쳐준다면 한국 축구가 세계적인 수준으로 발돋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수천억의 세금을 동원해 월드컵 경기장이 전국 곳곳에 생기고, 각 초등학교 중학교 마다 잔디 구장이 깔렸으며, 유소년에 투자되는 금액은 과거에 비해 몹시 늘어났지만 되려 새로운 스타는 등장하지 못하고 있다. 1998년 최고의 K리그 스타였던 이동국은 2018년 현재에도 K리그 한국인 선수 득점 1위이다. 연령별 대표팀 감독들은 이구동성으로 쓸만한 선수가 없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K리그가 살아나면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성장할 거라는 말에 국민들은 1998년, 2002년 이후 K리그 구장을 자발적으로 채워주며 믿음을 보여주었지만, K리그는 정작 국민들의 그런 성원을 발로 걷어차 버렸다. 도무지 발전하지 않는 경기력과 팬 친화적이지 않은 문화만 잔뜩 노출한 채로 K리그는 점차 무너져내렸다. 월드컵 경기장이 놀고 있어서 그 경기장을 이용하기 위해 만들었던(물론 핑계였지만) 시민 구단이 되려 경기장이 너무 커서 흥행이 안된다고 다시 작은 구장을 지어달라고 지자체에 요구한 것은 그야말로 코미디였다. 축구인들은 '한국 축구의 미래'보다는 '자신들의 안정적이고 많은 일자리'를 위해서 국민의 성원을 이용했으며, 그 결과 지금 K리그 1위팀은 자기 팀 선수 한명의 연봉조차 입장 수익으로 메우지 못한다. 이제 K리그는 성장을 논하기 보다 어떻게 하면 파산하지 않을까를 먼저 얘기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2017년의 히딩크 논란은 이렇게 망가진 신뢰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상황이었다. 여전히 명확한 진실은 알 수 없지만, 상당수의 국민들은 대한 축구협회가 히딩크를 배제하기 위해서 사실을 숨겼다고 믿었다. 대한축구협회 및 각종 언론들이 사실이 아니라고 수도 없이 말했지만, 국민들은 전혀 그 말을 믿지 않았고, 결국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이 국민들 앞에 서서 고개를 숙인 후에야 소모적이었던 히딩크 논란은 간신히 진화되었다.


5.

 사람들은 처음부터 자기에게 나쁘게 구는 사람보다, 자신을 거짓말로 이용하는 사람을 더 싫어한다.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국민들에게 더 이상 성원을 받지 못하는 건, 그런 의미에서 당연한 결과다. 축구인들은 자신들 눈 앞의 이득을 위해서 국민들이 그들에게 보내준 '신뢰'를 저버렸다. 그 당시에는 그들에게 아무런 손해가 없어보였지만, 무형의 '신뢰'라는 자원이 없어지자 유형적인 자원 역시 없어지기 시작했다. K리그는 점점 더 몰락해갔고, 대한축구협회의 예산은 점점 더 줄어들었으며, 월드컵조차도 과거의 국민적 관심을 서서히 잃어가고 있다. 공중파 방송국은 월드컵 중계권조차 인터넷 매체에 팔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게 되었고, 관행적으로 찍던 대표팀 감독의 광고는 이번 월드컵에서 전혀 없었다.


 그리고 더욱 심각한 것은, 앞으로도 그 잃어버린 신뢰를 다시 얻는 길이 요원하다는 것이다. 언론이 아무리 축구인들에게 옹호적인 말들을 써내도, 국민들은 이제 그런 말들을 전혀 믿지 않는다. 대표팀이 아무리 국민적인 성원을 부탁해도, '어차피 3패'라는 말이 온 곳에서 떠돈다. '대표팀을 살리기 위해 K리그를 사랑해달라'고 아무리 말을 해도, '그 재미 없는 걸 왜 보냐'라는 말만 돌아온다. 이제는 대다수의 국민들이 더 이상 축구인들의 말을 믿지 않게 되었다. 2002년에 그렇게 전 국민적으로 사랑을 받던 대표팀은 이제 증오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잃어버린 신뢰를 찾는 방법은 단 두가지이다. 부인할 수 없는 진실인 '성적'으로 축구인들의 말이 사실임을 증명하거나, 혹은 축구인들 스스로가 여태까지의 실태를 뼈저리게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본인들을 희생해 살신성인해 한국 축구를 살리기 위해 노력하던가. 적어도 이번 월드컵에서는 첫번째 방법을 사용하는 것은 힘들어보인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하나, 축구인들 스스로의 성찰과 반성, 희생이다.


 그런 의미에서 멕시코전 이후 박지성 해설위원의 말은 진실을 담고 있다. '전반적으로 한국 축구가 어떤 방향성을 갖고 앞으로 나아갈 것인가. 지금 보이는 것만 바꿔서 내보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에 있는 어두운 것들을 얼마나 털어내고 그 벽을 깨부수고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기를 원하느냐가 더 중요할 것으로 보여집니다. (중략) 우리 축구인들이 힘을 합쳐서 희생을 감내해서라도 뭔가를 바꾸지 않는다면 우리는 4년마다 매번 지금과 같은 모습을 보게 될 거라고 저는 보여집니다.'


 더 이상 국민들에게 무조건적인 사랑과 지원을 바라는 건 어불성설이다. 박지성 해설위원의 말처럼, 축구인들 스스로가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기득권을 내려놓아야한다. 축구인들 스스로가 본인들이 이득을 보고 있는 현실의 구조를 바꾸어야한다. 그 과정에서 축구인들이 일정부분 희생을 해야한다고 하더라도, 그들 스스로가 그런 희생을 감내해야한다. 그러지 않고 국민들에게 '국민 여러분, 한국 축구를 부디 사랑해주십시오'라는 말을 아무리 해보아도 돌아오는 것은 차가운 냉대일 뿐이다. 아무런 반성도 없는 거짓말쟁이를 더 이상 믿어줄 그런 멍청한 국민들은, 더 이상 대한민국에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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