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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아이를 대하는 태도가 문득 우리 아버지였다.

두돌된 나의 딸. 어린이집에서 받은 생일선물 중 연필이 있었다.
깎아달라고 부탁하는 딸, 아내는 거절할 수 없었다.
그리고 깎인 연필을 들고 이리저리 휘두르는 딸.
그모습을 본 나는 너무나 위험해보였고, 너무나 불안해보였다.
"현아야, 연필은 뾰족하고 위험하니까 엄마아빠 주세요."
하지만 뾰족한 연필이 맘에 들었는지 주지않고, 더욱 세게 흔들었다.
가져가려고 하자 더욱 세게 쥐는 딸의 고사리같은 손.
순간 머리속에는 불안함과 분노가 커져만 갔다.
그리고 힘을 쥐어 뺏은 후 아내에게 도대체 왜 이런 위험한 물건을 줬냐고 화를 내는 순간.
딸아이의 눈물. 그리고 자재력을 잃은 나는 연필을 부순 후 휴지통에 넣어버렸다.
그걸 본 딸은 하염없이 울며, 오열하며, 뾰족한 연필을 아빠가 버렸다고 울었다.
"현아꺼, 뾰족해요 연필, 아빠가 부셨어. 아빠가 버렸어."
분노가 줄어들고 아이의 울음이 선명하게 들려오자 나는 뒷통수를 쎄게 맞은 얼얼함이 느껴졌다.
어릴적 나의 모습. 정확히는 초등학교때 아버지는 학습지를 하지 않으면 바로 매를 들었고, 잘못했다고 오열하며 무릎꿇고 싹싹 빌어도 나의 웃옷을 잡고 번쩍 들어 회초리질하셨다.
중학교1학년때, 공부는 안하고 만화책만 본다며 만화책을 찢어버리던 아버지의 모습.
중학교2학년때, 프라모델을 만드는 취미가 맘에 안드셨는지, 만화책이 맘에 안드셨는지. 나의 물건들을 박스에 모아서, 포장한다음 창고에 넣으시던 아버지의 모습.
조그만한 잘못에도 아버지는 늘 극단적이였다.
초등학교3학년때쯤, 카세트재생기를 떨어트려 손잡이가 부러졌는데, 아버지는 1월의 겨울 팬티도 안입히고 베란다에 강금시켰다.
베란다 바깥 풍경속에 동네친구들이 모여 눈싸움을 하고 있었고, 그모습을 본 나는 수치심과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내모습과 이상황이 너무나 두려웠다.
그러한 아버지의 모습과 나의 모습이 하나로 곂쳐지며 내 뒷통수를 쎄게 후려쳤다.
 
 아내는 곧잘 나의 극단적인 행동, 극단적인 선택이 맘에 안들어했었고 지적해 왔었다.
그때는 몰랐다.
나의 행동들이 아버지의 행동과 같다는 것을.
그리고 또다른 피해자를 만든다는 것을.
그리고 지금은 알게되었고, 너무나 두렵다.
앞으로도 이럴것만 같은 느낌이 들고 이런 내가 혐오스럽고, 20년전 나의 모습들이 끔찍하게 다가와서.
그날은 아내와 딸을 붙잡고 어린이가 되어 펑펑 울었다.
 

댓글
  • 파스맛껌 2016/12/26 03:39

    지금이라도 깨달으셨으니 앞으로 더 잘 하실거에요.
    항상 이 마음 잊지 마시길... 힘내세요!
    ps. 연필깎이 중에 뾰족한 정도를 선택해서 깎아주는게 있더라구요. (다이소에서 구입;;)
    아니면, 귀여운 연필깍지를 사서 끼워주는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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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아빠 2016/12/26 11:56

    감사합니다.. 노력하는 아빠가되겠습니다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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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재인프코맘 2016/12/26 14:29

    이해 되네요.
    제가 그 극단적인 엄마에요.
    아이가 혼란스러워 할 거 같아요.
    한없이 다정하고 사랑해주다가
    갑자기 정색하고 애정을 거둬가는.
    모습에 아이가 불안해 하진 않을까.저도 많이 염려스러워요...문제를 인식했으니.대를 이은 좋지 않은
    연은 끊어 낼 수 있도록 오늘 하루도 노력합시다
    또 그러겠지만
    덜 하겠죠.
    그러다 멈추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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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바네라 2016/12/27 13:39

    아빠가 되면서 아빠생각많이 나고요.
    아빠가 나에게 대한걸 타산지석으로 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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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갈색머리앤 2016/12/27 13:45

    저두 정말정말 노력하려구해두 반드시 우리 부모님 모습이 나올거라 생각해요.
    하지만 이렇게 느끼셨잖아요
    쓰니님 좋은아빠인게 느껴져요.
    아이 안전과 관련된거니 더 예민해지셨겠지요.
    서천석 선생님 육아책 추천드립니다.
    오은영 선생님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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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멍 2016/12/27 13:55

    자기자신을 되돌아보고 끊임없이 개선하려고 한다는 점에서 다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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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염제신농씨 2016/12/27 14:02

    부족한 부분이 있지만 성장하고 배워가는 멋진 아빠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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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코맛콜라 2016/12/27 14:16

    그래도 문제를 인지하시고 고칠 마음이 있으신거잖아요.
    순간적으로 욱하는 건 어쩔 수 없더라도 그 다음에는 아이에게 잘 말씀해주세요.
    현아가 미워서 그런게 아니라 현아가 다칠까봐 너무 걱정되서 그랬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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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물은바다를 2016/12/27 14:19

    평소 극단적인 행동과 선택에 대해 아내분이 종종 이야기해왔다고 해서 댓글 남겨요...
    그 모습을 아버지로 인한 문제라고 생각해서 너무 자책하지마시고, 그동안 좋은 문제해결방법, 아직 합리적으로 사고하지 못하는 사람을 대하는 방법(아이 등)에 대해 곁에서 배울 기회가 없었고, 이제라도 배우면 된다고 생각하시면 어떨까요.  좋은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노력하면 훨씬 더 좋아지거든요.. 누구나 배우면 나아지니까요... 너무 상처받지 않으셨으면 해요.
    그리고 위와 같은 경우는... 아이가 뾰족한 연필을 흔드는게 위험해보였다면, 종이에 그림 그리는 행위로 유도해서 동작을 바꾸거나, 예쁜 통을 연필 집이라고 이름붙여서 여기에 연필을 넣자고 유도하는 등 다른 방법이 있었을 것 같아요. 또는 좋아하는 간식과 바꾸거나, 다른 놀이로 대체할 수도 있었겠지요.
    갑자기 터트리는 분들을 보면, 경고-화를 내는 중간 단계가 잘 없는 것 같아요. 본인은 속으로 쌓이는데, 주변에서는 모르고 그게 확- 터지는 경우를 가끔 봤거든요.
    아이엄마에게 위험해보이니 연필놀이를 멈춰달라고 먼저 이야기를 하거나, 심호흡을 하신 후 뒤로 빠져있는 등 다른 행동방법을 찾아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그리고 어쩔 수 없이 화를 내셨다면, 그 뒤의 행동에 신경을 쓰셔야 할 것 같아요. 폭력적인 모습(부순다)만 아니면, 아이에게 큰 상처는 아닐 것 같아요. 연필을 힘으로 빼았더라도, 아가야 위험해서 그랬어 미안해- 잘 토닥거리면 큰 문제는 아닐 것 같거든요...
    너무 직설적으로 이야기드려서 죄송하네요...;;
    - 아이 행동을 보고 화가 날땐 다른 행동으로 유도
    - 안될경우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아내분과 상의)
    - 화를 냈다면 그 뒤엔 아이에게 어떻게 할것인가
    이런 식으로 행동을 좀 나눠보시고 생각하시면 더 도움이 될것 같아요.
    부디 아내에게도 이야기잘 하셔서, 함께 문제대처를 하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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