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차장을 나가야 하는데, 묘한 상황이다.
40대 정도로 보이는 여자가 내차앞에 앉아있다.
차에 타기전에 좀 비켜달라고 말을 하려다, 돌아서 운전석에 앉았다.
약에 취한건지 술에 취한건지, 원래 천성이 취해있는 사람인지, 대중할수가 없다.
지갑 형태의 갈색 케이스가 달린 전화기를 꺼내 연신 뭔가를 하더니, 벙거지 모자를 벗는다.
금발로 염색한 긴 머리를 산발처럼 만들었다가, 머리를 뒤로 묶는게 아니라 앞으로 묶기 시작한다.
땅바닦에 눈을 들이밀더니, 한숨을 크게 쉬기도 한다.
비틀비틀, 느릿하지만 잠시도 움직임이 멈추지 않지만, 일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차에 시동을 걸어도 돌아보지도 않는다.
한참을 기다리다가 더디어, 창문을 열고 사정한다.
“아줌마! 좀 나갑시다!
좀 비켜줘요!”
다섯번째 외침에야 더디어 고개들어 빤히 쳐다본다.
“아, 시발...
가라고 좀!
사람을.... 귀찮게.... 지랄이야?”
금발로 염색을 한걸보면, 평소에는 정상으로 미장원을 찾아 염색도 하고 파마도 하는 모양이다.
턱스크지만 마스크도 소지한걸 보자면 영 미친년은 아닐거라 생각된다.
힘겹게 일어나더니, 운전석 창문을 두드린다.
대화를 할 필요가 없을듯 해서 유리를 내리지 않고 천천히 주차장을 나온다.
뒤에서 뭔가 소릴 지르는게, 아마도 욕을 하고있는 모양이다.
잠깐 멀어지는 중에 룸미러를 통해보니, 여자가 뭔가를 던지는게 보인다.
다행히도 차에 맞기전에 떨어졌다.
전화기를 던진 모양이다.
몇개의 소방도로 사거리를 지나서 큰길로 연결된다.
첫 사거리에 승용차 한대가 머뭇하더니 멈춘다.
고맙다는 뜻으로 오른손을 들어 인사를 건내지만, 상대 차량은 안에 뭐가 있는지 도통 보이지도 않는다.
그러고보니, 수신호 이야기도 좀 해보자.
내 운전 스승의 지독한 믿음중 하나가 있다.
소방도로 좌우측에 주차된 차량으로 중앙선을 넘나들며 운전해야 하는 길이 간혹있다.
관광지에 가보면 늘상 발생하곤 한다.
그럴때 상대차나 내차나 분간없이, 비켜갈 공간을 열어두고 잠시 기다려주는 사람이 있다.
그런 상황에 고맙다는 뜻으로 손한번 들어주는게 그리 힘겨운건 아니다.
그 짤막한 수신호에, ‘상대가 내뜻을 알아 주는구나.’ 하는 생각에 흐뭇해 진다.
상대차가 지나가도록 비켜주는 상황에 당연한듯 지나가는 차량은, 뒤따르는 사람이 있어 출입문을 잡아주고 있는데, 인사도 없이 지나가는 사람과 같다.
양보를 즐기는 편이다.
소방도로 사거리에서 먼저 가라는 뜻으로 손을 흔들어 주기도 한다.
그럴때 수신호를 하는 사람은 보기 힘겹다.
뿐만 아니라, 요즘은 차량안에 뭐가 있는지 조차도 확인이 불가능한 차들이 많다.
고맙다고 흔드는 손이 보이는 세상이 되길 바란다.
일진이 사나운 날이다.
‘개같은 날의 법칙’ 에 따르자면, 이런날은 온종일 몸을 사려야 한다.
편도 일차선의 도로를 60킬로 속도로 지나간다.
농사를 준비하는 농부들이 트렉터로 작업하는 모습을 즐기는 중에, 반대편 골목에서 비싸다고 알려진 승용차 하나가 좌회전을 하겠다고 튀어나온다.
급정거를 하고, 깻잎 한장의 묘미를 경험한다.
내 바로뒤의 차량들도 놀라 급정거를 하며, 소란이 일었다.
양 차선을 막아둔 상태로 운전자가 나와서 욕을하기 시작한다.
기가차서 창문도 열지않고 소리지르는 여자를 노려보기만 한다.
뒷차량 운전자 둘이 나오더니, 중년의 여자가 평소 들어보지 못했을 사악한 소리를 지르자, 그제서야 출발한다.
때로 조용히 참는것 보다는 ‘시간을 밟고있는 여자’ 를 소리내 외치면 효과를 본다는 사실도 배웠다.
편도 일차선의 길에 줄줄이 늘어선 차량이 있었는데, 잠깐 반대편 차선이 비워있다.
역시나, 멀리 좌회전 깜빡이를 켜두고 멈춘 차량이 보이고 뒤로 긴줄이 늘어져 있다.
비상등을 키고 속도를 줄이며 멈추고, 지나가라고 손짓을 준다.
인사도 없이 지나는 차량을 보면, 서운함이 든다.
‘다음엔 꼭 꼭, 양보하지 않을거야!’ 생각하지만, 변태 스럽게도 양보를 즐긴다.
돈한푼 들이지 않고도 누군가를 기분좋게 만들수 있지 않느냐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