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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될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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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 머금은 수면위에 자그마한 찌 하나가 혼자서 바삐 움직인다.
바람한점 없는 장판같은 바다위에 사람과 물고기를 연결해 주려고 살랑살랑 춤을추고 있다.
성심 성의껏 최선을 다하는 찌의 움직임을 몰라주고, 상철의 시선은 수면에 고정되 있다.
일렁이는 수면에 떨어진 달의 파편들을 보고있자니, 생선 생각을 할 수가 없다.
상철은 ‘뭘 해도 안될놈’ 이라는 별명이 있다.
친구들이 만들어준 귀한 별명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스스로 생각해도 그 이상의 수식어가 없을듯 싶다.
운 좋게도 태어나보니, 미친 아버지를 만나 어린시절을 맞으면서 보냈고, 이제 어른이 되 간다고 느낄쯤 아버지가 돌아가셔 가장이 되야만 했다.
양말을 벗으면 꼭 뒤집어진다.
그 양말을 세탁기에 던지면 뒷공간에 떨어져 미친듯 땀 흘리며 꺼내야 한다.
버스를 기다리면 함흥차사가 되 버리고, 담배하나 꺼내 불 붙이면 버스가 도착한다.
사고를 당했는데 그럴때는 블박이 작동하지 않아 보상도 못받고, 내 실수에는 최고의 성능을 보여준다.
이제 운이 바뀌나 싶을 정도의 여자를 만났더니, 아들을 내려놓고 전재산들고 가버렸다.
주식을 샀더니, 얼마후에 휴지가 되 있다.
그래서 늘, 입버릇같은 말을 달고서 산다.
“내인생이….
그렇지뭐….”
며칠전, 아내의 일주기를 보냈는데, 두 아이들은 오지도 않았을뿐 아니라, 연락조차 없었다.
전화를 하고싶은 마음이야 당연하지만, 미안함과, 챙피함과 어색함이 골고루 뭉쳐진 양념이 독해서 결국 통화를 하지 못했다.
아내가 떠난지 일년이 지났고, 며칠사이 사라진 아이들은 연락을 끊은지 일년쯤 된다.
지켜야할 것도 없고, 살아야 할 이유도 없고, 가질 이유도 없다.
이젠 정말로 혼자 외로운 아내에게 가야만 할듯 싶다.
‘젠장, 여름인데 물은 졸라 차갑구먼!
가진게 빚 뿐이라 아쉬울건 없는데, 왜 이렇게나 서러울까?’
마지막 순간이란 생각을 하니, 눈물이 쉼없이 흘러내린다.
달빛 속으로 몇걸음만 나가면, 세상은 다시 말없이 흘러갈테다.
스물하나, 술집에서 술김에 만나 술친구가 된 여자가 임신을 해서, 생각이란걸 해 보기도 전에 결혼을 하고 말았다.
여자는 아이를 볼 의사가 전혀 없어보였다.
낮이고 밤이고 아이보다 더 많은시간을 잠으로 보내고, 잠이들면 아기가 울어도 전혀 알지도 못한다.
어릴적, 아버지에게 늘 맞으며 살아온 과거를 생각하며 상철은 아기를 사랑으로 키우길 바란다.
아이가 태어나고 두달쯤 지났을때, 여자는 아이를 키우지 못하겠다는 짧은 메모를 남기고 모든걸 가지고 어딘가로 사라졌다.
얼마 되지도 않은 현금과 엄마가 도와준 전세금을 받아서 사라졌다.
스물한살 힘겨운 아버지의 길을 시작했다.
아이가 스물한살을 넘어갈쯤, 상철은 여자를 만났다.
힘겹게 키워낸 아들은 아비가 밉다며 연을 끊자며 나가버렸다.
잊을만 하면, 돈이 필요하다며 한번씩 연락이 오곤 한다.
처음 애틋한 마음과 다르게 시간이 지날수록 ‘애물단지’ 라는 생각이 커진다.
폭력에 시달리다 두 아이와 이별하고 탈출에 성공한 여자는 오직 착한남자를 원했고, 상철이 그 조건에 맞았다.
남자의 폭력이 두려워 두고온 아이들을 볼수도 없고, 여전히 폭력에 시달리는 아이들을 생각하면 하루하루 고통속을 걸음한다.
그런 어느날, 남자로부터 연락이 왔다.
천만원을 주면 아이들을 데려가도 좋단다.
도심에서 좀 떨어진 곳의 집 하나를 구할수 있는 시절이라 적지않은 부담이지만, 가진 모두와 대출까지 받아 아이들을 데려왔다.
선우와 미영은 자신의 아이와는 딴판으로 너무 순하고 착하고 사려깊은 아이들이다.
다만, 소심한 성격탓에 친해지는데 시간이 걸려야 했다.
아이들이 ‘아빠’라는 말을 처음으로 했을때, 상철은 뭘해도 안될놈의 운명이 끝이라고 확신했다.
가정은 너무나 행복하고, 일평생 빈손으로 살았던 상철의 주머니는 하루하루 늘어만 간다.
전세살이를 끝내려고 집을 알아보던 중에 아내에게 이상이 생겼다.
암이다.
늦게 발견해 전이가 많이 진했되서 위험한 상황이다.
뭘 해도 안될놈의 운명은 다시금 살아나 꿈틀거린다.
3년이란 시간동안 가진것 모두와 그 이상의 빛만 남기고 아내는 하늘로 올라갔다.
3년이란 시간동안 얼마나 울었던지, 마지막 이별에는 눈물조차 나오지 않았다.
아이들은 취직해서 돈을 벌겠다며 멀리 가버렸다.
처음, 괜찮으냐는 전화를 몇번 했었지만, 간격이 길어지더니 이제는 전화를 할수조차 없다.
간혹, 멍하니 전화번호를 바라보다 내려놓곤 한다.
이렇듯 밤하늘 벗삼아 반짝이는 수면을 지켜 볼 때면 생각해 보곤 한다.
‘난, 뭘 위해서 살아왔지?
뭘 위해서 살아가야 하지?’
답을 찾기위해 답을 찾으려고 밤새 달과 대화를 이어가곤 했다.
힘겨운 나날을 보내며 지겹고 고통 스러워도, 아이들의 웃는 모습을 보면 힘이 생기곤 한다.
그 미소가 뽀빠이가 삼킨 시금치와 같다.
아내가 새워둔 계획에 한걸음씩 나아가는 과정이라 생각하면 또다시 힘이 넘치곤 했었다.
그 두가지의 시금치가 없어진 지금은 도무지 살아야 할 이유를 찾을수가 없다.
이제, 몇걸음만 나가면, 더이상 머리 아프게 생각할 필요도 없다.
눈부시게 반짝이는 달의 조각들을 마지막으로 담아두는 시간에 전화가 울린다.
마지막으로 통화를 해본게 언제인지 가물거리는 딸아이의 전화다.
화가 나면서도 알수없는 애틋함에 전화를 받아본다.
“아빠~
잘 지냈어요?”
“응, 넌 그동안 뭘 한다고 연락도 없었니?”
화를 참으며, 슬픔도 갈무리하고, 아무일 없듯이 답한다.
“아빠 걱정 하실까봐 연락 못했어요.”
“인석아~
딸래미가 연락이 없는게 더 걱정이지~”
“아빠, 오빠랑 올라와서 대출 받아서 방구하고 겨우 일자리 구해서 이제겨우 자리 잡았어요.
여태까지 마이너스 통장에서 오늘 처음으로 마이너스 탈출했어요.
너무 기뻐서 아빠한테 자랑할려고…..”
정수리를 망치로 내려치는 느낌이다.
그래, 생각해보니, 녀석들 집나갈때 아무것도 없이 나갔었다.
그 상태로 생전 처음인 곳에서 방 구하고 생활하려면 얼마나 힘겨웠을까 생각하니 맘이 아려온다.
마치, 좀 전까지 다정하게 함께하던 사이처럼 딸아이의 수다를 듣고 있으니 현실 감각이 흔들린다.
“인석아~
아빠가 아무리 힘들어도 니들 그정도 도와주지 못할거 같냐?”
“그러니까요~
말하면 아빠가 더 힘들어 질거라고 오빠도 힘들때는 연락하지 말라고 했어요.”
아이들이 나를 버린게 아니라는 사실을 실감하고는 설움을 달랠길이 없어,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
“미영아~
사실, 네 전화가 일분만 늦었으면 난 엄마한테 가 있었을거야.
난, 니들이 나를 잊은줄 알고…..
그래, 우리 다시한번 살아보자.”
또다시, 뭘 해도 안될놈의 저주가 끝난듯 했다.
딸아이의 결혼식이다.
넘어지지 않고 잘 걸어가서 사위에게 딸을 건낸다.
평소 말주변이 없어 조용히 돌아서려 했는데, 꼭 하고픈 한마디가 생겼다.
“이보게, 내 할말이 하나 있는데…..”
“네, 아버님, 말씀하세요.”
“내 그동안 자네한테 말못한 비밀이 하나 있다네.”
사위도 가족의 일을 잘 아는지라 딱히 비밀이란게 뭔지 궁금해지고, 조용하던 식장은 더더욱 조용해졌다.
“미영이, 사실은 내 딸이 아니라네.”
식장에 일순간 적막이 무겁게 내리고 있다.
사위가 뭔가 수습하려 말려본다.
“네, 아버님, 그래도 미영이에게 아버님은 최고의 아빠랍니다.”
“아닐쎄~
미영이는 내딸이 아냐~
나는 사람일 뿐이지만, 미영이는 천사라네.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
우리천사 잘 부탁하네~”
뭘해도 안될놈의 마법이 살아난 모양이다.
천사를 울려버렸고, 사람들은 무슨 의미인지 궁금해 답을 찾느라 분주하다.
밤바다, 수면위에 내려앉은 달과 빛의 조각들을 지켜보는건, 시간 가는줄 모를만큼 즐거운 일이다.
그간 갈구하던 답의 일부를 찾은듯 하다.
‘양말이 뒤집어 졌다고 화내지 말자.
주문한 안주가 맛이 없으면, 한번 웃어주고 직접 만들어 보자.
힘들땐, 조금더 지난 다음에 돌아보자.
수면 위에서 물길에 떠내려가는 찌를 보고있자면, 삶도 다를바 없는듯 하다.
힘들게 거슬러 가느니, 편하게 흘러 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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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KRe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