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을 보고 온 사람에게 있어 영화는 조금 고개가 갸웃해지는 정도이지 싶음.
영화는 러닝타임의 한계 때문에 원작에서 묘사하고자 했던 바를 축소하거나 재배치해서 인물의 감정선이 조금 뭉개지는 경향이 있었고
또 로토스코핑이라는 기법의 문제로, 실제 인물이 과장된 연기톤으로 움직였을 때 그게 애니메이션에서도 과장되게 나타나보이는 문제도 좀 있었거든
심하진 않아서 거슬리진 않았지만 아예 눈에 안 보이는 정도는 아니었음
그러나 영화는 원작의 주제의식에 대해 되게 잘 살렸다고 보는데
나는 원작의 주제의식을 '노력은 왜 하는가?' 라고 봤기 때문임
가졌던 재능을 잃고 현실이라는 벽에 막혀서 슬럼프에 빠진 주인공에게
마찬가지로 15년동안 만년 2등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계속 현역을, 심지어 30대까지 지속해온 카이도는
'현실에서 도망친다' 라고 말함.
이 현실은 자이츠(작중 최고의 선수로 등장하는) 를 따라잡을 수 없는 현실
자이츠조차 따라잡을 수 없는데 신예들이 계속해서 등장하는 현실
나이를 먹었다는 현실, 시기를 잘못 태어나서 2등밖에 못한다는 현실
이런 '문제로 가득찬' 현실을 이야기함.
즉 카이도가 말한 것은
'나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빠르다는 것을 믿고, 이러한 믿음을 배반하는 현실을 문제라고 인식할 뿐'
이라는 거였음.
그리고 카이도는 동시에 주인공에게 이렇게 이야기하는데
'현실로부터 도망치려면 현실을 직시할 줄 알아야 한다' 라고 말함.
현실을 인식하지조차 못한다면 현실로부터의 도주는 현실도피다, 라는 거지
찾아보니까 '시지프 신화' 라는 게 있더라고
여기서는 이런 말이 나옴. '산꼭대기를 향한 투쟁만으로도 인간의 마음을 채우기에 충분하다. 우리는 시지프가 행복하다고 상상하여야 한다.'
나는 이게 100m. 의 주제의식과 비슷하다고 느꼈음.
100m.는 슬럼프와 슬럼프에 의한 '노력의 가치의 허무함' 을 계속해서 말함.
주인공은 천재였지만 재능은 항상 갉아먹혀가고 심지어 근육 파열로 인해 선수 인생이 끝날 걸 각오해야 하기도 함.
자신이 동경했던 선수는 자기보다 한참 전에 슬럼프에 잡아먹혔고, 자신이 가르쳐줬던 친구는 자신을 옛저녁에 추월해버림.
그리고 그 친구와 한 무대에 서기도 전에, 자신이 코치하는 또 다른 신예가 자신을 추월함.
그에 반해 자기 자신은 육상 선수로써 계약 갱신에 전전긍긍해야 하는 처지임
자신의 재능을 사랑했고, 그 재능에 바친 노력은 그 성과를 항상 보장하지 않음.
마치 아무리 돌을 들어올려도 산꼭대기에서 돌은 항상 굴러떨어지는 시지프의 돌처럼
주인공은 코미야를 처음 만났을 때, 주인공은 코미야의 태도-즉
달리는 것은 현실보다 고통스럽기 때문에, 현실을 잊게 해 준다- 라는 것에 대해
'아깝다' 라고 표현함. 왜 아까워 했는가?
주인공 토가시에게 있어 달리기가 주는 것은 고통스러운 현실을 외면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임.
'대부분의 문제는, 100m를 누구보다 빨리 달리면 전부 해결된다'
토가시와 코미야의 문제의식은 동일함. '현실에게서 도망친다'
그러나 토가시는, '현실에서 도망치는 것은 해결이다' 이기 때문에, 그 자체로 긍정이기 때문에
단순히 '고통스러운 현실을 외면할 수 있기 때문' 이라는 코미야의 태도에 아깝다고 느낀 거임.
왜냐면, 우리는 상상해야만 하거든
돌을 들어올리는 의지만으로도 시지프는 행복할 수 있다고
그것은 엄연한 '행복' 이라고
그리고 코미야는 성장해서 천재 자이츠의 자리를 넘보는 신예가 됨.
그의 성장을 경쟁자들이 두려워하는 모습이 느껴질 정도로 코미야의 성장은 대단함
그러나, 코미야는 역설적으로 자신이 아무리 성장하고 빨라져도 허무함을 느낌
심지어 그 성장이 기록을 신경쓰지 않던 카이도에게 밀렸을때는 더더욱
그래서 코미야는, 성인이 되어서, 수도 없이 100m를 반복한 후에
마찬가지로 수도 없이 100m를 반복하며 성인이 된 토가시에게 물음
'기록을 내놓으면 그 너머에는 무엇이 있는가?'
'어차피 굴러떨어질 돌이라면, 그것을 밀어올리는 행위에는 무슨 의미가 있는가?'
토가시는 답함
'대부분의 문제는 100m만 누구보다 빠르게 달리면 전부 해결된다'
100m를 빠르게 달리고 싶어 하는 그 의지에 의미가 있다
'돌을 들어올리는 행위에, 그 투쟁에 의미가 있다'
그래서 나는 이 만화와 영화의 주제의식을 '노력을 왜 하는가?' 에 대한 답변으로 이해했고
그 답을, 만화는 이렇게 내리고 있다고 생각함.
노력은 어떤 정답을 향해 추구함으로써 의미를 생산하지 않는다
노력은 언제나 문제를 인식하고 그것으로부터 탈주함으로써 의미를 가진다
그렇기 때문에 노력은 그 자체만으로 의미를 가진다
'시지프를 행복하다고 상상하여야 한다'
좋은 만화였고, 좋은 영화였음.
레제편보다는 약간 덜 섬세하고 화끈했지만, 그래도 돈 값은 한다고 생각했음
그래서 언제 거인으로 변신함?
100m 달리는데 거인으로 변신하면 반칙이라 변신 안하드라 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