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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을 북한이 팔아먹었다고?

출처의 댓글 보고서 놀랐다.

북한이 백두산을 팔아먹었다 이런 내용이 보여서.

댓글에도 반박을 했지만, 

조금 더 보강을 할 필요가 있을 필요가 있다고 여겨서 따로 글을 써본다.


참고로, 본인은 중국공산당을 매우매우매우 싫어하며,

단 1초라도 빨리 이 지구상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져야 하는 집단이라고 생각한다.

공안? 더 말하면 입 아프지.

나는 중국에서 십수년을 성장했고, 대학 진학 때문에 귀국했는데

홍콩 시위 관련 대자보 써 붙였다가 중국 유학생들이 내 대자보 훼손했더라.

어느 한 놈은 내 대자보가 붙어 있던 자리 옆에 나를 인신공격하는 맞불 대자보도 붙여놨고.

혹시라도 내가 북한이 백두산 팔아먹었다라는 주장을 반박했다고 짱1깨라고 욕하는 사람이 있을까봐 우선 밝혀둠.


일단 북한이 백두산을 중국에게 팔았다.

이건 당시 중국 정세 제대로 알면 절대로 할 수가 없는 헛소리야.

중화인민공화국의 국경 문제부터 살펴보자.


1960년대. 중화인민공화국은 세워진 지 20년도 안된 나라였다.

그런 신생국가에게 중요한 문제가 있었으니, 바로 영토 및 국경 문제.

1951년 중국은 티베트를 침공하고 합병하면서, 청나라 시절 영토를 대부분 차지하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곧바로 국경문제가 불거졌다.


1947년에 독립한 인도는 영국령 인도 제국 시절의 국경선을 자기네 국경선이라고 주장했다.

영국은 1914년 티베트와 심라 회의로 국경선을 확정했는데,



백두산을 북한이 팔아먹었다고?_1.jpg



이 때 그어진 선이 그 유명한 '맥마흔 라인'이다.

위 그림에서 빨간 구역의 북쪽 경계인데, 

헨리 맥마흔의 이름을 딴 경계선이다.

이 이름을 어디서 들어봤다고?

그 사람 맞다. 후세인-맥마흔 서신의 그 맥마흔이다.

영국이 밸푸어 선언으로 팔레스타인에 유대인 국가 건설을 허락했는데,

후세인-맥마흔 서신으로 (팔레스타인이 명시되지는 않았지만) 팔레스타인을 아랍이 차지해도 된다는 여지를 남겨서

지금까지 계속되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의 불씨가 된 그 맥마흔.


아무튼 이왕에 티베트가 중국에게 병합되었고, 인도가 이를 승인한 이상,

인도나 중국이나 새로 마주한 국경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인식은 일치했다.

때는 1960년.

그 동안 중국 입장에서는

'조선반도'에서 '미제국주의자'들과 '괴뢰 남조선군'과 한바탕 싸우다가(=침략자 도와주다가) 끝났고,

남쪽의 국민당군을 정리하려 금문도 포격하다가 끝나고,

중소결렬이니, 반혁명 진압 운동이니, 반우파 투쟁이니, 대약진 운동이니, 티베트 소요 사태니, 노산 회의니 하는

국내외 문제들로 시끄럽다가,

이제서야 바깥 국경 문제에 나름 눈을 돌릴 때가 된 것이다. 



백두산을 북한이 팔아먹었다고?_2.jpg



그래서 중화인민공화국 국무원 총리 저우언라이가 인도 뉴델리로 가서 네루와 회담을 가졌다.

그러나 중국과 인도 쌍방의 이견을 좁히지는 못했다.


하여튼 중국 정부는 주변국과의 국경 정리에 힘을 쓴다.

1961년 10월에는 버마와 의정서를 체결해 국경을 확정한다.

1962년 10월 12일에는 평양에서 국경 조약을 맺는다. 

그리고 쿠바 미사일 위기가 시작되서 소련과 미국 모두 신경을 못 쓰던 가운데,



백두산을 북한이 팔아먹었다고?_3.jpg



1962년 10월 20일. 중국-인도 국경 전쟁이 발발하고 만다.

11월 21일 중국의 승리로 일단락되었지만,

중국은 맥마흔 라인 이북으로 철수하고,

중국과 인도 사이의 국경 분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이제 중국 입장에서는 주변국과 국경선 확정이 시급해졌다.

골치 아픈 국경 문제를 더 늘리면 안되니까.

안 그래도 소련하고 관계가 험악해지면서 긴장도 높아지는데 말이다.

실제로 중국과 인도 사이의 분쟁에서 소련은 겉으로는 중립이고 맥마흔 라인을 비난했지만,

인도에게 군사 지원을 해줬다. 중국은 아니꼬울 수 밖에.

실제로 1969년에 가면 중국-소련 국경 분쟁이 터진다.


하여간 주변국과 정리할 수 있는 국경은 정리하기로 나선 중국.

1962년 12월 몽골과 국경 조약을 맺는다.

원래 몽골은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래로 국경 확정을 요구하고 있었다.

몽골인민공화국은 1947년에 중화민국과 국경 분쟁도 겪은 바 있다.

더군다나 몽골인민공화국 자체가 소련의 도움으로 세워진 위성국이라 친소일 수 밖에 없는 국가였다. 소련군도 주둔한 적이 있고.

그래서 중화인민공화국은 이전에 중화민국이 주장하던 경계선을 포기하고, 몽골의 요구를 대거 수용한다.

1963년 1월에는 네팔, 3월에는 파키스탄, 11월에는 아프가니스탄 왕국과 국경을 확정했다.

부탄이야 티베트 병합 이후 골수 친인도-반중 국가가 되었으니 논외고,

라오스랑 베트남은 제2차 인도차이나 전쟁 때문에 국경을 확정할 겨를이 전혀 없었다. 이 둘의 국경 확정은 1990년대 가서야 이뤄진다.

그리고 북한은 1964년 3월 20일에 의정서를 체결함으로써,

조선-청 분쟁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중간에 일본 제국 함유) 중-조 국경 문제를 매듭짓는다.


중국 북한에게 정말로 양보를 많이 한 편이었다.

하중도는 북한이 더 많이 가져갔다. 

백두산을 따지고 보면,

산 전체 면적만 보면 중국 측 영토가 더 넓은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봉우리와 천지는 북한이 더 많이 받아갔다.

2500미터 이상 봉우리 16개 중 9개가 북한 봉우리가 되었고,

천지는 54.5%가 북한 차지가 되었다.

두만강 상류 국경도 북한이 더 이득을 봤다.

이렇듯 북한에게 많이 양보를 해준 이유도

북한이 중국과 소련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이 소련 편에 붙어버리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물론, 북한한테 마냥 좋은 것은 또 아니다.

해상경계는 동경 124도 10분 6초라는 경선으로 정했다.

그때는 지금보다 중국과 북한 모두 바다에 대한 중요성을 크게 느끼지 못하던 때라서 경선으로 그은 것.


그래서 주변국에 많이 양보한 저우언라이는 중국에서 민과 관을 불구하고 항의를 받았고, 매국노라는 욕을 엄청 먹었다.

이 여파는 문화대혁명까지 이어지는데, 저우언라이는 일단 무사했지만,

연변 조선족 자치주 주장이었던 주덕해(본명 오기섭, 조선족)가 중국 땅을 북한에게 넘겨준 매국노라는

억지 죄목으로 호북성 농장으로 하방 갔다.

근데 일개 지방 관료가 어떻게 국경 문제에 관여해요? 


중국은 인도와 국경 분쟁을 한바탕 치러서 주변국과의 국경 문제 해결이 시급했고,

거기에 소련을 의식해서 몽골과 북한 등 주변국에게 많이 양보를 해줬다는 것이다.

매국노 소리까지 들을 만큼.

지금도 파룬궁 등 반공 중국인 중에서는 장백산은 전부 우리 땅인데 저우언라이가 팔아먹었다는 소리까지 한다.


아무튼 간에,

백두산이 국경이라는 것(=어느 한 나라만의 산이 아니라는 것)은 조선과 청나라도 합의한 일이었고,

중국-인도 국경 분쟁과 중소 대립이라는 국제 정세 속에서 이루어진 중-북 국경합의에서

백두산은 중국이 양보를 많이 해서 북한에게 유리하게 획정되었다.

이런 역사적 맥락과 사실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북한이 백두산을 팔아먹었다고 말하는 것은

그냥 자신이 왜곡 선전을 신봉한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아무리 중화인민공화국이 세계에 민폐를 끼치고 패악질을 일삼는다지만

알 건 정확히 알아야 하지 않을까?


탭은 많이들 보라고 유머.

댓글
  • 옥산동86년생김만영 2025/07/31 06:18

    김돼지 일가는 '백두'혈통임
    그런데 백두산을 팔아먹는다라..??

  • 호메로스와조설근 2025/07/31 06:19

    우리 민족 뿐만 아니라 여진족과 만주족도 백두산을 신성시했지. 청나라는 시조 신화부터 '장백산'이 나오는데.

  • 옥산동86년생김만영 2025/07/31 06:18

    김돼지 일가는 '백두'혈통임
    그런데 백두산을 팔아먹는다라..??

    (6AJcXd)

  • 호메로스와조설근 2025/07/31 06:19

    우리 민족 뿐만 아니라 여진족과 만주족도 백두산을 신성시했지. 청나라는 시조 신화부터 '장백산'이 나오는데.

    (6AJcX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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