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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 호는 선장을 필요로 한다


[말딸,괴문서]황금 호는 선장을 필요로 한다_1.jpg




파천황.
짧고 굵게 골드 쉽을 요약하는 별명으론 이만큼 좋은 단어가 없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게, 사츠키상과 국화상을 제패했고 타카라즈카를 2연패 하는 쾌주를 보였으니까. L’arc의 일환으로 개선문 원정에 나섰을 때는 아쉽게도 코 차이 2착으로 들어왔지만, 뭐 아무렴 어떤가. 그 전 해에 오르페브르가 1착을 따냈고, 그녀는 일본의 우마무스메가 그 문을 따낸 게 단순한 요행이 아니었음을 입증해 낸 증인이 되었다.
그리고 오늘.
“어이, 골드 쉽.”
“옙.”
“뭐 할 말 없냐?”
그녀는 아주 다소곳하게 트레이너의 앞에서 무릎을 꿇은 채 얌전히 머리를 숙이고 있었다.
황금의 배는 알고 있었다.
친근하게 ‘고루시’라고 부르지 않고, 이름으로 부르는 때는 아주 심각한 일이 그것도 제대로 단단히 터졌을 때 외에는 없음을.
“마음대로 해도 된다고 한 건 나긴 한데, 이건 너무 하잖아.”
그런 골드 쉽의 앞에서 트레이너는 머리가 지끈거리는 듯, 콧등을 짚다가 결국 소리를 버럭 내지르고 말았다.
“출발 직전에 게이트에서 날뛰어서 경기 자체를 날려버리는 게 어딨어!”
3번째 타카라즈카.
역대급 기록을 남기리라고 모두가 기대했던 오늘의 경기.
골드 쉽은 제대로 사고를 치고 돌아왔다.
“할 말이 없습니다, 토레삐 도-노.”
골드 쉽은 오늘 변덕을 참지 못하고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을 인생의 기록을 하늘에 날려버렸다.
아이고 팔자야.
-⏲-
골드 쉽의 머리는 나름대로 이 상황을 벗어나려고 황금 정방향의 회전으로 뉴런을 가속했다.
그런데 어쩌나, 답이 없다!
‘삐빅-.’
워낙 대형 사고를 친 탓에 식은땀만 나고 있는 가운데, 울리는 트레이너의 휴대폰 소리와 그걸 확인하는 듯한 침묵. 뒤이은 폭소는 그녀의 등골을 오싹하게 했다.
“푸하하하!”
“그, 트레이너 씨? 무슨 재밌는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쭈뼛쭈뼛하며 물은 말에 들은 답은 절로 오한이 들게 했으니.
“타즈나 씨가 너보고 게이트 적성 재심사를 다시 보자고 하신다! 야, 이거 대박 아니냐! G1을 몇 개나 땄는데! 크하하하하!”
“아하, 하하하….”
이야, 이거 야단났다.
생각보다 사고의 규모가 급이 다르다.
그보다 정신줄 완전히 놓은 거 같은데, 트레이너 괜찮은 거 맞나?
“먼저 퇴근한다! 애들 오면 오늘 오후랑 내일 낮 일정 없다고 해라, 으하하하!”
“어, 어어어?”
아, 정신 놓은 거 맞네.
골드 쉽의 이마에 식은땀이 맺혔다. 이거 아무리 봐도 충격 너무 크게 받은 거 같은데, 어떻게 해야 하지.
컴퓨터도 제대로 끄지 않고 비틀거리면서 트레이너가 나간 지 머지않아, 트레이너실에 메지로 맥퀸을 비롯한 팀원들이 들이닥쳤다.
“요, 맥퀸, 마메찡.”
“골드 쉽, 트레이너님은요?”
맥퀸과 페노메노는 소식을 듣고 급히 달려왔는지 숨이 찬 모습이었고, 이유를 알 법 했다. 이야, 이거 나 때문이다. 골드 쉽은 진짜 시간을 돌리고 싶다는 생각을 무럭무럭 느끼며 최대한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방금 나갔는데.”
“아니, 트레이너님이 가시는 걸 안 막았단 말입니까?!”
페노메노가 버럭 소리를 지르는 가운데, 맥퀸은 이마를 짚었다. 그리고 최대한 진정하며 말했다.
“아무리 트레이너님이 우리한테 자유롭게 하라고 풀어줬어도 너무 심했어요. 이건 골드 쉽 당신에게만 큰일이 아니라구요.”
확실히 그랬다.
나름 개선문 2착까지 하고 왔고, 그 전엔 사츠키와 국화까지 따서 슈퍼 에이스로 승승장구하던 체면이 한순간에 나락으로 박혔다. 한숨을 쉬면서 맥퀸이 보여준 뉴스 기사를 보니 아예 스포츠란에 그녀가 게이트에서 난동 부리는 모습이 대문짝만하게 찍혀있었고, 스레드에도 이슈가 되는 상황이었다.
하긴 이 정도로 불나게 이목을 끌어모았으니-.
“그러고 보니 타즈나 씨한테서 나한테 게이트 적성 테스트 다시 하라고 왔다던데.”
“하?”
“허.”
그 말에 두 팀원은 말문이 막혀버렸다. 그리고 페노메노는 조용히 모자를 벗은 후, 콧등을 눌렀고 맥퀸은 눈가를 가렸다. 왜 트레이너가 나가버렸는지 한 번에 이해가 갔으니까. 이쯤 되면 학원에서만 입방아에 오르는 게 문제가 아니다. 그리고 이내, 메지로 맥퀸은 조용히 손을 들어 문밖을 가리켰다.
“쫓아가세요.”
“엉?”
“수습하고 오세요, 당장.”
“하지만 어디 갔는지 모르겠는데.”
“제가 끌고 가 드리는 게 좋겠습니까?”
“요시, 당장 다녀올게!”
도끼눈을 뜬 두 사람을 피해 골드 쉽은 냅다 트레이너실에서 탈출했다.
일단 나가자.
나가고 나서 생각해 보자.
그런데 트레이너가 있을 만한 곳이 어디지?
골드 쉽(은)는 시작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
가을바람은 참으로 시원하다.
거기에 낚싯대랑 스트롱 제로 몇 캔까지 있으면 더 시원해진다.
머릿속을 정리해야 하는데 도저히 맨정신으로 있기 힘들었던 트레이너는 낚시 장비를 간단히 챙기고 항구로 가는 길에 편의점에 들러서 담배와 술을 사 들고 어둑어둑해진 바다에 낚싯줄을 드리우고 있었다.
“하아.”
솔직히 그 자신이 욕먹는 거? 뭐 참고 넘길만하다.
애들 기량 제대로 못 뽑는다는 소리 가끔 들을 때도 있었고, 지나치게 휘둘린다는 평가 들을 때도 있었으니까.
그런데 이번은 좀 달랐다.
‘치익-.’
차가운 캔을 따서 그냥 한 번에 쭉쭉 마신 그는 싹 식어나간 속으로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골드 쉽이 아무리 제멋대로라고 해도, 그녀의 기량이 저평가되는 것 자체를 트레이너는 용납할 수 없었다. 그런데 타카라즈카의 게이트 사건은, 아무리 봐도 수습이 안 된다. 모두가 저평가와 의심의 눈초리를 보낼 거다.
한번 묻은 세간에 묻은 의심의 얼룩은 잘 안 지워진단 말이다.
-이럴 땐 차라리 사고 나서 뻗어있는 오르페브르와 드림 저니 담당 형님이 은근 부러워지기도 하는데.
병상에 누워있을 폭군의 리슐리외가 ‘하하, 이 새끼 하하’하고 멱살을 잡아도 이상하지 않은 생각을 할 정도로 정신줄이 아주 화끈하게 흔들거린다. 그냥 참돔이나 하나 낚은 후 돌아가자. 세월 낚다 보면 어떻게든 이 멘탈이 수습되겠지.
아, 생각해 보니 수습될 거 같지도 않은데.
젠장. 니코틴도 같이 좀 하자.
그렇게 손이 방금 산 담뱃갑을 들고 포장을 뜯는 가운데,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이, 오이. 트레삐. 알코올하고 니코틴 동시에 하다간 아주 훅 간다구?”
유쾌한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오자, 연초를 물기 직전 손이 멈춰 섰다.
“고루시, 왜 왔어.”
“혼자서 궁상떨고 있을 거 같아서 이 고루시 님이 워프해왔지.”
거짓말이다.
분명 익히 알고 있을 그의 거처라던가, 아니면 혼자서 시간을 보내는 장소라던가 다 뒤지다가 찾아냈을 거다. 그가 알고 있는 골드 쉽은 분명 그런 우마무스메니까. 당장 이 가을에 땀범벅인 거 보면 견적 나오지.
“엇차, 옆에 좀 앉아도 되지?”
“이미 앉았으면서 뭘.”
“헤헤, 내가 뭐 다 그렇지.”
파도 소리가 희미하게 들리는 가운데, 그의 담당은 그녀답지 않게 조곤조곤하게 물었다.
“있잖아, 그렇게 쇼크였어?”
“쇼크라.”
방해받았던 담배를 다시 입에 문 트레이너는 멍하니 밤바다를 바라봤다. 쇼크라 하면 쇼크지. 라이터로 불을 붙여야 하는데 그럴 의욕조차 들지 않던 그는 이내 담담히 말했다.
“제일 아끼는 담당이 희대의 문제아라는 눈초리를 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자기 손으로 날려버리고 시한폭탄 딱지를 받았는데 쇼크면 쇼크네.”
“아아, 내가 좀 그러긴 했-.”
평소처럼 넘기려던 황금의 불침함은 이내 멈칫했다.
이 양반이 지금 뭐랜겨.
“방금 뭐랬어?”
“내가 제일 아끼는 담당이라고 했다, 왜.”
다시금 쐐기를 박듯 말하는 그 모습에 골드 쉽은 벌떡 일어난 후, 파바박 뒤로 물러났다.
“와, 취했나 봐. 도수 몇 짜리를 몇 캔을 마신겨.”
“안 취했다 요 녀석아.”
그녀가 물러난 걸 보고서야 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인 트레이너는 연기를 뿜어냈다.
“내가 너한테 끌려다닌 게 올해로 몇 년 차냐, 고루시.”
“좀 됐지? 한 4년 됐나?”
“그렇지? 그러면 이제 괴짜는 그렇다 쳐도 문제아 딱지는 뗄 때가 되지 않았나 싶었다.”
빠르게 타들어 가는 연초는 그가 입은 내상이 얼마나 깊은지 새삼 보여주는 듯했다.
“근데 그게 한순간에 날아가니까 정신을 못 차리겠더라. 헛웃음 밖에 안 나오더라고. 거기에 게이트 적성 테스트까지 다시 하라고 연락이 오니까 와, 그냥 버틸 수가 없더라.”
“.....”
솔직하게 털어놓는 그의 목소리는 분명 술기운이 느껴졌다. 뭐, 옆에 나뒹구는 스트롱 제로 캔의 개수만 5캔이다. 저 정도면 취기가 올라오고도 남겠지. 다르게 말하면 저만큼 안 마시면 정신적으로 버티기 힘든 상황이란 거니까.
“방금도 말했지만 말이야, 난 널 제일 아낀다. 우여곡절이 많아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뭐 아무튼 그래. 그래서 네 능력이 온전히 인정받기를 원했어.”
필터에 닿기 직전까지 탄 연초를 손으로 쥔 채 밤바다 너머를 멍하니 보던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어쩌겠냐. 시간을 돌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이미 일은 터졌는데.”
속이 끓는 것 같은 말은 트레이너로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자기 비하였다. 이미 사태는 돌이킬 수 없었다. 마지막 해에 게이트 심사 재시험이라는 초유의 일도 치러야 했고 말이다.
“흐음.”
그의 푸념을 들어주고 있던 골드 쉽은 순간 눈을 번뜩였다. 그리고 빠르게 낚싯대를 낚아채, 찌에 걸린 걸 힘껏 수면 위로 걷어냈다. 분명 늦은 밤이라 전혀 기대하지 않은 초대형 참돔이 달빛을 받으며 광택을 번들거리는 걸 본 트레이너의 술이 순간 확 깨는 가운데, 골드 쉽은 코 아래를 쓱쓱 비비며 말했다.
“토레삐, 그럼 이렇게 해봐도 될까?”
“응?”
시멘트 바닥에서 힘차게 펄떡거리는 대물 참돔에 어이가 없어진 채 있던 트레이너의 귀에 골드 쉽의 평소와는 달리, 뭔가 속삭이는 것 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만에 하나 말이야, 올해 남은 경기에서 내가 나를 증명하는 데 성공하면, 나도 토레삐처럼 솔직하게 말해도 받아줄 것, 어때?”
“남은 경기라면 재팬컵과 아리마 기념인데 그게 말처럼 쉽겠냐?”
기가 차는 듯, 트레이너가 말하자 골드 쉽은 ‘쯧쯧쯧’하고 검지를 까딱거린 후 참돔을 번쩍 들어 올리며 말했다.
“에이, 밑져야 본전이지. 이 야심한 밤의 참돔처럼 행운을 낚을 수도 있지 않겠어?”
“에라이.”
진짜 말도 안 되는 걸 봐버렸으니, 뭐라 할 수도 없기에 그는 마지막으로 사 왔던 6번째 캔을 한 번에 쭉 마셨다. 그리고 입가를 싹 닦은 후, 그녀에게 삿대질하며 선언했다.
“그래, 네 원하는 대로 해라! 남은 두 경기에서 1착하면 원하는 걸 뭐든지 들어주겠다!”
“오! 뭐든지?!”
“그래! 뭐든지!”
“기억했다?! 뭐든지라고 한 거다, 트레삐?!”
“남자는 말 한 걸 절대 안 무른다, 이기고 와라, 골드 쉽!”
절대 해서는 안 되는 말 ‘뭐든지’가 튀어나온 날.
이게 계기가 될 줄 누가 알았을까.



골드 쉽.
재팬컵 1착.
그리고 트윙클 시리즈 최후의 경기, 아리마 기념.
3마신 차 1착.
황금 호에는 언제나 선장이 필요했다.







올붕이/저니 티타늄 또레나 있는 동네와 같은 동네

댓글
  • 린성신관알타 2025/07/28 17:13

    뭐든지 : 함부로 뱉으면 안되는 말.

    (XIUMmw)

(XIUMm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