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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ㄱ) 장문) 번역이 2차 창작이라고? 생초짜 번역가의 잡설

어느 유게이가 출처의 글을 작성해서 ㅇㅇㄱ 도당이 저지른 일이 왜, 어떻게 저작권법에 위배되었는지 썼는데,

어떤 죄수번호 팬치가 하나 나타나서 "그것은 문제가 안 될 여지도 있는데 왜 문제라고 단정짓냐"고 열심히 실드 치더라고.

ㅇㄱㄷ 커버곡 ado 노래 번역+개사 문제로 논쟁하는데,

논리 없이 우기는 모습을 보니까 한심해서 불쌍할 지경이더라.


팬치는 단순 커버곡의 경우에는 2차저작물로서 영리성의 조건이 되지 않는 2차창작물이라고 우겼고,

그에 대해서는 원글 작성자가 가사를 단순히 번역하기만 한 건 새로운 창작성이 부가되지 않았다고 반박했지.

사실 ㅇㄱㄷ 커버곡은 단순 커버곡이 아니라 영리성을 추구했으니 전제부터가 글러먹었으니 반박도 손쉽게 당할만하지.

근데 여기서 물러나면 우리의 팬치가 아니다.

"원저작물을 번역-편곡-변형-각색-영상제작 그 밖의 방법으로 작성한 창작물" = 2차저작물이라고 하면서,

가사의 변형과 별개로 곡을 부르는 가수가 달라지는 변형이 일어나니 단순 커버곡의 경우는 2차창작이다. 이렇게 내세웠다.

여기에 원글 작성자는 "영어로 된 성경을 한글로 번역한 한글성경은 영어 성경의 2차창작물임?"이라고 반문했고.

거기에 팬치는 "그렇다. 원본은 오리지널리티가 있으니 원본이고, 번역한 한글성경은 보통 번역본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단순번역의 경우를 커버곡에도 러프하게 뒤집어 씌우면 논리의 비약이다.(=번역은 2차 창작이다) 커버곡은 2차창작이 아니다."라고 답했다.


어이가 털리는 곳이 한두군데가 아니라서 나도 저기다가 어이없다고 댓글을 달기는 했지만...

생각나는게 있어서 추가로 글을 작성해본다.


우선 제목에 쓴대로 나는 생초짜 번역가다.

이번에 내가 처음으로 번역한 책이 나오긴 할건데 언제 나올지는 알 수 없고...

현 상황은 번역가가 되는 길을 향한 첫걸음을 떼려고 하는 중이라고 할 수 있다.

아무튼 이력은 정말로 별볼일 없다는 거야. 아무리 잘 쳐봐야 데뷔 직전.


그래도 나름 번역을 사랑하고, 외국어와 자주 접하며 번역에 대해서 오랫동안 생각해 온 사람으로서,

팬치의 저런 망발을 보니 하고 싶은 말이 참 많아지더라고.


우선, 원본과 번역본의 관계 그리고 오리지널리티에 대해 말을 해보고 싶어.

역사상 오랫동안 무수히 많은 번역가에게 안겨주고 또 안길 고민이 있어.

바로 '완벽한 번역은 가능한가?'야.

번역이 왜 번역이야?

쉽게 말해볼게. 원글 작성자랑 팬치가 성경을 예시로 들었지.

한국어를 쓰는 모든 기독교도가 히브리어랑 그리스어를 알면, 굳이 한국어 번역이 필요할까?

당연히 아니지. 그런데 한국어를 쓰는 기독교도는 성경을 읽고 싶어해. 즉 수요가 있단 말이야.

외국어로 된 글을 읽고 싶은 수요가 있는데, 모든 독자에게 그 능력이 있는 것은 아니야.

그래서 그 원래 외국어를 읽고 해석해서 독자의 언어로 옮길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사람이 번역을 하는 거야.

이게 번역의 근본이야.

그래서 번역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원문(=출발어)을 독자의 언어(=도착어)로 얼마나 정확하고 오류 없이 옮기냐는 것이다.

원어 독자가 원어로 읽고 느꼈을 그 감각을 독자가 읽고 최대한 비슷하게 느끼는 게 번역에게 주어진 임무니까.

그러나 언어들은 서로 다르고, 번역을 하면 그 과정에서 의미의 손실이 일어날 수 밖에 없어.

간단하게 예시를 들자면,

햄릿의 대사 To be, or not to be를 '사느냐, 죽느냐'로 옮기면, be에 포함된 다른 의미가 손실되어 버려.

맥베스의 독백에서 유래한 윌리엄 포크너의 소설 제목 Sound and fury의 한국어 제목은 어떻고? 

소리와 분노, 고함과 분노, 음향과 분노 등등.

시 번역은 더 말할 것도 없고. 

그리고 언어 고유의 표현도 있기도 해. 

나는 중국어의 '麻辣'(마라)를 한국어로 완벽하게 번역한 사례를 지금까지 못 봤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번역은 상술한 수용자가 모르는 외국어를 해석해서 의미를 전달해주는 유일한 방법이라서 포기할 수 없는 것이고.

강조해서 말하자면, 수용자가 모르는 외국어를 수용자의 언어로 정확하게 해석해서 전달하는 것이 번역이다.


그런데 이 '정확한 해석'에도 나름 필요한 것이 있어.

번역자의 오리지널리티, 독창성이야.

저 팬치는 "원본은 오리지널리티가 있으니 원본이고 번역한 것은 보통 번역본이라고 부른다."라고 하면서

마치 번역본은 오리지널리티가 없는 것처럼 이야기했는데,

물론 원본에 비하면 번역본은 그 오리지널리티가 떨어진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저렇게 말하면 번역가들 무시하는 거임.

번역도 오리지널리티가 매우 중요하거든.

예시를 두 가지 들게.


1. 무서운 영화 2

여자: (남자에게) 저 통(chest) 잡아!

남자: (여자의 ㅈㅌ을 잡는다)

여자: ㅈㅌ 말고 저 통!

chest 가 상자, 통, 여자의 가슴을 모두 의미하는 것을 의식한 번역.

chest를 단순히 상자라고 번역했으면 이런 번역이 나올 수 없었다.

한국어 번역자가 상황과 맥락에 맞게 chest를 '상자'가 아닌 '통'이라는 번역어를 '선택'했어.

이게 어째서 오리지널리티가 아니지?


2. 내가 겪은 사례.

"중국의 저우쭤런(周作人, 루쉰 친동생)은 유럽 문명의 발원은 '两希' 문화로, 곧 그리스(希腊) 문화와 히브리(希伯来) 문화라고 했다."

나는 이 문장을 마주했을 때 两希를 어떻게 옮길까 고민했어.

중국어에서는 그리스와 히브리의 음역어가 마침 둘 다 希로 시작하니 '두 希 문화' 이렇게 표현이 가능하지.

그런데 한국어는 아니야. 그리스를 '헬라스'의 음역어인 '희랍'(중국어의 그것)으로 지칭하는 사례는 있어도,

히브리를 희백래라고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 말이야.

만약 한국에서도 그랬더라면 나도 그냥 '두 希 문화'로 옮길 수 있었겠지.

그러나 그러면 독자가 이해하기 힘들잖아. 직관적이지도 않고.

그래서 나는 '2H 문화'라고 옮겼어. 헬레니즘(Hellenism)과 헤브라이즘(Hebraism) 둘 모두 H로 시작하고,

'서양 문명은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세계사 교과서의 서술을 생각하면,

이렇게 번역하는 편이 한국 독자에게 더 직관적으로 다가가겠다는 판단이었지.

지금도 '이것보다 나은 번역어가 있었더라면 좋았을텐데.'라고 생각하지만, 후회는 없는 선택이야.


이렇듯 번역에서도 역자의 독창성은 중요해.

물론 어디까지나 원문을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해서지만,

그 정확한 전달을 위한 오리지널리티가 요구되는 사례가 한두번이 아니야.

그런데도 번역본에는 오리지널리티가 없다고 하는 것은 어폐가 있어.

설사 정확한 전달에 실패해서 의미상 변형이 일어난 '오역'이라고 하더라도 결국은 '번역'의 범주에 들어가.

오역도 본질적으로는 원어의 의미를 '전달하려고' 하는 행위거든. 틀려서 문제지.

 

그런데 2차 창작은 그게 아니야.

2차 창작은 원 창작물에 근거하되,

2차 창작자의 주관과 상상 등 '독창적인 요소'를 가해 '변형'하는 것이 2차 창작이야.

우리가 왜 를 의 2차 창작이라고 부를까?

그야 에서는 무송이 서문경을 죽였는데, 에서는 그 전개를 '변형'해서 서문경이 무송에게 죽지 않고 이야기가 전개되니까.

여기 유게에도 자주 올라오는 아이마스, 말딸 만화들도 마찬가지야. 

해당 IP의 캐릭터들을 가져와서 그 캐릭터들로 그림을 그리거나 이야기들을 만들어내는 거잖아.

그 IP가 창작자들 자신들의 것이거나, 아니면 IP 공식의 그림 또는 스토리를 그대로 가져오는 등,

'독창적 변형'이 없다면 우리가 그걸 '2차 창작'이라 불러줄 이유가 있을까?

2차 창작의 가치는 바로 그 '독창적 변형'에 있는 것이지. 얼마나 재미있게 원작을 해석하고 변형해서 새로운 창작물을 내느냐.


요점은 번역은 '정확한 전달'이 목표고, 2차 창작은 '원저작물에 독창성을 가미한 변형'이 목표라는 거야.

이 둘의 지향이 이렇게 다른데 어떻게 동일시할 수 있다는 걸까?

내가 그 팬치에게 진짜로 화가 난 것은 그 때문이야. 

그 잘난 사이비 아이돌을 변호한답시고 번역과 2차 창작 둘 다를 변명거리로 삼아 헛소리를 내뱉으며 모욕을 저지른 것. 




이야기가 길었는데,

슬슬 결론을 지어볼게.


노래의 가사를 '번역'하고 개사해서 노래를 부르는 것은 '2차 창작'이 아니다.

가사를 '번역'한 시점에서 이미 '2차 창작'이라고 할 수는 없거든.

그리고 '번역'을 하는 것은 (고전 번역이 아닌 이상) 기본적으로 원작자의 허가가 필요하다.

그런데 번역해도 된다는 허가를 받았다는 증거가 없잖아?

그런 증거도 없는데도,

"아무튼 2차 창작이고 비영리 목적이라고요 번역은 2차 창작이니까요"라고

번역을 방패로 우기는 모습을 보니 참 화가 나더라.


세줄요약)

1) 번역은 원문의 정확한 전달이 목적이다.

2) 번역과 2차 창작은 서로 지향하는 바가 다르다.

3) 그런데도 사이비 아이돌 쉴드친답시고 어느 팬치는 번역은 2차 창작이니 문제가 없다는 망언으로 초짜 번역가의 화를 돋구었다.

4) 느그형은 하루빨리 대법원 피고석에 서서 처벌받아야 한다.


추하게 탭갈이

댓글
  • D.엡스타인 2025/07/27 21:52

    번역이 2차 창작이란 게 도대체 뭔 소리여...?
    아니 진심으로 그런 소릴 하는 모...자림이가 있단 말이야?
    걔들은 2차 창작이 뭔지 모르나? 아니, 모르니까 그런 소릴 하는 거겠지.
    모르면 그냥 입 다물거나 알아보면 되는데, 모르면서 자기가 아는 범위에서 어떻게든 지어내려 하니 별의 별 말이 다 나오는구만.

    (kKU46Y)

  • D.엡스타인 2025/07/27 21:53

    게다가 2차 창작은 저작권이 없다는 말도 신박하네.
    2차 창작이어도 오리지널리티가 들어가면 저작권을 일부 인정해 주는데.
    실제로 2차 창작물을 멋대로 도용했다가 유죄 뜬 판례도 있고.

    (kKU46Y)

(kKU46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