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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문)막사발은 폄하 받을만한 막 만든 사발이 아니다.

이 글은 여러 글들을 퍼오고 누더기처럼 기웠다는 사실을 먼저 밝힙니다.




 
막사발의 외주를 받던게 조선이며

막사발에 들어간 기술이며 모양이며 빼어난 게 맞다.

https://www.dogdrip.net/530594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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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사발이 다용도 사발이라는 것은 논란의 여지 있음

팩트체크 아직 못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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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자랑 막사발을 비교하는건


카툰 그래픽이랑 실사 그래픽마냥

전혀 지향점이 다른걸 비교하는 취↗의 영역이라고





원제:이도다완(井戸茶碗)에 대한 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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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국보중에도 존재하는 조선에서 만든 이도다완

많은 사람들이 막사말이라고 해서 그냥 대충만든 물건으로 알지만

실제로는 굉장히 비싼물건으로 비싼가격에 제작판매 수출하였다

말그대로 고급기술이 아니면 만들수 없는 물건



이도다완(井戸茶碗)은


일본 다도문화에서 사용되는 다완 종류 중 가장 칭송 받는 다완으로

만들어진 목적은 정말 미궁이고

출생지는 현재 경남 창원 웅동면 두동리 가마(웅천가마터)로 추정됨.

그외에 하동 진교면 백련리 새미골

사천 등등도 후보지에 올라있음.




이 미스테리한 도자기는 우연히 일본으로 건너가서


일본 차문화의 성인인 센노리큐의 선택을 받게되며

일본 다도에서 일약 스타덤에 오름.


아래 사진은 이도다완중에 가장 최고라고 일컬어지는

'기자에몽 이도다완'으로 일본의 '국보'로 지정되어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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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다완은 도자기 파편만으로도 일본에서 수십만엔에 거래된다는 전설이 있고


온전한 것은 도쿄 빌딩 한 채 값으로도 못산다고들 함.







이도다완의 감상포인트를 몇부분 설명하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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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다완 굽부분에 생긴 유약 뭉침 현상, 일명 매화피(梅花皮, かいらぎ, 가이라기)

한국 검도 매한가지지만, 일본 검 손잡이 부분의 철갑상어 가죽 감촉과 유사하다 하여

무사들이 선호했다는 이야기가 있음.

지금도 매화피가 필수조건은 아니지만, 아름답게 생성되어 있으면 높게 쳐줌.

강한 물레선을 비롯한 조형에서 오는 아름다움도 감상포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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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도다완은 사실 미스테리 덩어리다.


물론 쉽게 생각하면 그냥 조선시대에 나온 그릇이지만,

도대체 왜 모양이 이런 형태인지, 왜 만들어졌는지, 이름이 왜 이도다완인지, 정확한 제작지가 어딘지

아무것도 정의된 것이 없음.


모양에 대해서는 제기라는 설이 나올 정도로 아주 독특한 기물임.

그릇치고 굽이 높고 (거의 2센티)

매화피라 불리는 하단의 유약 뭉침 현상과 표면의 강한 손자국은

우연적으로 만들어지기는 힘든, 의도성이 다분한 조형임


만들어진 이유도 알 수 없는 게

이도다완이 만들어진 16세기에 문헌 어디에도 이도다완 제작에 대한 언급은 없음..

그래서 왜 만들어졌는지도 모름...


이름의 유래는 설이 많음(구매자 이름이 井戸, 만들어진 장소가 우물있는 집 (井戸)이라서 등)

하지만, 역시 정확히는 모름...


제작지도 넓게 경상남도라는 것만 알지

(흔히 후대에 만든 이도의 약속이라는 조건에 경상남도 흙으로 만든 것만 이도로 인정한다고 되있을 정도)

어딘지 딱 잡아서는 말못함...


예상장소는 진해 웅천, 사천, 하동, 산청 등등





2. 한국에는 조선시대 이도다완 실물이 거의 안남아있음.


웃긴 이야기지만 사실임.

이것도 이도다완의 미스테리임.

남아있는 다완은 거의 일본에 있어.

이도다완이 일본이 발주한 주문다완이라는 설이 나온 것도 이것 때문임.

수집가들이 이도다완 실물이라고 주장하는 물건들도 거진 알고보면

근대 재현작이거나 위작임;;

진품은 거의 다 일본에 있다는 거.


3. 2번과 이어지는 데, 이도다완은 파편도 우리나라에 많이 없음.


왜냐하면, 우리가 신경 못쓰는 사이에

일본으로 거의 유출됨...

일본인들이 우리나라 가마터에 와서 이도 비슷한 조각은 거의 캐갔고

한국인들이 가치를 모르고 팔기도 팔았음...

지금 가마터에는 좋은 조각이 없다시피함...



4. 이도다완을 조선 막사발이라 부르는 것은 큰 오류


막사발은 막 만들었다는 의미가 있는데

말했듯이 이도다완은 철저히 설계해서 나온 물건임..

이걸 막사발이라 부르는 것은 유물에 대한 예의가 아님.

나는 '조선다완'이라고 하면 좋겠다고 생각함. 아니면 그냥 이도다완이라 부르면되고.




5. 요즘은 가격을 잘 못받지만. 이도다완 인기의 전성기 시절에 거래가는


상상을 초월하는 가격이였음.

당장 전근대에는 일본에서 '성 한채'로도 못 샀다 하고

현대에도 도쿄의 빌딩 하나를 주고 이도다완을 샀다는 소문이 있을정도...






이도다완에 대한 오해


밑에 3줄 요약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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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찻사발을 막사발이라고 부르는데 도자기(陶瓷器)라는 것 자체가

도공(陶工)이 대충 만들어 서민들이 막 쓸 수 있는 값싼 제품이 아니기에

찻사발에 대해 일반적으로 잘못 알려진 내용들에 대해 몇 가지 논의(論議)를 하고자 이제 다시 한 번 짚어 보겠다.

고려청자(高麗靑瓷)를 막사발이라고 할 사람은 없을 것이고, 분청(粉靑 : 분청사기(粉靑沙器)라고도 함)도

자유롭게 만든 것이지만 서민(庶民)들이 깨져도 상관없이 막 쓰던 것은 값싼 물건은 아니며,

이도나 웅천다완은 아마도 제사(祭祀) 때 사용했을 가능성이 제일 높은데 이 또한 막 만들어 막 쓰는 도자기가 아니다.


또한 일본인이 주문제작한 다기(茶器)들은 동래부사(東萊府使)가\

진주(晋州)의 백토(白土)와 곤양(昆陽) 새미골의 수을토(水乙土) 등의 흙을

김해요(金海窯), 창기요(경남 양산군 법기), 부산(釜山)의 왜관(倭館) 부산요(釜山窯)까지 가져와

관요(官窯)의 기술자들을 동원하여 만든 것으로


거칠게 만들어진 것도 있지만 그것은 일본인들이 그렇게 주문했기 때문이다.


이것을 막 만들고 막 쓴다는 의미의 ‘막사발’이라고 부르는 것은 잘못된 표현(表現)임이 명백(明白)하다.

하나하나 따지고 보면 어느 것 하나도 막 만들었다거나 막 쓰는 용도(用度)의 물건이 없으며,

더군다나 일본인들이 도자기가 없고, 안목(眼目)이 없고,

돈이 없어서 우리나라의 개밥그릇, 거지 동냥 그릇을 마구잡이로 가져가 국보로 삼은 것이 아니라

뛰어난 심미안(審美眼)을 가지고 고르고 골라간 것이 바로 조선(朝鮮)의 찻사발인데도

"우리 개밥그릇인 막사발을 가져가 국보(國寶)로 삼은....”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구겨진 자존심(自尊心)을 세우려는 분들을 만나면 참 안타까운 마음이 절로 생긴다.


일본의 박물관 등에 있는 중국의 다완(茶碗)들도 이미 1500년대에 일본인들이 중국에서 구해다 쓰던 찻사발들이다.

이런 더 고급의 도자기들을 쓰던 일본인들이 조선의 다완에 눈을 돌린 것은 중국 다완들은 화려(華麗)하여

의식용(儀式用)으로는 좋을지 몰라도 일반 차인(茶人)들이 편안한 마음으로 차를 나누기에는 너무 사치(奢侈)스러워

오히려 조선의 소박(素朴)한 사발들이 더 적합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지

도자기(陶瓷器)가 없거나 안목(眼目)이 낮아 우리 사발(沙鉢)에 열광한 것은 아니다.


야나기 무네요시 또한 1931년에 기자에몬이도를 보고 적은 글에서

지적(知的) 의식(意識)이 없는 일자무식(一字無識)의 조선(朝鮮) 도공(陶工)이 뒷산의 흙을 파다가

대충 굽고 화로(火爐)에서 꺼낸 재로 대충 유약(釉藥)을 입혀 구운 것이 이도다완(井戶茶碗)이고,

조선의 어디서나 쉽게 싼 값에 구할 수 있고 천민(賤民)들이 부담 없이 사서 마구잡이로 쓸 수 있는 값싸고 흔한 물건이 바로 이도다완이며,

그런 이도사발을 다완(茶碗)의 용도로 골라낸 일본 다인들의 안목을 칭송(稱頌)하면서

이도다완은 조선인들이 만들었지만 찻사발로서의 용도와 가치는 일본인들이 찾아내었기 때문에 일본 것이라고까지 주장하였는데

많은 분들이 이 글을 우리 이도다완에 대한 최고(最高)의 평가(評價)라고 많이들 인용(引用)하고 있다.


막사발이 아니라 찻사발이라는 글에서도 비판했지만 도자기가 근대(近代)에까지도 막 쓰기 힘든 물품인데

조선(朝鮮) 초기(初期)에 천민(賤民)들이 도자기(陶瓷器)를 마구 썼다는 내용도 그렇고,

이도다완도 경남(慶南) 진해(鎭海)와 하동(河東) 진교(辰橋)에서 조선 초기에 아주 잠깐 생산된 것인데도

1914년부터 조선의 민중예술(民衆藝術)에 심취(心醉)하고 조선의 도자사(陶瓷史)를 연구한 조선 민예(民藝)의 전문가(專門家)라는

야나기 무네요시(1889~1961)가 1931년(나이 43세로 조선도자사를 공부한지 17년 됨)에 기자에몬을 보고 적은 글이라는 게

고작 전국 어디서나 만들어졌고 천민들이 부담 없이 마구 쓰던 물건이 이도다완이라니,

조선 도공의 지적 의식’ 운운(云云)하던 야나기의 지적(知的) 의식(意識)을 의심(疑心)하지 않을 수 없다.


아마도 막사발이라는 표현은 조선 말기(末期)에 상공업(商工業)의 발달로 상인(商人)들이

도공들을 고용하여 도자기(陶瓷器)를 대량생산(大量生産)하게 한 것에서 나온 표현일 수는 있겠으며,

그중에 다완과 비슷한 형태의 것들이 만들어 졌을 수 있겠으나 일본인들이 고려다완(高麗茶碗)이라고 이야기하는

15~6세기의 조선 찻사발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우리나라의 근현대 도자사 참조)

그런데도 15~6세기 막사발 운운하며 ‘막사발’이라는 표현(表現)에 집착(執着)하시는 분들이 정작


글에서는 서민용(庶民用)이 아닌 것 같다거나 막 쓰던 것이 아니라는 상반(相反)된 주장들을 펴시며

횡설수설(橫說竪說)하는 경우를 자주 보는데 이는 ‘막사발’이라고 이름을 잘못 붙인 이름의 ‘막’이라는 글자 때문에

머릿속에서 은연중에 찻사발에 대한 잘못된 이미지가 생겼기 때문에 스스로 헷갈려 그런 것이다.

찻사발이건 막사발이건 차만 잘 마시면 되지 뭐가 그리 복잡(複雜)하냐고 하실 분이 많겠지만

사물(事物)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먼저 바르게 이름 붙이는 것인 ‘정명(正名)’에서 부터 시작해야하며,

‘막사발’이 아니라 ‘찻사발’이라고 고쳐 불러야 하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 최성림의 「한국 찻사발 정리(막사발 비판 2)」, 01/09/05, 글 중에서








3줄요약

일제시대때 역갤러 같은 아마추어 문화연구가가 자국 문화가 조선 기원인게 빡쳐서

조선의 열등한 재주도 고급으로 바꾸는 일본 스게에!

라는 글을 빨아재끼는 한국 국,뽕충들이 아이러니하게도 자국유래 문화를 역으로 깔봄




보성 덤벙이(宝城粉引)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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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ZXm9xV5cyBs


1. 보성 덤벙이는 물을 만나면 물꽃이 핀다.

특히 찻물이 스며든 덤벙이에서는

3번째 사진과 같은 독특한 물꽃이 핀다.

이 모습이 아름다워서 선호하는 사람이 많다.


2. 보성 덤벙이는 거의 일본에 있다.

이도다완과 비슷한 경우인데

다인들이 많은 일본에 아무래도 많이 수출(?) 된 듯...


3.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쓰던 다완 중 하나가 보성 덤벙이이다. 이름은 미요시 코히키(三好粉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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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보성덤벙이는 완전한 우리 도자기이다.
덤벙기법은 외국에도 있지만, '보성 덤벙이'는 조선에서 만들어진 독창적인 기법이다.

댓글
  • 초☆융★합 2025/05/19 00:41

    남아있는게 거의 없다는게 아쉽네.. 기억이라도 제대로 해야겠지

    (ydw6Ez)

(ydw6E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