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조정의 대신들도 이앙법하면 작물 쑥쑥 나오고
잉여생산물도 나오고 국력도 커지는걸 알고있었음
왜? 옆나라 중국과 일본이 그렇게 해서 크고 있으니까!!
그렇지만 반대했던 이유도 보면 그당시엔 반박할게 별로 없었음
1. 불균형한 강수량
우리나라는 비가 여름에만 집중되는 구조임
때문에 사대부에서도 가뭄되면 말라죽는데 완전 로또아님? 하고 반대함
2. 세금 문제
참고로 조선시대때 세금은 양반, 노비는 안냈다
그렇다고 양민의 숫자가 많았느냐? 라고 하면 그건 또 아닌게
양민의 숫자는 역사상 MAX치가 전체 인구의 50%였음
그런데 이앙법은 직파법에 비해서 노동력의 필요가 거의 곱절 수준으로 확 줄어들음
때문에 정부에선 소작농이 몰락해서 양민이 몰락해서 노비로 전락하고
이는 세수부족으로 갈수있는 문제라 금지함
3. 사대부들의 인식부족
조선시대때 양반들은 야예 상업행위하면
저새X는 양반이 아님 하고 기열시켜버릴 정도로 상업에 손을 못대게했음
그러다보니 상업에 대한 지식이 굉장히 빈약하거나 없어서
흉년 = 인생망함
에서 못벗어 났음
뭐...현대였다면 상업을 키우던지 아니면 다른 상품작물을 키우던가 했을텐데
경제적 활동 = 농업
에서 벗어나지를 못했음
어쨌든 조선 후기부터 치수, 비료기술의 발전으로 인해서 이앙법이 점차 퍼졌고
17세기 소빙하기로 전세계를 휩쓴 가뭄과 한파속에서도
오히려 인구가 증가하는 결과를 맞이하게 된다